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큰애가 학교에 갑니다. 힘들겠지만 잘 헤쳐나가겠죠?
▲ 등교 큰애가 학교에 갑니다. 힘들겠지만 잘 헤쳐나가겠죠?
ⓒ 황주찬

관련사진보기


엄마 : "자, 다시 해봐!"
아들 : "때리지 마! 아프잖아! 기분 나빠!"
엄마 : "다시. 소리가 작잖아! 더 큰 소리로…."
아들 : "때리지 마. 아프잖아, 기분 나빠."
엄마 : "저쪽 가서 열 번만 더 외쳐. 목소리 크게…."

지난 17일입니다. 퇴근 후 아파트 현관문을 열려다 잠시 멈췄습니다. 큰애와 아내의 대화가 심상찮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아들 녀석이 누군가에게 맞았답니다. 며칠 전 중학생이 투신자살했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는데, 그 기사가 머리를 때립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들이 누군가에게 계속 맞고 다닙니다. 하늘이 노래집니다. 이를 어쩌죠? 재빨리 문을 박차고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짜고짜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누가 때렸어? 몇 대 맞았어? 선생님에게 말은 했니? 쏟아지는 질문에 아들이 울상입니다.

속이 상합니다. 득달같이 퍼부어 대는 질문에 아내가 잠시 숨을 좀 고르랍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사정을 들었습니다. 같은 반 친구인데, 꼭 두 명이 괴롭힌다고 합니다. 두 녀석이 번갈아 가며 선생님 몰래 손찌검을 하는데, 정작 괴롭힘을 당한 아들은 두 녀석이 때리면 마음속으로 생각을 한답니다.

"내 몸은 철갑을 둘렀다. 때려도 아프지 않다"고 말이죠.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속이 더 상합니다. 아내는 몇 주 전부터 아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답니다. 학교로 찾아가 담임선생님과 면담을 했지요. 

태권도 도장이라도 보내야 하나?

목에 상처가 났습니다. 담임 선생님과 함께 양호실에 들러 반창고를 붙였습니다.
▲ 상처 목에 상처가 났습니다. 담임 선생님과 함께 양호실에 들러 반창고를 붙였습니다.
ⓒ 황주찬

관련사진보기


선생님은 종종 있는 일이라며, 아직 어린 애들이니까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답니다. 저는 심각한데, 선생님은 자주 겪는 일인가 봅니다. 선생님과 면담에서 아무런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온 아내가 나름대로 학교 폭력을 막는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아내는 이 방법을 '사자후 교육'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차마 맞서 싸우라는 말은 못하고, 큰소리로 외치는 방법입니다. "아프고, 기분 나쁘니까, 때리지 마!"라고 아들에게 크게 말하랍니다. 손동작도 가르칩니다. 한 손을 쫙 펴서 앞으로 뻗은 다음 큰 소리로 외치는 방법입니다. 아들은 그 행동이 영 어색한지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 갑니다.

아내는 그때마다 더 큰소리로 외치라고 닦달합니다. 몇 번을 더 연습한 후에 아들이 목이 아프다며 이내 책을 집어 듭니다. 책에 머리를 묻고 있는 아들을 보니, 옛 생각이 납니다. 저도 어릴 적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괴롭힘을 당해본 경험이 있거든요. 한번은 더이상 안 되겠기에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저를 괴롭히던 친구도 많이 당황하더군요. 그 사건 후에 저를 괴롭히던 녀석과 둘도 없는 동무가 됐습니다. 그렇지만 아들이 제가 겪은 일을 되풀이하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그래서 책 읽고 있는 아들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 마음을 정확히 표현해. 싫으면 싫다고…. 아빠, 엄마 도움도 한계가 있단다. 결국, 네가 스스로 헤쳐나가야 해. 앞으로는 꼭 큰 소리로 말해야 한다. 알았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이 안쓰럽네요. 교사의 말처럼 정말 이런 일이 매번 일어나는 작은 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이런 상황이 쌓여 엄청난 사고가 발생하진 않겠죠? 아들이 다니는 학교뿐 아니라 많은 학교에 학부모들로 구성된 아이 지킴이 모임이 있더군요.

짧지만 확실한 표현... 때리지 마! 기분 나빠! 아프잖아!

학교 폭력 추방을 위한 결의대회도 여러 번 열었습니다. 그들이 외치는 소리가 헛구호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 아들에게 이런 일이 생기리란 건 꿈에도 생각 못 했는데, 막상 현실로 닥치니 많이 당황스럽네요. 태권도 도장을 보내야 할까요? 아니면 두 녀석을 찾아가 눈을 부라리며 한바탕 호통을 쳐야 할까요?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이것저것 방법을 고민해 봤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입니다. 아들을 괴롭히는 그 두 녀석도 자신들 집에선 깨물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엽고 사랑스런 자식일 테니까요. 어렵겠지만, 큰애 스스로 넘어야 할 산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아들 꽁무니 쫓아다니며 보호해 줄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되니까요.

한동안 아들은 '사자후' 토해내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겠군요. 한바탕 아파트가 소란스럽겠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둘째 녀석은 누군가를 때리고 다닐 것 같습니다. 이것도 고민이네요. 큰애는 맞고 오고, 둘째는 때리고 집에 들어오면 어쩌죠?

아직은 초등학교 입학을 하지 않았으니, 둘째 녀석 고민은 잠시 접어두렵니다. 지금은 큰애에게 집중해야죠.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아들아! 배에 힘을 주고 큰 소리로 외쳐라. 때리지 마! 기분 나빠! 아프잖아!'라고 짧지만 확실한 표현이네요.


태그:#학교폭력, #초등학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