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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85호 크레인에서 올라 투쟁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의 소식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간간히 올라왔다. 트위터를 다시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김 지도위원이 트위터만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보신각 앞에서 매주 화요일에 진행하던 해고노동자을 위한 문화제에서 목발을 짚고 나온 송경동 시인을 만났다.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러 가려는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그 버스에 같이 탑승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지난해 6월 11일(토) 제1차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용역과 경찰로 가로막혀, 담 밖에 서서 크레인 위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 수밖에 없었다. 몇몇 시민은 크레인 아래 서고자 담을 넘었다는 이유로 언론과 방송에 의해 폭도에 범죄자가 돼 있었다. 그것이 제 2차 희망버스가 기획된 이유다.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이번 투쟁에서 우리가 패배한다면 어차피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 한 사람이 죽어서 많은 동지들을 살릴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 고 김주익의 유서 중

 

2003년 '정리해고 전면 중지'를 외치며, 85호 크레인에 올라 129일을 외롭게 투쟁하던 김주익 열사는 밥을 올려주던 밧줄에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2년 뒤 김주익 열사와 둘도 없는 사이였지만, 집안 문제로 파업에서 이탈했던 곽재규 열사가 오전에 김 열사가 목을 맨 크레인 앞에서 조문을 한 뒤 오후에 도크에서 투신해 또 생을 마감했다.

 

김주익의 목숨 값으로 '정리해고'는 철회되었지만, 김진숙 지도위원은 크레인에 오르기 전 까지 8년 동안 불을 때지 않은 방에서 지냈다. 김주익과 곽재규의 죽음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2011년 한진중공업에 또 다시 정리해고 바람이 불었다. 사측은 290명의 해고자 명단을 신고했고, 김진숙 지도위원은 2011년 1월 6일 크레인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 편지를 남기고, 홀로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여기, 또 한 마리의 파리 목숨이 불나방처럼 크레인 위로 기어오릅니다. 이렇게 조합원들 잘려나가는 거 눈뜨고 볼 수만은 없는 거 아닙니까. 우리 조합원들 운명이 뻔한데, 앉아서 당할 순 없는 거 아닙니까.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정면으로 붙어야 하는 싸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한진 조합원들이 없으면 살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해서 우리 조합원들 지킬 겁니다." - 김진숙 지도위원 1월 6일 편지 중

 

두 명의 동료를 잃은 죽음의 크레인 위에서 반드시 살아서 걸어 내려오겠다는 가녀린 체구의 쉰두 살 여성은 크레인 위에서 겨울을 나고, 봄을 지내고, 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이를 살리려, 초여름에 시작된 희망버스는 가을 소풍으로, 또 다시 찬바람이 부는 11월로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10일 오후 3시 20분경, 마침내 김진숙은 자신의 약속대로 85호 크레인을 걸어 내려 수 있었다.

 

'해바라기' 탄생 과정

 

지난해 2월 말 경기도 평택의 한 아파트에서 통장 잔고 4만 원과 카드빚 150만 원, 두 남매를 남겨둔 채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 임무창(당시 44)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 심근경색. 남매의 엄마는 재작년 4월 옥쇄 파업 이후 시달리다 우울증으로 자살을 했다. 13번째 죽음. 부산에서는 임씨의 장례가 치러지던 날, 차 안에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을 했다. 13명 가운데 자살이 8명, 돌연사가 7명이었다. 정신과 의사는 "배우자 사망, 해고나 파업처럼 심리적·정신적으로 상처가 크게 남은 것은 자살과 직접적이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로 무급휴직자였던 임씨의 죽음으로 남매가 고아가 되자, 사회각처에서 무관심이 부른 죽음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 박사 부부는 심리치료를 위한 상담을 시작했고, 쌍용차 고아 남매를 돕겠다는 문의도 이어졌다. 가수 박혜경, 명진 스님, 김제동씨가 남은 쌍용자동차 가족들을 위해 평택을 찾아 함께 했다.

 

페이스북에서는 임재해(안동대·민속학) 교수의 제안으로 '쌍용자동차 남매를 위한 후원모임'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정연순 민변 사무총장, 김정헌(서울문화 재단 이사), 박재동 화백이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준비 모임이 두 번 이어지면서 먼저 보신각에서 매주 화요일 쌍용자동차와 해고노동자를 위한 '문화제'를 시작하기로 했다.

