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초의 유럽인들이 케냐에 도착한 것은 1800년대 후반. 즉 나의 조부모님이 살던 시대였다. 1885년 유럽과 다른 열강들이 '아프리카 쟁탈전'으로 알려진 싸움을 승인하기 위해 베를린 회담 석상에 마주앉았다. 아프리카 쟁탈전은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려는 시도로 무려 30년 동안 이어졌다. 그들은 지도 위에 펜을 한번 휘둘러서는 아프리카의 전 지역들을 각기 다른 열강들에게 분할하고는, 지도에 없던 전혀 새로운 나라를 창조했다. 동아프리카에서는 독일이 탕가니아를 할당받았는데, 이는 나중에 잔지바르와 합하여 탄자니아가 되었다. 영국은 자기들이 얻은 땅에 케냐 식민지와 우간다 보호령을 건설했다. - <위대한 희망>에서

1800년대 후반, 아프리카는 유럽인들에 의해 이처럼 유린당한다. 아프리카 불행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희망>(김영사 펴냄)은 황폐한 케냐에서 그린벨트를 시작해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희망의 싹을 틔움으로써 아프리카 여성으로는 첫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왕가리 무타 마타이(1940.4.1~2011.9.25, 이하 왕가리 마타이)의 자서전이다.

<위대한 희망>
 <위대한 희망>
ⓒ 김영사

관련사진보기

한 무리의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로 이주해 자신들이 살아갈 터를 잡으며 일정 구역을 정해 원래의 땅주인들을 그곳에서만 살게 가두고 새로운 국가(미국 등)를 건설한 것처럼, 아프리카 곳곳에 원주민보호구역이 정해지고 원래의 땅주인들은 그곳으로 쫓겨나고 만다.

왕가리 마타이의 조국 케냐도 마찬가지. 그녀는 식민지인 케냐(당시 영국령) 이히테에서 1940년 한 가난한 소작농의 여섯째 중 셋째, 딸로는 첫째로 태어났는데, 그녀가 태어난 이히테 또한 1930년에 영국이 지정한 원주민보호구역 중 한 곳이었다.

그녀가 어렸던 시절, 케냐의 여자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당시 아프리카 여성들은 '남자들의 소유물 한 가지'에 불과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 대부분은 '여성들은 배울 필요도, 배워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자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는 남자 형제들이나 가족들을 위해 어머니와 하루 종일 나무를 하거나 물 긷는 일을 했다. 그러나 왕가리 마타이는 학교에 다니게 된다. 이는 썩 이례적인 일인데, 식민지의 가난한 농부에 불과하지만 교육에 열성적인 아버지 덕분이었다.

왕가리 마타이는 미국과 독일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고국으로 돌아  온다. 이는 아프리카 여성으로는 보기 드문 일로 이후 왕가리 마타이의 모든 행보에는 '아프리카 여성으로는 처음' 혹은 '첫번째'와 같은 수식어가 붙게 된다.

1971년 케냐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나이로비 대학에서 수의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녀는 1976년 나이로비 대학의 첫 여성교수가 된다. 그리고 1977년 그녀의 일생을 좌우하는 그린벨트 운동을 시작,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10월에 노벨평화상을 받는데 이는 아프리카 여성으로는 처음이자 정치 이외의 분야에서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 역시 처음이었다.

왕가리 마타이
 왕가리 마타이
ⓒ 리사 머튼

관련사진보기

왕가리 마타이는 종종 '나무들의 어머니(마마 미티)' '나무를 심는 여인'으로 불리곤 했다. 사진 속 왕가리 마타이는 무화과나무를 껴안고 있거나 묘목을 심고 있기 일쑤다. 이런 왕가리 마타이를 언론들은 '나무에 미친 여자' 혹은 '인간보다 나무를 더 사랑하는 극단적인 생태주의자' 등으로 묘사하곤 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그리 나무심기에 집착한 걸까.

왕가리 마타이가 공부를 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등 배움에 열중할 당시 조국 케냐는 물 부족과 영양결핍, 가난으로 고통 받고 있었고 이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여자들은 땔감과 식수를 얻고자 매일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야만 했다. 이는 그녀의 어머니와 여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태어날 무렵 이히테 주변의 땅은 나무가 울창하고 녹지가 많았으며 토양이 비옥했다. 우리는 미둔두, 미쿠, 미구모 같은 관목과 덩굴식물, 양치식물이 풍부한 땅에 살았다. 딸기와 견과류를 수확할 수 있었던 이곳은 비가 어김없이, 정기적으로 내리는 덕에 어디를 가든 깨끗한 식수가 넘쳐났다. 신선한 물이 흐르는 드넓은 평야에 옥수수와 콩, 밀, 야채들이 자랐다. 사람들은 살면서 기아라고는 겪어보지 않았다. 땅은 유기물이 풍부한 짙은 적갈색으로, 습기를 머금어 촉촉했다." - <위대한 희망>에서

그녀는 이처럼 회상한다. 이처럼 왕가리 마타이의 조국 케냐가, 케냐 사람들이 처음부터 가난과 물 부족으로 고통 받은 것은 아니었다.

