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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몽골 초원의 상쾌한 아침
▲ 초원의 아침 내몽골 초원의 상쾌한 아침
ⓒ 최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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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됐으나 날이 활짝 개질 않았다. 그래도 초원의 탁 트인 풍경은 호연지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 너른 땅을 다니려면 당연히 걸을 수는 없다. 교통수단이 필요한데 말과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바로 그것이다. 그중 자동차는 빠르긴 하지만 없는 길을 가기엔 한계가 있고, 오토바이는 길 없는 초원을 달릴 수 있지만 기름값이 든다. 말은 느리지만 초원을 달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자세히 보면 말과 오토바이, 그리고 자동차를 찾아 볼 수 있다.
▲ 초원 속의 말, 오토바이, 자동차 자세히 보면 말과 오토바이, 그리고 자동차를 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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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 내부 중 천정의 모습
▲ 게르 내부 내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 내부 중 천정의 모습
ⓒ 최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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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죽과 몽골식 치즈 등으로 천천히 아침을 먹었다. 오전 일정은 말타기. 제주도 조랑말 타듯이 정해진 코스를 가는 게 아니라, 초원을 마음껏 달린다. 1시간 정도 말을 타니 만족스러웠다.

케빈 코스트너처럼 달리고 싶었지만...

 말을 타면서 다른 참가자의  말을 타고 있는 사진을 찍어 보았다.
▲ 말을 타며 찍은 사진 말을 타면서 다른 참가자의 말을 타고 있는 사진을 찍어 보았다.
ⓒ 최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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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말주인들이 잡고 끌고 가고 어른들은 혼자 타는 경우도 있었다. 나도 혼자 말을 타게 됐는데, 처음에는 꽤 무서웠으나 워낙 말이 순해서 속도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엔 느리게 가는 걸 탓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듯,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 케빈 코스트너가 말 타듯 멋지게 타고 싶었으나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겠는가. 그저 타박타박 걷는 속도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홀로, 초원에서 말 타는 재미는 참 좋았다. 승마를 배워서 여기를 마음껏 달리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말타기를 하는 사이 둘러보니 양 한 마리가 이상한 공간 옆에 묶여 있었다. 저녁에 양고기 바베큐 코스가 잡혀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 녀석이 오늘의 희생양이라는 걸 직감했다. 묶여있는 공간은 바로 양을 잡는 도축장이었다.

그 날 저녁 우리의 희생'양'이 된 녀석의 모습
▲ 그 날의 희생'양' 그 날 저녁 우리의 희생'양'이 된 녀석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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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칭기스칸의 포스를 풍기는 풍채 좋은 몽고족 아저씨가 단도를 들고 나타난다. 그리곤 유목민의 방식으로 양을 잡기 시작한다. 양을 뉘어놓고 다리를 묶은 다음, 가슴을 먼저 가른다. 그리곤 염통을 밖으로 꺼낸다. 그러자 양이 별다른 움직임 없이 숨을 거둔다. 그것이 가장 고통을 덜 주는 방식이란다.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다. 이어서 양 가죽부터 벗기는 것으로 해체 작업에 들어간다. 가죽을 다 벗기곤 내장을 꺼낸다. 몸통은 통째로 바베큐를 만든다.

이 녀석의 위 사진의 그 녀석이다.
▲ 희생'양'의 다른 모습 이 녀석의 위 사진의 그 녀석이다.
ⓒ 최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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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이 상태에서 먹는 것이 아니라 신주단지처럼 예쁘게 꾸며진 상 위에 고기를 다시 정렬하는데, 고기를 자르기 전에 그 칭기스칸 포스의 아저씨는 정중히 양에게 예를 표했다. 이것이 함께 살아가는 짐승에 대한 유목민의 태도인 것이다. 어쨌든 아침에 본 산 녀석을 저녁에 먹으려니 묘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맛은, 매우 좋았다.

바베큐를 먹은 것은 저녁의 일이고, 말을 타고 나서 한 일은 몽고족 중산층 가정의 집을 방문해 그 문화를 엿본 일이었다. 중간에 한 차례 강한 소나기가 지나가고 다행히 민가를 방문했을 때는 그저 가늘게 스쳐갈 정도였다. 몽고족 중산층의 집은 솔직히 우리집 보다 깨끗했다. 널찍한 소파도 있고 무엇보다 밝은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다.

참 친환경적인 몽골의 에너지 소비

몽골족의 민가를 방문 할 때 찍은 집 안 사진이다.
▲ 몽골족의 집 안 몽골족의 민가를 방문 할 때 찍은 집 안 사진이다.
ⓒ 최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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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안주인이 주는 우유차도 마시고, 이곳에서 늘 나오는 치즈 등을 주전부리로 먹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 하나. 이 깨끗한 집에 화장실이 없다는 점이다. 이 집뿐만 아니라 몽고족의 집에는 화장실이 없다. 대신 세상에서 가장 넓고 평평한 화장실을 가졌으니, 그것은 초원이다. 건조한 기후라 싸면 바로 마르고, 그들이 기르는 가축들이 먹는 풀의 영양분이 된다. 실제로 일행 중 한 남성이 이곳 탐방 때 급한 큰 용무가 생겼는데 방법이 없었다. 그도 이 초원의 법칙을 따를 수밖에. 결국 트럭 뒤에서 볼일을 해결해야 했다. 생각하건대, 세상에서 가장 간편하면서도 완벽한 '에코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서양식 화장실처럼 우리의 배설물을 씻어 내리고 정화시키느라 수많은 물과 에너지를 쏟아 붓는 시스템과 비교해보라.

