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코리아>의 포스터 남북이산가족이 연상된다

▲ 영화 <코리아>의 포스터 남북이산가족이 연상된다 ⓒ 더타워픽쳐스

한국영화 <코리아>(5월 3일 개봉)가 할리우드 대작 <어벤져스>를 맞아 고군분투 중이다(아니, 고군분투했었다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이제는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과 영화 <돈의 맛>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헐크부터 아이언맨, 토르 등등 할리우드의 슈퍼 영웅들을 남북의 가녀린 두 여성이 상대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데 그 맞서는 폼이 어째 어정쩡하다. 영화가 흥행은 물론 입소문도 그렇게 훌륭한 편이 아닌데다가, 어떤 떠들썩한 이슈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뭐, 흥행은 워낙 <어벤져스>의 물량공세가 엄청나니 그렇다 치자. 하지만 영화 <코리아>가 눈에 확 띄는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의외였다. 영화의 겉모습만 본다면 이슈거리가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남북관계가 엉망인 MB시대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코리아>의 소재가 된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는 남북이 최초로 단일팀을 이뤄 우승을 일궈냈던 사건 중의 사건 아니던가. 그런데 왜 영화는 이런 호재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슈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가.

이와 같은 의문은 영화를 본 뒤 자연스럽게 풀렸다. 영화가 밋밋했던 것이다. 물론 남북관계를 다루었기 때문에 최소한 기본은 하고 있는 중이지만, 영화는 생각보다, 기대보다 재미없었다. 충분히 더 재미있고 드라마틱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주저앉은 영화 <코리아>.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그 참을 수 없는 신파와 전형성

영화 <코리아>를 보면서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 중 하나는 신파였다.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남북의 선수들이 하나의 팀을 이뤄 승리를 거둔 뒤, 기약 없는 이별을 한다는 사실에서 기인한 신파적 상상력.

물론 감독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분명 영화 소재는 그 자체로서 신파성을 띠고 있다. 영화 포스터를 비롯해서 남북 단일팀의 이별을 보다 보면 남북이산가족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연락도 편지도 안 돼. 뭐 이런 이별이 있어"라지 않는가. 그러나 문제는 영화가 그 신파를 강조하기 위해 너무 무리를 한다는 점이다. 손발이 오글거리게 만드는 과도한 설정들.

영화의 전형성 위기 뒤 극복이라는 스포츠 영화의 전형

▲ 영화의 전형성 위기 뒤 극복이라는 스포츠 영화의 전형 ⓒ 더타워픽쳐스


영화 <웰컴투 동막골>이 떠오르는 장면 신파 중의 신파

▲ 영화 <웰컴투 동막골>이 떠오르는 장면 신파 중의 신파 ⓒ 더타워픽쳐스


우선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북선수 간의 감정 변화를 보자. 아무리 영화라고 하지만 그 진폭이 너무 크다. 처음에는 잡아먹을 듯이 싸우다가, 어떤 특별한 동기도 없이 영화 <웰컴투 동막골>의 주인공들처럼 친해지더니, 어느덧 헤어질 때가 되니 눈물, 콧물 범벅이다.

특히 남한선수 최연정(최윤영 분)과 북한선수 최경섭(이종석 분)의 멜로 라인은 이런 무리수의 절정이었다. 아무리 쉽게 끓어오르는 젊은 남녀라고 하지만, 그리고 당시 현정화 선수의 기억으로 실제 호감을 가졌던 커플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영화에서 보듯이 "만나서 혹시 정분이라도 들면 어떡합니까? 평생 만나지도 못하고 살아갈 것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대사가 존재할 정도였을까?

무리수의 진수 아무리 그래도

▲ 무리수의 진수 아무리 그래도 ⓒ 더타워픽쳐스


그나마 영화의 중심을 잡는 건 주인공 리분희와 현정화의 감정교류인데 이 역시도 신파로부터 그다지 자유롭지는 못하다. 아무리 남북의 에이스가 계속되는 경기를 통해 마음을 연다고는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유치하고 빤하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현정화가 리분희를 '언니'라고 부름으로써 남과 북을 가족관계로 치환시키는 그 복고식 감성이란.

영화의 이런 신파를 더욱 촌스럽게 만드는 것은 영화 전반에 깔려있는 북한에 대한 낮은 인식 수준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국가와 당을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마저 스스럼없이 포기해야 하는 북한 선수들과 그런 선수들을 에누리 없이 감시하는 공화국의 요원들.

