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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 걱정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 명예욕도 충분하고 예쁜 아내니 여자 생각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가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지난 93년 4월 28일 작고한 천상병 시인의 '행복'이란 시이다.

 

19주기를 맞는 천재 고 천상병 시인은 생전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 생활이 걱정 없다'는 그 찻집이 서울 종로구 관훈동 24번지에 있는 '귀천'이다. '귀천'은 소위 문학인들의 인사동 찻집으로 알려진 곳이다. 귀천(歸天)은 천상병 시인의 대표적 시다. 85년 3월 문을 연 찻집 '귀천'의 주인은 천 시인의 아내 고 목순옥씨였다.

 

아내 목씨도 일흔네 살의 일기로 지난 2010년 8월 26일 남편인 천 시인에게로 갔다. 천 시인이 살아 있을 당시 종로구 관훈동 24번지에 있던 '귀천'의 흔적은 건물 공사로 사라지고, 천 시인의 처 조카인 목영선(48)씨가 맥을 잇고 있다. 목씨는 현재 옛 찻집 주변 관훈동 83번지에 '귀천'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 4시 고 천 시인의 아내 오빠의 딸인 조카 목영선씨가 운영하는 '귀천'에서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담배 한 값 막걸리 두 대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했던 고 천상병 시인. 아내 목씨가 운영하는 찻집 '귀천'은 인사동을 들린 문학인이라면 한 번쯤은 찾는 곳이었다. 조카 목씨는 고모(천상병 시인의 아내 고 문순옥씨)와 함께 귀천을 운영했다. 그래서 고모님의 생활상을 누구보다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생전 고모님은 돌아가신 고모부(천상병 시인)의 일이라면 어디든지 찾아다녔다. 찻집을 운영하며, 시간을 내 연극, 백일장, 음악회, 예술제, 세미나 등 고모부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행사라면 빵이며 음식을 준비해 어디든지 갔다. 고모부가 살아 있을 때도 잘했지만 영면한 후에도 지성이었다."

 

생전 고모는 된장, 고추장, 김치 등 토속음식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 8월 건강했던 고모가 갑자기 대장파열로 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대장파열을 모르고 2~3일을 견디었다. 그래서 복막염도 생기고 폐혈증도 나타났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나흘 만에 이른 네 살의 나이로 타계했다. 돌아가시기 전인 그해 3월에 척추 디스크 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는 고모부 천 시인에 대해서도 생전 기억을 되살렸다.

 

"고모부는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 넘는 천재 시인이었다. 옆에서 지켜본 고모부는 기억력도 좋았고, 욕심 없이 살았다. 어떤 말을 해도 수용하고 받아 드렸다. 시에도 그렸듯이 담배 한 값 막걸리 두 대면 행복했던 사람이었다."

 

목씨는 고모부에 대한 말을 계속 이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지난 67년 고모부가 간첩으로 몰려 옥고를 치렀다. 바로 윤이상씨도 함께 관계된 '동백림'사건이었다. 대학 다닐 때부터 술을 좋아해 술값을 받은 것이 간첩에게 공작자금을 받았다고 구속시킨 사건이다. 전기 고문을 3번 정도 받았다고 들었다. 협박과 고문에도 술값을 받았다는 것 외에 입을 다물었다고 했다."

 

그는 천 시인과 아버지 고 목순복 선생은 절친한 친구였다고도 했다.

 

"아버지는 친구 동생인 일곱 살 밑인 고모(고 목순옥씨)를 천 시인에게 시집을 보냈다. 고모부가 지난 67년 동백림사건으로 옥고를 치러 출옥을 했는데도 몸이 좋지 않아, 길거리를 헤매다가 70년대 행려(行旅)병자로 청량리에 있는 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이때 죽은 줄 알고 동인들이 '새'라는 유고 시집을 내기도 했다. 당시 병원에 근무한 고 김종해(의사) 박사가 '살아 있다'고 해, 당시 처녀였던 고모가 문병을 갔다. 친구 딸인 고모를 고모부도 좋아해 기다리고 있었다. 고 김종해 박사가 고모에게 천재 시인이 너를 좋아하니 결혼을 하라고 재촉했다. 음악, 시, 그림 등 모르는 것이 없는 천재 시인이 이렇게 죽기는 불쌍하니 고모가 결혼해 함께 하면 몸도 좋아지고 시도 쓸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일곱 살 연상인 고모부(천 시인)와 결혼을 하게 됐다."

 

당시 처녀인 고모는 결혼 전까지 천에 수를 놓은 '자수'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고모와 결혼한 고모부인 천 시인은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배어있었다고도 했다.

 

"고모부는 항상 시계를 봤다. 담배를 피울 때도 시간에 맞춰 피웠고, 술을 마실 때도 정확했다. 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하면 '문둥이 자식'하고 입을 다물었다. 정말 마음이 올곧은 사람이었다. 현재 각종 비리, 부정 부패 등 정치인들의 행태를 봤으면 욕을 많이 했을 것이다."

 

고모부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처 조카인 목영선씨는 천 시인이 유난히 초록색과 파란색을 좋아했다고도 했다.

 

"왠지 빨간색은 싫어했다. 동백림 사건으로 빨갱이로 몰려 '고문'을 받아 빨간색을 싫어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초록색과 파란색은 너무 좋아했다. 이 색을 보면 눈이 좋아지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했다. 빨간 립스틱, 빨간 옷 입고 가면 혼이 났다."

 

고 천상병 시인을 그리며 찻집 '귀천'을 운영했던 아내 고 목순옥씨도 세상을 떠났다. 현재 고 천 시인의 처쪽 조카인 목영선씨가 찻집 '귀천'을 운영하며 고모부 '천 시인'의 문학세계를 알리고 있다. 그에게 앞으로 찻집을 그만두면 누구에게 맥을 이어갈 것이냐고 묻자 "집안에서 이어가도록 할 것"이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찻집 '귀천'은 오미자, 모과자, 매실차, 수정과, 뽕잎차, 쌍화차 등을 위주로 판 전통 찻집이다. '귀천'에는 천상병 시인이 생전 아내와 파안대소한 사진과 귀천, 행복 등의 대표시가 자연스레 눈에 끌렸다. 특히 지난 천 시인의 아내 고 목순옥씨가 운영했던 찻집 내부를 그린 판화가 옛 추억을 되새기게 했다. 판화에는 생전 천 시인과 아내의 다정했던 사진, 아내 문순옥씨가 펴낸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 등이 새겨져 있다.

 

한편, 일년에 한번 열리는 '천상병 예술제'가 지난 4월 21일부터 29일까지 경기도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다. 올해로 9회째인 예술제는 가수 최백호, 신형원 씨가 참석해 노래를 불렀고, 강희근 경상대 명예교수의 '천 시인의 문학상'에 대해 강연을 했다. 천 시인의 19주기 기일인 4월 28일은 백일장, 음악회, 문학상 시상식 등의 행사가 치러졌다.

 

이쯤해서 고 천상병 시인의 대표시로 잘 알려진 '귀천(歸天)'을 되새겨 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과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과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태그:#19주기 고 천상병 시인의 '귀천', #인사동 귀천 찻집, #조카 목영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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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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