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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교식 일연 인베스트 대표
 안교식 일연 인베스트 대표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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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자금 60억 원에 투자 유치한 돈 80억 원, 총 140억 원을 투자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빚이 50억이다. 제1금융권에서 제2금융권, 제3금융권으로 갔다가 대부업체·사채에서까지 돈을 빌리게 됐다. 총각인 게 다행이다."

2001년 금강산으로 가는 쾌속선 '설봉호'를 탄 게 시작이었다.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 가 금융 관련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투자회사를 운영했던 그는 "기업가로서, 남자로서" 사업을 하면서도 의미 있는 일을 찾는 중이었다.

부모님 고향이 경기도와 서울로 북한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었지만 "단기적 수익을 기대하기보다는 장기적 수익과 후세에 물려줄 수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면세점을 시작으로 140억 원이라는 거액을 금강산에 넣었다. 30살 때였다.

2007년 7월 11일 새벽 고 박왕자씨가 북한 군인에 피격당하기 전까지 묵은 금강산 호텔과 고성강 횟집 등 금강산관광지구 내 5개의 업체를 운영했던 안교식(39) 일연 인베스트 대표의 이야기다.

"사업이 제 궤도에 올랐다면 외국계 자금도 500억 원 이상 끌어올 수 있었다"는 그였지만 대북사업에 나선지 9년 만에 50억 원이라는 빚을 지고, 매달 어김없이 찾아오는 사채이자 1500만 원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지난 2일 만난 그는 "처자식 없는 총각이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까지 했다.

아래는 박왕자씨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분단의 피해자인 안교식 대표의 절규다.

- 금강산사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유일한 취미가 여행이다. 잘 사는 나라부터 못 사는 나라까지 30~40개국 정도 다녀봤다. 그러다 2001년쯤 우연히 설봉호를 타고 금강산에 가게 됐다. 그게 계기였다.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 가서 대학 마친 뒤에 투자회사를 했었는데, 기업가로서, 남자로서 사업을 하면서도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찾는 중이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관광·개발이 이뤄지면 배고픈 사람들이 밥을 먹게 되고, 이것이 남북의 교류협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점이 의미 있다고 느꼈다. 어차피 남북관계의 정치적 상황을 볼 때, 단기적 수익을 기대하기보다는 장기적 수익과 후세에게 물려줄 수 있는 사업이라고도 봤다. 경제나 문화 교류 없이 (남북) 정치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게 제 생각이었다."

"북한과 개인적 인연 없는데... 후세에 물려줄 수 있는 일이라 봤다"

안교식 일연 인베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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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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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 고향이 북한이라든가, 개인적 인연이 있나.
"전혀 없다. 부모님도 경기도, 서울 분이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업을 시작한 건가.
"2002년 면세점 사업으로 시작했다. 펀드 등으로 마련한 개인자금 60억 원에 투자 유치한 돈 80억 원 가량을 더해 140억 원을 대북사업에 투자해 금강산 패밀리 비치호텔, 고성항횟집, 여행사, 한식당, 펜션 등 총 5개 업체를 운영했다. 호텔이 실제 영업을 시작한 건 2006년 말 정도였다."

- 당시 고용한 북측 인력은 얼마나 됐나.
"횟집에 펜션, 호텔 종업원까지 하면 80명쯤 됐다. 1년 반 정도 데리고 일했다. 계절마다 조금씩 인원이 다르긴 했는데, 점차적으로 사람을 늘릴 계획이었다. 당장은 호텔에서 일하는 북측 직원들 기숙사 문제가 풀리지 않아 중국동포를 많이 고용했지만, 장기적으로는 북한 주민을 쓰려고 했다."

-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이 정부가 직접 나선 것이었지만, 대북사업 특성상 불확실성이 적지 않은데 그렇게 큰 금액을 투자했나.
"금강산 관광 중단 이전에도 대북사업 여건은 좋지 않았다. 남북 간 문화 갈등이나 이념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의미나 목표 없이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북한 주민을 고용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이를 현대아산이나 정부와 협의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또 저희는 횟집에서 북한 자연산 회를 팔았는데, 북에서 안정적으로 수산물을 공급받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다. 관광 중단 이전에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만약 기자분이 4년 동안 급여가 없다고 생각해봐라. 살아남을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도 의미와 희망을 갖고 여태껏 운영해왔다."

