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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운영하는 상도동 포장마차가 어디에 있는지 묻자 위치를 설명하면서 김정우 지부장이 말했다.

 

"분향소를 찾아와 함께 해 주시는 분들을 보며 죽지 말고 꼭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어요. 아내와 7년 2개월을 연애하다가 결혼을 했는데... 그런  아내를 고생만 시켜 미안해요.  하루라도 빨리 일터로 돌아가 퇴근하고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싶어요..."

 

5월 4일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분향소가 차려진 지 31일이 되었다. 때가 되면 이름 모르는 누군가 도시락을 가져오고, 누군가는 샌드위치나 도너츠 등의 먹을거리를 챙겨온다. 쌍용차 동지들은 그들이 가져온 밥을 함께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들에게 먼저 권한다. 분향소로 음식을 가져오는 사람들은 쌍용차 동지들을 위해 챙겨오는 것일 텐데.. 같이 끼어 밥도 먹고 빵도 먹는 나는 조금 미안하다.

 

어제(3일)는 분향소로 어느 여성 약사분이 달걀프라이, 김장 김치, 족발찜을 가져왔다. 아내의 손길은 아니지만 정성이 담긴 음식들이다. 가정과 일터로 돌아가 열심히 일하고 퇴근해서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 앞에 마주앉아 저녁을 먹고 싶다는 김정우 지부장의 말이 생각나 차마 족발 찜으로는 젓가락이 가질 않았다.

 

크레인 위에 올랐던 김진숙 부산민주노총 지도위원은 "조합원들에게 땀냄새 풍기며 집으로 돌아가 자식들 옆에 끼고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에 앉아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남들과 같은 일상을 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말이 가슴에 울려서  많이 울었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돌아갈 집이라도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었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삶을 지켜줘야 할 의무를 지닌다.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세금도 내고, 국방의 의무와 노동의 의무를 성실하게 지며 살아가고 있다. 법치국가니 공정한  법의 잣대와 맡겨진 공권력을 사용해 자본과 권력의 일방적인 횡포와 착취와 폭력으로부터  힘없는 노동자들을 지켜줘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만의 기대였다. 정권은 1%의 자본을 비호하기 위해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적 토대가 되어야 할 가정을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망가트리고 있다. 국가가 힘없는 개인이 아니라 자본가를 비호하는 세력이요, 경찰은 그들을 엄호하는 사병에 불과하다는 것은 국가와 경찰의 행위로 드러났다.

 

2009년 국가는 특공대와 헬기를 동원, 옥쇄파업 중이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진압했다. 그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봐야했던 가족들은 전쟁터와 다름 없었던 77일간의 상처를 아직도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영웅이던 아빠가 검은 전투복 차림의 경찰과 용역에게 무참히 두들겨 맞는 것은 본  세 살배기 아이는 유치원생이 된 지금도 아빠와 길을 나설 때면 "내가 아빠를 지켜줘야 해요"라면서 장난감 칼을 차고 나간다고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아이는 검은 옷을 입은 건장한 청년만 보면 "아저씨 용역이죠? 우리 아빠 때리지 마세요"라고 팔을 붙든다고 한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교사가 "부모가 쌍용차에 다니는 사람 손들어 봐"라고 해서 손을 안 들었더니 "우리 반에는 빨갱이의 자식이 한 명도 없어서 다행이군"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돌아 온 아이가 "아빠, 아빠가 진짜  빨갱이야?"라고 물었을 때 뭐라고 대답을 했을까.

 

폭력과  야만에 그대로 노출되어야만 했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정부와 자본에 의해 회복될 수 없을 만큼 깊은 상처를 입었다. 상처를 입은 그들이 사회를 향해 '제발 살려 달라, 우리는 빨갱이가 아니다, 우리도 이전처럼 가족과 오순도순  살고 싶다'고 호소했지만 사회는 그들을 외면했다.

 

부모를 잃은 쌍차 남매가 고아로 남겨졌을 때 일부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하겠다고 약속했고 함께 했다. 울 수 있는 심리치유 공간 '와락'이 생겨났다. 그곳에서  그들은 억울함과 울분을 털어놓으며 상처도 조금씩 털어내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저 열심히 일하고 저녁이면 가정으로 돌아가 아이의 재롱을 보며 아내의 잔소리 들으며 밥상을 받고 싶었던 이들. 누가 그들을 22명이나 죽음의 벼랑 위에 서게 했는가. 자본의 횡포로부터 힘이 약한 노동자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국가는 자본의 앞잡이가 돼버렸다.

 

 

가정은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다. 가정이 안락하고 안전할 때 사회 전반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이어질 수 있다.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린 지 어느덧 31일째다. 3일 김정우 지부장과 조합원들의 하루 일정을 함께 해 보았다. 오전 11시 법률노동단체 공동 기자회견, 낮 12시 사회원로·각계 대표자 회의(점심 도시락), 오후 2시 사회원로·각계대표 기자회견,  장애인차별 철폐연대 기자회견, 분향 객 인사, 오후 7시 문화제... 도무지 쉴 틈이 없다. 몸이 강철이라도 견뎌낼 수 있을까. 언제까지 저들에게 길거리에서 도시락을 먹으라고 하고 한뎃잠을 자라고 할 것인가.

 

가정의 달 5월이다. 그런데 단란했던 가정을 국가와 자본이 갈갈이 찢어놓았다. '결자해지'라고 했다. 쌍용자동차 대량해고 사태의 원죄를 갖고 있는 이명박 정부와 대통령이 직접 나서 책임있는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저들은 국가의 주인이고 국가가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국민이다. 하루라도 빨리 저들이 국가와 자본이 망가트린 상처를 딛고 건강한 개인으로 또 한 가정으로 가장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덧붙이는 글 | 오는 11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는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유명인 기증 물품 바자회와 문화제가 열립니다. 분향소는 18일 까지 운영됩니다.  


태그:#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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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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