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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이가 있다. 네팔인 록 반두 카르키(37ㆍ사진)씨. 2004년 12월 7일부터 지금까지 무려 82개 나라를 거쳐, 우리나라가 83번째 방문국이다.

9년째 오직 자전거 하나에 몸을 싣고 다니는, 거창하면서도 자칫 무모해 보일 수 있는 이 여정을 지속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지난 19일, 부평역 인근에 있는 한 인도ㆍ네팔 음식 전문점에서 그를 만났다. 음식점 사장인 저건나터 올리씨가 통역을 해줬다.
   
▲ 자전거를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네팔인 록 반두 카르키씨가 부평역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자전거를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네팔인 록 반두 카르키씨가 부평역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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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네팔에서 우리나라로 치면 고등학교와 대학교 중간 과정에서 수학과 사회학을 가르치던 교사였다. 2002년, 당시 네팔은 정치적인 문제로 시끄러웠다. 2001년 왕세자가 국왕 일가를 살해하고 모든 권력을 손에 쥐었다. 국왕과 이에 대항하는 반군(마오공산당) 사이에 끊임없는 대립이 격하게 일어났다. 이에 회의를 느낀 카르키씨는 교사직을 그만두고, 1년 반 동안 네팔 전국을 여행했다.

그는 서로 사랑해야할 사람들이 미워하고 다투고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는 것을 보며 안타까웠다. 만나는 이들에게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 하나뿐인 지구에서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고 도우며 조화롭게 살아야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여행 끝에, 다툼과 분쟁이 네팔만이 아니라 주변 많은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는 자신의 여행을 전 세계로 확장하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다닌 나라를 물었다.

"중국ㆍ인도ㆍ부탄ㆍ방글라데시ㆍ미얀마ㆍ태국ㆍ말레이시아ㆍ싱가포르ㆍ인도네시아ㆍ부르나이ㆍ파푸아뉴기니ㆍ필리핀ㆍ타이완ㆍ스리랑카ㆍ파키스탄ㆍ아프가니스탄ㆍ이란ㆍ시리아ㆍ이집트ㆍ수단ㆍ케냐ㆍ르완다ㆍ브라질ㆍ우루과이ㆍ칠레…"

한 번의 머뭇거림도 없이 나라 이름을 줄줄 읊어나간다. 그는 자신이 다녀온 나라를 대륙별로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여권은 각 나라의 도장으로 가득 차, 벌써 4개째 새로 발급받았다. 그의 이야기를 다룬 신문 기사만 해도 수백개가 넘는다. 꽤 무게가 나가는 이 자료들을 늘 가지고 다닌다.

자전거에 깃발 세 개 꽂고 전 세계 누벼

그는 낯선 나라에 도착하면 먼저 네팔 대사관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기자회견도 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네팔 대사관이 없는 나라도 많다. 그럴 땐, 자전거에 꽂아둔 깃발이 도움이 된다. 그의 자전거에는 깃발 세 개가 꽂혀 있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그려진 연파랑 깃발, 네팔 국기, 그리고 방문한 나라의 깃발. 자전거엔 '세계 평화 여행(Peace world tour) 2004-2013'이라고 써놓았다.

이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다니면 지나가던 이들이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이들과 자신의 여행 목적인 세계 평화에 대한 얘길 나눈다. 그는 자신의 메시지를 한글로 번역한 인쇄물을 가지고 다니며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저는 먼 나라 네팔에서 왔습니다. 저는 2015년까지 153개국을 방문할 것입니다. 자전거 여행을 하는 목적은 세계평화와 인류애(humanity)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도둑질 없이! 강도 없이! 성폭력 없이! 살인 없이! 뇌물 없이! 부패 없이! 총과 폭탄 없이! 피부색ㆍ인종ㆍ신분ㆍ종교ㆍ직업, 그리고 국적에 따른 테러와 차별없이!"

코끼리와 고릴라 습격, 3일간 납치당하기도

그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을 가나에서 코피아난 전 유엔(UN) 사무총장을,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만났던 일이라고 했다. 그는 "위대한 분들이 네팔에서 태어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나 같은 보통 사람을 만나준 것에 감사한다. 그분들에게 힘을 얻었다. 그 힘으로 지금도 계속 여행을 하고 있다. 잊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그는 수단에서 3일간 납치됐던 일을 들려줬다.

"수단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나 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나를 죽이겠다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사실대로 말하라고 했다. 난 늘 가지고 다니는 나와 관련한 기사 스크랩과 여권, 각 나라에서 준 증명서 등을 보여줬다. 3일 후 나를 풀어줬다"

알고 보니, 수단은 종교 갈등으로 오랜 내전을 겪다가 2005년 수단과 남수단으로 분리돼 각각 국기가 다른데, 그가 이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고 수단 깃발을 꽂은 채 남수단으로 들어왔던 것.

그가 겪은 고생은 이뿐만이 아니다. 멕시코에선 강도가 휘두른 칼에 찔려 죽을 뻔 했고, 사막을 걷다 밤을 맞아 사막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고, 숲에서 몇날 며칠을 보낸 적도 있다. 뉴욕타임스(2010. 5. 16일자)와의 인터뷰를 보면 그는 라오스에서 코끼리 떼, 우간다에서 고릴라, 태국에서 도둑의 습격을 받기도 했다.

내 행동은 아주 작은 것, 수백만의 메시지 필요해

현재 그는 7번째 자전거를 타고 한국에 왔다. 그동안 자전거를 비롯해 휴대폰과 디지털카메라, 반지 등 수없이 많은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도난당했다. 이런 일을 겪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물론 이 일을 하면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나 어느 곳에서든 죽을 수 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애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고, 좋은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한, 이 여행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는 153개 나라를 방문할 때까지, 앞으로 4~5년 동안은 여행을 계속 하게 될 거라고 했다. 그에게 다음 행선지를 물었다."한국에 몇 주 더 머물다가 일본으로 갈 예정이다. 나를 찾는 이들이 있다면 어디든 갈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 말을 전했다.

"나의 행동은 아주 작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여행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여러분을 환영한다. 전 세계에 변화를 가져올 수백만의메시지들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주)부평신문사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자전거 평화여행, #네팔 자전거 평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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