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팔자가 상팔자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언뜻 보면 상관없는 이 세 가지 속담의 공통점은? 모두 동물이 등장한다는 것.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속담에는 유난히 개와 고양이를 비롯한 동물들이 자주 나타난다. 이는 시대와 역사를 뛰어넘어 그만큼 동물들이 우리 곁에서 함께 호흡하며 지내왔음을 알려주는 증거다.

한국의 총 인구가 4천 8백만. 그 중 반려동물 인구는 1000만여 명으로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이 애완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셈이니 그럴 법도 하다. 늘어나는 반려동물 인구를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이 바로 일요일 오전에 방영되는 SBS <TV 동물농장(이하 동물농장)>이다.

 SBS <TV 동물농장>은 2001년부터 시작돼 1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SBS 은 2001년부터 시작돼 1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 SBS


<동물농장>은 기본적으로 특이하고 별난 동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미끄럼틀을 타는 고양이나 주인 할아버지의 어깨에만 붙어있으려는 강아지가 그 주인공이다. 가지각색 동물들의 네 가지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동물농장>은 그 속에 이미 사람보다 더 사람다운 동물들의 '휴머니티'를 가지고 있다. 억지로 헤어진 어미를 그리워하며 식사를 거부하는 새끼강아지, 멧돼지와 사투를 벌여 주인을 지켜낸 충견을 보며 시청자는 동물이 '사람보다 낫다'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사람처럼 울고 웃는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프로그램은 '동물권'처럼 거창하고 무거운 얘기를 하지 않으면서도 저절로 동물에 대한 애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동물농장>은 매주 10% 이상의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고정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다.

동물판 '애정촌', 동물판 '사랑과 전쟁'

애완동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추세다보니, 동물을 소재로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어 왔다. 그러나 10년째 살아남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동물 관련 프로그램은 <동물농장>이 유일하다.

KBS에서는 지난해 '유기견을 기르는 아이돌그룹'을 주제로 <가족의 탄생>을 만들었으나 저조한 시청률로 인해 4개월 만에 막을 내렸고, 종편에서도 반려동물 인구의 관심을 끌기 위해 <너는 내 운명(채널A)>, <동고동락(TV조선)> 등을 경쟁적으로 편성했지만 둘 다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한 채 4월말 종영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동물농장>은 이제 애완동물에 관심이 있는 시청자라면 꼭 챙겨봐야 할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대표 프로그램이라서 가능한 일들도 생겼다. 홈페이지를 통해 실종된 애완동물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던지,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 2세를 분양하는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벌이는 것이 그런 예다.

17일 방영된 569회 <동물농장>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소개됐다. 천연기념물 327호인 원앙가족이 전북 전주의 아파트 9층에서 알을 낳은 것이다. 놀라운 것은 둥지에서 19개의 알을 품고 있는 것이 한 어미가 아니라는 것. 두 어미 원앙이 한 둥지를 함께 쓰는 건 국내에서 보고된 적도 없는 최초 사례라는데, 이들의 '불편한 동거' 생활을 33일간 기록한 제작진 덕분에 원앙 가족이 살아가는 생생한 순간들을 그대로 목격할 수 있었다. 

 한 둥지 안에 같이 사는 두 어미 원앙.

한 둥지 안에 같이 사는 두 어미 원앙. ⓒ SBS


다른 에피소드도 인상적이긴 마찬가지다. 가수 정재형과 함께 방송에도 출연해 유명해진 안내견 축복이가, 선천성 시각장애 1급인 선명지 씨와의 '아름다운 동행'을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녀 곁에는 이미 5년을 함께 지내온 안내견 총명이가 있었지만 최근 명지 씨의 시끄러운 밴드 연습에 스트레스를 받아 헤어지기로 결심한 상태. 사람과 함께하는 안내견들의 이별과 만남을 다룬 이야기가 가슴 짠한 여운을 남겼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명지 씨와 총명이의 이별 여행은 시청자에게 감동을 안겼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명지 씨와 총명이의 이별 여행은 시청자에게 감동을 안겼다. ⓒ SBS


<동물농장>이 10년 넘게 인기를 유지하는 장수프로그램인 이유는 이렇듯 흥행의 필수요소인 웃음과 감동, 눈물이 <동물농장>에 적절히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겠다. 여기에는, 여자 친구에게 차인 뒤 난폭해진 당나귀에게 소개팅을 주선하는 등 동물판 '짝'이나 동물판 '사랑과 전쟁' 같은 내용상의 재밌는 패러디 요소들도 한 몫 거들고 있다.

