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3월 12일 오후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국민일보 파업대부흥회'에서 박유리 기자가 발언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3월 12일 오후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국민일보 파업대부흥회'에서 박유리 기자가 발언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국민일보 노동조합

관련사진보기


"파업 첫날, 한 선배가 말했습니다. '조민제 사장은 단단한 철벽이고, 기자들은 거기 던져지는 날달걀들이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날달걀이라도, 던져져도 괜찮습니다. 깨져서라도 사유화를 막고 싶습니다."

지난 3월 12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국민일보> 파업 대부흥회. 입사 5년차 박유리 기자(특집기획부)는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조용기 목사 일가의 <국민일보> 사유화 반대와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는 파업에 들어간 지 81일째 되던 날이었다. 지난해 10월 사측으로부터 해고 된 조상운 노조위원장은 "파업이 사실 즐거운 일은 아니다, 힘들고 고달프다"면서도 "정말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승리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나타냈다. 

오는 5월 20일, 국민일보 노조 파업은 150일째를 맞는다. 공동 파업을 벌이고 있는 5개 언론사(MBC, KBS, YTN, 국민일보, 연합뉴스)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이다. 지금까지 언론사 최장기 파업기록은 2000년~2001년 CBS 노조가 세운 265일이었다.

23명 고소·고발 취하 놓고 협상...사측 자극 언행 자제   

국민일보 노조가 지난해 12월 23일부터 총파업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1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사옥 앞에서 조합원들이 임금 및 단체협약 요구안과 사장 및 편집국장 퇴진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국민일보 노조가 지난해 12월 23일부터 총파업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1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사옥 앞에서 조합원들이 임금 및 단체협약 요구안과 사장 및 편집국장 퇴진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최근 언론노조 집회 현장에서 국민일보 노조 집행부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11일 여의도에서 열린 '언론노조 파업 승리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에서는 파업 중인 언론사 MBC, KBS, YTN, 연합뉴스 노조위원장들이 함께 무대 위에 올랐지만, 국민일보 노조위원장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4월 조상운 노조위원장 사퇴 이후, 국민일보 노조는 손병호 쟁의대책위원장(노조위원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10일 <국민일보> 사옥 앞에서 진행된 '국민일보 파업 140일을 아파하는 기독교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도 노조 측 인사는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일보 노조가 이처럼 투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지난 4월 19일부터 사측과 협상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측을 자극해 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언행은 자제하겠다는 것이다. 손병호 쟁의대책위원장은 17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특히 조용기 목사 일가에 대해서는 언급을 꺼렸다. 조용기 목사 일가의 '비리'를 집중 폭로하며, 조민제 사장(현 회장) 퇴진을 요구하던 노조의 당초 입장과는 사뭇 다르다.

현재 노사간 협상의 핵심은 사측이 고소·고발한 조합원 23명에 대한 처리문제. 국민일보 사측은 조상운 전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노조 간부 5명을 불법파업에 따른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하는가 하면, 조민제 사장(현 회장) 자택 앞에서 유인물을 돌렸다는 이유로 15명의 조합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또한 편집국 조판팀 조합원 3명에게 불법파업으로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이유로 각 1000만 원씩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손 위원장은 "노조는 23명에 대한 소를 모두 취하해 달라는 입장이고, 사측은 그럴 수는 없다는 입장"이라면서 "입장차가 커서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노조는 편집권 독립·공정보도 장치 마련,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고 있다.

"다섯달 째 '무임금'...파업 동력 모으기 쉽지 않다" 

국민일보 노조가 4월 7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언론 파업기금 마련 플리마켓 ‘바통’ 행사에 참가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횡성 한우 판매를 위한 무료 시식 행사가 진행됐다.
 국민일보 노조가 4월 7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언론 파업기금 마련 플리마켓 ‘바통’ 행사에 참가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횡성 한우 판매를 위한 무료 시식 행사가 진행됐다.
ⓒ 국민일보 노조

관련사진보기


노조의 이러한 자세는 조상운 위원장 사퇴 때부터 예견되었다. 조 위원장은 지난 6년 간 국민일보 노조를 이끌어왔다.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3월 15일 중앙노동위원회가 사측의 조 위원장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이후 노조 내 '협상파'들을 중심으로 조 위원장이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사측은 '해고자 신분'인 조 위원장을 '대화 상대'로 인정할 수 없다며 협상을 전면 거부해왔다. 결국 조 위원장은 4월 13일 자진사퇴한다. 당시 조합원설문조사 결과, '비상대체위원회 전환이나 쟁의대책위원회 발족을 통해 사측과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한다.  

노조가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파업 장기화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크게 작용했다. 손병호 위원장은 "투쟁이 이렇게 길 줄 몰랐다"면서 "투쟁 자금을 많이 모아놓고 시작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투쟁 자금이 바닥이 난 게 큰 어려움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4월부터 횡성 한우 판매를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현재까지 17마리의 소를 팔았다.

