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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산에는 진달래꽃 절정...저만치 쪽빛 바다와 이수도가 보이고...
▲ 대금산 진달래꽃... 대금산에는 진달래꽃 절정...저만치 쪽빛 바다와 이수도가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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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김용택) '봄날'을 이렇게 노래했다.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줄 알그라."

봄은 밖으로, 밖으로 우리를 불러낸다.

이것 좀 봐, 죽은 듯 앙상했던 나뭇가지에서 꽃을 피웠어. 기적이야. 매화꽃, 산수유꽃, 개나리꽃, 목련꽃, 벚꽃... 피고 지고 피고 지더니 온 산을 연분홍 연보라 빛으로 물들였어. 진달래꽃도 곧 지고 말겠지. 이것 좀 봐.  메말랐던 나뭇가지에서 어떻게 저렇게 움이 돋고 연한 새순이 봄볕과 봄비에 하나둘씩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피어나는지, 온산을 유록빛으로 점점 물들여갈 수 있는지. 이것 좀 봐. 봄은 이토록 경이롭구나. 저기 봐, 봐. 이리 좀 와서 좀 보렴. 봄이 얼마나 찬란한지. 저 약동하는 숲과 산과 들을 좀 봐...들불을 지핀 듯 연두 빛으로 불을 지르고 있어. 이것 좀 봐. 봄 멀미 꽃 멀미로 현기증 나는 봄이야.

등산선교회 산행대장이 업무 때문에 거제에 갈 일이 또 생겼다며 번개산행을 공지했다. 다섯 명의 사람이 교회에서 모여 출발. 오늘(18일) 번개산행 목적지는 거제 대금산(해발437.5m)이다. 올해 안에 거제 10대 명산을 모두 가 보는 것이 목표 중에 하나라고 큰 소리 치는 산행대장 임 집사님과 함께 연분홍빛 꽃불을 지핀 대금산을 만나러 간다.

부산을 벗어나 거가대교를 거쳐 거제시에 접어들었다. 산행대장이 거제시에 있는 모 병원에서 업무를 보는 사이 우린 잠시 기다렸다. 병원장비 A/S 문제가 해결이 잘 안 돼서 다음에 다시 한 번 더 와야 한단다. 어쩐다. 일이 끝나고 이젠 우리의 진짜(?) 목적지로 향했다. 일 때문에 바짝 신경을 썼기 때문일까. 임 집사님의 내비게이션도 문제를 일으켰다. 우린 대금산 들머리로 삼은 절골 마을이 내비에 나타나지 않아 한동안 길 위에서 헤맸다. 한참 만에 제대로 방향을 잡았고 절골 마을로 향했다.

대금산 만나러 가는 길...
▲ 대금산... 대금산 만나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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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 절골 마을로 접어들기 전에 길가에 대금산 등산로가 표시돼 있었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바다를 끼고도는 큰 길을 벗어나 오른쪽 시멘트 언덕길로 접어들었다. 차를 주차할 만한 공터가 나왔다. 신발 끈을 바짝 묶고 숲길로 들어섰다. 시멘트 길이 완만한 경사 길로 얼마간 이어지다가 작고 아담한 마을이 나왔다. 절골 마을. 몇 호 안 되는 낮고 작은 집들이 엎드려 있을 뿐, 마을은 조용했다. 다락논밭이 보였다. 높지 않은 산이 울타리처럼 두르고 있는 마을 옆에 들과 산은 연초록으로 점점 물들어가고 있었다.

임도 끝. 가파른 숲길로 접어들었다. 연한 새순이 돋고 있는 나무들이 눈길을 끌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숲길엔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서늘했고 숲은 조용한 활기로 가득했다. 숲은 봄으로 갈아입고 봄을 입느라 나무들은 숨차 보였다. 숲속 길을 얼마쯤 걸어가다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늦게 시작한 산행, 배가 고팠던 까닭이다.