"관광 재개돼도 북한에 투자할 회사 있을까"

- 당장의 수익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의미를 갖고 시작한 일이었다?
"지금 (금강산 관광에 투자한) 많은 회사들이 부도 위기다. 저희 회사는 처음에 시작할 때 부채 전혀 없이 시작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경우 부채가 100~200%씩 되어도 금융권에서 아무 문제없이 지원받고 있다. 그러나 저만 해도 인생 파탄 나게 됐고, 기업은 존속 못 하게 생겼다. 관광이 재개된다 해도 북한에 투자할 회사는 더 이상 없다고 본다. 정책 때문에 기업이 존속할 수 없는 상황이다. 누군가 대북사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북한과 현 정부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진 상황인데, 투자할 만한 기업이 없지 않겠나."

- 지금 경제적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가. 
"빚이 50억 원이다. 사업 시작할 때 5~10억 원 정도 부채가 있었지만, 그건 별 게 아니었다. 근데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후 회사를 유지하려고 집을 포함해 모든 재산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았다. 금강산에 있는 자산은 담보로 인정받을 수 없으니까. 제1금융권에서 제2금융권, 제3금융권으로 갔다가 대부업체·사채에서까지 돈을 빌리게 됐다. 대출 이자만 해도 7%대, 10%대, 30%대까지 있다. 사채 이자만 한 달에 1500만 원이다

그렇다고 관광이 언제 재개될지 몰라 부도를 낼 수도 없었다. 금강산이 특수지역이어서 담당직원 교육만 3~6개월씩 걸린다. 관광 재개에 대비해 2년 전까지 금강산 현지 직원(한국인) 월급 주면서 관리했다. 소수인력들만 남기면서 천천히 정리했다. 이제 금강산에는 아무도 없고, 국내에 직원 한 명 남았다."

- 개성공단 진출기업처럼 금강산 관광지구에 투자한 곳도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없는 건가.
"개성공단과는 성격이 다르다. 개성공단은 정부 관리기구가 있지만, 금강산의 모든 행정업무는 현대아산이 하고 있다. 사실 업체 불만이 큰 게 '정부가 관여하는 부분이 적다'는 점이다. 저희는 사업 초부터 '현대아산과 계약했기 때문에 정부가 지원을 못 해준다'는 얘기만 계속 들었다. 또 정부 관리기구가 있으면 모든 일들을 남북 정부 간 협의로 풀 수 있는데, 행정권을 현대아산이 갖고 있다 보니 불미스러운 사건이 생겨도 정부가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은행 대출도 그렇다. 현대아산이 모든 계약의 주체여서 자산 담보를 인정받아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업체가 한정됐다."

- 그럼 관광이 재개되면 형편이 좀 나아질 수 있는 상황인가.
"사실 관광이 재개돼도 문제다. 살아나갈 방법이 없다. 정부 지원이 없으면 회생할 길이 없다.(한숨) 사업자금이 있어야 곰팡이 핀 호텔 벽을 다시 도배할 것 아닌가. 초창기부터 10년 동안 적자만 봤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후) 4년은 매출 자체가 전혀 없었다. 이전에도 사업이 잘 될 만하면 사스(SARS,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가 유행하고, 서해교전이 있고. 잔 파도에 계속 쓸려오다 박왕자씨 사건으로 모든 게 멈췄다. 국내 사업은 정 안 되면 접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북사업은 정부 정책이나 정치와 연결돼서 개인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이다."

"박왕자씨 한 분 돌아가신 일로 이렇게 닫힐 줄이야..."

2009년 8월 17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면담 등 7박8일 동안의 방북일정을 마치고 귀환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2009년 8월 17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면담 등 7박8일 동안의 방북일정을 마치고 귀환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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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11일이면 당시 호텔 투숙객이던 박왕자씨가 사망한 지 꼭 4년이 된다.
"당시 저는 서울에 있었는데, 굉장히 난감했다.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박왕자씨 한 분 돌아가신 일로 관광지구가 장기간 닫힐 줄은 정말 생각 못했다. 서해교전, 핵 실험, 사스 등으로 관광이 중단된 적도 있었지만 기간이 짧았다. 음주운전을 한 협력회사 직원이 북측 군인 1명을 숨지게 하고 두 명을 다치게 했을 때, 북측이 우발적인 사고라며 관광을 중단하지 않았다."

