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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예쁜 모습이 남아있는 마지막 사진입니다. 살이 급속하게 빠진 마지막 순간은 카메라에 담지 못했습니다. 너무 가슴 아파서...
 병원에서. 예쁜 모습이 남아있는 마지막 사진입니다. 살이 급속하게 빠진 마지막 순간은 카메라에 담지 못했습니다. 너무 가슴 아파서...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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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0일 오후 4시경, 돌만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돌만이가 다니던 동물병원에서 내 품에 안긴 채 안락사됐습니다. 아프기 시작한 지 거의 두 달 동안 입원과 퇴원, 통원치료를 반복하면서 겨우 입맛을 되찾았지만 이미 몸무게는 2kg 가까이 빠졌습니다. 췌장에서 간으로, 간에서 심장으로, 대장으로, 그리고 또 어디로...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돌만이가 조금 더 삶을 연명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의 차가운 입원실에서 지내야 할 것이라는 것.

나는 살면서 많은 동물들의 죽음을 봤습니다. 사람들마다 보는 기준이 다르겠지만 삶과 생명을 사랑하는 만큼 삶의 질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살아있을 때 행복하고 고통 없이 사는 것. 가장 편안하고 고통 없는 죽음을 선택하도록 배려하는 것. 아직도 안락사를 둘러싼 많은 논쟁이 있지만, 저는 현실주의자입니다. 죽음보다 못한 삶, 동물들의 참혹한 고통과 비참한 죽음을 수도 없이 봤습니다.

안락사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동물보호 활동가가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세상에 얼마나 비참한 동물들이 많은지 아는가."

돌만이는 내가 의자에 앉아있으면 늘 안아달라고 조르곤 했습니다.
 돌만이는 내가 의자에 앉아있으면 늘 안아달라고 조르곤 했습니다.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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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안다면 그 반대라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책상머리에 앉아 생명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쉽죠. 매일 수많은 동물이 극한의 고통과 죽음의 전선에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안다면 그런 주장을 쉽게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되지 못해 안락사되는 개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나마 보호소에서의 안락사는 인도적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최소한의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개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자신의 반려견에게 치료를 위해 얼마의 돈을 썼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재정의 여유가 많다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 기간 동안 몇 개의 주삿바늘이 개의 혈관을 찔렀는지, 어떤 고통을 넘겼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완치의 가능성이 높고, 아직 어리다면 해 볼 수 있겠죠. 그러나 10살이 넘은 늙은 개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입원 치료와 각종 검사를 견디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이 보다 나은 선택일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주인의 결정에 달린 것이죠.

고통은 점차 심해질 것입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차가운 병원 입원실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도록, 돌만이가 가장 좋아하는 주인 옆에서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보내줘야 한다는 것. 생명을 살려야 하는 윤리 의식이 강한 수의사의 입장에서 안락사를 권유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결심은 내가 해야 합니다.

동물의 입장을 생각해야 합니다

돌만이가 가장 좋아하는 자세...마지막에도 이런 상태로, 내 품에서 갔죠.
 돌만이가 가장 좋아하는 자세...마지막에도 이런 상태로, 내 품에서 갔죠.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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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선생님이 치료대에 돌만이를 올려 놓아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내가 안고 있겠다고 했습니다. 돌만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내가 안아주는 것이니까요.

마취제가 들어가자 돌만이는 목을 떨궜고, 의사 선생님이 청진기로 심장박동이 멈춘 것을 확인할 때까지, 그리고 나서도 한참을 돌만이는 내 품안에 있었습니다. 오물이 내 옷 위로 쏟아졌지만 상관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주인의 품안에서 죽었으니, 그나마 내가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어쩔 수 없이 반려견을 안락사해야 할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저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아무리 마음이 아프고 그 순간을 접하고 싶지 않더라도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세요.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배려하는 것, 그것이 주인이 해야 할 중요한 책임입니다."

프랑스의 작가 장 그르니에는 "인간의 죽음보다 동물의 죽음이 더 비극적"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동물의 죽음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동물이 죽음과 고통을 받아들이며 견디는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경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사랑한다면 해야 합니다. 반려동물이 죽음의 순간에 낯선 수의사의 손에 맡겨진다면 동물의 입장에서 그것은 공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의사는 안락사를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전문가이지만, 인도적인 죽음을 보조해줘야 하는 것은 반려동물의 주인밖에 없습니다.

동물관련 활동을 하다보면 동물을 구조하거나 안락사를 결심하거나, 동물의 생명이 달린 상황에 결정을 내려야 할 때를 마주하곤 합니다. 나의 경우, 동물의 생명이 달린 문제에 있어서 기준은 이렇습니다.

'나를 잊고, 자아를 버리고, 동물에 집중한다.' 