진달래
▲ 대금산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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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멀리 희미하게 거가대교가 보이고 섬들과 쪽빛 바다와 푸른 하늘...그리고 연분홍 진달래가 멋진 조화를 이루고...
▲ 거제 대금산... 진달래꽃...멀리 희미하게 거가대교가 보이고 섬들과 쪽빛 바다와 푸른 하늘...그리고 연분홍 진달래가 멋진 조화를 이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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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이 동그랗게 모여앉아 펼친 도시락. 밥과 반찬, 간식은 다채로웠다. 김밥, 찰밥, 현미밥에 반찬도 골고루였다. 해초무침, 아몬드 호박씨를 넣고 볶은 멸치와 매실장아찌 등등에 식사 후에 후식은 또 어떻고. 오미자차와 홍초, 결정적으로 우리의 입에서 즐거운 탄성이 터져 나온 건 배 권사님이 갖고 온 수삼이었다. 수삼을 질겅질겅 씹으며 모두들 만면에 웃음꽃을 피웠다. 식사시간엔 웃음꽃이 팡팡 피었다. 너무 맛있게 먹다보니 김밥이 몇 개 남았다.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 사람이 먹기로 했고 다 먹어치우고 나서야 일어섰다.

연초록빛을 갈아입느라 부산스러운 산길을 내처 걸었다. 오르막길을 얼마쯤 걸어올라 가다보니 진달래군락지다. 평일인데도 대금산은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꽃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꿀벌이 꽃을 보고 날아들듯이. 봄 동산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진달래꽃 사이사이에서 꽃에 취해 꽃 멀미를 하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왔을 땐 진달래가 거의 다 지고 없었는데, 올핸 열흘 정도 늦게 핀 덕분에 불이 활활 타오르듯 능선 가득 연분홍빛 물결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정상에서...
▲ 대금산...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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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산은 내 고향마을 인근에 있는 산 가운데 하나다. 지금이야 차를 타고 얼마 안 걸리지만 대중교통도 없이 먼 길도 걸어 다녔던 그 시절엔 꽤나 멀게 느껴졌던 산이다. 어렸을 땐, 봄이 돌아오면 산과 들을 쏘다니며 나물을 캐고 쑥을 캐고 참꽃을 따고 먹고 했었다.

산과 들을 쏘다니다가 허기가 지면 참꽃을 따서 먹었고 혀도 입술도 보랏빛으로 진하게 물들었다. 한손에 꽃을 따 담은 바구니를 들고 한손엔 가지째 꺾은 참꽃을 한 아름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와 작은 항아리에 물을 담아 꽃을 꽃았다. 그러면 집안이 분홍빛으로 생기가 넘치곤 했다. 그날들이 엊그제 같다.

여수 영취산과 마산 무학산과 더불어 3대 진달래 명산으로 불리는 대금산(해발 437.5m)은 신라 때 쇠를 생산했던 곳이라 하여 대금(大金)산이라 붙였다 한다. 산세가 순하고 비단폭 같은 풀이 온 산을 뒤덮고 있어 크게 비단을 두른 산이라 하여 대금(大錦)이라고도 한다는데, 산세가 유순하고 그리 높진 않지만 정상은 바위봉우리로 되어 있어 사뭇 우람하고 우뚝해 보인다. 또한 358m, 285m의 호위봉인 중봉이 대금산 아래로 솟아 있다.

