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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 위화 <인생>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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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소설 <인생>(푸른숲)은 <살아간다는 것>의 개정판이다. 문득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용과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학창시절에 읽었던 펄벅의 <대지>가 떠올랐다. 위화의 소설 <인생>은 인생에 대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한 개개인의 운명이란 무엇인지, 가족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말해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십년 전에 나는 한가하게 놀고먹기 좋은 직업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촌에 가서 민요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그해 여름 내내 나는 어지러이 노니는 참새처럼 시끄러운 매미 소리와 햇빛 가득한 시골 마을 들녘에서 빈둥거렸다."

소설속의 화자는 시골의 농민들 사이에서 노닥거리며 지내듯 하다가 한 노인을 만난다. 그는 노인이 소에게 목청껏 야단치는 소리를 듣는다.

"소는 밭을 갈아야 하고, 개는 집을 지켜야 하며, 중은 탁발을 해야 하고, 닭은 새벽을 일러야 하며, 여자라면 베를 짜야 하는 법. 그런데 너는 어째서 소주제에 밭을 안 갈겠다는 거야? 이건 예부터 전해온 도리라고, 가자, 가자."

그러고는 소를 이름 네 개로 불러가며 얘길 하는 걸 지켜보다가 노인과 대화를 하게 된다. 햇빛 쏟아지는 오후에 잎이 무성하게 지란 나무 아래 앉아서 노인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게 된다. 노인의 이름은 푸구이. 아버지 대에서부터 아니 그 윗대에서부터 나으리로 불려 지던 아버지를 둔 '도련님'이었고 구제불능 소리를 들을 정도로 방자하게 살아간다. 결혼을 했지만 방탕한 생활을 일삼고 기생과 도박 등으로 종내엔 부모 재산을 모두 탕진하게 되는데 그와 그의 가족은 졸지에 쫄딱 망해서 남의 집 땅을 빌려 농사하며 살게 된다.

농사를 지으며 거친 밥 거친 옷을 입고 노동으로 하루하루 연명해 살아가면서 그는 중요한 인생의 통찰을 얻게 된다. 그리고 새롭게 태어난다. 그는 농사해 본 일이 없어서 마을 사람들이 일하는 걸 어깨너머로 보면서 배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너무 느려서 어쩌나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네. 나는 늘 밭에 있었고, 날은 어두워져도 달빛만 있으면 밭에 나가려 했지." "옛말에 '둔한 새가 먼저 난다'고 했는데 나는 거기다 많이 날기까지 했지."(p68)

그렇게 들에서 어두워지도록 달빛 받아가면서 밭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다.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모습이었고 그런 시간 속에서 그는 거친 옷, 거친 밥이 익숙하고 편안해졌다. 오히려 예전에 입었던 비단옷을 입을 기회가 있어 입었을 땐 꼭 '콧물로 만든 옷을 입은 것 같더라'고 말했다. 푸구이의 어머니는 "사람은 즐겁게 살 수만 있다면 가난도 두렵지 않은 법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아내 자전은 차파오를 벗고 무명옷 차림으로 온종일 숨도 제대로 못 쉴만큼 힘들게 일하면서도 내내 웃는 얼굴이었고 아이들도 잘 적응했다.

'닭들이 자라면 거위가 되고, 거위가 자라서 양이 되고, 양은 또 소가 되어' 부자가 될 것을 그들은 굳게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했다가 전쟁터로 끌려가게 된 푸구이는 가족들과 만날 날을 생각하며 죽을 고비를 넘기고 2년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가족의 중요성, 가족의 따뜻함을 절절하게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어쨌든 나는 집에 돌아왔다네, 그날 밤엔 도무지 잠이 오지 않더구먼. 나와 자전, 그리고 두 아이가 나란히 누워 있는데, 바람이 지붕 위의 띠를 흔드는 소리가 들리고 환한 달빛이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게 보였지. 그에 따라 내 마음도 편안해지고, 또 따뜻해졌다네. 나는 잠시 자전을 쓰다듬다가, 또 두 아이를 쓰다듬고는 나 자신에게 말했어. '나는 집에 돌아 온거야."(p108)

집에 돌아온 푸구이는 공산당에게 재산을 몰수당하고 잡혀서 총살당하는 '룽얼'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의 재산을 룽얼에게 빼앗겼고 룽얼이 4년 동안 누렸던 그 영화가 결국 화가 되어 죽음으로 내몰린 것이었다. 룽얼이 총상 당하던 날 그는 총살장소에 가본다. 성 안에서 압송되어 나와서 끌려가던 룽얼은 푸구이를 보고 이렇게 외친다.

'내가 사형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푸구이, 너 대신 내가 죽는구나."(p110) 그 말에 푸구이는 충격을 받고는 혼자 중얼거린다. "앞으로는 제대로 살아야지."(p111)

푸구이는 차례로 아들딸을 잃고 아내도 잃고 종내엔 손자까지도 먼저 떠나보내고 노년에 홀로 남게 된다. 많은 고난과 시련이 있었지만 도살장에 끌려간 늙은 소 한 마리를 구출해내 소와 함께 늙어간다. 눈도 잘 보이지 않고 채소 한 짐도 단숨에 지고 갈 수 없는 늙은 놈이 된 노년에도 그는 동트기 두 시간 전에 일어나 일하며 살아간다. '둔한 새가 먼저 날아야 하듯이. 소설은 이 노인의 일생을 통해 인생이란 녹록치 않고 행과 불행의 연속이 곧 인생이고 또 그렇게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것임을  보여준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은 바로 이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한편은 숙명론적인 세계관인 것을 보여주는 것 같고 한편으로는 체념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겸허하게 만들고 숙연하게 만든다. 오정희 작가의 말대로 작가는 이토록 슬픈 이야기를 통해 범상하고 누추한 삶이란 없다는 것, 누구의 것이든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강하고 슬프고 아름다운 것인지, 위대한 것인지를 가식 없이 진솔한 언어로 말하고 있다.

또한 어떤 위대한 업적이나 부귀영화와 권력보다도 함께 살아가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 집, 가족의 소중함과 가치를 소설을 통해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었다. 위화의 장편소설 <인생>을 다 읽고 덮고 난 후에도 깊은 울림과 감동은 오래오래 묵직한 감동으로 살아 있다.


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푸른숲(2007)


태그:#인생, #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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