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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2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한국석유공사(Petronet) 국제유가 동향(2011년 3-4월)
 한국석유공사(Petronet) 국제유가 동향(2011년 3-4월)
ⓒ 한국석유공사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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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지하철 타고 출퇴근해요. 뭐, 주유소 사장이라고 별다른가요? 올라도 너무 오르네요."

시골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가기 위해 오랜만에 주유를 했다. 내가 "리터당 2000원이 넘는 휘발유 가격에 기름 넣기가 겁난다"고 하자, 주유소 사장은 자기도 죽겠단다. 주유소 사장은 "자가용 출근은 포기한 지 오래고, 날마다 오른 가격표를 내걸기도 미안하다"고 한다. 기름값 연속 100여 일째 상승(4월 17일 서울지역 기름값은 102일 만에 1.73원 하락했다). 이 정도면 '기름값이 미쳤다'는 표현 딱 들어맞아 보인다.

왜 이렇게 오르는 걸까. 아무리 중동의 불안요인이 반영된 결과라고는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만 가파르게 기름값이 오르는 것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몇 차례나 나서고, 장·차관이 머리를 맞대고 내놓은 유가 안정대책. '최소한의 약발이라도 먹혔다면 이렇게까지 올랐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얼마가 더 오를지 가늠도 안 되는 기름값. 서민 경제는 하루가 다르게 주름살이 깊게 파이고 있다.

오른 휘발윳값에 주유소 사장도 지하철로 출퇴근

오피넷(opinet) 2012년 4월 2주 국내 석유제품 가격 동향.
 오피넷(opinet) 2012년 4월 2주 국내 석유제품 가격 동향.
ⓒ 오피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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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안정대책회의에서 기름값을 두고 '발상의 전환', '원천적 검토'등을 언급하며 기름값 관리 방안 검토를 지시했다고 한다. 이어 18일 박재완 기획재정부장관이 위기관리대책회의를 주재하고, 19일 지식경제부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등 5개 부처가 과천청사에서 '석유제품시장 경쟁촉진 및 유통구조의 근본적 개선'을 위한 유가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발표된 유가안정 대책에는 △ 알뜰주유소 확산 △ 석유제품 혼합판매 확산 △ 석유 전자상거래 활성화 △ 제5공급사 참여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이할 점은 현 정유 4사의 과점체제를 막기 위해 삼성토탈을 제5공급사로 참여시키는 방안도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3일 과점형태 문제를 지적한 지 6일 만에 나온 조치이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못해 냉소적이다. 일각에서는 '말치레의 재탕 아니냐'는 혹평도 나오고 있다. 사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에 발표된 유가안정 대책도 기존에 발표된 유가대책과 별반 다를 바 없고, 유류세 인하 등 핵심적인 내용은 여전히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제5공급사로 삼성토탈을 참여시킴으로서 '국민의 고통을 이용한 재벌 밀어주기'라는 비난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이란 핵문제를 둘러싼 중동지역의 불안이 원유의 공급 차질과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어느 뉴스 할 것 없이 비슷한 원인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이런 말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여야만 할까. 원유가 비싸고, 중동의 불안은 우리로서는 불가항력적인 일이니까 허리띠 졸라매고 참아야 하는 것일까. 그러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 많다.

한국석유공사 누리집(한국석유정보망·petronet)만 보더라도 두바이유 등 원유 가격은 3월 21일 이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 2일에 발표된 <국내 석유제품 가격동향>이라는 보고서에서도 이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란 핵협상 재개, 중국의 석유 수입량 감소 등으로 인해 2주 연속 내림세를 보이고 있어…"라며 내림세를 직시하고 있다.

이런데도 휘발유 등 기름값은 날마다 기록을 갈아치우며 상승했다. 또 정부는 원유 가격이 높아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이런 형태는 정유사도 마찬가지다. 국제 원유 가격이 오를 때마다 실시간으로 가격 인상에 반영해오던 정유사. 2주 연속 국제 유가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음에도 국내 유가에 이를 반영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국제 원유가격 가격이 국내 기름값에 영향을 미친다는 원론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기름값이 102일 연속 상승한 이유가 국제 원유 때문이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가 기름값 안정을 위해 내놓은 '특단의 조치'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오늘 발표된 알뜰주유소 확대 활성화, 유통구조 개선 정책도 이명박 정부의 유가 안정대책 핵심 정책이었다. 이번에는 빠져 있지만 대형마트에 주유소를 허가해 가격 인하를 유도한다는 계획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정책들은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 알뜰 주유소는 일반 주유소에 비해 가격 차이도 별로 없었다. 게다가 주유소 쥐어짜기 가격 인하 정책은 무료세차 폐지로 이어져 소비자들의 피해만 커진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3~6% 주유소 마진 쥐어짜는 MB 유가안정 대책

100여 일 동안 꼬박 상승 곡선을 그렸던 기름값. 이 정도면 기름값이 미쳤다는 말이 자연스럽다(4월 18일 갈무리).
 100여 일 동안 꼬박 상승 곡선을 그렸던 기름값. 이 정도면 기름값이 미쳤다는 말이 자연스럽다(4월 18일 갈무리).
ⓒ 한국주유소협회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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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석유공사의 자료를 보더라도 이런 정책이 성과를 거둘 수 없는 이유는 명백히 드러난다. 기름값 구성 중 주유소의 마진은 3~6% 내외로 나타나고 있다. 3~6% 주유소 유통마진을 줄인다고 해서 가격이 얼마나 떨어질까. 또한, 아무리 알뜰주유소라고 해도 최소한의 유통 마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운영에 어려움을 격을 수밖에 없다. 3~6% 주유소 유통마진 쥐어짜기 유가안정 대책. 실효성도 없고 부작용만 속출하고 있다.

