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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호 단편소설 '왕따' 연재를 알린 2012년 5월 29일자 영남일보 1면 하단
 송일호 단편소설 '왕따' 연재를 알린 2012년 5월 29일자 영남일보 1면 하단
ⓒ 영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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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읽는다. 신문이라면 '기사' 아니면 '논설'이 주종이다. 그런데 2012년 5월 29일 아침 <영남일보>에서 마주친 아래 문장은 아무리 읽어도 그게 아니다. 기사도 아니고 논설도 아니다. 6하 원칙과 무관한 것은 물론이고, 제목도 없다.

"식사가 끝나고, 부부는 TV 앞에 나란히 앉았다. 화면에서는 경기도 일산의 10대 남녀 청소년들이 험담하고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학생을 야구방망이로 마구 때려 숨지게 하고, 야산에 암매장하는 현장검증을 태연히 재현하고 있다. 너무나 끔찍한 살인 사건이다."

소설이다. 신문에 소설? 이인직의 <혈의 누>, 이광수의 <무정>, 염상섭의 <삼대>, 심훈의 <상록수>, 홍명희의 <임꺽정>  등 우리나라 현대문학사의 내로라 하는 주요 명작에게 발표 지면을 제공했던 것이 일간 신문이지만, 근래에는 신문에서 소설을 보는 일이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격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영남일보>는 요즘 신문으로는 보기 드물게 소설을 실었다.

영남일보가 연재를 시작한 송일호 단편소설 '왕따' 1회분의 삽화. 경북예술고등학교 애니메이션 실기전담교사인 김성원 화백이 그렸다.
 영남일보가 연재를 시작한 송일호 단편소설 '왕따' 1회분의 삽화. 경북예술고등학교 애니메이션 실기전담교사인 김성원 화백이 그렸다.
ⓒ 김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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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가 연재한 소설이 '왕따'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소설 <혈의누>, <무정>, <임꺽정>, <삼대>, <상록수> 등에서 이인직, 이광수, 홍명희, 염상섭, 심훈 등의 작가들이, 그리고 그 소설들을 지면에 실었던 언론인들이 독자에게 전하려는 '의도'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소설은 문학의 여러 갈래들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게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며, 대다수의 소설가들은 '세상을 객관적으로 읽는' 작품을 통해 사회적 발언을 감행하기 때문이다.

신문과 소설의 공통점, '오늘' 문제를 다룬다

2012년 현재 1980년의 사건을 소설의 소재로 쓰면 그것은 '역사소설'로 치부된다. 그래서 소설가는 언제나 '오늘'의 세상에 관심을 가진다. 근래 우리나라 사회를 관통하는 사건의 한 가지가 바로 학교폭력 문제이고, 그것의 요체는 '왕따'이다. 근래에 보도된 학교폭력 기사의 내용만 대충 떠올려 보아도 그 심각성은 단숨에 확인된다.

"대구에서 모 중학교 학생이 왕따를 견디다 못해 자살했다. 경북 영주에서도 왕따에 시달리던 중학생이 자살했다. 그 중학생은 가해자가 장례식에 오면 복수를 하겠다는 유서를 남겼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대구와 경북에서만도 청소년 9명이 자살을 시도했고, 그 중 7명은 끝내 숨을 거두었다. 전국적으로 67만 명의 청소년이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있고, 300여 명이 자살한다."

이미 학교폭력와 왕따 사건을 기사나 논설로 많이 보도한 <영남일보>가 이번에는 소설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그 문제를 '보도'하고 있는 것은 언론의 사회적 기능에 충실한 편집태도라 할 만하다. 독자는 신문에 실린 소설 읽기를 통해 기사나 논설을 통해 세상을 읽던 것과는 다른 시각 혹은 감성으로 사회를 분석하고 종합하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소설은 시만이 아니라 같은 산문인 기사나 논설과도 전혀 다른 갈래의 글인 까닭이다.

영남일보가 연재를 시작한 송일호 단편소설 '왕따' 1회분이 실린 2012년 5월 29일자 지면의 모습
 영남일보가 연재를 시작한 송일호 단편소설 '왕따' 1회분이 실린 2012년 5월 29일자 지면의 모습
ⓒ 영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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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1950년 초반에 연재된 정비석의 <자유부인>, 1970년대에 <조선일보> 등에 연재된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조해일의 <겨울 여자>,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 류의 소설을 일간지가 게재하라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어떤 일간지는 '황색지'를 자처하듯 문학적 의미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반사회적인 내용의 소설을 싣고 있다. 이는 '사회의 목탁'을 자칭하는 우리나라 신문의 저급함을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다.

본래 목탁은 물고기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언제나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처럼, 결코 헛된 길로 들어서지 말고 자신을 깨우치고 독려해면서 구도의 길을 걸으려는 스님들이 '경각심'을 북돋우기 위해 만들어서 써온 불구(彿具)가 바로 목탁인 것이다.

올바른 관점의 논설과 가치 있는 기사 작성은 물론, 사회 문제를 문학성 있게 다룬 소설 연재 등을 통해 언론인 스스로는 물론 독자들에게도 신문이 '목탁'의 역할을 다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나는 오늘 <영남일보>의 소설 '왕따' 1회분을 읽는다.


태그:#왕따, #영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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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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