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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성'과 '약자'를 위해 부지런히 뛰었다. 1984년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90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여성 전문기자와 논설위원으로 일했다. 2008년 2월 당시 한나라당의 추천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 됐다. 그는 더 바쁘게 뛰었다. 책상머리에서만 인권증진이라 말하는 건 부족하다 판단했다. 16개 시·도를 누비며 인권침해가 있는 현장으로 갔다. 그는 인권이라는 전기에 감전된 채 살았다.

"인권위 떠난 후, 잠도 오지 않을 정도로 괴로웠다"

6월 2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제12차 아셈 인권세미나 행사장 앞에서 현병철 연임 반대와 국가인권위 바로세우기 전국 긴급행동 회원들이 현병철 위원장의 자질을 지적하며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6월 2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제12차 아셈 인권세미나 행사장 앞에서 현병철 연임 반대와 국가인권위 바로세우기 전국 긴급행동 회원들이 현병철 위원장의 자질을 지적하며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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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일, 바람이 맵찼던 날이었다. 그는 상임위원직을 그만두고 남은 임기 100여 일을 가슴에 묻었다. '사임의 변'에서 "인권위 근무의 전반부는 열정과 신바람과 보람의 나날들이었으나, 최근 상황은 안타까움과 슬픔과 절망의 시간이었다"고 털어놨다. 그 경계에는 2009년 7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부임이 있었다. 그는 "현 위원장 부임 이후 인권위가 파행과 왜곡의 길을 거쳐 고사 단계로 전락하고 있다"고 사직 이유를 밝혔다. 결국 그는 인권위의 위기를 알리고자,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것을 포기했다.

문경란 '전' 상임위원. 그가 유남영 상임위원과 함께 인권위를 나가자 조국 비상임위원 등 다른 인권위원들도 줄줄이 사퇴했다. 인권시민단체들이 현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 현 위원장의 문제점을 널리 알렸다.

그럴수록 문 전 위원의 마음은 아팠다. 장애인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인권위 앞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농성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한 장애인이 목숨을 잃었다.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괴로웠다. 인권위 설립 때부터 일을 도왔던 조사관을 정리해고할 때는 달려가서 1인 시위라도 하고 싶었다. 인권위가 '식물인권위'로 전락하는 모습을 바라볼수록, 그의 마음은 저렸다.

청와대가 현 위원장의 연임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현 위원장 같은 사람을 상대로 계속 힘을 빼야 하는 현실에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16일 열리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민주통합당에서 문 전 위원에게 증인채택을 부탁했다. 그는 거절했다.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거절하려 했지만 가슴 한 구석이 찜찜했다. 마지막으로 증언을 남겨두자고 결심했다.

문 전 위원은 13일 오전 서울 서초동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온 힘을 다해 쥐어짜듯 이야기를 했다. 표정은 격앙됐고 손짓은 분주했다. 그는 "현 위원장은 인권이 아닌 권력을 일해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연임시킨 저의를 이해할 수 없다"며 청와대를 향해 날선 비판을 던졌다.

문 전 위원은 오는 16일 열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현 위원장의 자질을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국회가 시민을 대변하는 기구라면, 현 위원장을 반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선 안 된다고"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 들어올 인권위원장은 권력의 인권침해를 정면으로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문 전 위원과의 일문일답이다.

"현병철 위원장, 북한인권 위해 한 일이 뭐가 있나"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조직 운영 방식에 항의하며 사퇴 의사를 밝힌 문경란 인권위 상임위원이 2010년 11월 1일 오후 서울 중구 무교동 인권위를 떠나며 배웅 나온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조직 운영 방식에 항의하며 사퇴 의사를 밝힌 문경란 인권위 상임위원이 2010년 11월 1일 오후 서울 중구 무교동 인권위를 떠나며 배웅 나온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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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위를 떠난 지 1년 8개월이 지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바쁘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고 하지 않나(웃음). 돌봄노동자, 아시아 여성, 미혼모, 성매매 여성들을 돕기 위해 여성 관련 단체에서 자문 역할을 맡고 있다. 인권정책연구소에서 이사도 맡고 있다."

- 현 위원장 연임 소식을 듣고 기분이 어땠나? 인권위 안팎 모두 반발이 큰 상황이다.
"절망했다. 지난 3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했나. 인권위원들이 사퇴하고 전문, 비상임위원, 인권시민단체들이 반발했다. 이를 청와대는 소귀에 경 읽기로 받아들였다. 무슨 생각으로 저런 인사를 단행하는 건지 모르겠다."

