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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이곳에 올라야 비로소 봉하마을의 모든 것을 볼수있다고 했다.
▲ 봉화산에서 내려본 봉하들녁(2011년10월) 고인은 이곳에 올라야 비로소 봉하마을의 모든 것을 볼수있다고 했다.
ⓒ 이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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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 시절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많은 불만을 품었던 사람, 심지어 퇴임 후 검찰 수사로 궁지에 몰린 그의 모습을 은근히 즐기기까지 했었던 사람, 노무현을 열렬히 지지했지만, 17대 총선에서 원내 과반을 획득하고도 국가보안법 폐지에서 한발 물러선 모습에 실망했고,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연정을 제안하는 모습에 좌절했으며, 한미 FTA를 적극 추진할 당시에는 굳이 분노해야 할 일말의 애정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벌써 여섯번째 봉하마을을 찾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미움은 현 이명박 대통령 재임 기간의 심각성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도 비정규직의 비중은 꾸준히 증가했고, 양극화 역시 심화했습니다. 대통령이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과 철학이 부족했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충격적인 서거 이후 이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정확한 계기는 오연호 기자의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를 읽은 후 부터입니다. 그 책장을 넘기면서 옳고 그르고를 차치하고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가졌던 불만 중 많은 부분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모들이 공동 저술한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는 마지막 인터뷰에서 단편적으로 보여주었던 양극화, 고용불안, 민주주의 발전 등의 문제에 대해 대통령이 얼마나 고민했고 또 극복을 위한 해법 찾기에 골몰했는지 잘 보여줍니다.

고인의 서거 이후 여러 차례 이곳을 찾았지만, 3주기를 앞둔 지금에서야 봉하마을이야말로 '노무현이 꿈꾸던 나라의 모습'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대통령 위에 국민이 있다

강철보다 강인한 메시지가 새겨져있다.
▲ 고 노무현 대통령 묘 강철보다 강인한 메시지가 새겨져있다.
ⓒ 이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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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상석의 강철에 새겨진 강철보다 굳건한 메시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는 고인의 어록입니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발췌한 글귀인데, 노 대통령의 권력관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습니다.

고인은 대통령과 국민의 관계를 "권력을 위임하되 지배는 거부한다"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대통령에게 권한을 위임하지만, 국민은 언제든지 부당한 지배를 거부하고 대통령의 권력을 회수할 수 있다는 것인데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은 바로 '시민의 불복종'과 궤를 같이하는 이 말을 대통령 재임 중 청와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현직 대통령임에도 '대통령보다 시민 권력이 우위'에 있다고 강조한 노무현과 '국론통일'이니, 어쩌니 하면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을 적대시하는 현 정권의 시각과 비교하면 민주주의에 대한 전·현 정권의 견해차가 얼마나 극명한 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퇴임 후 시민으로 돌아온 첫 일성으로 "아~ 기분 좋다"라고 크게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

생가 앞 텃밭에는 농약을 전혀 쓰지 않은 채소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 유기농채소 생가 앞 텃밭에는 농약을 전혀 쓰지 않은 채소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 이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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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농법으로 유명한 봉하 쌀은 그가 환경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잘 보여줍니다. 화학 농약을 전혀 쓰지 않는 오리농법은 매우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 시도할 당시 마을 주민의 반대가 심했지만, 그는 주민을 설득하여 오·폐수로 악취가 진동하는 봉화산과 개천을 정화했습니다. 또, 오리를 이용한 쌀농사를 시도한 것입니다.

이 오리농법은 단순히 전직 대통령이 귀향하여, 고향을 친환경적으로 가꾸는 사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읽는 책 10권 중 한 권인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소련의 석유원조가 중단된 쿠바는 인구 200만의 도시 아바나가 어떻게 식량과 에너지를 자급하며, 생태도시로 거듭났는지를 설명합니다.