이렇듯 비옥했던 케냐가 가난과 물 부족, 영양결핍으로 고통 받게 된 것은 개발이익을 노린 부패한 정권의 무분별한 개발때문이다. 부패한 케냐 독재정부는 국유지나 공유지를 개발하며 외국자본들을 끌어들여 이익들을 챙기는데 몰두할 뿐 국민들의 생활이나 자연에 깃들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운명에는 무관심했다.

일정의 공부를 마치고 케냐로 돌아온 그녀는 케냐 농촌의 비참한 현실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린벨트 운동을 조직해 여성들에게 나무 심는 법과 가난으로부터의 자립할 수 있는 방법, 여자들이 인간답게 사는 것과 관련된 것들을 인식시키기 시작한다.

사실 여성을 소유물로 인식하고 그에 따라 취급하는 남성들의 나라 케냐에서 여성이 환경 운동을 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 건 일이었다. 부패한 정권이 국유지나 공유지를 개발해 이익을 챙기며 각종 이권이 맞물려 있었는지라 이는 권력에 대한 저항이자 남성들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왕가리 마타이는 케냐가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던 영국을 상대로 무장독립투쟁을 왕성하게 벌이던 시절 '백인 남성의 나라(미국)'로 공부를 하러 떠나며 민족을 배반하는 '민중의 적'으로 간주되어 망치를 든 사람들에게 테러를 당한 적도 있었다.

그녀의 그린벨트 운동은 정권과 일부 언론과 극단적인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방해와 저지를 당한다. 구속과 가택연금, 테러와 폭행이 되풀이 된다. 독재정권의 방해와 일부 언론의 편중적인 보도로 생태환경운동가들에게조차 오해를 받는다. 그러나 그녀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리하여 케냐에서 시작된 왕가리 마타이의 그린벨트 운동은 아프리카 전역에 30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는 운동으로 번지고, 아프리카의 천연자원과 개발에 미친개처럼 달려들던 외국자본 일부가 투자를 거두게 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제7회 서울환경영화제(2010년)에 방영된 리사 머튼(미국) 감독의 다큐멘터리 <왕가리 마타이,나무를 심는 여인> 화면 일부
 제7회 서울환경영화제(2010년)에 방영된 리사 머튼(미국) 감독의 다큐멘터리 <왕가리 마타이,나무를 심는 여인> 화면 일부
ⓒ 리사 머튼

관련사진보기


왕가리 마타이의 환경운동은 환경운동 그 자체만이 아니다. 부패한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이자 무지로 인한 빈곤 그 악순환을 끊는 운동이자, 구조적 경제적 불균형에 대항하는 운동이었다. 그리고 천연자원을 잠식하는 거대 자본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또한 여성도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알게 하는(알리는) 여성운동이자 인권운동이다. 당시 가부장적 부족국가인 케냐 여성들의 인권침해는 심각했다고 한다. 한 예로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은 소녀와 성관계를 가지면 에이즈가 낫는다는 터무니없는 속설이 퍼져 있어 어린 아이들과 젊은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하는 일이 만연해 있었는데, 성폭행범(강간범)을 고소해도 멜론 하나 훔친 사람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 중 누구도 우리가 처한 상황 전부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는 없다.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상황이 내게 불리하게 돌아갈 때 그것에 대응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나는 언제나 실패를, 나를 성장시키고 계속 전진하게 만드는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좌절은 우리가 걸어가는 긴긴 인생길에서 마주치는 하나의 고비일 뿐이며, 거기에만 머무르다가는 우리의 여정이 지연될 뿐이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성공한 사람은 모두 여러 번씩 넘어져본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 다시 전진했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다. - <위대한 희망>에서

왕가리 마타이의 삶은 케냐의 정치사 한 부분이자 검은 대륙으로 불리는 아프리카 환경운동 역사 그 자체이며, 아프리카 고난의 승리 그 역사이기도 하다.

<위대한 희망>에는 구속과 가택연금, 테러와 폭행 등 숱한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아프리카 여성으로는 드물게 공부할 수 있었던 혜택을 자신의 안락한 삶을 위해서가 아닌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바친 왕가리 마타이의 집념과 그 고난들이 묵묵한 감동으로 펼쳐진다. 

덧붙이는 글 | <위대한 희망>ㅣ왕가리 마타이 씀ㅣ최재경 옮김ㅣ김영사ㅣ2011-1ㅣ23,000원



위대한 희망 - 아프리카 여성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의 가슴 뜨거운 삶과 인생

왕가리 마타이 지음, 최재경 옮김, 김영사(2011)


태그:#왕가리 마타이, #노벨평화상, #케냐, #그린벨트운동, #자서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