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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FTA저지 농민대회가 열리는 현장
 한중FTA저지 농민대회가 열리는 현장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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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아침, 하례리 주민들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7월 3일부터 서귀포시 중문 롯데호텔에서 한국과 중국 자유무역협정을 위한 2차 협상이 열리는 가운데, 이를 저지하기 위해 농민들이 집회를 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며칠째 장맛비가 내렸다. 장마는 세균과 해충이 창궐하는 시기인데, 농약을 살포할 시기를 놓치면 1년 농사를 망치게 된다. 장마 때문에 1년 농사를 걱정하랴, 자유무역협정으로 야기될 평생 농업의 위기를 걱정하랴, 농민들 애간장이 여간 타들어가는 게 아니다.

4일 새벽에도 비가 내렸지만 휴대전화로 "날씨에 상관없이 시위가 열린다"는 내용의 문자가 날아왔다. 다행히 아침에 날이 개었다. 버스를 타러 마을회관 앞으로 가보니 주민 4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11시 주민들이 버스에 올랐다. 평일 낮 시간에 행사가 진행되기 때문인지, 참가자 대부분이 나이든 어르신들이었다. 마을 청년회장이 탑승한 주민들 수를 헤아려보니 42명이라고 했다. 주민들이 버스에 탑승하자 남원읍 농민회 활동가 한 명이 버스에 올라 주민들에게 "버스를 가득 채워주셔서 고맙다"며 "시위중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말고 차분하게 행동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마을 주민들이 버스에서 머리띠를 묶는 모습이다.
 마을 주민들이 버스에서 머리띠를 묶는 모습이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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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태운 버스는 하효다리 옆에서 1시간 가량 대기했다. 하효다리에서는 남원읍 주민들을 태운 버스가 한데 모이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붉은색 머리띠를 받았는데, 어르신들이 머리띠를 질끈 조여 매는 모습이 슬프게 다가왔다. 농업 개방이 없었다면, 평생 시위가 뭔지도 모르고 살아갈 촌로들인데 말이다. 다른 남원읍 17개 마을 전체 주민들이 모이자, 17대 버스가 줄지어 시위가 예정된 중문 컨벤션센터 앞으로 향했다.

"데모를 해도 FTA 체결될 거 아닌가?"
"그러니까 투표를 잘 해야지. FTA 반대한다면서 선거 때 되면 이거 추진한 놈들에게 투표한단 말야. 그게 문제라니까."

"우리가 투표 잘한다고 되나? 제주도 인구가 적어서 힘이 없는데."
"그런데 왜 FTA협상을 제주도에서 하는 건가?"
"왜는 왜야? 주민들 숫자가 적으니 반대 집회를 통제하기 쉬어서지."

버스가 50분 가량 이동하는 버스 구석구석에서 많은 얘기가 쏟아졌다. 평소에 정치적 발언을 삼가던 어르신들이 시위하러 가는 중에는 평소보다 말씀을 많이 하셨다.

"막걸리 한 잔 해야 데모가 잘 될 것"이라며 술을 찾은 어르신도 계셨다. 젊은 아주머니가 "술은 없고 간식은 챙겼습니다"라고 답하자 또다른 어르신이 "술 안 마시고 '어쌰어쌰'가 되느나"며 막걸리에 대한 미련을 감추지 못하셨다.

한중FTA 협상을 저지하기 위해 많은 농민들이 집회에 참가했다.
 한중FTA 협상을 저지하기 위해 많은 농민들이 집회에 참가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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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강기갑 비대위원과 민주당 장하나 의원 등 많은 인사들이 집회에 참가해 농민들과 한 목소리를 냈다.
 통합진보당 강기갑 비대위원과 민주당 장하나 의원 등 많은 인사들이 집회에 참가해 농민들과 한 목소리를 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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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오후 1시 무렵 중문에 도착했는데, 이미 현장에는 제주도 전역에서 몰려온 많은 농어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회자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제주도 외부에서도 1000명 가까운 원정 시위대가 행사에 참가했다. 같은 분야에 속해 있으면서도 의견을 달리했던 전국농민회, 농업경연인연합, 농업협동조합 등도 이날은 모두 한목소리로 "FTA철폐, 농업생존권 보장"을 요구했다.

통합진보당 강기갑 비대위원장과 민주당 장하나 의원(비례대표) 등 정치인들도 집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지난 5년 동안 해군기지 문제로 고통받아온 강정마을 주민들도 시위대와 함께했다. 이들은 "FTA 철폐"를 외치면서 동시에 시위에 참가한 농어민들에게 해군기지의 문제점을 알리는 홍보활동도 펼쳤다.

강정마을 주민들도 집회에 참가했다.
 강정마을 주민들도 집회에 참가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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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권 위기에 내몰린 농민들의 처지를 알리는 퍼포먼스.
 생존권 위기에 내몰린 농민들의 처지를 알리는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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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집회장 주변에는 많은 경찰병력이 눈에 띄었다. 경찰은 시위진압에 사용하는 물대포를 현장에 배치하기도 했다. 농어민들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경찰병력으로 민초들을 위협하는 국가, 정부는 '경찰국가'의 진면목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오후 4시께에 컨벤션센터 앞에서 진행된 집회가 마무리되자 농어민들은 컨벤센센터에서 한국관광공사 제주지사까지 함께 행진했고, 그곳에서 마무리 집회를 열었다. 시위에 참가한 농어민들 중 일부는 FTA협상이 진행되는 롯데호텔 진입을 시도하며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정부는 과연 농민들의 분노를 협박으로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태그:#하례리, #한중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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