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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하고 싶지 않은 위험이 조금씩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바로 가계 빚으로 인한 금융대란이다. 어느 정도 심각할까?

 

소득을 20%씩 나눠 5분위로 계산했을 때 하위 소득계층인 1분위를 제외하고 나머지 소득계층에서 부채 가구가 모두 50%를 넘는다. 심지어 소득이 높을수록 부채 가구 비율은 증가하는데 4분위 계층은 75.6%, 5분위 소득계층은 77.4%가 빚을 갖고 있다. (표 참조) 부채 가구 비율이 높은 것뿐 아니라 부채 규모도 심각하다.

 

현재 언론을 통해 발표되는 가계부채는 900조 원가량이다. 이 수치만으로도 문제가 되는데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이수치가 가계부채를 환산하는 국제 기준에 비해 다소 축소된 지표라는 점이다. 가계부채에 대한 국제 기준은 비영리 민간단체까지 포함한 개인 부문의 금융부채를 지표로 삼는다.

 

국제 기준으로 보면 가계부채는 이미 2011년에 1103조에 이르는 등 1000조 원을 넘어섰다. 2011년 국내총생산(GDP, 잠정)이 1237조 원 가량임을 감안 할 때 거의 가계부채가 GDP대비 90%가 넘는다. WEF(World Economic Forum, 세계 경제포럼)은 가계의 과다부채를 판정하는 임계치를 GDP 대비 85%로 제시하고 있다. 즉 가계부채가 GDP대비 85%가 넘어가면 통제가 어려워지고 금융위기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이다.

 

서브프라임 사태 및 글로벌 위기가 발생한 2007~08년 미국의 가계부채는 GDP대비 96~98%였다. 우리나라의 가계 빚 규모가 WEF가 제시하는 임계치를 넘어섰다는 것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 가계 빚 대란의 위험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OECD(2012년 5월 24일)의 경제전망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문제가 어느 정도 심각한지 실감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 부채 비율이 2011년 3분기 가처분 소득 대비 154.9%로 미국발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145.8%보다 9.1%포인트 높아졌음을 지적하고 있다. 재정위기에 처한 유럽의 5개국 일명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중 아일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4개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리스와 스페인의 국가 부도 사태가 임박해 있다는 소식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순식간에 마음이 무거워질 만하다.

 

상위 계층의 빚도 위험하다

 

이 와중에도 일부 전문가들은 가계부채의 속을 깊이 뜯어 보며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긍정의 힘을 제공하는 가장 큰 단서가 5분위의 가계부채 규모이다. 전체 가계부채의 50%가량이 상위 소득 20%에 해당하는 5분위 계층에 몰려 있다. 그들에게는 일정 이상의 금융자산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조절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실제로 가계 자산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절반가량 된다. 한마디로 자산의 절반을 빚 갚는데 쓰면, 빚을 모조리 갚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어느 금융 전문가는 이런 이유로 생각보다 가계부채가 심각하지 않다는 섣부른 주장을 한다. 통계 수치는 문제의 경향을 볼 수 있을 뿐 본질을 전부 설명할 수 없는 경향이 있다. 섣부른 주장의 당사자가 만약 5분위 계층을 좀 더 세밀하게 나눠 분석하여 그 계층 안에 소득 및 자산 불균형이 없다는 증명을 보인다면 가계부채가 심각하지 않다는 그의 주장이 맞을 수 있다. 그러나 5분위 계층 안에서도 1%에 해당하는 최상위 계층이 상당 부분의 자산을 독식하고 있다.

 

전 세계 상위 1천 명의 재산을 합치면 하위 25억 명의 재산을 합한 수치의 두 배가 된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2%는 전 세계 가계 자산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상위 1% 계층은 하위 50% 계층보다 2천 배나 부유하다. 통계 수치가 현실을 비교적 정확하게 조명하기 위한 명분을 갖추기 위해서는 최상위 1%의 별도 통계 집계가 되어야만 한다.

 

불행히도 선진국은 소득세와 자산 보유 현황 등의 정보를 연구 목적과 사회 설게 방향 설정을 위해 비교적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의 재정부는 설문 조사 결과만 발표할 뿐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다. 최근 조세연구원 박명호 위원은 부분적으로 공개된 소득세 자료를 통해 초고소득층의 특성에 관한 국제 비교를 발표했다.

 

2006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소득 최상위 1%가 버는 소득이 전체의 16.6%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7개국의 최상위 1% 소득 비중은 평균 10% 내외이며 한국보다 최상위 계층 소득 집중이 심한 나라는 미국(17.7%)밖에 없다고 한다. 이 연구 보고서는 1% 계층의 소득만을 분석했다.

 

