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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암산성 남문
 입암산성 남문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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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만난 소녀(
관련기사 : <부탁 아닙니다... "아저씨, 텐트 좀 빌려주세요">)들과 헤어진 뒤에 자전거로 주변을 한 바퀴 돌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장성의 남창계곡이 황룡강의 지류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그 무슨 '지상의 양식'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깜짝 반가운 마음으로 알게 되었다. 물론 아직은 강이 아니었다. 황룡천이었다. 황룡천이 황룡강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여기저기 도처에서 달려온 물과 합세해서 장성호를 채워야만 한다. 장성호를 채운 뒤에 다시 흐르고, 또 흐르면서 다른 물들과 섞여지면, 그때 비로소 황룡강이란 이름을 얻는다.

어쨌든 나로서는 자다가 문득 깨나서 떡이라도 얻은 기분이었다. 어머니의 댁호가 황룡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황룡이 어디에 있는 무엇인지, 동네 이름인지 강 이름인지 산 이름인지도 몰랐다. 젊은 시기를 다 보내고서야 장성에 황룡강이 있고, 황룡면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로서는 글쎄 이것을 뭐라고 해야 하나, 미안스러움과 죄스러움과 민망함 같은 것들이 뒤죽박죽 엉켜서 나 자신도 그 실상을 알 수 없는 모호함 속에서 갑자기 확 트인 고속도로라도 만난 느낌이었다.

남창계곡은 내장산국립공원 지구에 속해 있다. 계곡을 거슬러 오르노라면 입암산성이 나온다고 안내판은 말해주고 있었다. 입암산성은 깎아지른 듯이 가파른 바위를 적절히 활용해서 쌓은 성으로, 최초의 축조시기는 기록이 없어 정확하지 않지만 삼국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된단다.

남쪽에서는 매우 중요한 군사시설로 관리돼온 입암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물론이고, 병자호란 이후 툭하면 밀고 내려온 몽골군을 상대로 싸워서 거의 유일하게 승리를 거뒀던 곳이기도 하고, 육이오 동란 시기에도 당연히 이런저런 수많은 죽음의 사연들을 간직하게 된 곳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었다.

어쨌든 지금은 평화의 시기. 산성에 이르는 길이 재미있다. 비탈에는 큼직큼직한 돌을 깔아서 흙이 빗물에 쓸려가지 않도록 했는데 발에 밟히는 감촉이 우둘투둘하고 거칠거칠한 것이 흡사 발마사지라도 받는 것 같고, 그래서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팍팍 온다.

발바닥을 자근자근 주물러주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돌바닥길
 발바닥을 자근자근 주물러주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돌바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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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다니는 길은 그렇게 했지만, 사람이 다니면 안 되는 비탈 쪽으로는 역시 큼직큼직한 돌로 마치 담장을 치듯이 축대를 쌓았다. 이 축대가 흡사 여기서부터는 나무와 풀들과 다람쥐들의 사유지이니 사람은 침범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처럼 여겨진다.

군데군데 설치한 수로가 또한 섬세하다. 요새 한창 유행인 콘크리트를 들이부은 게 아니라 거의 표시도 나지 않게 비스듬하니 돌을 깔거나 통나무를 적절히 활용해서 빗물을 유도해내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너도나도 길을 새로 내거나 넓히는 시대에 이건 또 어인 역발상인가. 입암산성에 이르는 길이 원래는 꽤 넓었던 모양이다. 기록에 따르면 1960년대에 군사작전을 이유로 산의 도처를 자르고 깎아서 트럭이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길을 냈더란다.

그 넓은 길을 절반으로 뚝 잘라서 자동차도 사람도 못 들어가게 했다. 그리하여 사람의 발에 밟혀 사라져버렸던 각종 식물들이 그 안에서 새로이 터를 잡고 있고, 다람쥐는 그 속에서 재롱잔치를 벌인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명품은 역시 삼나무 숲이었다. 입암산성에 이르는 도처에 삼나무가 심어졌는데 그 덩치는 한 아름이요 그 높이는 하늘을 찌른다.

