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통령 소속 지방행정체체개편추진위원회(위원장 강현욱)는 지난 13일, '지방행정체제개편에관한특별법' 규정에 의거, 국회와 대통령에게 제출할 '지방행정체제개편 기본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확정안에 따르면 총 16개 지역, 36개 시군구가 통합대상으로 선정되었으며, 특별시의 구청장은 선출하되, 구의회는 구성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경우 특별시 자치구의 지방자치단체로서의 법인격은 사라지고 국가와 시의 사무를 위임받는 형태의 기능만 수행하게 된다.

따라서 구청장의 독자적 조세권이 부여되지 않음은 물론, 조례발의권도 위임 사무에 한정된다. 광역시의 경우에는 구청장과 군수는 시장이 임명하고 의회는 역시 구성하지 않는 안을 1순위로 올려놓았다. 개편위원회의 확정안은 대통령과 국회에 제출, 올 하반기 국회 논의와 입법 등의 절차를 거쳐 2014년 지방선거부터 적용될 계획이다.

지방자치 개편 프레임, 전환이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2월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 강현욱(오른쪽 두번째) 위원장을 포함한 민간위원 24명에게 위촉장을 수여한뒤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이 대통령, 행정개편위원들과 환담 이명박 대통령이 2월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 강현욱(오른쪽 두번째) 위원장을 포함한 민간위원 24명에게 위촉장을 수여한뒤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개편 확정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한다면 우리 지방자치제는 1991년 3월 26일 30년 만에 지방선거가 부활한 이후 다시 기초의회가 사라지는 일대 변화를 겪게 된다. 이런 변화에 대해 수많은 반발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이번 확정안의 골자는 지난 4월 13일 13차 회의에서 확정되었는데, 개편위의 이기우·안성호 추진위원은 4월 20일, 13차 회의의 절차상 문제점과 개편안의 문제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학계의 반발도 거셌다. 지난 5월 9일에는 한국지방자치학회가 주최하고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전국YMCA연맹, 균형발전지방분권전국연대, 지방분권국민운동이 참여하는 '자치구 폐지, 타당한가?'라는 주제의 정책토론회가 열려 규탄대회를 방불케 하는 학술적 반론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토론회에 참여한 학자들은 매우 다양한 이론과 여러 해외사례를 동원해 정부 개편안이 의도하고 있는 단일중심체제보다 여러 기초단체가 공존하는 다중심거버넌스 체제가 민주주의 측면에서나 효율성의 측면에서 더욱 우월하다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이번 확정안에는 그동안 문제점으로 제기되었던 주요 내용들이 거의 그대로 담겨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식의 반론에도 정부안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주민자치를 더욱 전면화하기 위한 논의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런 식의 대응이 별 문제가 아니겠지만, 주민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개편안이 암시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무용론'은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노출된 우리 지방자치의 수준은 매우 한심한 수준이다. 지방의회는 지역 토호나 관변단체 인사가 장악하거나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기초단계 정도의 의미를 벗어나지 못했고, 나날이 터지는 지방의원의 부패와 각종 돌발 사고들은 '기초의회 무용론'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현상유지'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방자치를 단체자치가 아닌 주민자치화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 정부 개편안에 대한 네거티브적 대응이 아니라 포지티브적 대안을 통해 지방자치 개편 프레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개편안, 기초의회 대신 주민자치 실현할 수 있나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 확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기초의회 폐지에 있다기보다 기초의회를 폐지하고 주민자치를 더욱 활성화할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노력은 있었다. 개편위는 2011년 3월부터 근린자치분과위원회를 구성하고 2011년 5월 말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주민자치의 실현 방안을 논의해 왔다. 그동안의 논의 결과로, 이번 확정안에는 기초의회 대신 통합형과 협력형, 주민조직형을 기본으로 시범실시를 추진하는 안을 제시했다.

이 중 개편위가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은 통합형이다. 통합형은 주민자치위원회(의결기구)와 사무기구(주민센터, 집행기구)로 구성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제시한 방법으로는 실질적 주민자치를 실현할 수 있는 주민자치위원회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 각 동마다 10~30명으로 이루어져 있는 주민자치위원은 주민을 대표하기보다 정치적 출세를 위한 지역유지들의 경력 쌓기로 이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주민자치위원회의 사업 또한 읍, 면, 동 행정직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주민자치센터의 프로그램 역시 대부분 여가를 즐기거나 오락에 관련된 것일 뿐, 지역자치에 다가설 수 있는 형식이 아니다.

개편위에서 제출된 안이 지금의 방식과 얼마나 차별화할 수 있을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개편안의 주민자치위원 역시 20~30명 규모로 선출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20차 분과회의(2012.04.10)에서는 기존의 '직선제 요소를 가미한 선출방식'을 '주민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선출방식'으로 변경했고, 직접선거 방식으로는 선출하지 않는다는 계획을 분명히 밝혔다.

대신 지역대표와 직능단체·기관·사업자 대표를 포함시키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를 볼 때 지금의 주민자치위원회 구성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게다가 원래 포함하기로 되어 있던 주민총회 역시 "주민자치위원회가 필요시 주민 전체 또는 일부를 소집하여 의견을 수렴하는 것"으로 역할을 축소하면서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20차 회의).

