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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봄날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30년 하고도 몇 년이 더 지난 즈음, 잘 아는 동창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초등학교 동창회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인터넷 카페에 한 번 들어와 봐."
"동창회? 누가 만드는데? (중략) 음… 알았어."

너무 오랫동안 잊혀져있었던 탓일까? 특별한 감흥은 없었고 마치 아득한 창고 속에 감추어진 색 바랜 일기장을 접한 듯한 느낌이었다. 굳이 열어보고 싶지 않은… 6년 전 귀농해서 시골이란 낯선 땅에 막 적응해 갈 무렵이었다.

종종 들려오는 초등학교 동창회의 부정적 모습이 떠올라 약간의 머뭇거림도 있었지만 복잡한 이해관계 얽히지 않는 동창 모임이니 별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또한 어렴풋이 생각나는 흑백사진 속 동창들이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도 발동했다.

외로워 모임 만들고, 상처 받는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들'

어느날 사진 속에 비친 늙은 얼굴을 보고 그린 자화상.
 어느날 사진 속에 비친 늙은 얼굴을 보고 그린 자화상.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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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몇 사람이 주축이 되어 동창회를 발족했고, 온라인 카페는 마치 장터를 방불케 했다. 소개에 소개로 동창들은 속속 카페에 가입했다. 오프모임에선 단 한 번의 면식도 없는 사이라도 OO동창이라는 이름 하나로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들은 단박에 서로 말을 놓고, 마치 오랫동안 허물없이 지내 온 사이처럼 어울렸다.

희끗희끗한 머리, 웃을 때마다 퍼지는 눈가의 주름, 세파에 시달린 얼굴이었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겪은 삶의 고단함을 초등학교 동창회라는 곳에서 원없이 풀어대는 것 같았다. 정기모임 외에도 번개, 산행 등 마치 초등학교 동창모임을 위해 이때껏 기다려온 사람들처럼 열정적으로 하나됨을 과시했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온라인과 현실에서의 잦은 만남과 어우러짐엔 또 다른 갈등과 파열음이 준비되어 있었다.

수십 년 만에 만난 중년의 동창들, 숙성 기간 없이 달아오른 친숙함은 서로에 대한 이해부족을 품고 있었고, 초등시절로 되돌아 간 듯 허물없는 대화는 서로에게 상처를 줬고 급기야 교실에서나 볼 수 있는 난투극까지도 감상(?)할 수 있었다.

2년도 못 돼 온갖 가십거리를 생산해 낸 초등학교 동창회는 회장 선거로 또 한 차례 불필요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그래도 삶에 지치고 고독에 힘겨워하는 중년의 남녀들에게 초등동창회는 한 가닥 오아시스인가 보다. 서로 부딪치고 상처 받으면서도 동창모임은 여전히 새로운 얼굴로 채워지면서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중년은 힘들고 외롭다. 그리고 고독하다. 고독은 홀로 있어 외롭고 쓸쓸함이다. 사람끼리 만나고 부딪치면 힘든 일이 생긴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모임을 만들고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주변에 사람은 많아도 어느 순간 홀로 구석에 서 있음을 느낀다. 어느 날 갑자기 사진 속에 비친 늙어버린 모습에 놀라고, 생물학적 나이로 봐도 어느덧 젊은날의 열정과 체력은 사라지고 마음만 과거에 매달려 있다.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중년의 모습은 장하면서도 서글프다. 노래방엘 가도 그 옛날 즐겨 부르던 노래를 선택하기에 주저한다. "역시 노인네야" 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어려운 신곡을 부르느라 고군분투하고, 아직도 체력만큼은 자신 있다며 폭탄주에 두주불사를 마다않는 호기를 부리고, 행여 찍힐까 할 말 못하고 윗사람 눈치 보느라 바짝 엎드리는 얼굴은 우리 시대 고독한 중년의 서러운 자화상이다.

"군인때는 헌병이 무섭더니, 이젠 마누라가 무서워"

노을 지는 모습. 인생도 어느 새 황혼이 되어 중년의 고독은 깊어 간다.
 노을 지는 모습. 인생도 어느 새 황혼이 되어 중년의 고독은 깊어 간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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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970, 1980년 대 질곡의 세월을 살아 온 지금의 중년 세대들은 농담 삼아 이렇게 말한다. "대학 다닐 땐 전경이 무서웠고, 군대 가니 헌병이 무섭더니, 나이 들면서 마누라 무서워 못 살겠다"라고.

실제 무서워 못 살기까지야 하겠냐만 이제는 말 한마디 하다가도 마누라 눈치를 먼저 봐야 되는 모습에서 중년의 고독은 비애로 발전한다. 직장과 가정, 어디 하나 쉬운 곳이 없다. 지금 중년의 대다수는 가부장적 환경에서 성장한 세대들이다. 흔히 들었던 얘기가, 부부유별, 여필종부, 삼종지도, 현모양처,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처갓집과 화장실은 멀리, 처삼촌 벌초하듯 등등…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아주 흘러간 헌소리 같겠지만 중년의 남자들에겐 그리운(?) 말들이다. 아~ 옛날이여~~

머리가 깨이면서 부부유별은 부부평등으로, 현실적으로 처갓집과 화장실은 가까울수록 좋다고 세태는 변하고 있다. 딸 둘을 낳았을 때 '딸딸이 아빠'라는 듣기 거북한 말에 시달렸고(?), 셋째 딸을 낳았을 때 눈물까지 보인 아내였지만, 요즘은 가는 곳 마다 딸이 최고라는 말을 듣는다.