사실 영화 속 북한 선수단을 보고 있노라면 어렸을 때 배웠던 반공교육이 떠오른다. '일성' 수령님 이야기가 나왔다고 나무젓가락으로 목을 따겠다고 운운하다가도 남한 여성의 적극적인 대시 앞에서는 귀까지 빨개지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북한 선수의 모습과 그들을 감시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까만 복장의 요원들의 모습은 당시 배웠던 순진한 북한 주민과 악랄한 북괴의 이분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당시 선수단 분위기가 그와 같았을까? 영화에서처럼 남한 선수들은 북한 선수들을 개의치 않은 채 행동하고, 북한 선수들은 그런 남한 선수들을 낯설게만 바라봤을까? 그리고 이런 갈등은 영화에서처럼 극적으로 해결됐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물론 작은 마찰은 있었겠지만 남과 북의 선수들은 생각 외로 담담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 자신들의 위치가 얼마나 정치적이고 상징적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며, 때문에 더욱 더 시합에 집중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과거 반공교육에서 배운 바와 달리 북한 사람들이 좀 더 인간적이고 탈이념적이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지 않은가.

실제 남북선수단 북한 선수들은 영화보다 더 자유로웠을 것이다

▲ 실제 남북선수단 북한 선수들은 영화보다 더 자유로웠을 것이다 ⓒ 더타워픽쳐스


문제는 이와 같은 북한사람에 대한 묘사가 탈북자가 30만 이상 되는 현재에 재현됐다는 점이다. 이는 12년 전 영화 < 공동경비구역 JSA >가 묘사했던 북한에 대한 인식보다도 퇴보한 수준이다. 아무리 세월이 거슬러 흘러간다고는 하지만, 2012년 영화에서 과거 반공시대 때의 북한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이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영화 <코리아>는 한 마디로 촌스럽다. 아무리 감동스러운 소재로 명배우들이 훌륭한 연기를 한들 태생적으로 유치하다. 지금은 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회를 어찌 생각하는지 빤히 아는 시대이며, 남북한의 이산가족상봉이 더 이상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남북선수단이 필요한 시대

참을 수 없는 신파적인 요소들과 북한에 대한 수준 낮은 인식으로 인해 실제보다 더한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는 영화 <코리아>. 그렇다면 영화는 우리가 관람할 수준도 되지 못하는 걸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코리아>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볼 만하다. 하필 지금 이 MB 시대이기 때문이다. 2002년 6·15 공동선언이나 2007년 10·4선언은커녕 1990년 남북합의서 수준도 미치지 못하는 시대.

남북은 한 팀이다 남북이 하나 되어 중국을 물리치다

▲ 남북은 한 팀이다 남북이 하나 되어 중국을 물리치다 ⓒ 더타워픽쳐스


90년대 초 남북은 남북합의서 이후 한창 남북선수단을 만들어 오다가 어느 시점에서인가 그와 같은 국제적 이벤트를 그만두었다. 왜? 남북선수단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효과가 더 이상 크지 않기 때문이다.

남과 북, 두 체제는 당시 남북선수단을 통해 평화를 이야기 하고 통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각 정부의 정당성을 세우고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고자 했지만, 90년대 중후반이 되면서 그와 같은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남과 북은 상호 침략하지 않을 것이며 남은 북을, 북은 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암묵적 합의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니 굳이 남북선수단이 필요없을 수밖에.

그런데 이와 같은 암묵적인 합의는 MB의 등장과 함께 깨지고 말았다. MB는 '비핵3000'을 운운하며 다시금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을 공공연히 주장했고, 이에 대응해 북한은 '연평도 포격' 등을 통해 아직도 한반도가 휴전 중임을, 그리고 언제든지 전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시대가 남북선수단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평화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1990년대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렇게 이별 영화의 백미

▲ 그렇게 이별 영화의 백미 ⓒ 더타워픽쳐스


따라서 영화 <코리아>가 91년 지바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에 주목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물론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중국을 물리쳤다는 동화같은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무엇보다 현재의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가 20년 전의 남북선수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비록 이산가족처럼 헤어지고 말았지만, 함께 경기를 하고 땀을 흘리며 우리는 한 팀이라고 생각할 수 있던 바로 그 모멘텀이 필요한 것이다. 한 팀 안에서의 불화는 있을지언정 절대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바로 그 절박한 필요.

영화 <코리아>의 인기가 점점 사그러지고 있는 시점이다. 영화는 앞서 말했듯이 촌스럽고 유치하다. 그러나 현실이 더 촌스럽고 유치한 이상, 이 영화는 봐줘야 한다. 특히 내가 다음 정권의 남북관계에 꽤 많은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필수다. 지금 우리 수준이 이렇다는 걸 명심하도록.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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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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