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텔레비젼 화면에서 타임 슬립물을 자주 만난다. 인현왕후 시대 선비가 현대로 오는가 하면, 조선시대의 왕세자가 옥탑방에 떨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드라마들이 타임슬립을 하는 궁극적 목적은 결국 사랑인 모양이다.

얼마 전 종영을 한 옥탑방의 시청자들이 결국 다른 시대의 존재라는 장막을 넘어서지 못한 채 사라져야 했던 왕세자를 잊지 못해 눈물 짓듯, 이제 우리 시대에 진정한 사랑은 시대를 거슬러야 얻어지는 거라고 타임 슬립물들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 말에 동조라도 하듯 또 하나의 타임 슬립물이 찾아왔다. 어라, 그런데 이번에는 현대의 의사가 과거로 떨어져 그가 사랑했던 여인을 조우했다.

닥터진 진혁 역의 송승헌

▲ 닥터진 진혁 역의 송승헌 ⓒ mbc


장기 파업중인 MBC의 주말 간판 드라마 <닥터 진>은 무라카미 모토카가 10년간 연재한 만화가 원작이다. 얼마 전 일본에서 시즌2까지 만들어져 일본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은 드라마다. 그런 <닥터진>이 이제 우리나라 버전으로 리메이크 됐는데, 한국의 <닥터진>이 처한 상황은 녹록치 않다.

<닥터진>은 타임슬립 드라마이다. 그러니 당연하게 1회에서 현대에 살고 있는 의사 진혁이 애인이 뇌사 상태에 빠진 상태에서 과거로 타임슬립을 하게 된다. 여기서 타임 슬립은 이 드라마의 흥미를 북돋을 첫번째 추동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다른 드라마를 통해 타임슬립물을 맛본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닥터진>의 타임 슬립은 추동 장치가 되기보다 자칫 진부하거나 지겨운 설정이 될 수도 있다. 아니 첫 방송의 시청률을 봤을 때,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신선한 설정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은 거 같다. 현재 고정 시청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KBS가 사극을 발진시키지 않고 있는 상황이지만, 일요일 밤 시청자의 웃음을 책임지고 있는 <개그 콘서트>가 버티고 있고, 시청률의 여왕 혹은 로맨틱 코미디의 위너로 불리는 김은숙 작가의 <신사의 품격>이 SBS를 버티고 있는 상황이어서 <닥터 진>의 상황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닥터진 이하응 역의 이범수

▲ 닥터진 이하응 역의 이범수 ⓒ mbc


이미 효용이 떨어져 버린 카드 '타임 슬립'을 대신할 카드는 <닥터진>에게 있을까?

3회, 단 한 회 동안 주인공 진혁은 세 명의 목숨을 구한다. 형장의 이슬로 살아질 뻔한 위기에서 쓰러진 좌의정의 뇌를 열어 혈종을 발견해 그를 살리고 이와 더불어 자신의 목숨마저 부지한다.  이어 물에 빠진 기생 춘홍을 인공호흡으로 살려내고,  말에 채여 머리에 출혈이 심한 사람을 살려냈다.

이 스토리들은 일본 원작 드라마에선 몇 회에 걸쳐 벌어지는 사건들로 <닥터진>은 단 한 회 만에 세 명의 사람들을 살려내면서 조선으로 간 의사 진혁의 모험담에 비중을 실어주고 있다. 스토리도 적당히 건너뛰어면서 '사랑을 위한 타임슬립물' 그 이상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첫 회의 긴박감 넘치는 응급실 신과 교통사고, 이어 타임슬립까지 몰아치는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보는 사람에게 사건 그 이상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듯 원작, 혹은 일본 드라마의 흥미진진한 스토리만을 나열함으로써 '소재주의' 그 이상을 넘지 못할 가능성은 아직까지도 잠재해 있다. 하지만, 신파조로 흐르던 일본 드라마의 토막민 모자의 이야기에 아버지라는 존재를 넣어 가난 때문에 치료를 거부해야 하는 상황을 좀 더 극적으로 부각시키듯, 원작이나 일본 드라마의 스토리를 얼마만큼 우리 역사와 정서에 맞게 극화 시키느냐가 결국 한국 드라마 <닥터진>의 관건이 될 것이다.

닥터진 김경탁 역의 김재중

▲ 닥터진 김경탁 역의 김재중 ⓒ mbc


시작 전부터 화제가 화제가 되고 있는 한류스타 송승헌, JYJ 의 영웅재중의 출연. 여기에 시청률 보증 수표로 불리는 이범수의 가세한 진용만으로도 충분히 볼거리가 된다. 하지만, 아직도 세팅중이라는 느낌이 강한 초반의 <닥터진>이 우리나라에서도 국민드라마로 사랑받기 위한 조건이 있다.

현대에서 이기주의적이었던 진혁이란 캐릭터에 대한 '내레이션' 이상의 심도 깊은 접근이 필요하다. 일본 드라마의 주인공 오오사와 타카오는 그 존재 만으로도 고뇌하는 의사의 전형처럼 그려졌다. 아직까지는 잘 생긴 배우라는 인식이 강한 송승헌이 연기파가 했던 그 역할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는 배우 자신의 역량도 있겠지만 결국 극 중에서 진혁의 고뇌와 갈등을 얼마만큼 공감되게 그려내는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또한 일본 드라마 '진'의 사카모토 료마을 우리나라의 이하응으로 치환시킨 아이디어는 훌륭하다. 여기서도 일본 드라마의 우치노 마사아키의 엉뚱발랄함을 넘어선 존재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이하응'의 활약 이범수를 통해 제대로 그려지느냐가 결국 <닥터진>의 승부수가 되리라 본다.

뿐만 아니라 일본 드라마와 달라진 여주인공 설정에, 새로이 추가된 김경탁 등의 인물들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전체적 주제 안에서 산만하지 않게 조율해 가는 것 또한  <닥터진>의 과제이다.

타임슬립, 시공간을 초월한 러브 스토리, 메디컬 스토리, 개화 역사물 등 닥터진이 가진 여러 개의 카드 중 과연 무엇에 집중하는가, 거기에 쟁쟁한 스타간의 균형점을 얼마만큼 절묘하게 맞추어 가는가, 여기에 <닥터진>의 성공이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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