삼나무를 식재한 그 방식이 또한 독특하다. 삼나무 숲인가 하면 굴참나무 숲이고, 굴참나무 숲인가 하면 다시 삼나무 숲이 나온다. 삼나무가 일본 원산이라 해서 꺼리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종의 다양성 측면에서 보자면 아무래도 불행한 적개심이라고밖에는 달리 표현을 못하겠다. 무엇보다 그 향기, 영혼을 싸악 씻어주는 것 같은 그 향기를 맡아 보시라.

그리 멀지 않은 어디 무슨 절간에서 스며 나오는 향내 같은 아스라하게 상큼한 공기가 계곡의 물소리와 어울리고, 그것은 다시 새소리와 어울리며, 작은 잠자리와 나비들과도 어울리며 오감을 완전히 일으켜 세운다. 그리하여 내 몸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게으르게 잠든 곳이 하나도 없이 모두 일어나서 조용히 외치는 것이다.

"숨을 내쉬어봐. 좀 더 크게 심호흡을 해봐."

그윽한 향기를 뿔어내는 삼나무숲.
 그윽한 향기를 뿔어내는 삼나무숲.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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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하나였다. 어지럽게 여기저기 샛길이 뚫려 있지 않았다. 오직 하나의 길만 있었지만, 심심하지 않은 길이었다. 계곡을 중심으로 오솔길이 갈짓자로 혹은 지그재그 식으로 나 있다. 구절양장 같은, 가파른 산에 낸 차도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계곡의 물소리가, 잊을 만하면 다시 들리고, 또 잊을 만하면 "나를 잊지 마세요" 하는 듯이 콸콸콸 소리를 낸다.

이 계곡은 물론 다리를 건너야 한다. 방수목으로 구성된 이 다리는 계곡에서 완전 유일하게 콘크리트 기둥에 의지하고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면 물이 다리를 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때 다리가 유실되지 않도록, 이를테면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심을 박아놓은 셈이다. 콘크리트는 언제 어디에 사용하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산교육장이라 해도 뭐 무방할 것 같다.

드디어 산성 정상 부근에 닿았다. 이곳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정상은 갓바위인 모양이다. 여러 개의 거대한 바위가 포개어진 이 갓바위는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모양이 다르다. 멀리 남서쪽에서 바라보면 영락없이 갓을 쓴 선비의 형상이지만, 다른 방향에서는 그저 거대한 바위일 뿐이고, 가까이 가서 보면 모험심 많은 연인들이 숨바꼭질을 하기에 딱 좋을 정도로 바위들이 얼기설기 얽혀서 마치 작은 동굴이 전후좌우로 뚫려 있다는 느낌이다.

입암산성 정상 갓바위에 이르는 길은 대체로 완만하지만 정상 부근에서 갑자기 거의 수직으로 가팔라진다.
 입암산성 정상 갓바위에 이르는 길은 대체로 완만하지만 정상 부근에서 갑자기 거의 수직으로 가팔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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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을 따라 축조된 산성길은 덤불숲이 울창하다. 두 사람이 팔짱을 낀 채로는 어림도 없다. 혼자서도 풀과 나뭇가지들이 계속 손끝에 닿거나 어깨를 스친다. 들리는 것은 내 발자국 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메뚜기들이 후두둑 소리를 내며 달아나는 그야말로 오솔길을 걷고 있노라니 어디서 불쑥 공비나 간첩 같은 것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아지면서 홀연 더위가 싹 가셔 버린다.

그러고 보니 뭔가 있다. 뭐냐 이거. 냄새 안 나는 똥이다. 호젓한 오솔길은 노루나 고라니 같은 녀석들이 종종 화장실로 이용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굵은 것도 있고 길쭉한 것도 있고, 딱딱한 것도 있고 말랑말랑한 것도 있고, 크기와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냄새는 약속처럼 하나도 안 나는 초식동물의 똥이 수시로 발길에 채이고 눈에도 보인다.

