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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이른바 '윤필용 사건' 수사를 주도했던 강창성 전 육군보안사령관은 신군부 세력에 의해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대표적 인물이다.
▲ 강창성 전 육군보안사령관 1973년 이른바 '윤필용 사건' 수사를 주도했던 강창성 전 육군보안사령관은 신군부 세력에 의해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대표적 인물이다.
ⓒ 강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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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가 고 강창성 전 육군보안사령관의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하는 결정을 내려 형평성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8일 국립묘지 안장대상 심의위원회(위원장 정양성)를 열어 지난 2006년 2월 숨진 강 전 사령관의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하는 결정을 내렸다.

보훈처는 안장 거부 사유에 대해 "강 전 사령관이 1981년 해운항만청장으로 재직 시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며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 안장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훈처의 이 같은 설명은 지난해 8월 논란 끝에 국립묘지에 안장된 고 안현태 청와대 경호실장의 경우와는 달라 강 전 사령관의 유족들은 "보훈처가 이중 잣대를 적용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두 인사 모두 전과 경력이 있고 특별복권되었지만 한 명은 국립묘지 안장을 허용하고 다른 한 명은 배제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는 것이 강 전 사령관 유족들의 항변이다.

보훈처 국립묘지 안장심의, 이중 잣대 논란

보훈처의 이 같은 결정은 두 사람이 생전 행적이 대비된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결과적으로 12∙12 군사변란을 주도한 신 군부에 저항했던 강 전 사령관은 안장이 거부되고, 5공세력이었던 안 전 실장은 안장이 허용된 것이다.

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 멤버였던 안 전 실장은 육군 소장으로 예편,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재직하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에 관여해 1997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뇌물 수수 및 방조죄) 위반으로 징역 2년6월, 추징금 50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지난해 8월 5일 보훈처는 국립묘지 안장대상 심의위원회를 열어 서면심사를 통해 안씨를 대전현충원에 안장하기로 의결했다. "안 전 실장이 이미 사면복권되었으며, 월남전에 참전했고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내는 등 국가안보에 기여했다"는 것이 당시 보훈처가 밝힌 이유였다.

하지만 지난 5월 감사원은 안 전 실장의 국립묘지 안장 과정에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심사위원들에게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박 처장이 유주봉 당시 보훈선양국장에게 "고인의 안장 건에 대해 기관장으로서 유관기관 여론 등을 파악해 보니 안장하는 데 큰 무리는 없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으며, 이 말을 들은 유 국장이 국립묘지 안장대상 심의위원회 정부 소속 위원 4명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서면 의결서 제출을 독촉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런데 강 전 사령관의 국립묘지 안장문제를 심의한 보훈처는 안 전 실장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

특별복권 사실도 파악 못한 보훈처

특히 강 전 사령관이 1988년 특별 복권되었는데도, 보훈처는 이런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지난 2006년 국립묘지 안장심의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사실은 보훈처가 지난해 국회 국방위원회 김정(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지적사항 검토 보고'에도 나타나 있다. 안 전 실장에 대해서는 사면복권 사실을 확인하고 있지만, 강 전 사령관은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나와 있는 것.

지난 해 보훈처가 국회 국방위 김정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보훈처는강 전 사령관(사진속 '망인'으로 표기)이 사면복권을 받은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 보훈처가 김정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 지난 해 보훈처가 국회 국방위 김정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보훈처는강 전 사령관(사진속 '망인'으로 표기)이 사면복권을 받은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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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전 사령관 유족 측은 "신문 보도와 국가기록원 기록을 뒤져 특별복권 사실을 확인하고 그동안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지만 보훈처는 '동명이인일 수 있다'는 안이한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또 유족은 2006년 3월에 사망한 김용배 전 육군참모총장의 경우와 비교해 보아도 보훈처가 불공정한 잣대로 안장심의를 했다고 지적했다.

보훈처는 지난 2006년 5월 '금고 3년 이상 제외' 규정이 삭제되고 대신 들어간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자는 심의결과에 따라 안장여부를 결정한다'는 규정을 적용해 김 전 총장을 국립묘지에 안장토록 했다. 김 전 총장은 미 군정 당시인 1947년 6월 살해 음모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11월 감형∙석방된 바 있다.

국민권익위, 보훈처에 재심 권고

강 전 사령관 유족 측의 진정을 접수한 국민권익위원회(아래 권익위)는 지난 4월 23일 보훈처에 강 전 사령관의 국립묘지 안장 여부 판단을 위한 심사 절차를 다시 진행할 것을 권고했다. 보훈처가 '강 전 사령관의 특별복권 사실 등 정상참작 사유와 국가를 위해서 희생한 정도 등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 안장심의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권익위원회가 내린 결론이었다.

권익위 관계자는 12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국립묘지 안장 심의위원회에서 심의를 할 때 가장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가 국립묘지의 영예성 훼손 여부인데, 이런 추상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위원들에게 객관적이고 공평한 자료가 제공되어야 함에도 과거 강 전 사령관의 경우 그렇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보훈처에서는 강 전 사령관 사면복권 여부에 대해서도 '주민등록 번호가 나와 있지 않아 동일인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며 "본적∙연령∙죄명∙형량 등을 보면 충분히 동일인으로 볼 수가 있고 경찰청에 범죄기록 조회를 하면 사실 확인이 어렵지 않은데도 이를 소홀히 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권익위의 권고를 받아들인 보훈처는 지난 5월 10일 1차 심의를 열었지만 의견이 갈려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지난 8일 "강 전 사령관은 국립묘지 안장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강 전 사령관 유족 측은 이후 소송을 통해서 반드시 잘잘못을 가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창성 전 육군보안사령관은?
강 전 사령관은 육사 8기 출신으로, 1960년 동기생들이 주도했던 5·16 쿠테타에 가담하지 않았으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5사단장과 육군 보안사령관 등 군내 요직을 거쳤다. 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하던 1973년 이른바 '윤필용 사건'으로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수사를 주도했다가 정권 핵심과 반목하면서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이후 해운항만청장을 역임했던 강 전 사령관은 1980년 2월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초대로 국정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전두환 장군이 집권욕을 드러내자, "이번만은 국민들이 자유롭게 뽑은 민간정치인에게 정부를 이양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며칠 후 강 전 사령관은 돌연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연행된다. 구둣발로 들이닥친 수사관들이 장롱 속에서 찾아낸 1300달러가 외환관리법 위반의 빌미가 됐다. 강 전 사령관의 유족들은 '해운항만청장 시절 출장을 갔다가 남은 돈을 넣어 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혐의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도 청마다 로비자금으로 마련한 비자금을 마련한 당시 관행을 마치 개인비리인 양 뒤집어씌운 것이라고 유족들은 주장했다.

실제로 강 전 사령관은 영등포 교도소 수감 중 혹독한 순화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밝혀져 그의 혐의가 정치적 보복에서 비롯되었음을 방증하고 있다. 수형기간 중 체중이 80Kg에서 57Kg으로 줄어드는 등 고초를 겪다 1982년 가석방된 후 명지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저서 <한국∙일본 군벌정치사>는 한국과 일본의 군맥과 사조직 연구의 고전으로 꼽힌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눈에 들어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전국구)이 됐다. 김영삼 정부 시절 하나회 척결과 12·12 쿠테타 주동자 단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0년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전국구 공천으로 재선한 강 전 사령관은 총재 권한대행을 맡기도 했다.

2006년 2월 14일 지병으로 별세한 강 전 사령관의 묘소는 현재 경기도 포천의 선산에 있다.



태그:#국립묘지, #강창성, #안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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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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