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독일의 세무서에서 처음 만났다. 남편은 세무공무원이었고, 아내는 민원인이었다.

두 사람은 독일의 세무서에서 처음 만났다. 남편은 세무공무원이었고, 아내는 민원인이었다. ⓒ 에스와이코마드


70년대, 우리나라의 많은 간호사들이 독일로 떠났다. 그녀들 대부분은 독일에 계속 거주했지만, 일부는 독일인 남편과 함께 고국에 돌아와 살고있었다. 남해시에 위치한 '독일마을'이 그들의 새로운 고향이다. '독일마을'은 그녀들 뿐 아니라 그녀들 남편들의 새로운 고향이기도 하다.

영화는 남해시에 속한 바닷가 마을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곳의 풍경을 그대로 담는다. 초반에 카메라가 서서히 틸트 다운(수직으로 카메라의 시선을 하강시키는 촬영기법)을 하면 멀리서 걸어오던 한 노인이 그냥 지나가다말고 카메라를 보더니 "촬영중이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영화는 이 마을의 주민들과 이 마을에 여행온 관광객들의 모습은 그대로 담으면서 주인공 세 커플의 모습들은 리얼 다큐식으로 담는 방식을 취했다. 이는 고향을 떠났던 이들과, 고향을 떠나온 이들의 쓸쓸함을 나타내는데에 효과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때론 다투기도 하지만 세상에 둘도없이 다정한 남편(왼쪽 앞치마 두른 이)이자 사랑스러운 아내(오른쪽)인 두 사람.

때론 다투기도 하지만 세상에 둘도없이 다정한 남편(왼쪽 앞치마 두른 이)이자 사랑스러운 아내(오른쪽)인 두 사람. ⓒ 에스와이코마드


세 커플 모두 노년 부부다. 그리고 아내들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다. 좋아했던 광부가 독일로 간다기에 덩달아 독일로 떠났던 사람도 있고, 한국이 지긋지긋해서 떠났던 사람도 있다. 흔히 '파독 간호사'라 불리웠던 그녀들에 대해 그저 '나라의 역군' 정도로 여기고 다른건 몰랐었는데, 이 영화에서 그녀들의 속사정을 40여년만에 들어볼 수 있다.

민박집을 가꾸거나, 독일식 소시지를 만들면서 여생을 보내는 세 부부는 지금도 서로 독일어로 대화한다. 수십년 고국을 떠났던 아내처럼 남편들 역시 고국을 떠난지 10여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내가 겪었을 향수병을 똑같이 겪고 있을 남편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남편들 중 한 사람은 '독일마을'이 조성된다기에 한국에 왔지만, 약속했던 것들을 우리 정부에서 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현재 '독일마을'은 우리나라 속의 독일 풍경을 느낄수 있는 관광지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다지만, 주인공 세 커플을 비롯한 그곳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고향이자 여생을 보낼 소중한 곳인데 그런 부분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속 '독일마을'의 해질 녘 풍경. 그리움은 영원한 것 아닐까. 지나치지만 않으면 그리움이란 이 풍경과도 같은 느낌일것 같다.

▲ 영화속 '독일마을'의 해질 녘 풍경. 그리움은 영원한 것 아닐까. 지나치지만 않으면 그리움이란 이 풍경과도 같은 느낌일것 같다. ⓒ 에스와이코마드


말못하고 가슴에 묻어두는 사연이란 대체 얼마만큼인걸까. 우리가 알고있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은걸까. 남해대교며 유명한 사찰과 어부들의 멸치 터는 모습, 바다에서 수영하는 노부부의 모습들이 펼쳐지고 중간중간 웃음도 있고, 잔잔한 느낌에 졸음이 오기도 한다. 이 영화는 독일 사람들에게 한국의 간호사들이 독일에서 지냈었다는걸 알려주기위해 만들어지기도 했단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과연 그녀들에 대해 독일 사람들보다 많이 알고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피치못할 사정들로 고국을 떠나 타지에서 수십년 살았던 '파독 간호사'들. 그녀들이 노년을 보내기위해 다시 고국에 돌아와 살고있지만, 아무래도 계속 살던 이들과 같은 마음이겠는가. 그녀들을 따라 낯선 나라에 와 살고있는 독일인 남편들은 또 어떻겠는가. 이 영화는 그런 이들이 소외되고 잊혀지지 않도록 만들어진 듯 하다. '아름다운 강산'과 '만남'이라는 두 노래가 흐르며 영화속의 세 노년 커플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것인지 리얼하게 보여준다.

<그리움의 종착역>에는 비록 또다른 그리움이 있었지만, 하루하루 이겨내며 다가올 당신들의 마지막까지 미리 준비하는 모습에서 남해바다에 비치는 햇살같은, 해저무는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같은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세상의 모든 사랑하는 이들이, 특히 젊은 커플이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덧붙이는 글 영화 <그리움의 종착역> 상영시간 99분. 전체 관람가. 5월 24일 개봉.
그리움의 종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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