하긴 그럴 것이다. 수풀이 무성한 곳에서 용변을 볼 때 성가신 것은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엉덩이를 풀잎이 자꾸 찌르거나 귀찮게 하는 것은 노루나 고라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어쩌랴. 어차피 그들의 터전에 사람이 들어왔으니, 사람들이 내 놓은 길을 그들이 화장실로 쓴다 해서 나무랄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양쪽 수풀 속에서 뭔가 금방 튀어나올 것 같은 오솔길. 이 오솔길은 노루나 고라니 같은 녀석들의 화장실로 이용되기도 한다.
 양쪽 수풀 속에서 뭔가 금방 튀어나올 것 같은 오솔길. 이 오솔길은 노루나 고라니 같은 녀석들의 화장실로 이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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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나무가 있어서 나뭇잎이 수북하게 쌓인, 그러니까 부엽토가 기름지게 쌓여 있는 곳은 거의 예외없이 거칠게 파헤쳐져 있다. 저것은 누구의 짓인가. 멧돼지가 아니고는 저렇게 거친 쟁기질을 할 녀석이 없다. 그 속에 숨은 지렁이며 굼벵이 같은 것들을 잡아먹느라 저토록 부지런을 떨었겠지.

만약에 멧돼지가 내 앞에 나타나면, 팔씨름 한번 하자고 조르고 싶다는 느닷없는 생각이 슬쩍 든다.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온몸을 내던져 들이받는 게임이라면 당연히 내가 지겠지만, 팔씨름이라면 까짓 백에 아흔아홉으로 내가 이길 게 틀림없지 않을까? 그런 느닷없는 생각이 들면서 이젠 정말로 멧돼지를 찾아 앞뒤좌우를 둘러보고 있는 나를 내가 발견하고 푸실푸실 웃어도 본다.

사람들은 흔히 입암산성이 4시간 코스라고 하지만, 나는 글쎄 몇 시간이나 걸렸을까. 첫날은 여덟 시간이 넘게 걸렸고, 둘째날은 열 시간도 넘게 걸린 것 같다. 서 있는 새의 목처럼 길고 가파르다 해서 새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 남쪽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갈 때 반드시 거쳐야 했다는 그 새재를, 나 자신이 과거를 보러 간다는 생각으로 몇 번을 넘어 보았다.

선비들이 넘어 다니던 시절에는 주막도 하나 있었다지만, 지금은 그 형체는커녕 전하는 이야기를 적어놓은 안내판이 외로워 죽겠다고 훌쩍이는 모양새로 숲속에 오두마니 서 있을 뿐이다.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는 법.

밝은 해가 떴다고 좋아해주었으니 밤에도 지지 말고 계속 밝은 해로 남아 달라고 보채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 희대의 천재거나 희대의 바보일 것이다. 나는 비록 희대의 천재가 아니지만, 희대의 바보가 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또 하나의 고고학적인 발굴에 버금가는 발견을 하고 한참을 앉아 있다가 일어서서 서성거리다가 또 앉아 있었다.

내 생전에는 처음 보는 거대한 뽕나무가 군데군데 서 있는, 경사가 점차 완만해지다가 아예 사라지고 완전히 평야를 느끼게 하는 습지에 이르러 여기 어디에 마을이 있었겠다, 하고 생각하며 어슬렁거리다 보니 정말이다. 70년대에 마지막으로 한 가구가 떠났다는 내용과 함께, 마을 이름이 성내리였다는 정보를 안내판이 전해준다. 성내리라면 성 안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살았다는 것일 테니 추론을 하자면 귀족이었거나 성을 수비하는 장병들의 마을이었을 것이다.

산성 내 옛 마을 자리에 남아 있는 아주 오래된 확독
 산성 내 옛 마을 자리에 남아 있는 아주 오래된 확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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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유일하게 남은 것일지도 모르는 거대한 확독 하나가 나의 추론에 힘을 보태준다. 내 기억에 따르면 확독이란 물건은 디딜방아나 연자방아로 찧은 곡식을 좀 더 부드럽게 마지막 껍질을 벗겨내기 위한 용도로 쓰던 일종의 정미기계다. 정미기계일 뿐만 아니라 김치를 담글 때 고추를 갈기도 했으니 믹서기 역할도 했던 셈이다. 지금은 그 확독을 무당개구리들이 차지했다. 이끼가 퍼렇게 내려앉은 확독 안에서 무당개구리들이 여긴 내 집이니까 접근하지 말라는 투로 신경질적인 소리를 낸다.

