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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그날을 기억한다. 학생인권조례가 발표되고 실행된다고 했던 그날을 말이다. 나와 친구들은 서로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 후 바뀐 것이 하나 없다... (중략) ... 아이들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한다. "야, 너 순대냐?" "아니, 떡볶이야ㅋㅋㅋ" 여기서 순대와 떡볶이는 맞은 장소에서 생기는 멍(멍의 색깔과 크기 등에 따라 부르는 말: 기자 주)을 말한다. 체벌금지?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중략) ... 나는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인권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이 되지 않을 권리이다."

"학생증 안 가져오면 벌점 주고요. 교복단추 1개만 떨어져도 벌점 주고요. 추운데 교복 위에다 사복 못 입게 해요. 그리고 수업시간에 선도부 투입시켜서 소지품 검사하는데 몸부터 가방, 사물함까지 다 뒤져서 불쾌해요... (중략) ... 저희 학교는 학생학생인권조례랑 상관없다면서 막 원래 규정대로 빡세게 하고 있고요. 선생님들 몇 명은 체벌 심하게 하고요. 몇 몇 선생님들께서는 방과 후 학교를 강제로 시키세요. 그래서 협박받는 기분이어서 불쾌해요."

지난 1월 26일 서울시교육청이 '체벌 금지', '복장과 두발 등 규제 금지', '소지품 검사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서울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한 지 100일. 하지만 학생인권은 여전히 '제자리'다.

'두발 규제' 있다 72.5%-학생인권조례 '모른다' 56.8% 

5월 2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서울학생인권조례 시행 100일을 맞아, 학생인권조례 정착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5월 2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서울학생인권조례 시행 100일을 맞아, 학생인권조례 정착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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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발표된 '서울학생인권조례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이러한 현실이 잘 나타난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정착화를 위한 청소년 네트워크(이하 조례넷)에서는 지난 4월 20일부터 29일까지 서울지역 중·고등학교 재학생 12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위에 언급한 사례는 당시 설문조사 과정에서 수집한 것이다.

조례넷이 학생인권조례에 명시되어 있는 인권침해 항목들에 대해 설문한 결과, '두발 규제'가 존재한다고 대답한 학생은 72.5%에 달했다. 체벌 역시 48.8%의 학생이 '존재한다'고 응답했다. 서울시 교육청은 2010년부터 직·간접적인 체벌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과도한 벌점 및 징계 남용(45.4%), 일괄적인 휴대폰 강제압수(43.1%), 정규수업과정 이외 학습 강요(23.9%), 예배, 법회 등 종교과목 강요(11.8%) 등이 여전히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홍보도 부족했다. 무려 80.9%의 학생들이 학생인권조례와 관련해 학교로부터 아무런 안내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학생인권조례를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잘 모른다(34.8%)', '전혀 모른다(22%)'고 응답한 학생이 절반을 넘었다. 학생인권조례에서는 교육감과 학교장이 학생, 학부모에게 학생인권조례에 및 권리에 대해 홍보하고 교육할 책무를 명시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에서는 조례 시행 6개월 이내에 조례의 내용에 부합하도록 교칙을 개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교칙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학생 전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교칙 개정 과정에서 '전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으며, 잘 반영된다'고 응답한 학생은 118명으로 9.3%에 불과했다.

학생인권조례의 '현주소'에 청소년 활동가들은 큰 실망감을 나타냈다.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에서 활동하고 있는 '검은빛'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2011년에 학교를 자퇴했다, 학교 안에서 이루어졌던 수많은 인권침해가 너무 싫었고 견딜 수 없었다"면서 "'자살보다야 낫겠지'라는 생각으로 학교를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거리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받았던 서명 한 장, 한 장은 제가 학교 현장에서 겪었던 반인권적인 행태에 대한 분노였다"면서 "그런 학생인권조례가 제정이 돼서 너무 기뻤다"고 100일 전 그날 떠올렸다 이어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너무도 냉혹하다"면서 "학생 인권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교과부는 학생인권조례 죽이기에만 골몰할 것인가"

앞서 지난 3일, 교육과학기술부는 두발·복장 규정 등을 학칙으로 정하도록 하는 안내문을  각 급 학교에 발송할 것을 시도교육청에 요구했다. 이는 지난 4월 20일 개정·공포 된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에 따른 것이다. 학생의 두발·복장 등을 학칙으로 정하되, 구체적인 내용은 학생, 학부모, 교원 등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하도록 하는 것이 개정 시행령의 주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교과부는 서울학생인권조례와 관련해 "현재 대법원에서 조례무효 확인소송이 진행 중이고, 서울시 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에 따른 학칙 개정지시 처분'의 효력이 정지된 상태이므로, 서울시 각 급 학교는 학생인권조례에 가속되지 않고 학칙을 제·개정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배경내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교과부는 학생인권조례 죽이기에만 골몰한 것인가"라며 반발했다. 배 위원장은 이날 실태조사 결과발표 이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조례 무효 확인 소송이 진행 중이라고는 하나, 조례의 효력 자체가 정지된 것은 아니"라고 교과부의 주장을 반박했다.

또한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에서는 학칙에 '두발·복장 규정'을 정할 수 있다고만 되어 있을 뿐, '두발·복장 규정을 제한할 수 있다'고 되어있지 않다"면서 "학생, 학부모, 교사의 합의에 의해 학칙을 개정할 경우, 실제 권리의 주인인 학생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거나 노골적으로 무시되는 일들이 학교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배 위원장은 "인권은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면서 "학내 구성원은 학생인권조례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두발·복장에 관한 규정을 마련할 수 있고, 이는 기업체에서 사내 규칙을 노사합의에 따라 정한다 할지라도 근로기준법을 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강조했다.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학생인권조례 정착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태그:#학생인권조례, #서울학생인권조레, #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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