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광수 감독의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이하 <두결한장>)의 포스터는 밝게 웃는 네명의 선남선녀의 모습을 담고 있다. 게이 커플과 레즈비언 커플인 이들은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고 활짝 웃고 있다. 자, 이들이 활짝 웃으며 당당하게 부부라고 선언하는 날이 과연 오고 마는 것인가?

<두결한장>은 로맨틱 코미디를 내세웠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유쾌한 '퀴어 코미디'가 나오는 걸까? 얼마만에 보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퀴어 영화인가? 우리에게도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구나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영화를 봤다. 그리고 보고 난 후 느낀 생각은 이것이었다. '완벽하게 유쾌한 퀴어 코미디 영화가 나올려면 한참 멀었구나.'

초반부의 유쾌함, 사랑스러웠다

부모의 간섭을 벗어나려는 민수(김동윤)와 아이를 입양하고 싶어하는 효진(류현경),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서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가짜로 결혼식을 올리고 효진의 동성 애인인 서영(정애연)의 앞집에 신혼집을 마련한다. '아무도 모르는' 부부 생활을 하는 가운데 민수는 게이 바에서 석(송용진)을 만나 사랑을 시작한다.

 영화의 초반부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영화의 초반부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 영화사 진진


영화 초반부는 기대대로 즐겁고 유쾌한 장면들이 계속된다. 게이 바에 모인 친구들의 유쾌한 잡담, 민수 부모의 갑작스런 방문으로 일어난 해프닝 등이 웃음을 이끌어낸다. 민수의 친구들이 속한 'G-Voice'의 노래도 흥겹다.민수와 석이 우연히 만나고 조금씩 사랑을 느끼고 결국 관계를 맺기까지 과정도 아기자기한 재미가 느껴졌다. 등장 인물들이 다 사랑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두결한장>은 이 사랑스러움을 끝까지 이어갈 것이라 믿었다. 물론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게다가 소재는 아직도 우리에게 민감한 '동성애'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를 줄 알았다. 왜냐면 다른 영화와 달리 '로맨틱 코미디'를 추구한 영화였으니까.

그렇다면 갈등을 재미있는 방법으로 하나하나 풀어가고 그 갈등을 통해 사랑을 확인한 두 커플이 마침내 결혼식을 하는 '해피엔딩'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동성애를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고 웃음 속에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로맨틱 코미디. 바로 그것이 <두결한장>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코미디와 현실의 충돌, '그들만의 축제'로 끝난 마무리

 석(송용잔)과 민수(김동윤)커플.

석(송용잔)과 민수(김동윤)커플. ⓒ 영화사 진진


유쾌했던 영화는 효진이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병원 내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민수 또한 자신이 게이라는 것이 드러날까봐 조바심을 치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때부터 영화는 점점 '심각모드'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한국을 떠나려는 민수와 떠나지 않으려는 석의 갈등이 벌어지고 게이를 '더러운 놈들'이라고 생각하는 택시 기사와의 에피소드는 심각함을 더 부채질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비극이 벌어지고 '한 번의 장례식'이 열린다.

사실 아직도 동성애에 대해 관대하지 못한 한국의 현실에서 유쾌한 퀴어 코미디가 나온다는 건 애초에 힘든 일이었다, 김조광수 감독도 나름대로 밝고 유쾌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었겠지만 실제 동성애자인 자신이 느꼈던 경험, 생각들을 내버리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커밍아웃하지 못한 게이의 갈등, 게이를 역겨운 눈으로 보는 어른들의 시선, 그 속에서 삶을 이어가려는 게이들의 눈물을 김조광수 감독은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아쉬움이 여기에 있다. '로맨틱 코미디'와 '현실'의 큰 충돌이다. 굳이 이 영화에서마저도 게이들의 슬픔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야 했을까? 그것을 재치있는 에피소드로 승화시킬 수는 없었을까?

문제는 그렇게 하기엔 이 땅의 상황이 너무나 척박하고 현실을 그려내기엔 지금까지의 이야기 스타일이 무너져버린다. 결국 영화는 초반의 유쾌함과는 달리 불안과 울분, 슬픔이 가득한 중반부를 보여준다. 

이 슬픔이 크다보니 마지막 두 커플의 결혼식도 '현실'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신부(이문식)가 두 동성 커플을 부부로 인정하고 G-Voice가 신나게 노래와 춤을 선사하며 피날레를 선사하지만 초반부의 유쾌함과 신명이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중반부의 비극을 본 우리는 이런 축제가 지금의 우리에게는 결코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은 다분히 비현실적인 요소가 많다. 갈등은 오히려 사랑을 더 굳게하는 매개체가 되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치달아간다. <두결한장>은 새로운 로맨틱 코미디의 가능성을 보여줄 것 같았지만 게이들의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처절하게 무너진다. 오히려 아직도 동성애자로 살아남기가 어렵다는 현실만 인식시킨 채 '그들만의 축제'로 마무리할 뿐이다.

 서영(정애연)과 효진(류현경) 커플. 민수와 석 커플에 비해 이들의 이야기가 없는 것도 영화의 단점이다.

서영(정애연)과 효진(류현경) 커플. 민수와 석 커플에 비해 이들의 이야기가 없는 것도 영화의 단점이다. ⓒ 영화사 진진


이 영화의 또 하나의 단점은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를 너무 소홀히 다루었다는 점이다. 민수와 석 커플 이야기를 너무 부각시킨 나머지 효진과 서영의 이야기는 그냥 에피소드에 머문 채 두리뭉실하게 진행된다(실제로 이 부분은 편집됐다고 한다). 동성 커플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왜 게이 커플에만 치중했는가하는 아쉬움이 분명히 있다. 레즈비언은 영화의 부속품으로만 머문 듯하게 만든 것은 분명 실수다.

웃음으로 울분을 이야기하는 영화를 기대한다

<두결한장>은 분명 '퀴어 코미디'를 표방했지만 아직 동성애자들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다루기에는 여전히 힘들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것은 동성애에 관대하지 못한 우리 시대의 문제가 가장 크지만 여전히 동성애자들의 아픔을 끄집어내며 어떻게든 이해를 구하려하는 감독의 의도도 한몫을 한 것 같다.

 유쾌한 피날레. 하지만 영화를 보면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판타지'로 보일 정도.

유쾌한 피날레. 하지만 영화를 보면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판타지'로 보일 정도. ⓒ 영화사 진진


나는 비단 김조광수 감독뿐만 아니라 다른 감독들의 퀴어물들이 갈수록 밝고 유쾌한,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 영화로 진화되기를 바란다. 동성애자들이 비록 사회의 냉대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회의 비난에 가차없이 '즐!'을 외치고 그들을 오히려 비웃으며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동성애자들.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싶다. 울분과 눈물은 잠시 거둬라. 웃음으로도 분명 슬픔을 표현할 방법이 있으니.

두결한장 김조광수 게이 레즈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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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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