- 청와대에서는 현 위원장이 "북한인권 문제를 공론화하는데 기여했다" "중립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졌다"라는 등의 이유로 연임을 결정했다. 동의하나.
"뭔가 했어야 그런 말을 할 텐데….우선 북한 인권 관련해서는 내가 있을 때도 다 했다. 더 적극적으로 실태조사를 했다. 심포지엄도 열고 해외 나가서 탈북자 상황도 다 점검했다. 그런데 현 위원장은 북한 인권을 위해 뭘 했는지 모르겠다. 북한 현지조사 한다면서 위원회를 설치한 것으로 안다. 결국 조사 못했다. 그는 오히려 북한 인권을 정치적인 사안으로 더 몰고 갔다. 또한 인권은 중립과 균형으로 표현할 사안이 아니다. 인권이라는 잣대로만 판단해야 한다. 공권력이 헌법에 보장된 인권을 침해하면, 그러지 말라고 권고하는 기구가 인권위다. 진보, 보수 등 정치적으로 이해할 일이 아니다."

- 이명박 정부가 현 위원장 연임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일각에서는 인권위를 계속해서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인권위의 역할과 사명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려고 인권위를 설립했다. 이것이 국제사회의 합의이고 정신이다. 인권위를 정권 공격하는 기관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보수적인 인사를 임명할 수도 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전문성, 합리성, 민주적인 리더십은 갖춰야 한다. 도덕성도 갖추지 못한 사람을 임명해선 안 된다. 보수 진영에도 자질과 소양 갖춘 분들이 많다. 그런데 굳이 왜 현 위원장인지 이해가 안 된다."

- 임기를 100일도 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사퇴했다. 차관급 상임위원이 둘이나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를 주도했는데,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고민 많이 했다. 인권위는 우리 사회 약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중요한 자리다. 이런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권위 회의에서 현 위원장이 보여준 반인권적인 행태를 참기 힘들었다. 그래도 참고 할 수 있는 역할을 끝가지 다하려 했다. 문제는 현 위원장이 그 역할을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상임위 운영규칙을 개정해 위원들의 역할을 제한했다.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버린 것이다. 아무리 그 안에 있어본들 소용없었다. 또한 인권위가 파멸되는 상황을 국민들도 잘 알지 못하는 듯했다. 인권위를 이대로 두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다는 심정으로 그만뒀다. 다른 사람들도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있다가 나를 보고 줄줄이 사퇴했다."

- 문 위원을 비롯해 많은 위원들이 인권위를 '정상화' 하기 위해 사퇴했다. 그러나 이후 약 2년의 시간동안 그야말로 '식물 인권위'가 됐다. 당시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나.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다. 임기 채우고 조용히 나왔으면 인권위가 처한 상황을 알릴 수 있었을까? 인권위에 대한 위기의식을 시민들과 함께 느끼고 싶었다. 인권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 나왔다."

"현 위원장, 왜 <두개의 문> 보러갔는지 의문"

문경란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문경란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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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용산참사' 문제를 다룬 영화 <두개의 문>이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현 위원장이 "독재라 해도 어쩔 수 없다"며 '용산참사' 안건을 다룬 전원위원회 회의를 일방적으로 폐회한 사실도 동시에 화제가 됐다. 현 위원장이 이 영화을 보러 갔다가 쫓겨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이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용산참사' 관련해서 현 위원장이 보여준 행태가 아직까지 생각난다. 당시 '용산참사'를 둘러싼 문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공권력의 과잉진압, 나머지는 가난한 사람을 삶의 보금자리에서 쫓아내는 주거권 문제였다. 과잉진압 문제는 인권위가 조사하고 권고해야 했다. 그래서 조사하자고 안건을 제출했다.

당시 '용산참사'와 관련해 정말 열심히 조사했다. 자료 안건만 몇 천 편 봤다. 그런데 위원장은 안건을 상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도 끊임없이 권고했다. 당시 전원위 회의에서 6명의 위원들이 권고해야한다고 의견을 표명했다. 찬성으로 분위기가 흘렀는데 현 위원장이 미루자고 하며 폐회했다. 이 분은 '용산참사' 건을 인권위가 권고하는 일이 권력의 핵심에 있는 분들 심기를 거스른다고 생각했다. 즉, 그는 인권이 아닌 권력을 돌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왜 영화 <두 개의 문>을 보러갔는지 의문이다."

- '용산참사' 이외에 인권위에서 다루지 못해 아쉬운 사안은 없나.
"내가 여성인권 국제회의에 참석하러 인도네시아에 간 사이 <PD수첩> 수사 안건이 전원위 회의에 올라왔다. 내가 없는 사이 부결했다. 현 위원장에게 항의했다. 분명 내 의사를 미리 표출했었다. 그렇다면 내가 있을 때 표결해야 하는 게 맞다. 아마 처음부터 부결시키려 했던 것 같다. 이외에도 민간인 사찰 등의 문제도 위원들이 문제제기했다. 그런데 안건으로 다루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인권위가 판단하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다. 민감한 문제지만,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국가인권기구를 만들어 판단하려는 것이다."

