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뭔 말인지 모를 대법 판결문  

 

핸드폰 문자로 집시법위반 벌금을 내라는 문자가 왔습니다. 11일에 생긴 일입니다. 문자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명신님 벌과금납부명령서 발송 벌금 500000원 신한은행 561-919-******** 예금주:검찰청 -서울중앙지검

 

불현듯 "검찰은 나쁜 사람을 잡는 것이 아니라 잡을 수 있는 사람을 잡는다"라는 인기 TV 드라마 <추적자>의 대사가 생각났습니다. 연이어 <부러진 화살> 영화도 기억났습니다.

 

지난 5월 24일 대법원 제1부는 집시법위반에 대한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피고는 접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건 2012도3268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원심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2.2.16 선고 2011노 3420. 판결선고 2012.5.24 )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원심판결이유를 원심이 유지한 제 1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들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그 판사와 같은 이유를 들어 이 사건 공소사실이 유죄로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위배되고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상 규제의 대상인 집회의 의미와 고의 및 공모공동정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위법이 없다.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재판장 대법관 박병대 대법관 김능한

주심  대법관 안대희 대법관 이인복

 

저,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독서도 그런 대로 한 편인데 상고이유를 아무리 해석하려해도 뭔 말인지 해석이 안 됩니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보니 내게 판결을 내린 대법관들은 나름 유명한 분들이더군요.

 

이중 지난 7월 10일 퇴임한 안대희 대법관(57·사법연수원 7기)은 10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퇴임식을 하고 "가치관이 혼재된 사회에서 국민은 법관이 마땅히 분쟁의 최후 심판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기대한다"며 "법관의 가장 큰 덕목은 한없이 자신을 낮춰 작은 목소리도 하찮게 여기지 않는 자세"라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작은 목소리도 하찮게 여기지 않았는데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일까요? 대법관 퇴임 선물치고는 너무 가혹한 선물입니다.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된 기자회견 자리

 

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2009년 8월 3일 광화문광장이 개장한 직후였습니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사용조례를 만든다면 입법예고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문화연대를 비롯한 참여연대, 민주당,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등 야4당은 광화문광장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며 광장 사용을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날 문화연대 공동대표로 참석했습니다. 참여연대 쪽에서 당일 대표 참석이 어렵다고하여 '기자회견 여는 말'을 문화연대에서 맡기로 했습니다. 무척 더운 날이었는데도 가족 관람객들이 많더군요.

 

기자회견이 시작되었습니다. 평화로운 분위기였습니다. 소란도 없었고, 폭력도 없는 여느 기자회견과 똑같은 기자회견이었습니다. 어느 순간에 아예 다른 방향으로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자회견을 시작하고 첫 순서인 '여는 말'을 하는데 경찰들이 '해산하라'는 방송을 3회 하더니 갑자기 기자회견 참가자들을 연행하기 시작되었습니다. 현장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기자회견을 해봤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습니다. 경찰들은 유독 남자들만 광화문에서 멀리 떨어진 수서경찰서로 연행해갔습니다. 그날 연행자들은 24시간에서 48시간 만에 나왔는데 사건발생 8개월여가 지난 2010년 4월경부터 난데없이 경찰들이 출석요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1년여를 괴롭히더니 2010년 12월 말 체포영장을 발부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검찰이 약식기소하여 벌금 100만 원이 나왔더군요. 저는 그날 기자회견을 한 일이 검찰이 기소할 만한 죄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번 잘못 낀 단추들은 줄줄이 잘못 꿰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정식재판을 청구했습니다. 그동안 어용단체, 관변단체가 기자회견을 빙자해 수많은 시위와 폭력사태를 벌여왔지만 경찰과 검찰은 그것을 방임해왔습니다. 그것과 비교하면 이번 처사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시작한 재판은 지난 2년여 동안 지루하게 이어졌습니다. 1심 판사가 벌금을 절반으로 줄여주었더니 검찰이 불복 항고를 하더군요. 2심에서는 1심 확정, 그리고 결국 대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한 것입니다.

 

같이 기자회견 했는데 국회의원이 된 사람은 '무죄'

 

그런데 기묘한 일은 그날 같이 기자회견을 한,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박아무개 의원 등 3명은 저와 비슷한 시기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그 의원은 나를 만나 '그날의 행사는 집회 시위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문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법원이 기자회견 자리라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누구는 집회시위를 했다고 처벌하고, 누구는 기자회견을 했다고 무죄판결을 할 수 있을까요?

 

최근 대법관 인사청문회가 한창입니다. 일상적인 상고심 사건을 처리하는 대법관 12명 중 이번에 4명을 새로 뽑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종교편향 시비가 일었습니다. 검찰 몫으로 추천된 다른 한 사람은 위장전입이나 다운계약서 작성, 태백시장 인사비리 수사 무마 청탁 의혹, 중학교 선배인 브로커를 통해 제일저축은행장의 돈을 받았다는 의혹 등 총 10가지 의혹이 있어 '대법관 인사청문회 이래 최악의 후보'라고 불립니다.

 

대법관 후보 기사를 보는 내 심정은 참혹합니다. 내게 판결을 내린 대법관들의 히스토리를 따라가 봤습니다. 판결문에 이름을 올린 이인복, 박병대 대법관은 취임 당시 인사 청문회장에서 위장전입 의혹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서 처분을 받은 나로선 허탈할 뿐입니다.

 

보통 사람보다 죄 많은 대법관이 누구를 단죄할 수 있을까요? 담당이 누구냐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하는 판결. 재수가 좋으냐 나쁘냐에 따라 운명이 바뀌는 판결.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대법원입니까? 나는 그런 사법권력에 나를 맡길 수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서울시의원, 전 문화연대 공동대표입니다.


태그:#대법관, #집시법위반, #광화문 광장, #김병화, #추적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육ngo에서 일합니다 교육현안에대해 대중적 글쓰기를 할 계획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