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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성들이 대부분인 실습 현장은 시종일관 수다가 떠나질 않았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묻어나는 진지함은 좋은 차를 만들겠다는 열정의 표현이었다.
▲ 신명나는 차 제조 시간 중년 여성들이 대부분인 실습 현장은 시종일관 수다가 떠나질 않았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묻어나는 진지함은 좋은 차를 만들겠다는 열정의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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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녹차를 먹은 지는 별로 되지 않았어요.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산과 들에 흔히 피는 식물을 때론 약으로, 때론 차로 만들어 먹었죠."

이지헌 강사(생활차 연구가)의 말이다. 그녀가 소개하는 차는 세 가지로 불린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차라고 해서 전통차, 자기 손으로 만든다고 해서 수제차, 일상생활 속에서 만들어 먹는다 해서 생활차 등이다. 이름 하여 '전통 수제 생활차'다. 이 차를 직접 만들고, 직접 마셔보는, 신나는 현장 속으로 가보자.

"아하 이래서 생활차라고 하는 구나"

지난 14일, 안성농업기술센터 실습실에선 20여 명의 주부들이 모여 뭔가 신나는 일을 벌였다. 센터에서 '농촌체험마을 활성화를 위한 전통 수제차 제조 교육'을 실시한 것이다. 안성에 있는 농촌체험마을 주민 중에서 차 제조에 관심있는 주민들이 모였다. 이 교육은 6월 매주 목요일 4회에 걸쳐서 이루어진다. 오늘은 두 번째 수업시간이다.

차 제조 교육이라 해서 찾아갔던 현장. 뭔가 고상한 걸 기대했던 기자의 착각과 달리 아주 평범한 광경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가스레인지와 조리대가 설치되어 있는 곳에 조별로 삼삼오오 모여 있다. 그냥 요리 실습 현장인 듯 보인다. 아하! 이래서 생활차라고 하는구나.

생활차 연구가인 이지헌 강사가 입을 열고 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산에 들에 흔히 피어있는 식물을 약으로, 차로 만들어 먹고 살았다는 걸 강조한다.
▲ 이지헌 강사 생활차 연구가인 이지헌 강사가 입을 열고 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산에 들에 흔히 피어있는 식물을 약으로, 차로 만들어 먹고 살았다는 걸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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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별로 칡잎을 덖느라 한창이다. 5평 남짓한 실습실엔 잎을 덖는 향기가 진동을 한다. 칡잎을 프라이팬에 넣어 덖고 나서 꺼낸다. 꺼낸 차는 손으로 주물럭주물럭. 그렇게 해줘야 잎 세포막이 엷어져서 차 맛이 잘 우러난단다. 한 번이 아니다. 적어도 5회, 많게는 8회까지 반복을 한다.

조별로 칡잎 크기가 다르다. 작은 잎부터 중간 잎, 큰 잎까지. 4개 조로 나뉜 곳엔 각각 다른 크기의 칡잎이 덖어지고 있다. "큰 잎 보다는 작은 잎이 아무래도 맛이 괜찮죠"라고 강사는 설명했다.

"교육시간인데 수다가 한창이네"

진지한 여느 교육과는 사뭇 다르다. 차를 덖고 주무르면서 수다가 한창이다. 이 조에서 깔깔, 저 조에서 호호. 차를 만든다고 차 이야기만 하랴. 나이대가 모두 중년여성들이니 살아온 재미난 이야기보따리는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다. 가만히 보니 여성들 속에 간혹 남성들도 끼어 있다. 차에 대한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니 친화력 하나는 끝내준다.

칡잎을 여러 번 덖어내면 이렇다. 이 칡잎을 손으로 계속 주물러 준다. 차가 잘 우러나라고.
▲ 덖음 차 칡잎을 여러 번 덖어내면 이렇다. 이 칡잎을 손으로 계속 주물러 준다. 차가 잘 우러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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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잎의 크기에 따라 차 맛이 달라요. 나중에 만들고 나서 맛을 보시면 '아하 그렇구나'하실 거예요."

이런 수다 풍경 속에서 이 조, 저 조로 돌아다니던 이지헌 강사가 비로소 입을 열어야 강사가 있었구나 싶다. 차를 만들고 나서 어떤 맛이 날까, 크기에 따라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기대는 차 만드는 손을 더 신명나게 한다.

