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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글씨인 한자의 서체는 전서, 금문, 해서, 초성 등이 유명합니다.
 중국 글씨인 한자의 서체는 전서, 금문, 해서, 초성 등이 유명합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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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에서는 5월 26일부터 7월 1일까지 한자 글씨 특별전을 열고 있습니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일본과 중국에서 전하는 유명한 글씨와 병풍들을 모아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신언서판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몸가짐, 말씨, 글씨와 그림, 판단력 등이 사람 됨됨이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사람이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이 네 가지는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사람 누키나수오(貫名?翁,1778-1863)가 쓴 죽성(竹聲) 송영(松影)입니다. 일본이 자랑하는 명필 가운데 한 분입니다.
 일본사람 누키나수오(貫名?翁,1778-1863)가 쓴 죽성(竹聲) 송영(松影)입니다. 일본이 자랑하는 명필 가운데 한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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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글씨는 한자를 중요하게 여겨온 동양 삼국인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중요하게 여겨왔습니다. 처음 한자는 상형문자로 시작하여 수를 더하고 사고가 더하여 복잡해졌습니다. 처음 문자로서 한자는 뜻을 전하고, 표현하는 기능적인 수준이 중요시되었을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기능적인 글자가 심미적 예술품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배 이념을 강화하고 왕권을 정착시키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어떤 사건에 대한 정보를 특정집단이 소유하고 공개하지 않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만 흘리거나 자신이나 특정 집단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일은 흔합니다.

한자는 배우기 어렵고,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글자입니다. 아무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자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스님을 비롯한 일부 식자층만이 한자를 배우고 쓸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일본 스님들은 엘리트 의식이 남아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붓글씨를 쓰는데 문방사우가 빠질 수 없습니다. 종이(紙), 붓(筆), 먹(墨), 벼루(硯)를 가리킵니다. 일본사람들은 그밖에 문진, 필통 붓 받침, 작은 병풍들을 합해서 문방제구(文房諸具)라고 합니다.
 붓글씨를 쓰는데 문방사우가 빠질 수 없습니다. 종이(紙), 붓(筆), 먹(墨), 벼루(硯)를 가리킵니다. 일본사람들은 그밖에 문진, 필통 붓 받침, 작은 병풍들을 합해서 문방제구(文房諸具)라고 합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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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문자를 아는 지식층들은 자신의 심미적 욕구 충족과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에 대한 동경이나 선망이 컸습니다. 그래서 한자가 지닌 여러 서체를 일본 가나에도 적용시켜서 표현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록을 좋은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붓으로 쓴 글씨를 감상할 때 선의 굵기와 가늘기, 붓의 짙고 옅음, 모양의 강약, 산과 강의 유려함과 장엄함 등이 글씨에 어떻게 표현되었는지에 따라서 판단합니다. 그리고 글의 뜻을 알고 즐긴다고 합니다.

  사진은 법화경 수기품으로 8 세기 무렵 당나라 때 쓴 것입니다. 오타니탐험대가 중앙아시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사진은 법화경 수기품으로 8 세기 무렵 당나라 때 쓴 것입니다. 오타니탐험대가 중앙아시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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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인쇄술이 성경 출판과 관련되어 있다면 동양 붓글씨는 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인도에서 들어온 산스크리트어 불경을 중국어로 변역하고 다시 필사하면서 보급되었습니다. 불경을 필사하는 사경은 단순히 글씨를 옮겨서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앙적인 행동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연필이나 붓으로 글씨를 쓰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금은 붓이나 연필 대신 컴퓨터나 그와 비슷한 도구를 사용하여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특히 한글은 여러 전자 도구를 이용하는데 편리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붓글씨를 쓰기 위해서 벼루로 먹을 갈고, 먹물이 진하게 나오면 한 획, 한 획 붓에 먹물을 묻혀서 글씨를 씁니다. 붓글씨는 시간으로 쓰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쓰는 글씨입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없어질 것 같은 붓글씨가 일본에서는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붓글씨를 가르치는 서예학원이 골목골목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초등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글씨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국 원나라 때 조맹부(趙孟?, 1254-1322)가 쓴 행서여언걸노지척속(行書與彦桀)입니다.<원문>
 중국 원나라 때 조맹부(趙孟?, 1254-1322)가 쓴 행서여언걸노지척속(行書與彦桀)입니다.<원문>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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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원나라 때 조맹부(趙孟?, 1254-1322)가 쓴 행서여언걸노지척속(行書與彦桀)입니다.
 중국 원나라 때 조맹부(趙孟?, 1254-1322)가 쓴 행서여언걸노지척속(行書與彦桀)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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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맹부는 원 나라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복고주의를 표방하여 글씨는 진, 당 특히 왕희지의 글씨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하루에 글씨 1만 자를 쓰면서 맹렬히 연습하여 독특한 필체를 남겼으며 한반도나 일본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일본사람들의 한자 사랑은 대단합니다. 한자 글씨 전시장에도 사람이 가득합니다.
 일본사람들의 한자 사랑은 대단합니다. 한자 글씨 전시장에도 사람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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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가 아직도 예술품으로 살아있는 곳이 일본입니다.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으나 현실입니다. 이번 전시회에도 나이가 드신 어르신부터 젊은이까지 박물관 문이 열리기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일본사람들은 한자를 즐겨쓰고 한자만을 고집합니다.

