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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연등이 걸려 있는 부석사
▲ 부석사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연등이 걸려 있는 부석사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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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 오후, 단양의 오월, 산 빛을 닮은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너무 고요하여 어디로 흘러가는지 짐작 할 수 없지만, 산 빛을 짜 낸 듯 물빛이 푸르다. 사람들은 마치 뱀처럼 굽이쳐 흘러가는 그림 같은 남한강을 바라보며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길을 따라 시원한 강물이 함께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단양 읍내를 지나 다리를 건너자, 곧 가파른 고갯길이 이어진다. 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뻗은 태백산맥의 준령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단양에서 풍기로 넘어가는 죽령 길에 아카시아 향이 진하게 풍겨온다. 차 창밖을 내다보았다. 고개 마루 근처에 아카시아 꽃이 무더기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어릴 적에 시골길에서 만난 친구처럼 반갑고 정겹다.

'산 너머 남촌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여행자의 호기심으로 죽령 고개 마루에 올라섰다. 한 때 인삼재배로 번창했던 풍기 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인삼의 고장답지 않게 인삼밭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여느 시골처럼 모내기철이라 빈들에 이앙기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푸르게 색칠을 하고 있다.

풍기 읍내를 지나 부석사로 향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지고 있다. 길가의 가로수들이 긴 그림자를 만들며 걸음을 재촉한다. 부석사의 도착 예정 시간이 늦어지면서 조바심이 난다. 과연 부석사에서 떨어지는 해를 볼 수 있을지.

부석사 지붕너머로 해가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 부석사 일몰 부석사 지붕너머로 해가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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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에 해가 떨어질 무렵, 부석사 입구에 도착 했다. 주차장이 붐비지 않아 어렵지 않게 주차할 수 있었다. 나무에 줄을 매어 달아 놓은 연등을 따라 쉬지 않고 곧장 올라갔다. 대부분 산사에서 내려오는 사람들 뿐 부석사를 찾아 올라가는 사람이 없다. 매표를 하고 일주문으로 들어섰다. 푸른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부석사로 기분 좋게 안내한다. 가파른 길은 아니지만 급한 마음에 마음이 바빠 숨이 차온다.

부석사 경내로 한 걸음에 들어섰다. 그리고는 하늘을 얼른 쳐다보았다. 청명하지도 않고 아주 흐리지도 않은 하늘이다. 해가 지루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며 졸고 있다. 오늘따라 해님도 부처와 천천히 천도를 동행하면서 중생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모양이다. 매일 보는 평범한 일몰이지만 바쁜 걸음으로 보게 되는 일몰이 그렇게 반갑고 소중할 수가 없다.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려온다. 무량수전 앞에서 스님이 북을 두드리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모여 그 광경을 진지하게 지켜보고 있다. 연등은 절 마당에 가득 걸려 있고 사람들은 스님이 두드리는 북소리에 마음에 번뇌를 지우며 평화를 찾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을 기다리며 무량수전 앞마당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 부석사 무량수전 부처님 오신 날을 기다리며 무량수전 앞마당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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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절마당에 오색 연등이 가득 걸려있다
▲ 연등 부석사 절마당에 오색 연등이 가득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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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절 마당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다. 연등은 켜지 않았는데도 절 마당을 환히 밝히며 부처님 오신날을 기다리고 있다. 북을 두드리던 스님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사람들만이 절 마당에 남아 그윽한 절 풍경에 취해 있다. 세상의 잡다한 번뇌들이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고요와 평화만이 남아 부석사의 밤을  지키고 있다.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본찰로 의상이 왕명으로 창건한 이래 그 전법 제자들에 의해 지켜져 온 중요한 사찰이다.

부석사에는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다음과 같은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의상은 신라 경주사람으로서 20세 때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한 신도 집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 집에는 선묘라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그녀는 의상의 용모가 매우 뛰어남을 보고 연모의 정을 품었지만 의상은 '이미 속세를 떠난 몸이기에 그 청을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그 후 의상은 장안 종남산에서 지엄(智儼)스님으로부터 10년간 화엄학을 배우고 귀국길에 올랐다. '의상대사를 선창에서 보았다'는 소문을 들은 선묘낭자는 그동안 준비해 두었던 법복과 생활 집기를 들고 뒤쫓아 갔으나 배는 이미 떠난 뒤였다.

선묘는 '내 몸이 변해서 대룡(大龍)이 되기를 비옵니다. 그래서 저 배가 무사히 신라 땅에 닿아 법을 전할 수 있게 되기를 비옵니다'하고 몸을 바다에 던졌다. 용으로 화한 선묘는 황해 만리 길을 의상을 호위하며 무사히 신라 땅에 닿을 수 있도록 도왔다.

왕명으로 의상이 봉황산에 절을 지으려 할 때 거기에 웅거해 있던 무리들이 방해를 하였다. 이에 선묘낭자는 큰 바위로 변하여 지붕위에서 떠서 떨어질 것처럼 하자 무리들은 기겁을 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고 한다.

부석사라는 이름은 '떠있는 돌' 이라는 뜻으로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사랑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태그:#부석사, #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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