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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찍은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
 멀리서 찍은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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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면에 '탑리'가 있다. 국보 77호인 5층 석탑이 마을의 이름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런데 안평면에도 '석탑리'가 있다. 이는 안평면에 대단한 돌탑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마을 이름을 '석탑리'라 지었을 정도인 것을 보면,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석탑이 안평면에 존재할 것은 자명하다. 과연 어떤 탑일까.

문화재자료 301호인 이 탑의 정식 이름은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方壇形積石塔)이다. '방(方)'은 '네모', '단(壇)'은 '마루', '형(形)'은 '모양'이므로,  석탑이 '방단형'이라는 말은 곧 탑이 '네모난 마루처럼 생겼다'는 뜻이다. 납작납작한 돌(石)들을 땅에 죽 깔고 쌓아(積) 사각형의 1층을 만들고, 그 위에 그보다 조금 작은 2층 네모를 만들고, 다시 더 작은 3층 네모를 얹었다.

이 탑을 보면, 금관가야 마지막 임금 구형왕의 묘라고 전해지는 경남 산청의 돌무덤이 떠오른다. 물론 무덤인 구형왕릉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석탑리의 것은 충분히 탑의 모양을 갖추었다. 탑리와 빙산사터의 5층 탑처럼 감실(龕室)도 있다. 다만 두 탑이 정면에 하나의 감실만 있는데 비해, 이곳 석탑리 방단형 석탑은 동서남북 네 개의 감실이 있다. 그런데 누가 훔쳐갔는지, 아니면 돌들이 내려앉아 그 속에 파묻혔는지 알 수는 없으나 네 감실 중 한 곳에만 작은 불상이 남아 있다.

의성 안평면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왼쪽)과 경남 산청의 구형왕릉. 실물을 보지 못한 사람도 사진을 보면 둘의 모양이 상당히 닮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의성 안평면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왼쪽)과 경남 산청의 구형왕릉. 실물을 보지 못한 사람도 사진을 보면 둘의 모양이 상당히 닮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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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드문 탑이다. 등산로나 사찰 입구에 보면 작은 돌들을 쌓아 만든 '돌탑'이 흔한데, 그 방법을 발전시켜 이처럼 정말한 탑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지 여겨진다. 나무로 목탑을 만들 재주도 없고, 돌을 벽돌처럼 가다듬어 모전석탑을 세울 줄도 모르고, 더욱이 본격적인 석탑을 건립할 능력을 갖추었을 리도 만무한 일반 백성이 산천에 무수히 깔린 납작납작한 돌들을 주워, 차곡차곡 쌓은 끝에 탑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누가, 언제, 이 탑을 만들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안내판도 그에 대해서는 전혀 말이 없다.

보통의 탑과는 달리 1층이 너무나 넓어, 사진을 찍으려고 시도해 보아도 성과가 없다. 광각렌즈 없이는 전경을 사각형 안에 담을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축대 아래로 내려가 멀찍한 곳까지 뒷걸음질을 친다. 마침 논밭에 뿌리려고, 농부가 비료포대를 쌓아놓은 것이 있어 그 위로 올라가니 촬영하기에 아주 적격이다.

"알지 못하는 농부님, 고맙소이다."

제대로 찍힌 방단형 적석탑 사진을 보며,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방단형 적석탑의 감실. 작은 불상이 보인다.
 방단형 적석탑의 감실. 작은 불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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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단형 석탑을 떠나, 운람사를 찾아간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논밭과 그 뒤의 나지막한 산들, 얕은 골짜기 곳곳에서 붉게 익어가고 있는 사과 열매가 나그네의 마음을 잔잔하게 흔들어댄다. 사람이 없어 길은 한적하되, 은은한 풍경이 있어 쓸쓸하지는 않다. 맑은 바람이 불어와, 잠시 멈춰서서 한번 심호흡을 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길을 가노라니, 이곳을 '안평'면이라 부르는 까닭이 저절로 이해가 된다. 의성군 홈페이지는 안평면의 이름을 놓고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초기 정착 단계부터 지역이 평온하고 (사람들의) 마음씨들이 착하여 '평안하다'는 의미에서 안평(安平)이라 칭(稱)하였다"고 설명했는데, 이 길을 보니 '과연 그렇겠다' 싶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347m에 지나지 않는 천등산(天登山)을 '하늘(天)로 오르는 (登)산'으로 믿으며, 그 둘레에 동그랗게 마을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니, 그 순박함이야 더 따져볼 것도 없는 일이다.

운람사 전경
 운람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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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의 이름 운람(雲嵐)도 그렇다. 구름(雲)과 산안개(嵐), 이 두 글자를 보고 사찰을 떠올릴 사람은 없다. 그저 평화롭고 신비롭고 조용한 느낌일 뿐이다. 안평면에 있으니, 절 이름도 이처럼 아늑해진 것일까. 사찰이 앉아 있는 땅이 운중반월(雲中半月), 즉 구름(雲) 가운데중 (中), 반(半), 달(月)이 솟은 모양이라고 해서 절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운람사에서 내려다본 아득한 풍경
 운람사에서 내려다본 아득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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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은 높은 석축 위에 있다. 안 그래도 천등산 정상부에 있는 사찰인데, 석축까지 저렇듯 높으니 아래에서는 절 집이 보이지 않는다. 쳐다보는 사람은 마치 땅 속에 파묻힌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 잡힌다.

아니나 다를까, 석축 위로 올라보니 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3층 석탑도 기단(基壇) 부분이 거의 흙 속에 묻혀 있다. 몸의 반을 땅에 묻은 채, 천년이 넘는 긴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탑은 아득하게 먼 팔공산의 푸른 듯 하얀 산줄기를 바라보며 말이 없다.

그 옆에 나도 탑처럼 서서 안개가 피어오르는 깊은 산중의 경치를 한참 동안 묵묵히 바라본다. 이 절의 이름이 된 구름(雲)과 산안개(嵐)가 어느샌가 내 몸을 휘감아 돈다.

석축 위에 서서 아래를 바라본다. 절이든 정자든 그곳에 오르면 사람은 언제나 아래를 내려다보게 마련인 까닭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소나무들이 무리를 이루어 대단한 운치를 뽐내고 있는 오른쪽 풍경이 눈에 확 들어온다. 아까 올라오면서 미처 보지 못한 아름다움이다. 이, 아까운 경치를 놓칠 뻔하다니! 고은의 시 <그 꽃>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소나무숲으로 들어간다. 나무들이 빽빽한 큰 숲은 아니지만 솔잎들이 뿜어내는 향기만은 온통 산자락을 가득 메우고도 남는다. 깨끗하게 나이든 거북의 등처럼, 소나무 등걸은 그린 듯 깔끔한 껍질 무늬를 보여주고 있다. 혹자는 우리나라 소나무만큼 멋있게 굽으면서 자라는 나무도 지구상에 없다더니, 정말 그 말이 실감난다.

솔숲 향기에 취해, 운람사를 떠나지 못한다. 일반인이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것이 허용된 진흥왕 5년(544) 이래 우리나라의 그많은 스님들 중에는, 득도를 하겠다는 뚜렷한 의지까지는 갖추지 못한 채, 이처럼 절의 향기에 취해 부처님께 귀의한 이도 분명 한 분은 계시리라. 소나무 그늘에 앉아 시원한 산바람을 쐬며, 엉뚱한 생각에 하염없이 젖어본다. 깊은 산중의 사찰은 이래서 좋다. 

운람사의 아름다운 솔숲
 운람사의 아름다운 솔숲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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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의성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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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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