정상에는 전에 없던 벤치가 놓여있다...벤치에 앉은 여인...
▲ 대금산... 정상에는 전에 없던 벤치가 놓여있다...벤치에 앉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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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돌아오고 진달래축제가 개최될 즈음에서 꽃이 질 때까지 꽃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은 계속 이어진다. 특히 대금산 진달래군락지는 7~8부 능선쯤에서 정상까지 진달래로 뒤덮고 있는데다, 푸른 하늘과 쪽빛 바다, 거가대교는 물론 해안선까지 조망이 탁월하다. 정상으로 향하는 발길을 자주 멈추고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완만한 경사를 이룬 진달래군락과 그 앞에 펼쳐진 쪽빛 바다 빛이 자꾸만 시선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인사하며 "어디서 오셨어요?"하고 묻는 임 집사님. 함께 걷는 우리들도 마주 오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대금산 정상을 바로 앞에 두고 역시나 임 집사님이 "안녕하세요. 어디서 오셨어요?"하고 물었다. 몇 명의 중년아주머니들이었다. 대전서 왔다고 했다. 알고 보니, 배 권사님의 언니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분으로 배 권사님도 잘 아는 분이었다. 거제 대금산에서 부산과 대전에서 온 두 사람이 만난 것이었다. 이런 곳에서 만난 것에 놀라고 기뻐서 떠들썩하게 반가움을 표시하고 아쉬움을 표하며 헤어졌다. 세상은 넓은 듯 지독히 좁은 곳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정상 근처에서 내려다보다...
▲ 대금산... 정상 근처에서 내려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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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대금산 정상에 당도했다. 바로 눈앞에 펼쳐진 바다와 거가대교가 한 눈에 조망되었다. 바람은 상쾌했다. 눈길 아랜 진달래, 눈을 들어보면 먼 바다. 진달래와 바다 빛이 싱그럽고 생생했다. 대금산 정상 표시석 옆에는 전에 없던 벤치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바다를 바라보고 놓여 있어 운치를 더했다. 조용히 이곳에 올라 바다를 하염없이 내려다보며 호젓이 앉아있고 싶을 만큼 좋았다.

진달래꽃 만발하고 꽃에 취해 날아든 꿀벌처럼 꽃 사이에서 반쯤 정신을 놓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취한 채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꽃 사이로 걷는 발걸음은 붕붕 떠 있는 듯했다. 진달래꽃은 절정, 이제 봄비라도 한두 번 오고나면 이 꽃도 지고 말리라.

우리가 들머리 삼았던 절골마을에서 반대쪽 편...
▲ 대금산... 우리가 들머리 삼았던 절골마을에서 반대쪽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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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에서...
▲ 대금산... 하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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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에 도착해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양지바른 곳에 앉았다. 벚꽃이 바람에 분분이 날렸다. 꽃비가 내리는 안부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임 집사님이 아이스크림을 입에 댄 순간 혀에 붙어 떨어지지 않아 잠깐 동안 힘들어했다. 처음엔 농담인가 했는데 실제 상황이었다. 난감했다. 다행히 조금 뒤에 아이스크림이 혀에서 떨어졌다. 웃지 못 할 돌발상황이었지만, 우린 본인의 고통도 모른 채 키득키득 웃었다.

실제로 산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입술과 혀에 피가 나는 사고도 일어난다고 했다. 한 아가씨가 황매산 철 계단 앞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들자마자 입에 갖다 댔는데 그만 입에 붙어버렸고, 입술과 혀에서 피가 철철 흘렀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저 흘려들을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드라이아이스에 넣은 이동용 아이스크림은 공기에 노출되면 갑자기 더 압축되기 때문에 바로 입에 갖다 대면 혀에 붙는다고 했다. 한 번도 산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어 본 적이 없었기 망정이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사먹었다면 내가 그 피해자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산길 오르며 내려오며,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순간순간마다 웃음꽃이 퍼졌다. 파안대소하며 웃었던 하루. 대금산 진달래꽃 속에서 황홀했던 하루였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우리들의 웃음꽃은 내내 팡팡 터져서 엔돌핀이 넘치는 하루였다.

ⓒ 이명화

덧붙이는 글 | 산행수첩
거가대교휴게소(9:45)_거거대교진입(10:20)-시방마을-절골들머리(12:30)-
산행시작(12:40)-임도길-등산로시작(1시)-점심-진달래평원(2:15)_안부(2:18)-
대금산정상(2:45)-안부에서 휴식 후 출발(3:10)-들머리(4:10)



태그:#대금산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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