실제 소규모 동네 주유소의 폐업은 속출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전국 주유소 개수는 102개가 줄었다(2010년 말 대비·한국주유소협회). 또한, <경기일보>에 따르면 경기도만 하더라도 2500여 개의 주유소 가운데 매매 물건으로 올라온 주유소는 350여 개(14%)에 이른다고 한다. 정부가 주유소를 쥐어짜 기름값을 낮추겠다고 했던 정책은 소비자에게는 서비스의 질 하락을, 소규모 주유소에게는 폐업과 경영난을 야기했을 뿐이다. 가격 인하는 이뤄지지 않고, 대형 자본의 유류시장 점유율만 높아진 것은 정부의 근시안적인 대책이 낳은 필연의 결과였다.

유류세를 인하해야 한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휘발윳값의 50%에 육박하는 유류세를 손보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유가안정은 어렵다'는 문제제기는 비단 야당이나 시민단체의 요구만이 아니었다. 지난 2007년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하자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던 박재완 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국의 2배에 달하는 기름값을 낮추기 위해 유류세 인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 적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조차도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유류세 10% 인하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2011년 6월. 휘발윳값이 2000원을 육박하고 물가가 겉잡을 수 없이 오르자 다급해진 이명박 정부는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겠다고 했었다. 당시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기름값이 오르면 세수도 늘어나니까 유류세 인하도 검토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김황식 국무총리조차도 지난 2011년 4월 6일 국회 대정부질의 당시 "세수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유류세 인하 부분도 검토할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런 유류세 인하 논의는 기름값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펼쳐지지도 않고 슬그머니 접고 말았다.

또 다시 휘발윳값이 리터당 2000원을 넘어서면서 유류세 인하 요구가 빗발치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130달러 정도로 오르면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유류세의 일괄 인하보다는 서민들을 위해 탄력적으로 인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는 하지만 진전된 논의는 나오지 않고 있다. 유류세 인하 의지 없이 이번에도 번번이 실패했던 정책으로 꺼내들고 '여론의 소나기를 피해보자', '국제유가가 내려갈 때까지 버텨보자'는 식의 안일한 유가안정 대책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유류세를 내려라, 당신들의 공약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월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4주년을 맞아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월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4주년을 맞아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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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름값은 국제 원유가격의 영향뿐만 아니라, 환율의 영향도 절대적으로 받는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1달러에 947원이었던 환율은 이명박 정부 내내 1200원 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수출에 빨간불이 켜졌고, 경제성장률이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 현재도 환율은 1130원를 유지하고 있다.

환율이 오르면 그만큼 국내 기름값도 부풀려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고환율 정책은 수출 대기업에 막대한 부를 안겨줬지만, 4년 내내 기름값 폭등으로 서민들에게 고통을 전가했다.

유류세 인하가 답이라고 생각한다. 환율을 일시에 조정할 수 없을 뿐더러 그렇게 하는 것 자체도 바람직하지 않다. 19일 발표된 '석유제품시장 경쟁촉진 및 유통구조의 근본적 개선'을 위한 유가안정 대책에는 유류세 인하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다. 그러나 기름값의 50%를 육박하는 유류세를 인하하지 않고서는 국제유가가 오를 때마다 국내 기름값이 쓰나미처럼 서민 살림살이를 위협하는 악순환을 막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조차도 지난 대선 공약으로 유류세 10% 인하를 약속하지 않았는가. 박재완 기획재정부장관도 지난 국회의원 시절 유류세 인하를 역설하지 않았는가. 골목상권을 지키고 서민들에게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던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도 지난 대선을 위한 한나라당 경선에서 유류세 인하를 언급하지 않았는가. 지금에 와서 유류세 인하가 부작용이 있다라고 한다면 그 당시 유류세 인하를 발언들은 부작용 검토도 없이 표를 얻고 보자는 포퓰리즘의 발상이었는가?   

3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19개월 만에 2%대로 떨어졌다고 언론에서 야단들이다. 그러나 이런 호들갑, 오르는 기름값 앞에서 너무 섣부른 판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가는 기름값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기름값. 그 등 뒤에 올라앉은 물가는 여전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

19일 발표된 유가안정대책. 실망스럽다. 정부의 고통분담 없이 기껏 3~6% 불과한 주유소 마진에 손을 대 기름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정책. 효과도 없고 부작용도 커질 뿐이다. 삼성토탈을 제5공급사로 참여시킨 조치들이 기름값 안정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유류세 인하. 소비자로서 진전된 논의를 요구한다. 당신들이 한번쯤 했던 공약들. 유권자로서 공약의 이행을 촉구한다.


태그:#유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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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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