일전에 KBS 스페셜에서 <변기야 지구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다. 물을 절약하고 환경을 살리는 변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전세계의 모습이 나오는데, 가장 발전한 변기는 배설물을 퇴비로 만들어 주는 네덜란드의 변기였다. 큰 변기 아래 공간에서 배설물이 퇴비가 되는 시스템인데, 톱밥을 빼내듯 변기의 통을 꺼내면 배설물의 퇴비가 나오는 것이었다.

냄새도 없고 건조한 상태로 그대로 화초나 앞마당에 가져가 퇴비를 쓰면 되는 변기. 사실 우리의 옛 변소가 다 그런 식이었다. 변소이면서 동시에 퇴비 제조소였던 시골의 측간을 떠올려보라. 세상은 돌고 돌아 다시 예전의 에코 시스템을 문명 속에 만들고 있다. 그러니 먼 길을 돌아가지 않고 옛 방식대로 초원 그 자체를 화장실로 쓰고 있는 몽고의 시스템이 참 반가웠다.

이 집에서는 전기도 쓰지만 아직도 훌륭한 에너지원은 역시 소똥이다. 소똥은 세계 여러 농산 시스템에서 중요한 에너지원이 된다. 마빈 해리슨의 <문화의 수수께끼> 논리를 빌려오자면, 소똥을 연료로 쓰면 화력이 세지 않아 여성들이 다른 부수적인 일을 하면서 요리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이 많은 유목의 삶이나 농촌의 삶에서 아주 유용한 에너지원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몽고족의 집 근처에는 소똥이 마치 기와를 쌓은 것처럼 잘 정리돼 있다.

 소똥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모습
▲ 소똥 소똥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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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실제로 그 소똥을 활용해서 음식을 한다. <오마이뉴스>에도 일전에 소개된 우유 두부(즉석 치즈)도 소똥을 때 끓여 우리에게 준 것이다.

귀중한 연료로 쓰인다.
▲ 소똥 연료 귀중한 연료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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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끓인 우유는 집 앞에 젖소를 끓고 와 우리들에게 짜보게 한 그 젖으로 만든 것이다. 강제로 착유기를 가지고 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젖을 짜게 하려면 새끼를 앞에 두고 젖이 나오게 유인해야 한다. 새끼를 보고 젖이 동하면 그 때 손으로 젖을 짜는 것이다.

아쉬운 비소식, 잠을 못 이뤘다

 젖을 짤 때 뒷발질을 못하게 뒷다리를 묶어 놓는다.
▲ 어미소의 모습 젖을 짤 때 뒷발질을 못하게 뒷다리를 묶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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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을 짜려는 소가 오줌을 갈기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오줌 자국이 그대로 보인다.
▲ 젖을 짜는 첫째 딸의 모습 젖을 짜려는 소가 오줌을 갈기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오줌 자국이 그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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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젖도 짜보고, 음식도 얻어먹고, 어떻게 사는지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탐방이 끝난다. 집 앞 초원으로는 말도 지나가고 소도 지나가고 수많은 양 떼도 지나간다. 양 떼를 보려면 뉴질랜드나 호주 같은 곳을 가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멀리 갈 이유가 뭐란 말인가. 내몽고든 몽고국이든 가까운 아시아 땅에 가서 초원을 달리는 양 떼를 보라. 돌아보니, 거기서 양 떼를 보면서 며칠만 묶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집 앞의 평화로운 양떼들의 모습이다.
▲ 집 앞의 양떼들 집 앞의 평화로운 양떼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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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저녁에는 바비큐 파티와 민속 공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보다 더 간절히 기다린 것은 초원으로 지는 눈부신 석양과 게르 위로 쏟아지는 천만 개의 별이었다. 그러나 날씨가 안 도와줬다. 늘 소나기가 오면 다시 맑게 개는 초원의 날씨가 아니었다. 이틀 연속 비가 오고 밤이 되니 빗줄기가 더 거세졌다.

너무나 아쉬웠다. 지구 온난화는 이곳에서도 이상 기후를 만들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공정족들이 받았다(당시 한국에 돌아오니 대단한 물난리가 나 있었다. 초원의 비와 우리나라의 비가 다 하나로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을 보면서 낭만적으로 진행될 법한 캠프파이어도 간략히 생략하고 민속 공연도 빗속에서 간단히 진행됐다. 물론 바비큐 파티도 실내에서 진행됐다. 초원에서 화통하게 마유주를 마시며 <광야에서>라도 한 소절 불러 젖히려던 계획이 완전히 망가졌다. 하지만 어쩌랴. 이 가문 땅에 비를 가져다준 반가운 손님들이라는 의미로 속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잠이 들 수밖에 없었는데 비가 쏟아 붓는 것이 과연 여기가 건조한 초원이 맞을까 싶을 정도였다. 게르에 부딪히는 빗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 원래 이런 비에 대비하지 않은 게르에서 비가 새기도 했고, 마음도 심란해서 밤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이곳을 10번 이상 온 최정규 작가도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다는데... 누군가 굉장히 비를 몰고 다니는 여행자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거 살풀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다 깨고 보니 한밤중이었다.


태그:#내몽골 초원, #공정여행, #국제민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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