이상적인 생명 살리기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이상은 핑크빛, 현실은 시궁창'인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동물보호운동가가 된다는 것은 그 시궁창을 뒤집어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기준은 '어떤 방향이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가 됩니다. 현실적으로 동물의 대변자가 되는 것은 동물에 대해 많이 안다고 떠드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어떠한 곤란함이 있더라도 동물의 입장에서 그들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돌만이를 처음 만난 날을 추억하며 그렸던 그림.
 돌만이를 처음 만난 날을 추억하며 그렸던 그림.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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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만이와 함께 살기 시작한 때는 2001년 겨울이였습니다. 주인에게 맞으며 살고 있다는 말에 그 집을 방문했는데, 마루에 앉아있는 아이를 보자 무조건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주인에게 제시한 가격은 10만 원. 안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돌만이가 낑낑 소리를 내더군요. 그게 돌만이와 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전 주인에게 맞아 이미 한쪽 눈은 실명 상태였고, 엄격한 배변 훈련 때문이었는지, 오줌을 싸면 먹어치웠습니다. 주인한테 혼날까봐서요.

전 상관없었습니다. 그냥 예전보다 행복하면 좋겠다는 바람이었고, 배변 훈련 따위는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배변을 가리더군요. 개들이 배변을 잘 못 가린다면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대부분 주인의 잘못된 훈련 방법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처음부터 머리가 나쁜 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돌만이가 내게 가르쳐 준 것

2006년 여름휴가 때. 돌만이는 풀숲과 산책을 좋아했어요.
 2006년 여름휴가 때. 돌만이는 풀숲과 산책을 좋아했어요.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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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만이와 살면서 가장 신기한 것은 내가 이 방으로 가면 이 방으로, 저 방으로 가면 저 방으로 따라다닌 다는 것이었습니다. '늘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었죠. 누군가가 나를 중요한 사람으로 대한다는 것, 그것은 놀랍고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돌만이는 내 등에 자기 등을 대고 자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아니면 내 베개에 나란히 머리를 베는 것도 좋아했고요. 개는 늑대의 후손이라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한 서열 관계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때문에 우두머리의 주변에서 자는 것 역시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돌만이에게 나는 믿고, 따르고, 충성해야 할 우두머리인 것이죠.

2006년 돌만이.
 2006년 돌만이.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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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함께 살게 되면서 삶의 패턴이 바뀌고, 새로운 일상의 질서가 생기고,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지고, 가족간의 화제가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사를 다녀도 개들에게 맞는 환경인지를 먼저 확인하고, 개들 때문이라도 방이 조금 더 넓은 곳을 고르게 되고, 산책로가 많은지도 확인하게 되고, 개를 싫어하는 이웃이나 집주인은 피하게 됩니다.

외박은 꿈도 못꾸죠.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돌만이를 생각하면 집을 비우고 돌아다닌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돌만이가 나에게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돌만이 덕분에 내 인생의 방향이 바뀌게 됐다는 것입니다.

동물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 사람이 동물과 함께 살면서 어떤 의무를 지고 어떤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2005년부터 자원활동가가 돼 2007년부터는 직업적 활동가가 됐으니, 저는 벌써 8년 차 활동가인 셈입니다. 그동안 수도 없이 죽어가는 동물을 봤고, 동물을 방치하고 학대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평범한 시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학대는 무지에서 옵니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동물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 타자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한 것이죠. 타자의 고통에 무감각하다고 해서 미친 사람은 아닙니다. 그게 참 슬픈 일이죠.

돌만이는 바닥에 무엇이 깔려있기만 하면 그 위에 눕거나 자곤 했어요.
 돌만이는 바닥에 무엇이 깔려있기만 하면 그 위에 눕거나 자곤 했어요.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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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그 대상이 점차 확대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돌만이를 사랑하게 되니 이웃에 살고 잇는 개들도 사랑하게 되고,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많은 다른 개들에게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개에게 관심이 가니, 고양이도 궁금하고 돼지의 삶도, 소의 일상에도 관심을 두게 되죠.

그리고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게 됐습니다. 아마 우리에게 '동물'이라는 공통 분모가 없다면 절대 만날 일이 없었겠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물이 이 사회의 약자이기 때문에 다른 약자의 고통에도 관심이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동물들의 비참한 삶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불합리한 제도와 이기심을 부추기는 여러 문화의 산물이죠. 그와 마찬가지로 이땅에서 소외된 많은 약자들,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불안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성소수자들, 부모 잃은 아이들, 차별받은 장애인과 이주노동자들... 사회에서 소외바고 경제저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나타난 것 역시 자연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사회적 의식의 확장입니다. 물론 희망도 있습니다. 세상은 서로 연결돼 있고, 사랑은 전염됩니다. 내가 아닌 타자를 향한 시선과 애정은 돌만이를 통해 시작되고 확장됐습니다. 동물에 대한 애정이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투쟁과, 희망버스와, 제주 해군기지 반대운동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행복할 권리가 있죠. 그것을 막는 잘못된 사회 제도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고,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 나누고 양보할 수 있다는 것, 타자의 고통에 반응할 수 있다는 것, 돌만이는 이런 것을 가르쳐줬습니다.