- 현 위원장이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자료를 보면, 문 전 상임위원이 마련한 '스포츠 인권 가이드라인' '성폭력 피해아동 인권 보호' '청소년 미혼모 학습권 보장' 등을 자신의 성과로 기록했다. 이를 두고 '업적 부풀리기' 논란이 있었는데.  
"(현 위원장이) '용산참사', 민간인 사찰 등의 안건은 적극적으로 반대했는데, 이 사안들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기는 했다(웃음). 이 일들을 마치 내 공적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민망하지만, 당시 적극적으로 현장을 누비며 일했다. 인권위에 들어간 지 열흘이 지나 코치의 선수 폭행, 선수들의 기초과목 학습 부족 등 스포츠인권 문제가 터졌다. 내가 그 일을 맡았다. 16개 시·도교육청을 방문하고, 대한체육회와 포럼을 만들어 가이드라인 제정을 진행했다. 유명 운동선수를 불러 설득했고, 국회의원들을 만나 "운동선수들 공부 안 시키고 때리며 훈련시키는 상황 놔둘 건가"라고 압박했다.

부모들을 다 모아 워크숍도 했다. 하루 종일 대화하도록 하니 부모들이 '우리 아이들 공부 가르쳐야 한다, 두들겨 맞는 것도 원치 않는다' 등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나중에 한 부모는 "세금 걷어간 국가가 우리 아이 걱정하며 보호해주려 애써준 게 처음이다, 고맙다"라고 말해주었다. 이후에도 교육청 장학사들을 상대로 '청소년 피해아동 인권 보호' '청소년 미혼모 학습권 보장' 등을 촉구했다. 지금도 이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인권위원장 잘 뽑아야 한다는 걸 가르쳐 준 게 현병철의 최대 업적"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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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위원장의 3년을 평가한다면? 공은 없었나
"인권위원장을 잘 뽑아야 한다는 걸 분명하게 가르쳐준 게 현 위원장의 최대 업적이다. 위원장 잘못 뽑으면 인권위 위상과 역할이 떨어진다는 걸 보여줬다."

- 현 위원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국회는 국민을 대변하는 기구다. 인사청문회도 마찬가지다. 인권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많은 사람들을 대변해야 한다. 요식행위는 안 된다. 그러면 국회도 평가받을 것이고, 대선 앞두고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것이다. 특히 새누리당은 보수 정당으로서 더욱 인권을 보장하고 증진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역사적으로 인권은 보수의 것이었다. 우리사회가 합의한 기본권을 담은 법을, 보수가 지켜야 한다. 요즘 새누리당 모습을 보면 직접 가서 인권 강의라도 해주고 싶다."

- 인사청문회에서 검증해야 하는 사항은 무엇인가.
"철저하게 인권에 대한 전문성과 감수성을 검증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가 인권위의 독립성을 지켜낼 수 있는 소신 있는 인물인지 평가해야 한다."

- 인권위원장의 자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누가 오더라도 독립성이 최고 덕목이다. 우리 사회가 갈수록 이념적으로 양극화되면서 인권마저도 편 가르기를 한다. 안타깝다. 이념과 정파에 상관없이 인권침해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권력의 인권침해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 인권위 설립 취지이자 역할이다. 입법, 사법, 행정 권력기관들의 눈치를 보지 말아야 한다. 소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또한 일반인이 느끼지 못하는 감수성을 가지고 인권 문제를 발굴해가야 한다."

- 인권위의 후퇴가 현 위원장만의 문제일까? 위원장 한 명이 부적격하다고 인권위 전체가 마비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현 위원장의 잘못 중 하나다. 인권위는 합의제 기구다. 여러 위원들이 모여 인권문제를 논의한다. 그런데 그는 이 정신에 맞지 않게 비민주적으로 인권위를 운영했다. 매사를 민주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처리했다."

- 앞으로 인권위를 지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위원장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했다. 이것 외에도 인권위를 헌법기구로 정하는 방안이 있다. 인권위가 정권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게 아니라 시민사회, 인권전문위원들에게 공개적으로 검증받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훨씬 더 인권위에 적합한 분을 선임할 수 있다."

- 인권위 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인가.
"인권위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위원장이 와야 한다. 우리 사회의 인권 현안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문제제기할 수 있는 전문성과 감수성을 지닌 인물이어야 한다. 위원장 한 명으로는 안 된다. 직원들도 인권에 대한 열정과 전문성을 가진 분들이어야 한다. 투명하게 공개된 과정을 통해 위원들을 선출해야 한다. 또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시민사회와 활발하게 소통해야 한다. 현장 활동가들에게 배우고 그들과 소통해야 한다."


태그:#문경란, #현병철, #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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