다섯 달 째 '무임금'. 조합원들의 생활고도 무시할 수 없었다. 손 위원장은 "부업 파업, 아르바이트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투쟁을 하고 싶어도 부업하고 아르바이트 하는 조합원들이 많다보니 동력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110명이 파업을 시작했는데 파업 5개월 동안 복귀자가 한 자릿수다. 그만큼 똘똘 뭉쳐서 파업해왔는데 지난주에 두 명이 (회사로) 들어갔다. 노조위원장 직무대행으로서 두 분한테 죄송하다고 했다. 5개월씩이나 투쟁을 하면서도 승리하지 못해 복귀 문제를 조합원 개인이 결정하도록 한 노조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손 위원장은 "장기파업은 옳지 않은 것 같다"면서 "(국민일보 노조가) 승리를 못해서 길게 하고 있지만 짧고 강력하게 투쟁해서 쓰러뜨리든가, 아니면 빨리 접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착잡한 심경을 나타냈다. 

"'얼마나 덜 벌받고 들어가느냐' 협상...조합원 자존심 뭉개는 것" 

하지만 노조 집행부의 이러한 협상 태도에 강하게 반발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조합원은 "협상 국면을 한 달이나 이끌어왔는데도 '편집권 독립' 등 뭔가를 얻어내는 게 아니라 '(조합원들이) 얼마나 덜 벌받고 들어가느냐'를 이야기하고 있다"며 씁쓸해했다.  

"회사는 들어오려면 들어오고, 말라면 말라는 식으로 협상에 무성의 하다. 심지어 협상이 마무리 국면도 아니다. 150일 가까이 싸워온 조합원들의 자존심을 뭉개가면서 우리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렇게 무릎 꿇고 들어가는 건 아닌 것 같다. 1달 정도만 더, 정말 열심히 싸워서 성과를 얻어냈으면 좋겠다. 편집권 독립만 얻을 수 있다면, 150일 싸운 사업장에서 징계 몇 명 받는 건 당연하다."

국민일보 노조 홈페이지 화면 캡처.
 국민일보 노조 홈페이지 화면 캡처.
ⓒ 화면 캡처

관련사진보기


또 다른 조합원은 "현 집행부는 조용기와 조민제를 건드리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같은데 이는 국민일보 노조가 파업을 한 이유를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게 가능한가"라고 꼬집었다.

"국민일보 노조 홈페이지 들어가 봐라. '국민일보, 거듭나겠습니다'. 거듭 안 났다. 국민일보가 바로 서야 한국 기독교가 바로 섭니다.' 바로 안 섰다. '편집권 독립으로 균형 있는 전달자가 되겠습니다.' 편집권 독립 보장 못 받았다. '국민일보 사유화 막겠습니다'. 사유화 못 막았다. 이런 상황에서 파업을 오래 했다고 해서 들어가는 건 자기 부정이라고 본다."

조민제 '회장', 조용기 '명예회장' 추대...'지면사유화'도 여전 

1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사옥에서 조민제 국민일보 사장(가운데)이 조용기 여의도 순복음교회 원로목사(국민일보 회장 겸 발행인)와 간부들과 함께 사내 수요예배를 드린 뒤 노조원들의 면담 요청을 거부한 채, 급히 자리를 피하는 모습이 유리문 틈새로 보이고 있다.
 1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사옥에서 조민제 국민일보 사장(가운데)이 조용기 여의도 순복음교회 원로목사(국민일보 회장 겸 발행인)와 간부들과 함께 사내 수요예배를 드린 뒤 노조원들의 면담 요청을 거부한 채, 급히 자리를 피하는 모습이 유리문 틈새로 보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조용기 순복음교회 원로목사의 차남인 조 사무엘 민제 전 국민일보 사장은 지난 3월 13일, '회장'이 되었다. 미국 국적인 조씨가 사장직을 유지하는 것은 신문법에 위반된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유권해석 때문이었다. 국민일보 주식의 100%를 소유하고 있는 '국민문화재단(이사장 박종화 목사)'은 김성기 전 편집인 겸 논설위원실장을 사장으로 선임했다.

이와 함께 재단은 조민제씨를 재단 이사회 의장으로, 조용기 국민일보 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 여전히 <국민일보>와 조용기 목사 일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국민일보>가 지난 4월 23일, 조민제 회장의 비리 의혹을 보도한 <한겨레>를 '사설'을 통해 비판한 것은 조용기 목사 일가의 '지면사유화'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편집권 독립'은 요원해 보인다.

이와 관련해 파업을 잠정적으로 접은 후, 조민제 회장의 재판 결과를 기다려보자는 의견도 나온다. 한 조합원은 "조 회장이 지금 재판을 받고 있고, 횡령 혐의로 추가 기소된다는 이야기도 있다"면서 "뼈를 드러내면서 싸우기보다는 노조 전체가 함께 갈 수 있도록 대오를 유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파업 대부흥회' 당시 초대 손님으로 무대에 올랐던 이진오 더함공동체 목사는 18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이 모든 짐을 노조가 져야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고 전했다. 이 목사는 "국민일보가 여의도 순복음교회로부터 연간 수십 억 원의 지원을 받으면서 몇 사람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저를 비롯한 기독교인들이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용기 목사 일가를 향해 던진 '날달걀'은 어디로 갈까. 언론계와 교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태그:#국민일보, #조용기, #조민제, #파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