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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준 실직노숙인조합 위원장(사진 왼쪽)이 노숙인에게 카레라이스를 담아주고 있는 모습
 이호준 실직노숙인조합 위원장(사진 왼쪽)이 노숙인에게 카레라이스를 담아주고 있는 모습
ⓒ 정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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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부산역 인근에 있는 실직노숙인조합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같이 식당 한 켠에 모여 텔레비전을 보면서 5시30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시간이 바로 저녁 배식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날 메뉴는 카레밥. 말이 좋아 카레밥이지 밥에 카레를 붇고 그 위에 고명처럼 김치를 올려 된장국과 먹는 초라한 밥상입니다. 하지만 소머리국밥, 짜장밥등 여러 음식 중 이런저런 문제로 노숙인들과 합의해서 선택한 메뉴라고 합니다. 이 카레밥은 노숙인들도 조리과정을 다 알고 있다고 하는데, 갖은 야채와 돼지고기 등을 넣고 새우와 멸치를 직접 갈아 만든 천연 조미료로 맛을 냈다고 합니다.

음식준비가 끝나자 노숙인들은 줄을 섰고 식판에 카레를 한가득 담아가 먹었습니다. 개중 몇몇은 점심을 먹지 못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술에 취한 한 노숙인도 눈에 띄었습니다. 하지만 이호준 실직노숙인조합 위원장은 "술도 적당이 먹고 와요"라며 크게 나무라지는 않았습니다.

이 위원장이 부산역 노숙인들을 위해 매주 화, 목, 토요일 배식을 시작한 지 8개월이 됐습니다. 이 위원장에 따르면 그전에도 배식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부산역 광장에서 수제비를 끓여줬다고 합니다. 그러나 잠시 몸이 아파서 중단을 했고 최근에야 다시 시작한 것입니다.

부산역 노숙인에게 밥 한 공기의 의미

배식을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는 노숙인들이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비를 들이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구, 울산 등 타지에 계신 분들이 이 소식을 듣고 쌀과 김치 등 부식을 보내줘 시작하는 데에 큰 힘이 됐다고 합니다.

후원을 받는 데에 규칙도 있다고 합니다. 필요 이상으로는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음식 재료도 두 번 먹을 양만 받는다고 합니다. 후원을 하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랍니다.

 김치와 국물이 있는 카레라이스. 모양은 그렇지만 맛은 기가 막힙니다.
 김치와 국물이 있는 카레라이스. 모양은 그렇지만 맛은 기가 막힙니다.
ⓒ 정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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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루에 식사를 하는 노숙인은 많게는 40여 명에 이릅니다. 그러다 보니 그중에서도 배식 일을 돕는 사람도 생겨났습니다. 자신만 위하기보다 남을 돕겠다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사회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의 계기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위원장은 부산역을 거쳐가는 노숙인들에게 '대부'로 불립니다. 노숙인들이 해결하기 힘든 일이 터지면 발 벗고 나서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 카드를 빼앗긴 노숙인이라든지, 18년 동안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 탈출한 노숙인이라든지, 심지어 배고픈 충동을 참지 못하고 절도로 유치장에 입감된 노숙인을 위해 크고 작은 일들을 해결해줬다고 합니다.

지금도 부산역에서 '이호준' 이라고 하면 웬만한 노숙인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사실 이 위원장은 부산역 거리의 음악가였습니다. 지금도 음악만은 놓지 않고 작곡과 공연 등으로 발생한 수익을 노숙인들에게 쓰고 있습니다.

이날 배식을 하면서 만난 한 노숙인은 "호준씨가 말은 직설적으로 하지만, 누구보다도 우리를 위해 나선다"며 "노숙인에게 험한 일이 발생하면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들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고 기념하기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닌 사람"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위원장 곁에는 배식을 위해 항상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술가나 직장인, 학생 등 평범한 이 사회의 구성원들로 바쁘게 사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음식재료나 배식을 준비하는 데는 이 위원장이 직접 한답니다. 저도 가끔 동참을 하지만 명함도 못 내밉니다.

사실 저는 8년 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이 위원장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리고 다른 매체 상근기자를 하면서 취재원으로서 관계를 유지하다가 지금은 그의 일을 돕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팝페라 가수인 서재훈씨는 우연한 기회에 이 위원장의 노숙인 관련 기사를 보고 직접 찾아와 공연도 같이하고 배식도 돕게 됐다고 합니다.

서재훈씨는 "그냥 초라한 밥 한 끼지만 지역의 뜻있는 분들의 정성이 모인 밥상이니까 맛있게 먹고 작은 일자리라도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한두 명이 모이기 시작해 지금까지 배식일을 정기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배식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음식준비며 설거지, 웬만한 인원이 없으면 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노숙인들이 어디가서 눈치보지 않고 편하게 밥먹기가 힘들 때가 많다"며 "그들이 원할 때까지 할 것"이라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실직노숙인조합 이호준 위원장
 실직노숙인조합 이호준 위원장
ⓒ 정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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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로 인식해야"


이 위원장에 따르면 현재 부산역 주변에는 30~40명 정도의 노숙인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행정편의주의에 의해 '시설병'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후원금이나 지원금으로 운영하는 노숙인 시설이 노숙인의 자립보다 그들을 유치하고 수용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편의주의에 답습되어 있는 노숙인들은 하루 일과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시설을 돈 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희망이라든가 꿈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 이지요. 예를 들어 밥먹는 시간을 놓치면 불안해한다든가, 자신한테는 필요 없지만 나누어주는 걸 못 받으면 소외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시설에 의존하다보니 아예 시설에 매인다는 것이지요. 역설적으로 자활을 돕는다는 데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이 위원장은 걱정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배식이외에도 일자리를 찾아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부 노숙인들은 부산역을 떠나 정착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20여명의 노숙인들이 밥을 먹으러 찾아왔습니다. 배식이 끝나고 난 뒤 노숙인들은 다음 메뉴로 곰탕을 먹자고 하자 이 위원장이 알았다고 합니다. 카레밥을 하도 먹어서 그런답니다. 메뉴를 정하자 일부 노숙인들은 봉사하는 분들과 함께 설거지와 테이블 정리를 돕고 나머지는 일사불란하게 빠져나갑니다. 많이 있으면 오히려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노숙인들이 빠져나가자 이 위원장이 전화를 합니다. 소뼈를 보내줄 수 없겠냐는 것이지요. 잠시 인터뷰를 부탁했지만, 자신을 밝히지 않고 다음에 만나서 이야기 나누자는 것으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런 분들의 소박한 마음들이 모여 만들어진 초라한 밥상, 하지만 누군가에는 귀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느끼는 것 같으니까요. 이 위원장은 끝으로 말했습니다.

"이 사회는 의식주로 노숙인 문제를 규정지었다가 이제와서는 그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노숙인을 더럽다, 쓸모없다고 얘기들 하지만 그렇다고 노숙인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을 가난한 이웃으로 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으로 인식하고 풀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매출 10%를 노숙인 자립을 위해 기부하는 착한 쇼핑몰 베티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해당 기사는 필자의 개인 블로그에게도 게재했습니다.



#노숙인#실직노숙인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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