소득의 집중이 이러하다는 것은 전세계 상위 2%의 부자들이 전 세계 가계 자산의 절반 이상을 소유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가계 자산이 가계 부채보다 2배 많다는 통계 수치에 근거해 빚을 충분히 갚을 수 있다는 주장은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1% 최상위 계층이 쥐고 있는 자산을 풀어 타인의 빚을 갚아줄리는 없지 않은가. 상담 현장에서도 5분위에 해당되는 중산층들의 재무 상태가 통계 수치만큼 여유있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한다. 게다가 올 들어 가계 대출 연체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직장인들의 대부업 이용도 증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2011년 대부업체의 신규대출 현황 분석 결과 회사원들의 이용 비중이 63.3%로 전년보다 7%나 늘었다고 한다. 대출 목적 또한 두 명 중 한 명꼴로 생활비 충당을 위해 대출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금융위기 핵폭탄이 터지느냐 안 터지느냐는 어쩌면 논쟁의 주제가 될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설사 2004년 카드 대란과 같이 짧은 시간 내 신용불량자 400만 명을 양산한 비극이 아니더라도 이미 상위 소득자마저 '하우스 푸어'로 전락해 언제 어떻게 될지 불안한 미래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금융권의 법원 경매 청구금액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집에 딸린 부채 이자가 연체되고 독촉이 이뤄지고 카드 대출과 제 2금융권 고리의 대출까지 빚을 돌려막기 위해 동원했을 것이다. 그렇게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던 일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고 모든 것이 끝났다는 체념 상태에 접어들었을 것이다. 빚으로 빚을 갚는 모습은 저축은행과 캐피털 등의 제 2금융권 관련 통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부터 제 2금융권의 소액 신용대출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늘어난 신용 대출이 연체율의 배에 올라타는 중이다.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2012년 3월 말 기준 소액 신용대출 잔액이 100억 원 이상인 14개 저축은행 평균 연체율이 8.25%로 전년 동기 대비 1.99%포인트 올랐다고 한다. 빚으로 빚을 갚다 견디지 못해 두 손 들어버리는 현상도 통계에 반영된다.

 

3개월 연체에 따른 개인 워크아웃 신청 건수에서도 300만 원 이상 소득자들의 증가세가 뚜렷하다. 집이 있는 사람들은 집을 처분하기 전에는 개인 워크아웃도 안된다. 결국, 더이상 집을 지킬 여지가 없어지고 은행이 드디어 경매 처분을 시작한다. 언론을 통해 조금씩 드러나는 현실은 모든 것을 빼앗긴 노예의 길에 접어든 유주택 중산층들의 모습이다.

 

더 이상의 대책이 불가능한 저소득 계층의 빚

 

소득 상위 20% 안에 드는 계층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그 아래 계층 즉 소득 상위 40%, 4분위 계층에게도 만만찮은 빚이 있다. 이 두 계층의 빚을 모두 합하면 가계 부채의 69%가 된다. 규모만 놓고 보면 말 그대로 중산층의 절대적인 위기이다. 그러나 문제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위 20% 계층은 부채 규모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만 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문제가 된다. 금융위원회 최근 자료를 보면 가계소득이 높은 상위 20% 계층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210.9%, 하위 20% 계층은 584.7%에 달한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최저소득(100만 원 미만)인 사람들은 평균 580여만 원의 빚이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게다가 저소득층의 빚은 자산이 담보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신용대출이다. 그러나 이 계층의 신용이 높지 않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부담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은행별로 서민대출 상품인 새희망 홀씨 대출을 출시해 저소득, 저신용 계층에게 공급했다. 2010년 11월 출시되어 공급했는데 벌써 6개 은행(국민, 신한, 우리, 하나, 기업은행, 농협)의 2011년 12월 대출 잔액이 1조 241억 원에 달한다. 이 상품은 저소득 저신용 계층을 위해 특별 공급되는 상품이지만 금리가 8~14% 수준으로 일반 대출 금리를 크게 상회한다. 그럼에도 1년여 동안 1조 원이 넘는 돈이 공급되었다는 것은 그 이전에 더 높은 금리의 상품 즉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 등에서 대출을 받거나 연체했던 경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은행에서도 새희망 홀씨 대출 상품을 찾는 저소득층들이 신용 면에서 상당한 리스크를 갖고 있다고 판단해 더 이상의 금리 하향 조정이 난처하다고 말한다. 소득이 절대적으로 낮아 생계가 곤란해 대출에 의존하는 저소득 계층의 빚은 파산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2004년 카드대란 때는 저소득층의 과다 신용 사용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저소득층은 생계 때문에 고금리 대출을 소득의 5배 이상 짊어지고 있고 상위 계층조차 집에 딸린 빚 때문에 허덕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가 무려 17차례나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을 쏟아냈지만, 거래는 갈수록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거기에 베이비 부머들의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되면서 오로지 집 한 채만을 갖고 은퇴하는 사람들이 생활비를 거머쥐기 위해 집을 팔아야 할 입장에 처했다.

 

말 그대로 1%를 제외한 나머지 99%에게 패자가 될지 모른다는 절박감을 심어주는데 그 무엇보다 구체적인 메시지가 빚으로 전달된다.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상식의 잣대로 빚을 해석할 때 현재 채무자의 상당수는 그들의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절망적인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빚은 결국 대다수 사람들의 시간을 정복하고 소리소문없이 노예의 삶으로 이끌고 있다. 독일의 정치경제학자인 클라우스 뮐러는 머니쇼크라는 책에서 금융을 '총칼을 들지 않은 화이트칼라 강도'라고 비유한다.

 

분명히 우리는 억지로 빚을 지지 않았다. 누군가 총 칼을 들이대고 돈을 빌려 쓰라고 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 빚을 갚기 위해 잠재적 노예 상태의 삶을 살게 된 것일까. 무엇이 우리를 빚의 노예로 만들었는가, 심지어 총이나 칼을 들지도 않고 자발적 동의를 전제로 대다수 사람들을 노예로 만든 탁월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쯤 되면 언론과 금융권, 정부까지 팔 걷어부쳐 문자와 광고, 메일과 콜센터를 통해 '빚도 자산이다'라 속삭여 댔던 기억을 끄집어낼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일부 내용이 경향신문 '안티 재테크' 연재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가계 부채, #금융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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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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