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2년 전에 직장에서 정년 퇴직했다. 퇴직 이후 사실 외로움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전 직장 동료들과 또 다시 어울리는 것은 싫었다. 전 직장 동료들은 현직에 있을 때 경쟁 관계에 있다거나 또 지난날 직장에서의 직급 의식을 느끼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어울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전 직장 둉료 보다는 타직종에서 일했던 사람들과 다양하게 사귀어 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아는 이에게 '광주 아버지 합창단'을 소개받아서 단원으로 등록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연습실에 나가 연습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도 몇 분은 계시지만 주로 젊은 분들과 새로운 사귐을 하고 있다.

바로 합창단복을 맞추고 공연도 몇 번 나갔다. 노래는 잘 못하지만 여럿이 하는 합창인지라 나 하나 못 하는 것쯤은 그렇게 튀지 않아서 좋다. 사실 잘 모르는 부분은 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리고 있다.

광주 아버지 합창단은 1998년 3월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로 어려울 때 삶에 힘든 아버지들이 합창으로 마음을 달래 보고자 창단했다고 한다. 그러니 15년의 창단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단원들은 의사분들도 계시고 학교 선생님들, 사업하시는 분들 등등으로 다양하다.

지난 1일에는 우리나라 최남단 천사의 섬, 소록도에서 주민들을 모시고 위문공연 봉사활동이 있었다. 고흥 녹동과 소록도를 잇는 아름다운 연륙교를 타고 소록도에 들어갔다. 우리의 공연 장소는 소록도 성당이었다. 소록도 섬주민들이 약 600분 된다는 데 200분 가량이 성당에 모였다.

성당에 오신 분들 모두가 나이가 지긋하신 70대 이상 되신 분들이었다. 이제 한센병은 사라지는 병이어서 젊은 분들은 없고 주민 전체가 65세 이상됐다는 것이다. 그분들의 얼굴과 손은 이그러졌지만 인상은 여느 시골동네 할아버지들 처럼 참 순박하신 분들 같았다.

소록도 주민의 평균나이가 73세 이란다. 노인분들 150여명이 우리의 공연을 보러 오셨다.
▲ 우리의 공연을 보러 오신 주민들 소록도 주민의 평균나이가 73세 이란다. 노인분들 150여명이 우리의 공연을 보러 오셨다.
ⓒ 조갑환

관련사진보기


우리의 합창은 아프리카 흑인들이 불렀다는 <아디아무스> 그리고 찬송가인 <시편 23편> 가곡 <동백섬> 등 조금은 어려운 노래들을 불렀다. 그래도 음악은 만인의 마음을 공감하게 하는 마력이 있어서인지 그분들도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치시면서 즐거워했다.

우리 합창단의 합창이 다 끝났을 무렵 앞에 앉아 계시던 한 분이 벌떡 일어서더니 한 말씀을 하셨다.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는 목포의 눈물입니다. 목포의 눈물을 한 번 듣고 싶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우리는 <목포의 눈물>을 연습도 않고 악보도 없지만, 아는 대로 합창했다. 성당에 모인 주민들도 같이 따라 부르고 소록도 섬에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울려퍼졌다. <목포의 눈물>이 끝나자 또 한 분이 무대에 나오셔서 <홍도야 우지마라>를 멋지게 부르셨다.

한센병에 걸려서 삶을 어렵게 살아온 분들이지만 마음의 서정만은 잘 간직하고 사시는 분들이었다. 어려운 합창곡보다는 이분들에게는 어려운 시절에 그 분들의 마음을 달랬던 옛날 노래들이 더 좋았으리라. 우리 합창단이 그 것을 미리 알고 옛날 노래들을 준비했더라면 이분들에게 더 큰 위로가 됐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우리는 합창공연이 끝나고 성당에 계시는 수녀님들과 사진을 찍었다. 이 소록도 성당에 계시는 분들은 테레사 수녀님처럼 참으로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분들이다. 이보다 환경이 좋은 도시의 성당에 근무하면 생활하기가 편하실 텐데, 한반도 최남단의 이 섬까지 와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삶을 희생하는 이분들이야말로 참으로 존경스럽다. 이곳 수녀님들 앞에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공연을 마치고 소록도 성당, 주임 수녀님과 폼 을 잡았다.
▲ 소록도 성당 앞에서 공연을 마치고 소록도 성당, 주임 수녀님과 폼 을 잡았다.
ⓒ 조갑환

관련사진보기


소록도 주변을 돌아봤다. 소록도는 많은 슬픔을 간직한 섬이다. 소록도의 아름다운 바위절벽 낙화암은 일제시대 강제로 이곳에 끌려온 분들이 가족들과의 이별을 견디지 못하고 남쪽의 높은 절벽에서 바다에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렇게 슬프디 슬픈 아픔을 가진 소록도이지만 소나무숲이 우거지고 자연환경은 너무 좋았다.

돌아오면서 마음이 뿌듯했다. 그래도 그분들에게 우리 합창단의 공연이 조금의 위로가 됐을 것이다. 지난 세월, 나는 실적, 승진, 명예, 돈 같은 것에 목을 매달고 살았었다. 그것이 삶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어떤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은 내려놓고 싶다. 과거는 잊어버리고 미래는 나보다 못한 사회적 약자들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태그:#아버지합창단, #소록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는 여행에 관한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여행싸이트에 글을 올리고 싶어 기자회원이 되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