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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하진 않아도, 가물에 단 한송이를 내었어도 피어있음이 감사합니다.
▲ 털별꽃아재비 풍성하진 않아도, 가물에 단 한송이를 내었어도 피어있음이 감사합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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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가뭄도 제풀에 지쳤는지 서울하늘에 구름 간간하게 끼어있고 먼 곳에서 풀이 감실거리며 흔들리는 것을 보니 바람도 불어온다. 가뭄이 끝나간다는 징조이면 좋겠다.

그럼에도 비는 아직도 한 방울도 내리지 않고, 물기를 죄다 빼앗긴 땅은 맨 처음엔 푸석하더니만 단단한 쇳덩이처럼 굳어버렸다. 그 무쇠같은 땅에도 뿌리를 내리고 초록생명들이 애면글면 살아가고 있다.

천천히 걸으며 그 메마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생명을 바라본다. 기적처럼 꽃이 피어 있다.

'묵뢰뇌'라고도 불리는 작은 꽃, 극심한 가뭄에 풍성하진 않아도 피어난 꽃은 싱싱하다.
▲ 주름잎 '묵뢰뇌'라고도 불리는 작은 꽃, 극심한 가뭄에 풍성하진 않아도 피어난 꽃은 싱싱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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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꽃, 귀한 꽃도 아니고 그저 꽃의 세계에서는 민초라 할 수 있는 꽃, 털별꽃아재비, 주름잎, 까마중, 미국자리공, 목백일홍, 접시꽃을 만났다.

이파리며 줄기까지도 시들어가는 판에 꽃은 피워 뭘하나 싶었는데, 초록 생명들은 기어이 꽃을 피우고 있다. 꽃을 피우지 못하면 이어지는 꿈조차도 꾸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꽃을 피우다 말라 죽는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꽃을 피우겠소!"

그들이 그렇게 말을 하는 듯했다. 꽃이 핀 후의 희망을 보려면, 설령 그 희망이 절망으로 끝난다고 해도 지금은 오로지 꽃 피우는 일에만 온 힘을 다하겠소라고 하는 듯하다.

까마중도 부지런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중이다.
▲ 까마중 까마중도 부지런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중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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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죽번죽 말만 번드르하게 하는 사람들의 삶보다 그들의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까마중을 보면서도 한낮 뙤약볕과 가뭄에 혼절한 듯 시름거리며 보내다가 밤의 서늘한 기운을 받아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정신차릴 즈음이면 다시 뜨거운 햇살에 축축 늘어져서 오래 못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꽃을 피웠고, 아직은 푸르지만 동글동글 열매도 맺었다. 그 뜨거운 날에도 그들은 그냥 푸념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절망의 날에도 그들은 절망하지 않고 한걸음씩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향해 걸음걸이를 내딛었던 것이다.

그런 삶이 결국 승리하는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도 그 자연의 섭리가 오롯이 살아 숨쉰다면 얼마나 좋을까? 본래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삶의 밑절미도 그러한 것인데, 그것을 우리는 다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피어난 꽃들과 피어날 꽃들이 어우러져 있다. 이파리는 가뭄에 시들었어도 꽃만큼은 튼실하다. 모든 정성이 꽃으로 향해 있는 듯하다.
▲ 미국자리공 피어난 꽃들과 피어날 꽃들이 어우러져 있다. 이파리는 가뭄에 시들었어도 꽃만큼은 튼실하다. 모든 정성이 꽃으로 향해 있는 듯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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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공은 키가 어른 키만큼이나 크다. 덩치가 크다보니 가물에 축 늘어진 모습은 작은 들풀보다 더 처량해 보인다. 고갱이가 말랐는지 줄기도 시들한 기운이며, 이파리는 축 늘어졌다. 그런데도 꽃과 열매를 맺은 줄기는 싱그럽다.

온 힘을 꽃과 열매를 위해서만 쓰는 듯하다. 나는 여기서 부모님의 마음을 본다. 자기들은 한없이 늙어가도 자식새끼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려는 부모의 마음, 그 마음을 보는 것이다.

뜨거운 햇살에 하늘하늘 드레스를 입은 듯 피어나고 있는 목백일홍, 배롱나무라고도 한다.
▲ 목백일홍 뜨거운 햇살에 하늘하늘 드레스를 입은 듯 피어나고 있는 목백일홍, 배롱나무라고도 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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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피면 백일이상을 피고지면서 나무를 화사하게 하는 꽃이다. 나무는 미끄덩하여 원숭이도 떨어질 정도라니,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속담에 나오는 그 나무는 바로 배롱나무가 아닐까 싶다.

본래 꽃은 하늘거리는 드레스를 닮았다. 꽃 전체가 그런 것이 아니라 꽃잎 하나하나의 질감이 그렇다. 저 꽃잎을 옷감처럼 지을 수 있다면 간초롬히 모아 신부의 드레스를 만들면 참 예쁠 것 같다.

이렇게 가문 날에도 피어난 꽃을 보다니, 그것은 기적같은 일이다. 축 저진 삶에 청량제가 되어주는 꽃들이다.

은은한 접시에 찾아오는 손님에게 나눠줄 꽃밥을 잔뜩 붙이고 있다.
▲ 접시꽃 은은한 접시에 찾아오는 손님에게 나눠줄 꽃밥을 잔뜩 붙이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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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불지않던 바람도 불었다. 줄기를 길게 하고 자라나던 접시꽃의 가지가 바람에 꺾여버렸다. 하릴없이 줄기는 고개를 땅에 처박고 말았다. 그러나 분리되지 않은 줄기는 지속적으로 꽃을 피워낸다. 본래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접시꽃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는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가뭄에 피어난 꽃, 많지도 않고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이 피어났다. 그들을 보면서 각다귀판 같은 세상에서 받은 상처들이 하나 둘 아무는 경험을 한다. 세상이 우리에게 희망을 빼앗아갈 때, 우리는 무엇을 통해서 희망싸라기를 주울까?

그 작은 싸락들 하나 둘 모아 희망의 꽃을 피워가는 이들, 그들은 잘 보이지 않지만, 그들이 있어 그나마 이 정도의 세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뭄에 피어난 꽃들을 보면서 쩍쩍 갈라진 나의 마음이 치유를 받는다.

덧붙이는 글 | 2012년 6월 28일, 서대문구에 있는 사무실 뜰에서 만난 꽃들입니다.



태그:#털별꽃아재비, #주름잎, #까마중, #미국자리공, #배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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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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