이런 과정을 볼 때, 기초의회를 없애고 이를 읍·면·동 주민자치를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대체하겠다는 개편위의 주장은 단지 기존의 주민자치위원회의 사무와 역할을 조정하는 것에 머무를 뿐, 실질적인 주민자치로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덧붙여 주민자치회에 별도의 회비를 징수하게 하는 안도 추진되고 있는데, 오히려 일반 주민 참여를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아직 자치의 경험이 충분하게 축적되어 있지 않는 상황에서의 회비징수는 그 액수가 많지 않다 하더라도 주민자치위원회에 적극적인 참여의지를 갖지 않는 주민의 참여 동기를 높일 수 없다. 이는 다시 지역 특권 집단과 세력만의 위원회라는 성격을 강화시키는 악순환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주민자치, 새로운 대안은 없을까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날인 2010년 6월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제4투표소에서 유권자가 기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날인 2010년 6월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제4투표소에서 유권자가 기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예를 들어, 일괄적으로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 동네 주민들의 준비 정도에 따라 주민조직을 자발적으로 건설하게 하고, 일정 기준 이상의 요건을 충족하면 준자치단체화와 자치단체화의 모델에 부합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완전자치단체화가 조례제정권, 예산심의권, 독자적 조세징수권, 자치사무권, 자치조직 인사권을 부여하는 데 비해, 준자치단체화는 조례제정권과 예산심의권, 독자적 조세징수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또는 주민총회에서 주민자치위원을 선출하게 하되, 총회 참여율에 비례해 위원 정수를 할당하는 방식도 모색해볼 수 있다. 주민총회에 준자치단체로서의 위상을 보장하는 동시에 참여에 비례한 영향력을 보장해 주민참여를 유도하는 형식이다. 이런 방식들은 풀뿌리 민주주의가 활성화된 남미에서 활용되어 자생적 주민자치위원회 건설과 주민참여를 유도해 낸 바 있다. 

또 다른 형태로 일종의 주민배심제 방식의 주민자치위원회도 상상해볼 수 있다. 각 동 단위에서 2~30명 규모의 주민자치위원회를 조직한다면, 위원을 해당 지역 주민 가운데 추첨을 통해 선출하는 것이다. 사법재판에서 배심단이 일반 국민 중 추첨에 의해 구성되듯이, 지역 주민 누구나 주민자치위원이 될 수 있는 동일한 확률의 가능성을 부여받음으로써, 실질적인 자치를 추구해 볼 수 있다. 

이미 수원 등의 자치시에서는 지역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 배심제를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으며, 지난 해 서울시장 야권경선에서도 배심제가 응용되기도 했다. 주민자치가 어떤 주민이라도 지역을 실질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주민배심 방식을 통해 주민자치위원을 선출하는 것은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으며, 기초의회를 대체하는 방식으로도 적용 가능하다.

실질적 주민자치가 제도 개편으로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뿐더러, 반드시 지금 당장 기초의회를 없애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라면, 앞에서 살펴본 실질적 주민자치를 추진해 가면서 현 기초의회의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확정안이 국회를 통과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현재 구의회의 부정부패와 주민들의 불신을 이용해 통과 옹호 여론을 만들고자 할 가능성은 높다. 이런 상황에서는 흔히 현재의 방식을 옹호하는 식으로 대응하게 되는데,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좋은 방향은 아니다. 오히려 지역 풀뿌리 운동단체 등의 협력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기초의회 혁신 방안을 제시하는 대응이 필요하다. 

효율성 때문에 구의회를 없애겠다는 개편안의 발상이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지금의 구 의회가 주민대표성을 온전히 반영하고 있다고 보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소선거구제에 단순다수대표제로 선출하는 국회의원 역시 마찬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중선거구제에서 정당의 복수공천을 허용하는 선출방식은 지방자치를 중앙정치의 부속기구로 전락시키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오랫동안 주민운동단체에서 제기해 왔지만, 진보정당에서도 정당공천 폐지에는 반대하고 있다. 일단 제도권 내부로 진입한 정당의 입장에서는 정당 공천이 주는 이점을 포기하기 어렵다. 또한, 주민들이 난립하는 후보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기 쉽지 않은 조건에서 정당 공천을 통한 정보효과 역시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는 1) 현 중선거구제 내에서 정당의 복수공천을 폐지하는 안 2) 구 단위의 대선거구제로 변경한 뒤, 복수공천을 폐지해 다양한 정당 후보의 당선을 유도하고 무소속 지역 일꾼의 당선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주민 대표성을 보완하는 안 3) 정당공천을 아예 폐지하는 안 4) 지역정당을 허용하는 안 등이 제시될 수 있다.

정당공천제 폐지의 경우 이미 정당공천을 통해 이득을 보고 있는 기성정당이 이 방안에 동의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정당의 복수공천을 폐지하거나 지역정당을 허용하는 문제는 충분히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앞에서 제기한 네 가지 안 중 하나의 입장으로 절충점을 찾아 포지티브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행정개편안, 주민자치 활성화할 계기 삼아야

풀뿌리 주민운동 단체들은 아직까지 정부의 행정체제 개편안에 대해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것은 지금의 논의가 철저히 행정체제 개편 문제로 비춰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현행 기초의회와 자치단체의 존속을 주장할 정도로 지방의회에 미련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방자치체제가 일대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시점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주민들이 주체가 되는 지역공동체는 점점 더 요원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번 개편안을 계기삼아 더 좋은 지방자치를 모색해 나갈 필요가 있다. 풀뿌리 단체들의 적극적인 대응을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시민의 눈으로 정부행정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인 '희망행정네트워크'에서는 '서울풀씨넷'등 주민단체와 함께 오는 6월 28일 정부의 행정개편안 비판과 주민자치 실현을 위한 토론회를 준비 중입니다. 풀뿌리 주민단체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손우정 기자는 희망행정네트워크 자문위원입니다.



태그:#행정개편, #주민자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