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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로 향하여

이른 아침부터 서두른 탓일까? 뜨거운 봄볕과 씨름한 탓일까? 쌍계사로 가는 동안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버스 속도가 느려진다는 느낌에 눈을 떳더니 느닷없이 대형버스 들이 줄지어 갓길에 정차되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지? 사고라도 났나?'

목을 길게 빼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갑자기 시골길에 나타난 진풍경의 원인을 찾으려 애써 보았습니다. 그 원인을 찾는데는 시간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뱀처럼 길게 늘어선 대형버스들의 행열을 지나가니 작은 장터가 나타났습니다. 그 유명하다는 화계장터였습니다. 화계장터를 보기위해 관광객들이 찾은 거죠.

 화개장터는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만남의 장으로 유명하다
▲ 화개장터 화개장터는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만남의 장으로 유명하다
ⓒ 최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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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쌍계사에 가까워 졌다. 이정표가 쌍계사로 길을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길 주변에는 놀랍게도 녹차 밭이 즐비했습니다. 녹차 밭하면 보성만 생각했었는데 말입니다.

쌍계사 가는 길의 물이 참 맑다
▲ 계곡물 쌍계사 가는 길의 물이 참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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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밭 건너편엔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은 맑디 맑았습니다. 강바닥에 엎드려 벌컥벌컥 마셔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저 물은 흘러 섬진강 본류로 흘러들어가겠지요.

 어딜 가나 삶을 위한 생계수단이 펼쳐진다
▲ 노점상 어딜 가나 삶을 위한 생계수단이 펼쳐진다
ⓒ 최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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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로 가는 길은 깊고 고요함을 상상했었습니다.
그러나 쌍계사로 가는 길은 깊다는 느낌도 고요하다는 느낌도 별도 들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사는 느낌만 있었죠. 산 아래 동네와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
길가엔 노점상이 지나가는 관광객을 상대로 갖가지 나물들을 팔고 있었습니다. 즐비한 상가를 보니 관광객이 배고플 일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쌍계라는 글씨가 쌍계사를 알리고 있다
▲ 입구 바위 쌍계라는 글씨가 쌍계사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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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쌍계사 입구에 도착했나 봅니다. 큰 바위에 '쌍계(雙磎)'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습니다. 다소 생뚱맞기까지 한 쌍계라는 글씨가 장난 같기도 합니다. 누가 바위를 여기로 옮겨 놓지는 않았겠지요. 만약 누군가 바위를 옮겼다면, 엄청 힘이 센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옛날엔 지금처럼 중장비도 없었을 테니까요.

계곡을 오를 수록 물이 더 맑았다.
▲ 맑은물 계곡을 오를 수록 물이 더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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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로 이어지는 길 가엔 계곡이 같이 이어집니다. 오를수록 계곡물은 더 깨끗해 보입니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이 영롱하기 까지 하네요. 

쌍계사로 오르는 길
▲ 오르는 길 쌍계사로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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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날이 가까워 왔나봅니다. 연등이 가로수 길을 따라 이어져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내마음대로 안돼는 것이 인간사 일진데, 크든 작든 소원이 얼마나 많겠는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 일주문은 속세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서는 첫 관문으로, 항상 한결같은 마음으로 수도하고 교화하라는 뜻으로 세운 문이다. 양쪽에 하나씩의 기둥을 세워 지붕을 받치게 한다 하여 ‘일주(一柱)문’이라고 한다.
▲ 일주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 일주문은 속세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서는 첫 관문으로, 항상 한결같은 마음으로 수도하고 교화하라는 뜻으로 세운 문이다. 양쪽에 하나씩의 기둥을 세워 지붕을 받치게 한다 하여 ‘일주(一柱)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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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절을 들어서니 지금까지 없었던 숙연함이 엄습했습니다. 일주문의 금강역사를 뒤로하고 두 번째 문이 사천왕이 떡하니 위협합니다.

탑이 화려하고 멋있다
▲ 구층 석탑 탑이 화려하고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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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층석탑이 멋지게 서 있습니다. 관람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석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어 댑니다. 쌍계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고 보여지네요.

 대웅전의 정면 모습
▲ 대웅전 대웅전의 정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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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지붕의 단청이 화려하다
▲ 대웅전 단청 대웅전 지붕의 단청이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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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지붕의 단청 모습
▲ 대웅전 단청 대웅전 지붕의 단청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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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의 위풍이 대단합니다. 쌍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로 43개의 말사(末寺)를 관장하며 4개의 부속 암자가 있다고 합니다. 단청을 올려다보십시오. 화려한 듯 질서정연한 멋이 담겨있습니다.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48호, 고려시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됨.
▲ 마애불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48호, 고려시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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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하기 그지없는 마애불을 만났습니다. 가만히 마애불을 들여다보면 '참 착하다'라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볼살. 그런데 이 부처님은 꽤 영험한 듯 보이지 않나요? 복이 주르르 흐른다고 해야 하나요.