보수와 가부장의 기세가 충만한 경상도 상주로 귀농한 덕에 내가 사는 마을의 어느 분은 아직도 딸을 낳으면 '헛빵'이라며 별칭 남하당(남자는 하늘) 총재로서의 호기를 부리지만 별 호응을 얻지 못하는 분위기다. 세상은 이렇게 변해가고 있지만 네 모녀의 틈 속에서 50을 갓 넘긴 중년의 고독감은 '성적 소수자'로서 때때로 깊어지고 있다.

한때 젊음을 민주화 운동에 바친 이들이나 현실과 이상의 갈피에서 괴로워하던 이들이나, 넥타이 매고 우쭐대던 이들이나 이제 다같이 늙어 가고 있다. 한때는 대한민국 최고 기업의 일원이 되어 스스로 사회의 지도층 인사 아니냐며 한껏 힘을 주던 친구가 명퇴를 당한 이후 내뱉은 "지나고 보니 잘 나가는 사람이나 못 나가는 사람이나 다 그게 그거"라는 자조 섞인 말에 중년의 허망감이 물씬 배어 있음을 느낀다.

오빠 또는 남동생의 대학 교육을 위해 실업계로 학업을 마치고 직업 전선에 뛰어든 중년의 누이들, 배움의 희생을 통해 뒷바라지 했건만 이제는 서로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힘들게 사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중년의 돌연사로 먼저 세상을 등진 친구들도 더러 있다. 친구 부모님 상갓집 불빛 아래서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세상사를 주고받는 중년의 얼굴들, 세상은 모질게 변하지만 그래도 효가 무엇인지 알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으로부터 효도받지 못하는 최초의 세대라는 지괴감 속에서 중년의 서글픔은 더욱 짙어만 간다.

진정한 외로움과 고독 즐기는 '중년'은 어떨까?

텃밭 가꾸는 모습. 텃밭에서 배추 모종을 심고 있다.
 텃밭 가꾸는 모습. 텃밭에서 배추 모종을 심고 있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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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40이면 불혹이고, 50이면 지천명이라고 했다. 40대엔 이런 저런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50이면 하늘의 뜻을 알 나이라는 뜻인데 하늘의 뜻은 커녕 땅의 뜻도 모르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가파르고 비탈진 인생길에서 수명은 계속 늘어나 인생 이모작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보통 50대에 인생 이모작을 시작해 평균 수명인 80대까지 30년 이상을 잘 살아보잔 얘긴데 이게 참 말처럼 쉬운 것 같지는 않다.

인생 이모작을 위해 새로운 직업을 찾거나 최근 들어 귀농, 귀촌의 탈 도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나이 50이면 생물학적으로도 체력이 자연스레 쇠해져가는 시기다.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체력과 자본금, 구체적인 계획 없이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귀촌 또한 일자리가 별로 없는 시골에서 특별한 재능을 갖지 못하면 자리 잡기가 용이하지 않다.

늙어가는 것도 서럽고, 외로움과 고독은 깊어가는데 인생 이모작도 갈 곳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결국 돈에서 또 길을 찾아야 하는가? 정답은 아니지만 삶의 근본인 마음, 마음을 변화시키는 데 노력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그동안 먹고 사느라 얼마나 숨 돌릴 틈도 없이 살아왔던가? 언제 진정한 외로움과 고독을 느껴 볼 새가 있었던가? 사람으로 태어나 외로움도 느낄 줄 알고 고독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인생이 더욱 더 진지해지 않을까? 그저 먹고 마시고 즐기며, 외로움과 고독 한 번 느껴보지 못하고 살다 가는 인생을 과연 참답다고 할 수 있을까?

고독을 품으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 특히 물질의 욕심부터, 그냥 놔두면 덕지덕지 쌓이는 욕심은 매일 덜어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언론에선 노후생활 자금 매월 250만 원이 있어야 안락한 노후를 즐긴다고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이러니 지금 노후가 코앞에 다가 온 중년이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돈이 있어도 할 일 없는 노후가 불안한데 돈마저 여의치 않다면 고독은커녕 불안감에 시달리다 명을 재촉할 수도 있다.

더불어 중년이면 노년에 대한 생각과 함께 인생을 정리하는 것도 깊이 생각해보면 좋겠다. 생자필멸, 모든 생명은 반드시 죽게 마련인데 죽음을 알아야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고 한다. 화담 서경덕이 임종 직전에 제자들과 나눈 대화이다.

"죽음을 앞두신 지금 기분이 어떠십니까?"
"삶과 죽음의 이치를 깨달은 지 오래인지라 마음이 편하다."

삶과 죽음의 이치를 쉽게 깨달을 수는 없지만 소박하고 조화로운 삶, 무소유, 아무리 좋은 화두도 내 삶에 투영되지 못하면 간판의 구호에 불과하다. 노년에 조그만 텃밭이라도 일구고, 다소 불편하더라도 욕심 없이 살다가 조용히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만 돼있다면 인생 이모작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태그:#중년,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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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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