뽕나무는 요새 흔히 볼 수 있는 잎이 아주 넓은 것이 아니고 아주 작은 것이다. 거의 구지뽕 수준이다. 옛날의 뽕나무는 원래 이렇게 잎이 작았던 것일까. 아니면 사람의 손을 타지 않게 되면서 점차 작아져간 것인가. 오디 열매도 아주 작다. 너무 작아서 따먹을 기분조차도 들지를 않는다. 그러나 새들은 좋아한다. 이런 새 저런 새 온갖 새들이 뽕나무를 중심으로 시끌시끌 요란한 잔치를 벌인다. 이 뽕나무로 누에를 치고 번데기를 빼내서 새끼를 먹이며 비단실을 자았던 여인들은 지금 어디로 갔는가. 어디에서 새로운 새끼를 기르고 있는가.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없이 산속을 그저 감상적으로 헤매고나 있는 것 같지만, 내게도 나름의 목적이, 목표가 있었다.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도 계곡을 계곡이게끔 해주는 저 맑은 물들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나오는가. 그러니까 수원지를 찾고 싶었다. 아니 찾고자 했다.

그리하여 찾았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숫자를 들이댄다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고도 많은 수원지를 나는 보았다. 그것은, 수원지는, 한 그루의 나무였다. 나무 아래 포개진 바위들이었다. 나무는 바위와 바위들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가끔 오줌을 누듯이 몇 방울의 물을 내놓는 것이었다. 그 몇 방울의 물이 바위 틈새로 모이고, 또 모이고, 또 모이면 바위는 그것을 아래쪽으로 졸졸 흘려보내는 것이었다.

황룡강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황룡강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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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졸, 그리고 때로는 찔끔찔끔, 그렇게 맨 처음 흘러나온 물은 특급수라고나 불러야 마땅할 정도의 명경수였다. 그냥 물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살지 않는,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맑디맑은 명경 같은 물이 흐르면서 다른 물과 섞이고, 또 섞이면서 새우나 산천어처럼 깔끔 떨기 좋아하는 물고기가 살 수 있는 1급수로 전환되고, 이 물이 다시 또 흐르고 흘러, 이것저것 다가오는 대로 흡수하고 섞이면서 붕어나 미꾸리가 살 수 있는 2급 혹은 3급수로 전환되면, 그때부터 계곡은 사라지고 하천이 되는 것이었다.

모든 하천이 그 나름의 이름을 갖고 있듯이, 남창계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새로 이름을 얻은 하천이 황룡천이었다. 이 황룡천은 장성호를 넘어서면서 다른 새로운 식구들을 포섭하여 황룡강으로 이름을 바꾼다. 이름을 바꾼 황룡강은 장성을 관통해서 광주를 지나고, 광주를 지나는 동안 또 다른 수많은 무리들과 몸을 섞어 덩치를 키우면, 황룡강은 뒤로 물러나고 영산강이 도도한 흐름을 자랑하며 저 멀리 목포 앞바다를 향해 달려간다.

이것은 마치, 우리 어머니가 소녀 유봉춘이었던 시절에 소년 김장회를 만나 황룡댁이 되고 수복이의 어머니가 되고, 며느리들의 시어머니가 되고 사위의 장모가 되고 손자손녀들의 할머니가 되고, 그리하여 마침내 그 모든 이름들을 버리고 '여기'를 떠나 저기 어디 다른 넓은 세상으로 '돌아가신' 것과 같은 이치를 갖는 것이니, 내가 어찌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며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가 있으랴.


태그:#장성, #남창계곡, #입암산성, #황룡강, #수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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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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