잎을 덖을 때도 주물럭주물럭. 차를 꺼내서도 주물럭주물럭. 사람의 손과 식물의 잎이 계속 교감을 한다. 수다를 떨 땐 떨더라도 일을 할 땐 사뭇 진지하다. 수다 속에서 묻어나는 진지함은 마치 전문가의 포스를 느끼게 한다.

차와 불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시간

"이 수제차는 차, 불, 사람의 성격 등이 잘 맞아야 좋은 차가 만들어져요."

이지헌 강사의 말을 들으니 그들은 지금 하나의 예술을 하고 있지 않나 싶다. 사람과 식물이 조화를 이뤄가는 과정인 듯하다. 여러 번의 주무름이 바로 조화의 시간이리라. 이렇게 정성을 쏟지 않으면 좋은 차는 없다는 메시지이리라.

지금은 자신들이 직접 만든 차를 마셔보는 시간이다. 비록 종이컵이지만, 맛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 차 마시는 시간 지금은 자신들이 직접 만든 차를 마셔보는 시간이다. 비록 종이컵이지만, 맛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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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유월 여름 낮 시간. 실습실에 피워진 4개의 가스 불은 더위를 부채질한다. 차를 덖는 가스불의 열기, 좋은 차를 만들겠다는 수강생들의 열기, 서로의 삶에 대한 관심이 피어올린 수다의 열기 등이 뜨겁다. 참다못한 한 여성은 "하이고 더워라 더워"라며 창가로 달려간다. 그 옛날 군불과 가마솥에 차를 덖었을 조상들의 정성이 재현되고 있는 현장이다.

그렇게 1시간 넘게 덖고 주무르니 차 모양이 되어간다. "우리가 해놓고도 향기가 좋네"란 말이 신호가 되어 여기저기서 자화자찬의 세리머니가 들린다. 서로 돌아가면서 남의 조가 만든 차를 씹어 먹어 본다. "이 조가 한 거 맛있네"라고 하면 "아녀 우리 조가 한 게 더 맛있어"라는 말이 따라 붙는다. 물론 그 말 뒤엔 웃음은 필수다.

내가 만든 차, 포장도 하고 마셔도 보고.

큰 프라이팬에 하나가득이던 잎이 다 만들고 나니 조그만 종지에 들어앉았다. 불이 주무르고, 손이 주무르니 제아무리 칡잎이라도 쪼그라들 수밖에. 각 조가 만든 4개 크기의 칡차를 담은 종지가 모이니 작품전시회를 보는 듯하다. 조금 전까지 칡잎이었는데, 이젠 칡차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젠 자신들이 만든 차를 포장하는 시간이다. 강사가 준비해온 포장지에 칡차를 넣는다. 포장지엔 생산자, 생산날짜 등을 기입한다. 물론 생산자는 자신 본인의 이름, 생산날짜는 오늘이다. 세상에 하나 뿐인 나만의 차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오늘 만든 칡잎차가 포장이 되었다.  생산자는 자신의 이름, 생산일은 오늘이 된다. 각 체험마을에서 체험객 상대로 팔 수 있는 상품으로서의 차가 완성되었다.
▲ 가공 수제차 오늘 만든 칡잎차가 포장이 되었다. 생산자는 자신의 이름, 생산일은 오늘이 된다. 각 체험마을에서 체험객 상대로 팔 수 있는 상품으로서의 차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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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가 오늘 자신들이 만든 차를 우려내어 마셔보는 시간도 있다. 비록 다기가 아닌 종이컵이지만, 그런들 어떠랴. 정성을 다해 자신의 손으로 만든 차를 마시는 기쁨이 종이컵이라고 작아질 소냐. 그들은 차를 마시는 게 아니라 '어부의 만선의 기쁨'을 마시는 듯 미소가 가득이다. 다음 목요일에 하는 '쑥차 만들기'에 대한 기대 또한 배가 된다. 앞으로 쑥 외에도 양파, 쇠비름, 질경이, 쇠뜨기 등이 차로 탄생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교육은 6월 매주 목요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4회(7일, 14일, 21일, 28일) 열리며, 안성농업기술센터 담당자 031-678-3061 에게 문의하면 된다.



태그:#전통 수제 생활차, #수제차, #안성농업기술센터, #이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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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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