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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총선이 끝났다. 지금 세상의 관심은 온통 총선 결과에 대한 평가와 그것이 대선에 미치는 영향에 쏠려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하나의 재판이 있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박경신 교수에 대한 음란물 배포 혐의 재판이 그것이다. 선거운동 개시 하루 전날 첫 공판이 열린 이 재판은 향후 한국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어떤 상황에 처할지를 결정짓는 재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표현의 자유의 보호를 위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왔던 박 교수는 3월 28일 첫 공판에 임하면서, "나 자신이 표현을 이유로 피고인석에 앉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사건의 개요를 간단히 살펴보자.

한 네티즌이 자신의 블로그에 남성 성기 사진을 올린 것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삭제조치를 결정하였다.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으로서 해당 블로그에 대한 심의과정에서 강경하게 반대 입장을 밝혔던 박교수는 위원회의 삭제 결정에 항의하는 의미로 해당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했다. 이것이 2011년 7월 20일의 일이다. 이에 대해 박교수의 블로그 사진 자체를 다시 심의대상으로 하여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삭제결정을 내렸고, 박교수는 블로그에서 문제의 사진을 삭제했다. 하지만 한 시민단체가 7월 29일 박교수를 경찰에 고발했고 그로부터 무려 7개월 가까이 지난 2012년 2월 17일 서울서부지검은 박경신 교수를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몇 가지 쟁점을 생각해 보자. 이 사건은 진정 음란물 유포에 관한 것인가? 검찰은 음란물 때문에 기소한 것인가 아니면 박교수의 그간의 비판적 표현 때문에 기소한 것인가? 사진 게재 후 무려 7개월이 지나서야 기소한 이유는 무엇인가? 문제의 사진은 음란물인가? 음란물 유포를 처벌하는 것은 정당한가? 이들 질문에 대하여 하나씩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사건은 음란물 유포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미 박교수 스스로 이 점에 대하여 명백히 답을 밝혔다. 그는 "'음란물유포' 혐의인데 인터넷 상에서는 그보다 더 심한 음란물들이 올라오고 있다"며 "그런데 유독 나를 기소한 것은 정부활동을 비판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박교수는 이른바 미네르바 사건을 비롯하여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의 여러 조치들에 대하여 비판적 견해를 지속적으로 표명해 왔고,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강행하는 검찰에 대한 비판 역시 빠지지 않았다. 이번 검찰의 기소가 일종의 괘씸죄 기소가 아닐까 의심할 만한 대목이다. 이 점은 검찰의 기소시점을 보면 더욱 명백해진다.

문제의 사진이 박교수의 블로그에 게시된 지 7개월이나 지난 시점에 비로소 기소가 이루어진 것은 매우 이상하다. 더구나 이 사건이 시민단체의 고발로 시작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검찰의 태도는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박교수의 사진 게시가 음란물 유포에 해당한다면, 다른 사람에 의하여 그러한 행위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조기 수사와 조기 기소가 요구되는 것이 당연함에도 이처럼 기소를 늦추어 왔다는 것은 사건이 언론의 집중적 관심을 끌었던 이후에도 지속된 박교수의 비판활동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것이었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박교수의 사진게재가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해 왔던 '검열자일기'의 한 꼭지로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명백해진다.

박경신 교수는 2011년 5월부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해 왔고 그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하여 '검열자일기'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위원 활동을 시작한지 두 달 후인 7월 13일부터였다. 그리고 문제의 사진 게재는 '검열자일기' 제4회에 이루어졌다. 이 블로그 테마의 제목이 보여주듯이 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표현물 심의가 '검열'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고, 이 점은 그가 발표한 여러 논문들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마도 그가 '검열자'의 성격을 갖는 위원직을 맡게 된 것은 그 속에 들어가 검열의 확대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데 기여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고, '검열자일기'는 바로 그러한 확신의 소산일 것이다. 실제로 그는 검열자일기를 통해서 그 자신이 속해 있던 검열기관의 문제점을 낱낱이 밝힘으로써, 이에 대한 사회적인 논쟁을 이끌어내려고 했다. 이렇게 본다면 검열자일기 제4회의 사진 게재는 그가 수행해 온 일관된 검열비판 활동의 하나일 뿐이다. 결국 검찰의 기소는 박교수에 의해 수행되던 검열비판 활동에 타격을 줄 목적으로 이루어진 '표현의 자유 위축 기획'의 발현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일체의 기획은 그 자체가 범죄적이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는 그야말로 소중하게 품고 보호해야 할 지고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위축시킬 목적으로 기소를 하는 것은 가히 '반표현범죄'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검찰은 범죄사실이 있고 이를 입증했을 때 공익을 대표하여 이를 수사하고 기소함으로써 형사재판을 통해 국가형벌권이 발동되도록 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박교수의 기소를 통해 검찰이 행한 것은 범죄의 수사와 기소가 아니라 범죄의 '제작'이었다.

