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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19일. 좌탈입망 후 육신을 지수화풍으로 환원시키기 위해 다비장으로 향하고 있는 이운행렬 속 서옹 스님 영정
 2003년 12월 19일. 좌탈입망 후 육신을 지수화풍으로 환원시키기 위해 다비장으로 향하고 있는 이운행렬 속 서옹 스님 영정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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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옹'이라는 법명은 얼른 떠올리지 못해도 '거 있잖아. 10년 전쯤 전남 장성에 있는 백양사에서 앉아서 돌아가신 스님'하고 설명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 맞아, 앉아서 돌아가셨다는 유명한 스님이 있었어'하며 기억으로 떠올릴 스님이 서옹 스님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고불총림 백양사의 방장이셨던 서옹 큰스님이 돌아가신지 어느덧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있습니다. 당대의 선지식이셨던 스님이고, 승가의 선풍이 부채의 댓살처럼 꼿꼿하한 백양사였지만 작금의 백양사는 예전 같지가 않은 듯합니다.

주지 감투를 둘러싼 불협화음, 불법으로 설치된 몰래 카메라로 폭로된 스님들의 도박 등으로 승가 전체를 부끄럽게 하는 불미와 구설의 발원지가 되어 있습니다.

<임제록 연의>는 38년 전에 서옹 스님께서 처음으로 출판하셨고, 23년 전에 재판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서옹 스님 탄신 100주년을 맞아 기념판으로 <임제록 연의>가 다시 출간되었습니다. 

'임제록'은 중국 선가오종 중 하나인 임제종(臨濟宗)의 개조(開祖)인 임제 의현(臨濟義玄)의 법어(法語)와 언행 등을 제자인 삼성 혜연(三聖慧然)이 편집한 책입니다.  

'임제록'은 임제종(臨濟宗)의 근간이 되는 책일 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선(禪)의 진수를 설파한 책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어 불자들에게는 필독이 요구되는 불서 입니다.

서옹 큰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판, <서옹스님의 임제록 연의>

서옹 큰스님 탄신 100주면 기념판으로 출간 된 <서옹스님의 임제록 연의> 표지
 서옹 큰스님 탄신 100주면 기념판으로 출간 된 <서옹스님의 임제록 연의> 표지
ⓒ 아침 단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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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 연의>는 백양사 방장으로 주석 중이던 2003년 겨울에 좌탈입망하신 서옹 스님께서 이 임제록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덧붙여서 펴냈던 책입니다.

<임제록 연의>는 선(禪)과 임제선사의 사상 등을 소개하 해제(解題), 임제 스님이 법단에 올라가서 하신 설법을 기록한 상당(上堂), 대중을 상대로 한 설법이나 법문 내용을 담고 있는 시중(示衆), 선사와 제자들 간에 묻고 답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감변(勘辨), 스님의 행장을 기록한 행록(行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욕망은 항상 욕구불만에 빠지고 사람은 욕망에 사로잡혀서 주체성을 잃게 된다. 욕망에 팔려서 사는 사람은 주체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욕망에 팔려서 사는 곳에는 자유도 없고 따라서 책임도 없다. 아무 가치 없는 생활이다.

욕망은 자기중심적이어서 인간을 물건으로 취급하고 노예적 종속물로 삼는다. 이러한 사람들은 서로 상극 되고, 서로 해치게 되고, 결국은 다함께 파멸하게 된다.

폭력도 욕망에서 나오게 되고, 세상을 혼란하게 하는 권모술수도 욕망의 입장에서 지성을 악용함으로써 이루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일 욕망만 쫓아 줄달음친다면 타락과 파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임제록 연의> 22쪽-

참 아이러니 합니다. 작금에 불가를 뒤흔들고 있는 도박 사건의 발원지가 되어 있고, 주지를 둘러싼 불협화음이 악취를 풍기는 구정물처럼 지금까지도 흘러나오고 있는 이때 관계자들을 꾸짖는 경책의 말씀처럼 들리니 말입니다.

구도의 고행을 치열하게 탁마하던 계율 성성한 고승들에게는 닭 벼슬만도 못하게 취급되던 주지 감투를 비롯한 이런저런 욕망으로 공멸해 가고 있는 후학들을 후려치는 장군죽비소리 만큼이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내용입니다.

비틀거리고 있는 승속을 향해 후려치는 서옹 스님의 가르침

책을 읽다보면 고함을 치고, '몽둥이'나 '후려 갈겼다'는 말들이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고승열전에서나 읽을 수 있는 당대 선가의 모습을 어림해 볼 수 있는 풍경들입니다.  

눈멀고 어리석은 놈아, 너희는 말라빠진 뼈에서 무슨 국물을 구하려고 하느냐? 아무 조백도 모르는 승려들이 교학으로 교리(敎理)를 사량복탁(思量卜度)하여 글 뜻을 취한다. 그것은 똥 덩이를 입에 물고 다른 사람에게 토해 먹이는 것과 같다. 마치 속인(俗人)이 입으로 귀에 비밀히 말을 전하는 장난과 같아서 일생을 허송세월하게 된다. -<임제록 연의> 199쪽-

활활 불타고 있는 연화대가 벌떡 일어나려는 사람의 형상으로 보입니다.
 활활 불타고 있는 연화대가 벌떡 일어나려는 사람의 형상으로 보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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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작금의 승속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고전 속의 모습으로만 연상될 수도 있겠지만 과거 없는 현재 없고, 승속이 불이(不二)임을 자각한다면 눈멀고 어리석은 놈, 똥 덩이를 입에 물고 다른 사람에게 토해 먹이는 것과 같은 짓이 고전 속의 풍경만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한자로 된 원전(임제록)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글 번역해 설명까지 덧대어져 있어 누구나 어려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공안(公案)의 글귀 밑에 붙이는 짤막한 평인 착어(著語)까지 덧대어져 있어 서옹 스님의 평에 기대어 임제선사의 법어 등을 마음에 새길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두 귀를 쫑긋 기울이고 들어도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고, 때로는 두 둔에 쌍심지를 켜고 읽어도 글 속에 숨을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마음이 어두운 사람에겐 등댓불이 되고, 비틀거리는 선가엔 계율을 추스르게 하는 댓살이 되리라 기대됩니다.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고 했습니다. 서옹 스님의 육신은 10여 년 전 연화대에서 한 줌의 재, 지수화풍 4대로 화하니 할도 경책도 더 이상 할 수 없지만 서옹 스님의 가르침은 <서옹 스님의 임제록 연의>를 빌어 비틀거리고 있는 승가를 장군죽비로 후려치며 경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됩니다.

덧붙이는 글 | <서옹스님의 임제록 연의>┃지은이 서옹스님┃펴낸곳 아침단청┃2012. 5. 25┃값 25,000원┃



서옹스님의 임제록 연의 - 서옹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판

서옹 지음, 아침단청(2012)


태그:#서옹스님의 임제록 연의, #임제록, #서옹스님, #아침단청, #백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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