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의 남자> 주인공 김선우(엄태웅 분)는 15년 전 이장일(이준혁 분)이 자신의 뒤통수를 각목으로 내려친 이유가 몹시 궁금했다. 장일은 자신과 원한 관계가 없었고, 장일 아버지(이원종 분)은 선우의 아버지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장일은 15년 전 그날 자기가 선우 아버지를 죽였다고 고백하고, 왜 선우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을까. 그리고 장일 아버지는 왜 선우의 아버지를 살해한 것일까.

김선우가 15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얼마 남지 않은 공소시효 기간 동안 아버지와 자신을 죽이려고 한 이들을 벌하고자 하는 것. 그러나 만약에 선우가 형벌 그 자체에 목적이 있었다면 그는 하루라도 빨리 한국에 돌아 와서 검찰에 진정서를 내야했다.

허나 선우가 상대해야하는 이는 대한민국에서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재벌에 법을 집행하는 막강한 지위를 가진 검사다. 애초부터 그들을 대한민국 형법으로 15년 전 죄를 묻는 것은 바위에 계란치기였다. 운 좋게 진노식(김영철 분)을 김선우 아버지 살해 사주로 기소한다 해도, 노식은 대한민국 최고 로펌을 동원해 그가 받아야할 죄 값을 제대로 치루지 않고 유유히 빠져나올 것이다. 그리고 장일에게 살인미수 죄를 적용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나 마찬가지다.

때문에 김선우는 처음부터 이들을 감옥에 넣는다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그들이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을 죽이려고 든 이유가 궁금했다. 한편으로는 진노식은 철저히 무너트린다 해도, 친구 장일만큼은 용서해주려고 했다. 장일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장일은 끝까지 15년 전 자신이 저지른 살인 미수에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얼마 전까지 자신의 죄가 드러날까 봐 멘탈 붕괴까지 일어났던 것과 달리, 그는 선우 앞에서 한 치의 죄책감도 미안함도 보이지 않았다. 한 술 더 떠 장일 아버지는 당신이 선우를 죽이고, 자신도 죽어야했다면서 자신들을 압박하는 선우에게 이를 갈고 있다.


어서 공소시효가 지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그러면 자신들의 악행이 덮어질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진노식과 이장일 부자. 그리고 장일을 위해 선우를 배신하고 진실을 은폐하고자하는 최수미(임정은 분). 그러나 지나간 공소시효도 검사가 가진 막강 지위도 누군가를 향한 숨 막히는 집착도 15년 전 진실을 가릴 수는 없는 법이다.

결국 끝까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일말의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못하는 악인들에게 선전포고한 선우. 그의 복수 또한 훗날 그의 눈을 찌를 수도 있다는 엄청난 파국이 예상되기에 마냥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진노식과 이장일 부자, 최수미는 선우와 <적도의 남자> 시청자에게 있어서 용서와 이해의 한계를 넘어버린 지 오래다. 이제 현실의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결말은 법으로서 쉽게 다스리기 어려운 골리앗을 짱돌을 든 다윗이 '진실의 힘' 하나로 그들을 처절히 무너지는 장면이다.

어쩌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 뒤통수를 치고도 뻔뻔한 얼굴로 호위 호식하는 이장일과 최수미는 드라마를 넘어 현실에도 종종 보이는 '나쁜 x'의 자화상이 아닐까. 15년 전 살인미수라는 용서받지 못할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선량한 시민을 위한다는 '정의의 사도' 인척 가증스럽게 연기하는 이장일이 소름끼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