담과 한덩어리가 된 나무뿌리
▲ 담과 나무뿌리 담과 한덩어리가 된 나무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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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과 하나가 된 나무뿌리가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혼연일체', '한 덩어리'라고 해야 하나요?

국보 제47호, 고운 최치원선생이 글을 짓고 썻다.
▲ 진감선사탑비 국보 제47호, 고운 최치원선생이 글을 짓고 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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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앞에 국보 제47호인 '진감국사대공탑비(眞鑑國師大空塔碑)'가 있는데 887년(진성여왕 1)에 진성여왕의 명으로 최치원이 글을 짓고 글씨를 쓴 진감 선사의 전기 비입니다. 진성여왕이 진감국사의 도덕과 법력(法力)을 흠모하여 시호와 탑호를 내리고 이를 만들도록 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4대 금석문(金石文) 가운데 첫째로 꼽힌다고하니 참 귀한 보물이라 생각이 되네요.

육조 혜능대사의 정상(머리)이 모셔진 곳이라고한다.
▲ 육조정상탑전 육조 혜능대사의 정상(머리)이 모셔진 곳이라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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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을 통해서 진정성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금당에서 쌍계사의 유래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 절은 723년(성덕왕 23)에 의상(義湘)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창건하였는데, 삼법은 당나라에서 귀국하기 전에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정상(頂相)을 모셔다가 삼신산(三神山)의 눈 쌓인 계곡 위 꽃이 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을 꾸고 육조의 머리를 취한 뒤 귀국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라산·금강산 등을 두루 다녔으나 눈이 있고 꽃이 피는 땅을 찾지 못하다가, 지리산에 오자 호랑이가 길을 안내하여 지금의 쌍계사 금당(金堂) 자리에 이르렀는데, 그곳이 꿈에 지시한 자리임을 깨닫고 혜능의 머리를 평장한 뒤 절 이름을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가 이후 문성왕 2년에 진감국사가  "쌍계사"로 절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불법을 제대로 알리고자 하는 지극함이 먼 타국의 고승 머리를 모셔오는 데 까지 이르렀으니 그 정성이 보통이 아닌 것이지요. 금당은 원래 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의미하는데 육조혜능대사의 정상(머리)을 봉안하고 금당이라 한 것도 육조혜능대사의 가르침을 중시한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합니다.

쌍계사를 마지막으로 봄길 따라 문학기행은 막바지로 달려갔습니다.

다시 청도도서관으로 돌아 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일행은 각자 가지고 온 애송시를 읊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동화도 읽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뉘엇뉘엇 해는 넘어 가고 있었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어설프게 문학 소년을 흉내 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마음 속에 어떤 무엇을 끄집어내보려는 나만의 몸짓이었습니다. 사물을 통해 전달되는 신호는 뜨겁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고 무겁기도 했습니다. 그 무엇을 시라는 형식을 빌리기도 하고 산문이라는 형식으로 표현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슴 끝에 맺힌 그 무엇은 쉽게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삶의 질곡 속에 익혀져야 하고 다듬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이병주도 그렇고 박경리도 그랬습니다. 절망의 벼랑 앞에 선 그들이었습니다. 그 절망을 넘어섰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절망의 벼랑에 섰을 때 대부분 절망의 벼랑아래를 봅니다. 그리고 떨어지고 말지요. 그러나 그 절망 너머가 있다는 어렴풋한 가능성이나 그 절망의 계곡의 깊이보다도 더 큰 무엇을 가진 사람들은 절망을 딛고 일어서겠지요. 그래서 큰 사람이 될 수 있나 봅니다. 이병주와 박경리의 삶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깊은 맛이 있고, 울림이 있고, 진정성이 있나 봅니다. 삶은 그렇게 무엇으로 농익어 소설 속으로 들어갔나 봅니다.

이번 처럼 좋은 자리 마련해 주신 청도도서관 관계자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태그:#경남 하동, #문학기행, #청도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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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을 사랑합니다. 그 영롱함을 사랑합니다. 잡초 위에 맺힌 작은 물방울이 아침이면 얼마나 아름다운 빛의 향연을 벌이는 지 아십니까? 이 잡초는 하루 종일 고단함을 까만 맘에 뉘여 버리고 찬연히 빛나는 나만의 영광인 작은 물방울의 빛의 향연의축복을 받고 다시 귀한 하루에 감사하며, 눈을 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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