매주 나를 울리는 <동물농장>, 앞으로도 계속 그래주시길

<동물농장>은 말 못하는 동물들을 대신해 동물의 마음을 대변하는 내레이션을 기본으로 성우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친구에게 얘기하듯 말하는 동물들의 속사정을 들으며, '아~'하는 방청객과 MC들의 감탄사와 안타까움이 섞인 탄성을 함께 들으면서 시청자는 다른 이와 같이 보는 재미에 폭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1천만 동물 애호가들의 매주 일요일 오전을 책임지는 <동물농장>은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사운드 효과와 더불어 가지각색 슬프고 웃기고 애처로운 동물들의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40분은 어느 샌가 훌쩍 지나가버린다.

 새로운 패러디 형식으로 재미를 더하는 <동물농장>.

새로운 패러디 형식으로 재미를 더하는 <동물농장>. ⓒ SBS


이날 방송이 나간 뒤 한 시청자는 홈페이지의 게시판에 "동물 농장을 볼 땐 늘 울게 된다"며 "죄 없는 동물이 학대받을 땐 분노의 눈물을, 사람보다 더 의리 있는 동물을 볼 땐 감동의 눈물이 흐른다"고 제작진에게 감사를 표했다. 다른 시청자도 "새끼 원앙의 탄생부터 강으로 이동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한 편의 다큐가 정말 감동적이었고 안내견들 얘기가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동물농장>은 이제 단순한 동물관련 프로그램을 넘어 차별화된 특성을 가지고 동물전문프로그램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야생동물보호협회나 애완동물 전문가들을 섭외해 신뢰도를 높이고, 긴 호흡과 완성도 높은 기획력을 바탕으로 매주 탄탄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 근거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다. 홈페이지에 소개하듯 <동물농장>이 인간 중심의 사회를 벗어나 동물과의 '진정한 교감'을 추구하는 프로그램이 되고자 한다면, 회마다 비슷한 서사에 주인공만 바뀌어 얹히는 소재의 반복, 고착화된 포맷은 변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람과 동물, 공생(共生)을 꿈꾸다

 SBS 스페셜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의 이야기를 다뤘다. 오른쪽이 꼬리를 잃은 돌고래 윈터, 왼쪽이 윈터로부터 도움을 받은 장애인 마야.

SBS 스페셜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의 이야기를 다뤘다. 오른쪽이 꼬리를 잃은 돌고래 윈터, 왼쪽이 윈터로부터 도움을 받은 장애인 마야. ⓒ SBS


한편 이날 밤 11시에는 SBS 스페셜 다큐멘터리 <동물, 행복의 조건> 2부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가 방송됐다. 게잡이 그물에 걸려 꼬리를 잘린 돌고래 '윈터'를 도우려 개발된 인공꼬리의 신소재가 오히려 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사람을 위해서도 쓰일 수 있게 됐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사람들로부터 상처받고 버려졌지만 오히려 이를 극복하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들의 모습. 인간과 동물이 공생할 수 있는 '행복의 조건'을 연예계 대표 애견인 이효리의 목소리를 통해 담담하게 그려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SBS 스페셜 <동물, 행복의 조건>은 사람과 동물 모두가 자연의 한 부분이라 말한다.

SBS 스페셜 <동물, 행복의 조건>은 사람과 동물 모두가 자연의 한 부분이라 말한다. ⓒ SBS


 윈터의 꼬리와 장애인 마야의 다리. 이들의 특별한 사연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줬다.

윈터의 꼬리와 장애인 마야의 다리. 이들의 특별한 사연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줬다. ⓒ SBS


사실 고개만 돌리면 어디에나 있는 동물을 주제로 시청자를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보다 더 사람다운 녀석들의 이야기에 울고 웃으며 시청자는 분명 동물에게 한걸음 더 가까워질 것이다. <동물농장>을 비롯해 앞으로는 시청자들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는 동물 관련 프로그램들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동물농장 동물, 행복의 조건 SBS 이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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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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