- '그때 왜 설봉호를 타고 금강산에 갔을까'라며 대북사업에 발을 들인 걸 후회해본 때는 없었나.
"후회는 해본 적 없다. 모든 결정은 그 상황에 맞춰 자기가 내리는 건데, 그렇다면 세상에 억울한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총각인 게 다행이란 생각도 한다. 자식까지 있었으면. 다만 저 때문에 부모님까지 많이 고생하고 계신다.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돈 빌려주시고 했으니까…."

- 2009년 8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묘향산 합의'가 나왔다. 김 위원장이 "앞으로 박왕자씨 사건 같은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으니, 돌파구가 나왔다고 생각했을 텐데.
"당연히 관광이 재개될 것으로 봤다. 그렇지만 기업이 외국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면 현 정부에 공을 돌려서, 정부와 정부의 협의안이 도출된 걸로 해야지, 기업 총수가 가서 김정일 확답을 받아온 것인 양 해오면 모양새가 안 좋을 수밖에 없다. 현 회장이 남북 정부를 연결하는 '메신저' 역할로서 묘향산 합의를 받아낸 것으로 했다면 관광 재개가 이뤄졌을 텐데. 외교 관계가 안 좋을 땐 경제 채널로 (소통)하지 않냐. 여하튼 많은 노력들이 있었는데도 모두 타이밍이 안 맞았다."

- 2010년 4월에 "북한이 우리 정부가 요구하는 3대 요구사항(진상 규명, 재발 방지책 마련, 관광객 신변안전 보장) 합의서 초안을 문서로 써주겠다고 했는데도, 우리 정부가 이를 받지 않고 있다"고 했었는데.
"그 해 3월 25일 금강산 관광지구 내에서 열린 '남측 부동산 조사 설명회'에 (기업) 대표로 가서 직접 들은 얘기다. 북측에서 '문서를 써주겠다'고 한 게 아니라 '3대 조건을 수용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북한 입장에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하는 게 우리나라로 치면 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나 세계적으로는 (무엇을 공식화할 때) 말이 아니라 문서로 만든다. 남북 간 문화적 차이로 서로 이해를 잘 못했다. 사실 북한에서는 외화벌이 수단 등 여러 이유로 관광 재개가 필요했다. 박왕자씨 사망에 유감도 표시했고, (김 국방위원장이 직접 약속하는 등) 최고 대우로 재발 방지하겠다, 문서화해달라면 해주겠다고 했는데도 남한 정부가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니까 신뢰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화의 끈도 끊겼고."

- 북한은 금강산 관광 재개에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안 되겠네요, 담배 한 대 피워도 될까요) 진정성이야 당연히 있죠."

- 금강산 관광으로 북한에 현금이 들어가는 걸 남쪽에서 꺼려했다는 시각이 많다.
"사실 북한에 대해 논문 많이 쓰고 박사 학위 받은 사람보다 북에 트럭으로 모래 몇 번 실은 사람이 북한 사정 더 잘 안다. 북한을 경제적으로 압박해 정권을 무너뜨린다? 한 국가의 기간을 흔드는 일이 금강산, 개성공단 막아서 되겠나. (북한 지도부가) 땅이랑 지하자원 다 팔면 죽을 때까지 정권 충분히 유지하며 살 수 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몇천억 가지고 나라 안 망한다."