그러나 확신컨대, 검찰의 기소는 법원에 의하여 산산조각날 것이다. 문제의 사진 게재는 범죄가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음란물이란 전체적으로 파악할 때 오로지 성적 호기심에 호소하는 표현물로서 일체의 정치적, 사회적, 문학적, 과학적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이런 기준에 비추어본다면 박교수의 사진 게재는 애초에 음란물의 정의에 해당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미 많은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는 국가기관에 의해 이루어지는 '심의'라는 이름의 검열에 대한 엄중한 문제제기로서 그 자체 매우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음란물 유포에 대한 형법과 정보통신망법 등의 처벌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앞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음란물 개념에 대한 정의를 소개했지만, 이런 견해에 입각한다고 하더라도 특정한 표현물(예컨대, 박교수가 게재한 사진)이 음란물인지 아닌지를 누구나 동일하게 판단할 수는 없다. 설사 그 판단 주체가 법관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성적 호기심에 호소하는 것인지 아닌지, 어떤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그 표현을 접하는 사람이 가진 세계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섣불리 음란물 규제 자체가 부당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음란물 규제는 분명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음란물 개념이 매우 불확정적이고 불명확하다는 데 있다.

비록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음란물 개념이 죄형법정주의가 요구하는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될 정도로 불명확하지는 않다고 했지만, 음란물 유포 등의 처벌이 남용될 위험성이 매우 크다는 점만은 부정할 수 없으며, 이로부터 한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음란물의 규제, 특히 형사처벌은, 그것이 일정한 필요성과 정당성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매우 엄격한 제한 해석하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누가 보더라도 명백히 음란하다고 동의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닌 한 그것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의 기소에서는 어떤 엄격함도 읽어낼 수 없다. 그것은 남성의 성기 노출이라는 단 하나의 사실만을 이유로 처벌대상이 되는 음란물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검찰의 기소에는 남성우월주의의 흔적이 만연하다. 필자는 검찰의 기소, 그 이전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삭제 조치를 이끌어낸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문제의 사진이 '남성의' 성기를 노출한 것이었다고 본다. 그러한 판단에는 "노출되어서는 안 될" 금기를 깼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수많은 곳에서 여성의 성기를 묘사한 사진, 동영상, 그림 등을 접할 수 있지만, 그러한 표현물들이 음란물로 처벌되는 예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검찰의 기소에는 은연 중에 성차별의식이 팽배해 있는 셈이다. 어떤 이유로건, 이것은 명백한 공소권 남용이다.

검찰이 박교수를 기소한 그 날은, 박교수의 결혼기념일이었던 것 같다. 기소 다음날 있었던 한 토론회 자리에서 박교수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 기분이 얼마나 참담했을까? 표현의 자유의 보호와 신장을 위해 활발하게 연구 및 사회 활동을 벌여왔던 박교수에게 검찰의 기소라니? 이것은 검찰을 포함한 현재의 정부에 민주시민을 대우하는 기본적 자세조차 결여되어 있음을 웅변한다. 그러나 그러한 만행은 더 많은 사람에 의한, 더 진지하고 치열한 비판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박 교수는 여전히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하여 정력적인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전충남인권연대 웹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글쓴이는 김종서(배재대학교 법학부 교수) 대전충남민언련 상임대표 입니다.



태그:#표현의 자유, #박경신교수, #음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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