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의 가장 높은 곳 마운드. 18.44미터 거리에서 투수의 손을 떠난 공 하나하나에 우리는 울고 웃으며 야구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그 공은 어느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의 글 솜씨로도 표현되기 힘든 수많은 드라마를 쏟아내고 어느 누군가에게는 감동을 그리고 반대편 응원석에 있는 이에게는 아쉬움을 남겨주기도 한다.

하지만 야구라는 드라마가 꼭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면서 그라운드에서만 쓰여지는 각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절실함과 절박함 속에서 그리고 친정팀에 대한 애증 때문에 새로운 주인공이 탄생되기도 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 드라마로 이목을 끄는가 하면 갖가지 기록들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야구다.

2012 팔도 프로야구가 개막한 지도 어느덧 두 달이 되어간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지방에 연고를 둔 팀들은 하위권을 맴돌고 있고 수도권 팀들은 보란 듯이 상위권에 올라 있다. 마치 수도권에 모든 것이 편중되어 있는 우리의 경제구조를 대변이라도 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수도권 팀이라고 해서 같은 수도권 팀이 아닌 팀이 있다. 바로 넥센이다. 정확히 말하면 히어로즈 야구단이다. 모기업의 든든한 지원을 받는 7개 팀과는 다르게 넥센은 말 그대로 프로야구단이 주식회사나 다름없다.

메인스폰서 계약이 끝나면 새로운 스폰서를 찾아야 하고 시즌 중에도 안정적인 구단운영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스폰서를 유치해야 하는 팀. 한때는 메인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주축선수들을 트레이드시키며 어렵사리 구단을 연명했을 만큼 넥센은 우리 프로야구에서 이단아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가난하고 힘없는 구단 넥센이 요즘 매일 스포츠면을 장식하고 있다. 사실 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전열이 정비되지 않은 팀들이 많아 넥센의 돌풍은 5월이 되면 한풀 꺾일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다. 하지만 전열을 정비하는 팀들은 반전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는 반면 넥센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강해지고 있다.

마치 지난 4년 동안 가난 때문에 자식들을 억지로 타지로 내몰아야 했던 부모가 개간도 되지 않은 땅에서 곡식을 수확하듯 연일 승수를 챙기며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단독 선두로 올라선 것이다(넥센이 시즌 중 선두로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시즌이 중반으로 접어드는 5월 이후로 선두로 올라선 것은 이번 시즌이 처음이다).

떠난 자식 가슴에 묻었던 넥센, 거대재벌을 향한 소리 없는 반란

이번 시즌 넥센 돌풍의 가장 큰 희생양은 이른바 '엘넥라시코'로 불리며 새로운 서울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철저하게 무너지고 있는 LG다. 넥센은 이번 시즌 LG를 상대로 7차례 맞붙어 6승 1패의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고 특히, 지난 23일 LG를 제물 삼아 시즌 첫 선두로 올라서는 기쁨도 함께 누렸다.

LG가 넥센에 반전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면 넥센 돌풍의 힘을 얻게 한 팀은 다름 아닌 롯데와 삼성이었다. 4월을 4위로 마감했던 넥센은 5월 첫 경기에서 롯데와 KIA에 덜미를 잡히며 연패에 빠졌고 팀 성적도 5위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LG를 목동으로 불러들여 5월 첫 위닝시리즈를 챙기며 전열을 정비하는 데 성공했고 부산 원정길에서는 롯데를 상대로 3경기에서 무려 25점을 뽑으며 롯데 마운드를 초토화시켰다.

그리고 이번에는 장소를 목동으로 옮겨, 자신들의 천적인 KIA를 상대로 안방에서 위닝시리즈를 거두며 분위기를 탄 삼성을 상대로, 그것도 재벌가 사장님이 방문한 그날 시즌 두 번째 스윕과 함께 팀 창단 후 최다연승기록 타이인 6연승을 달리며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마치 가난 때문에 억지로 떠나보낸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부모의 심정이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넥센은 LG와 롯데, 삼성을 차례대로 무너뜨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3팀은 넥센이 어려웠던 시절 주축선수들을 FA 또는 트레이드로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했던 팀들이다.

넥센은 분명 지난 시즌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무엇보다 투자에 인색했던 구단이 공격적인 투자를 시작했고 패배의식에 빠졌던 선수들도 연일 승리를 거두며 이기는 법을 체득해 나가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김시진 감독의 어머니 같은 리더십도 한몫 하고 있다.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정규시즌은 이제 시즌 초반을 지나 중반으로 접어들었고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다. 지난해와 달라진 넥센이 지금의 분위기를 시즌 끝까지 유지하며 과거 현대 시절의 영광을 재연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넥센8연승 넥센 선두 넥센돌풍 넥센히어로즈 프로야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