"경제 압박으로 북한 무너뜨린다? 금강산 막는 걸로 되겠나"

북한이 개성관광 전면차단, 남북철도 운행 불허, 개성공단·금강산관광지역 당국 및 기업 상주인원·차량 선별 추방을 통보한 2008년 11월 24일 오전 도라산 출입사무소에서 남측 사람들이 개성공단으로 가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북한이 개성관광 전면차단, 남북철도 운행 불허, 개성공단·금강산관광지역 당국 및 기업 상주인원·차량 선별 추방을 통보한 2008년 11월 24일 오전 도라산 출입사무소에서 남측 사람들이 개성공단으로 가기 위해 줄을 서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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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겪어본 북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우리나라 대기업이나 공무원 사회는 물갈이가 잦지만 북한은 외교부에서 10~20년씩 일해서 한 분야에 대한 지식이 깊다. 근데 경제의 문이 닫혀있어 이해 못하는 게 있다. 또 북한은 압박이든 회유든 하다가 이후에 '이렇게 하겠다'고 하면, 한다. 남북관계 중단하겠다, 중국과 손잡겠다는 게 압박일 수 있다. 근데 이게 잘 안 되면 아예 (관계를) 끊어버린다. 물건값을 깎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10불짜리를 5불에 달라고 하면 거부한다. 그 다음 3불에 사겠다고 했을 때 거래가 안 이뤄졌다면, 이후 100불을 준다고 해도 (북한 사람들은) 안 판다. 경제나 문화, 외교적으로 그렇다."

- 2010년 4월 한 토론회에서 "정치적인 갈등이 생길 때마다 우리 기업인들은 도구화하는 느낌을 받는다. 민간 경협과 정치적 부분은 분리해서 대응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무슨 뜻으로 한 말인가.
"정치적 상황에 따른 피해를 기업인들이 당한다는 뜻이다. 북한의 금강산 자산 동결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남북한 양쪽 정부의 압박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거다. 사고가 있어서 정부가 관광 중단을 결정했다. 근데 그럼 기업이 (금강산 사업에서) 손을 떼도록 방향을 잡아주거나 기업이 존속할 방안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외국에 불법 투자한 것도 아니고, 정부 승인 받고 투자한 회사들인데 정치 문제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면 최소한의 조치는 해줘야하지 않은가."

- 식자재나 물건들도 그대로 북한에 두고 왔다는 사람들도 있다더라.
"저희도 마찬가지다. 호텔에 있는 식자재가 억대로 썩어갔다. 횟집 수족관 물고기들도 다 죽고…. 그것도 다 수억 원이다."

- 박왕자씨 사건이 남쪽 정치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보나.
"자국민의생명, 안전이 정부에게는 명분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나라 관광객이 미군에게 피살당했다면 국교 수립한 것 끊겠나."

"사실 관광 재개돼도 걱정이다"

- 금강산 관광 재개, 어떻게 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근데 사실 이 부분은 남한 정부만 진정성 있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북한 노력도 있어야 한다. 남북 양측이 서로 진정성을 갖고 대화해야 한다. 하지만 사실 저희 (투자기업) 입장에선 관광 재개보다 생존권 문제가 심각하다. 관광 재개야 남북이 대승적으로 해야 할 일이고, 저희는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들다. 금강산 관광 재개해도, 사채 이자도 다 내야하고, 집이 경매 들어가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는데, 개인 밥 사먹을 돈도 없는데 곰팡이 슨 호텔에 다시 벽지를 붙일 수 있겠는가. 저희 회사만 해도 재개하려면 15~20억 원은 들어갈 텐데. 관광 재개가 와 닿겠나."

- 사실상 사업을 포기한다는 뜻인가.
"(담배를 깊게 빨면서) 휴…, 그렇다. 재원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 다시 대북사업에 안 뛰어드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다. 능력이 된다면 해야죠. 제 인생을 바친 건데."

-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사업을 북한에 대한 퍼주기로 보는 시각들도 여전하다.
"당장은 퍼주기일지언정, 길게 보면 북한 사람들을 더 자주 마주치는 과정에서 남북 평화가 조성될 수 있다. 돈 던져준다고, 미쳤냐고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친해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대북사업 해보니까 느낀 건데, 우리나라가 앞으로 경제가 크기 위해선, 남북 교류협력이 되지 않으면 성장 동력이 없다. 인구는 줄고, 지하자원 없다. 어차피 제조랑 수출로 돈 버는 나라다. 싼 인력 고용하고 지하자원 개발하고 출산율 높아야 나라가 사는데, 지금 중국기업들 우리나라에서 공장 짓고 기술 다 빼간다. 5년, 10년이면 다 따라잡는다. 제조단가도 우리보다 싼데, 그럼 우리나라가 그때 가서 뭘 먹고 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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