대통령은 재임 시절에 이 책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지구 온난화, 이산화탄소 배출억제, 기후변화 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에너지위원회'를 두는 등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렸는데, 귀향 후 오리를 이용한 쌀농사나 유기농법에 따른 야채 재배는 이런 노력의 연장선에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한 그의 시도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상대가 낮을수록 더 고개 숙이는 대통령

동영상을 관람하는 여성추모객
▲ 약자일수록 민주주의를 보장해주는 것이 진보다 동영상을 관람하는 여성추모객
ⓒ 이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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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퇴임 후 봉하마을은 명소가 되었습니다. 생전에도 많은 지지자와 관광객이 그곳을 찾았고, 그는 그들과 만나고 대화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비좁은 공간에 대형 버스가 주차하기 위해 쩔쩔매고 있을 때, 노 대통령이 직접 뒤를 봐주는 모습에서 감동을 하였다든지, 버스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진흙 묻은 장화를 벗고 맨발로 차에 올라 인사를 했다는 등의 일화가 단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었다는 흔적은 마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념 전시관의 영상물에는 인사하는 시민보다 더 깊게 고개 숙여 답례하는 겸손한 모습인 대통령의 사진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자신보다 키가 훨씬 작은 어린 학생들보다도 더 낮은 자세로 인사하는 모습에서 상대적 약자에 대해 그의 배려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신자유주의의 조류에서 비록 큰 결실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재임 시절 그가 빈부격차나 비정규직 차별 등 양극화 문제의 극복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증진 등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활로를 모색했습니다.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외 <국가의 역할>, <빈곤의 종말>, <유러피언 드림> 등 그와 함께 읽은 책은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우리 경제의 활로를 찾는 것과 분배 문제 그리고 복지문제에 집중해 있는대서 잘 드러납니다.

재벌이나 보수 세력의 반발 등으로 비록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지만, 종합부동산세 부과나 사립학교법개정 수도권 공장 증·개축 불허 등 노무현 정부는 양극화 해소와 균형발전을 시도했던 것입니다. 추모관에서 방영되고 있는 동영상에서 유독 뇌리에 맴도는 대통령의 말이 있습니다.

"약자일수록 더 민주주의를 보장해 주는 것이 진보(進步)다"

시스템의 개혁

하필, 비가 내려 오르지는 못했지만 부엉이 바위는 노무현의 시작과 끝을 생각해보게 하는 장소입니다. 봉화산 밑의 토굴에서 고시 공부를 했던 노무현은 검찰의 보복수사 때문에 부엉이 바위에 투신하여 비극적으로 서거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했고 투신했다.
▲ 부엉위바위 그는 이곳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했고 투신했다.
ⓒ 이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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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초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나는 검찰 수뇌부를 믿지 않는다"는 폭탄 발언으로 비롯된 검찰과의 긴장관계는 끝내 퇴임 후 검찰의 보복수사와 투신이란 비극을 연출했지만,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는 "청와대에서 (떳떳하게) 걸어나가기 위해 그랬다"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검찰이 국가의 검찰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사유화하지 않음으로써, 대통령 자신과 주변도 좀 더 청렴한 국정수행을 하기 위해 검찰과 긴장관계를 유지한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숭례문이 불이 나서 대부분 국민이 걱정하는 당시에 <조선><동아> 등 보수 언론이 "대통령이 화재현장조차 찾지 않는다"고 맹공을 가해왔을 때, 대통령은 "(내가) 현장을 방문하면 실무자에게 방해가 될까 봐"라고 현장을 방문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취임 초 여아 유괴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담당 경찰서를 직접 찾아 수사를 지휘한 이명박 대통령과는 정 반대의 행보인데요. 최근 112에 위급상황을 신고했지만, 묵살 당해 살해당한 사건에서 보여지 듯 이명박 대통령의 현장지도는 임기 중 경찰의 민생치안 시스템 개선에 아무 진전없는 1회성 이벤트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하루 더 머물 것을 권유했지만, 이를 거절한 일화는 아주 중요한 점을 시사해줍니다. 당시 김 위원장이 "대통령이 하룻밤 더 자는 것도 맘대로 못하냐?"고 묻자, "큰일은 내 맘대로 할 수 있지만, 작은 일은 내 맘대로 못한다"고 답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대통령이 실무자의 권한을 얼마나 존중했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는 인물 중심의 개혁보다 근본적인 정책이나 제도 개혁을 추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부엉이바위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그의 이런 시도는 성공하지 못하고 다만 꿈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비가 오는 평일임에도 꾸준히 그의 발자취를 좆으려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며 노무현의 꿈은 아직 여전히 진행형임을 느끼게 됩니다.

그에 대해 애증을 함께 가졌던 사람으로서 그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가 꿈꾸던 세상은 강자가 약자를 배려하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며,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검찰로, 국민은 모든 권력의 주인으로 대접받는 사회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태그:#노무현3주기, #봉하마을,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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