 

크레인 위에서 투쟁하는 살아 내려 온 김진숙 지도위원과 '희망버스'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죽음과 쌍차 남매는 시민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하지만 꾸준히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심리치유를 이어 온 정혜신 박사와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원회는 심리치유 공간 '와락'을 마련했다. 늦게나마 '해바라기(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아이들과 함께하는 모임)' 도 한걸음씩 작은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깔깔깔 희망버스', 그리고 또 다른 희망

 

4월 25일 김진숙의 85호 크레인과 희망버스를 다룬 다큐멘터리 <깔깔깔 희망버스>를 봤다. 그 작품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작지원 작품이다. 부제 '진숙과 나'에서 알 수 있듯이 "그저 미안한 마음과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었던 마음, 영상에 담고 싶었던 단순한 마음으로 올랐던 1차 '희망버스'가 삶을 바꿔 가는 과정"을 기록했다. 또한 "감독인 내가 내레이션 형식으로 담담하게 담아냈으며, 희망버스를 탄 사람이 정리해고로 발생한 투쟁현장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마니아다. 매년 빼놓지 않고 꼭꼭 챙겨 본다. 올해는 쌍용자동차 22번 째 희생자 이윤형씨의 대한문 분향소를 가느라 폐막식이 있던 4월 25일에야 이수정 감독의 <희망버스>를 보러 오라는 문자를 받고서야 알게 됐다. 

 

희망버스는 모두 6번 탔다. 이소선 어머니의 영정을 모시고 갔던 희망버스 특별편까지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이수정 감독과 인터뷰도 두세 번했다. 페이스북에서 시작됐던 소금꽃 나무 100만 독자 운동 등의 소식을 <오마이뉴스>를 통해 알렸기 때문이었나 보다. 영화에서 나의 인터뷰 장면은 한 컷도 나오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희망버스를 탔던 때의 기억이 떠올라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영화를 봤다.

 

대체로 편안한 일상을 살던 이수정 감독은 "우연히 타게 된 1차 희망버스로 제작 중이던  다큐멘터리를 뒤로하고, 희망버스를 5번이나 타면서 '깔깔 희망버스'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4월 19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제 14회 서울국제 여성영화제에 <깔깔깔 희망버스>라는 다큐멘터리를 출품했다. 또한 지속적으로 '희망버스' 그 이후의 투쟁 현장을 담아내기 위해 지원금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7일 쌍용자동차 노조가 설치한 평택 공장 앞 텐트를 시작으로  2011년 12월 23일, 제 1차 희망텐트 '죽음의 공장 쌍용자동차 1차 포위의 날'이 있었다. 제 2의 '희망버스' 움직임이 '희망텐트'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것이다. 희망텐트와 희망뚜벅이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우리는 20번 째 죽음도, 21번 째 죽음도, 22번 째 죽음도 막아내지 못했다.

 

사실, 1차 희망버스에 탑승했던 대부분의 시민들은 나처럼 미안함과 죄책감을 덜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혼자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 살리겠다고 추운 크레인에 올라 150일이 넘게 투쟁 중인 사람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그런 시민들의 마음이 모아져 '희망버스'가 되었고, 희망의 사다리가 되어 김진숙을 땅에서 만날 수 있는 희망사다리가 됐다.

 

쌍용자동차 대량해고로 드러난 '정리해고'의 문제점은 반드시 해결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한 사업장의 정리해고 문제나 그 사업장에서 일하다가 잘린 해고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적 문제다. 이 모든 것이 시민이 인식하고, 함께 구조를 바꿔내기 위해 마음을 모을 때 가능해질 것이다. 

 

그저 미안한 마음에 하나, 둘 마음이 모아져 탔던 '희망버스'가 김진숙을 죽음의 85호 크레인에서 산 자의 땅으로 내려놨다. 대한문 앞 분향소가 22일째를 맞고 있다. 다시 한 번 민중의 작은 희망이 모여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원직 복직'이라는 멋진 '희망버스' 성공담을 만들어 내고, 이수정 감독의 제2의 '희망버스'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대한문 앞 분향소는 49제인 5월 18일 까지 이어집니다. 시민들의 함께하는 마음이 힘입니다.


태그:#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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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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