개들은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는 것은 인간뿐

화난 돌만이 얼굴. 동물의 표정만 살펴도 어떤 것을 느끼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죠.
 화난 돌만이 얼굴. 동물의 표정만 살펴도 어떤 것을 느끼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죠.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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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다 보면 진료비가 참 비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엄청난 치료비 때문에 적금을 깨야 했죠. 그간 내가 구했던 개들이 얼마인데, 정작 내 개 치료비 때문에 쩔쩔매야 하는 현실이 참 씁쓸했습니다.

매해 10만 마리의 동물이 거리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개개인에게 '책임감을 가져라'라는 말을 한다고 해서 해결되진 않습니다. 무분별한 번식을 막기 위한 현실적 정책이 필요하고, 유기동물을 입양하고 치료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책적 지원도 필요합니다.

동물 키우는 것이 사치행위라며 부가가치세도 물리겠다는 정부인데, 그런 분위기에서 유기동물의 안락사를 막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는 어렵죠. 안락사하거나 보호소에서 폐사되는 개들은 매년 생겨날 것입니다.

사람도 살기 힘든 나라입니다. 아직 선진국이라고 하기에 불충분한 제도와 사람들의 인식이 있습니다. 정답은 없지만 분명히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은 있습니다. 동물을 통해 인간 세상을 보면 인간의 본질과 성향, 사고 방식과 문화, 국가의 윤리적 수준과 평가의 척도 등 많은 것이 보입니다. 이 정도면 돌만이는 개, 그 이상이죠. 세상을 보게 하는 프리즘이라고나 할까요.

아침마다 안아달라고 조르면...지각하기 일쑤죠. 한참을 이렇게 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아침마다 안아달라고 조르면...지각하기 일쑤죠. 한참을 이렇게 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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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나가려는데 문앞에 서서 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카리스마 있는 척해도, 나이를 먹어도 개는 여전히 어린아이 같습니다.
 급기야 나가려는데 문앞에 서서 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카리스마 있는 척해도, 나이를 먹어도 개는 여전히 어린아이 같습니다.
ⓒ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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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하는 곳에 간혹 상담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상황이 이래서 도저히 이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됐어요. 누구 키울 사람 없을까요?"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당신이 키울 수 없다면 한국에서 그 아이를 데려가 키워줄 사람은 없어요. 오히려 공짜로 덜컥 데려가겠다고 말하는 '천사 같은 사람들'을 경계하세요.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책임감 없이 아무렇게나 키우다 버릴 수도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하죠?"
"저라면 주인 곁에서 안락사키시겠어요."
"어떻게 그런 짓을..."
"그보다 더 비참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어요. 내 눈에 안 보인다고 있는 현실이 없어지진 않죠."

나는 모란시장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많은 개들을 봤습니다. 그 중 일부는 분명히 누군가의 집에서 키웠던 반려견이었습니다. 거리를 떠돌다 죽임을 당하는 개들도 봤고, 보호소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가는 개들도 봤습니다. 여름이면 휴양지에 수많은 개들이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식이 어느 날 갑자기 이성적으로 변할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정확하게 알아야 그에 대한 대처도 나오죠.

안락사가 끔찍하다면 끝까지 그 개를 책임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좋은 집과 좋은 간식을 제공하지 못할까 봐, 좋은 치료를 못 받게 할까 봐 걱정하지 마세요. 개들은 당신이 장애인이든 가난하든 노인이든 못생겼든 잘생겼든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당신 곁에서 가장 행복하죠. 이 세상에서 그 개가 가장 사랑하고 믿는 사람은 오직 당신밖에 없습니다. 개들은 변하지 않죠. 오직 변하는 것은 인간뿐입니다.

"돌아오는 주인님이 뱃전에서 밧줄을 풀고 - 보리, 보리, 보리라고 나를 부를 때 나는 개로 태어난 운명이 행복했다. 나는 내 이름에 자부심을 느꼈다. 주인님이 '보리!'라고 나를 부를 때, 나는 비로소 이 세상의 수많은 개들의 한 마리가 아니라 주인님의 개가 될 수 있었다. 나는 개가 아니라, 개인 동시에 '보리'인 개였다." (김훈의 <개> 중에서)


태그:#반려동물, #안락사, #동물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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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위한 행동 Action for Animals(http://www.actionforanimals.or.kr)을 설립하였습니다. 동물을 위한 행동은 산업적으로 이용되는 감금된 동물(captive animals)의 복지를 위한 국내 최초의 전문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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