  중국 청나라 때 송균(宋筠, 1752-1935)이 쓴 초서 호(虎) 자입니다.
 중국 청나라 때 송균(宋筠, 1752-1935)이 쓴 초서 호(虎)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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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인간이 글씨를 쓰기 시작할 때 글씨는 거룩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특정 계급에서 종교,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도 입춘날 입춘대길 등 글자를 써서 문 앞에 붙이는 것도 그런 습속의 하나인지도 모릅니다. 중국 청나라 때 송균(宋筠, 1752-1935)의 글씨는 당시 부적과 같은 힘이 있다는 전설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박물관에서는 상설전으로 중국 청동기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BC. 14 세기에서 11 세기부터 시작되는 중국 청동유물은 중국 문화와 기술, 환경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전시 유물 가운데 기신고라고 하는 청동 북은 세계적으로 두 개 밖에 없는 유물입니다.  

  호유(虎?)라고 하는 구리 주전자의 앞모습과 옆모습입니다. 호랑이 입 속에 사람이 들어앉아있습니다.
 호유(虎?)라고 하는 구리 주전자의 앞모습과 옆모습입니다. 호랑이 입 속에 사람이 들어앉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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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유물 가운데 호유(虎卣) 주전자는 BC 11 세기 서주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독특한 무늬를 띠고 있습니다. 호랑이가 뒷발과 꼬리로 앉아서 사람을 앞발로 안고 있습니다. 호랑이신이 잡귀를 먹으려고 한다는 말고 호랑이가 사람을 수호하려는 모습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한자 붓글씨와 중국 청동기 모두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중국의 개성과 문화가 담긴 것입니다. 2천여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이 이곳 일본에서 인기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흥미로운 일입니다.  

  일본 에도시대(17-18 세기) 혼아미고에츠(本阿彌光悅)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부채 그림 병풍입니다. 부채 안에는 당시 인기 있는 여러 노래가사나 경구 등이 쓰여 있습니다.  대담한 화법과 초록색이 인상적입니다. 부채가 바람을 일으키는 것처럼 복을 많이 가져다 줄 것이라는 상징성으로 일본 사람들은 부채를 좋아합니다.
 일본 에도시대(17-18 세기) 혼아미고에츠(本阿彌光悅)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부채 그림 병풍입니다. 부채 안에는 당시 인기 있는 여러 노래가사나 경구 등이 쓰여 있습니다. 대담한 화법과 초록색이 인상적입니다. 부채가 바람을 일으키는 것처럼 복을 많이 가져다 줄 것이라는 상징성으로 일본 사람들은 부채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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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법> JR교토역이나 교토 시내에서 5번, 100번 버스를 타고 미야노마에초(宮ノ前町)에서 내린 다음 동쪽으로 200 미터 쯤 걸어가면 됩니다. 주변에 난젠지(南禪寺) 절, 이에칸도(永觀堂) 절들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박현국(朴炫國) 기자는 류코쿠(Ryukoku, 龍谷) 대학 국제문화학부에서 주로 한국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태그:#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박물관, #한자 글씨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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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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