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포스터

<어머니> 포스터 ⓒ 인디스토리

서울 창신동의 좁은 골목, 그곳에 살고 있던 작은 체구의 할머니. 고령의 나이에 움직일 때는 꼭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그의 뒷모습은 결코 초라하지 않다. 늘 누군가와 함께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손을 항상 잡고 있기 때문에. '작은 선녀'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들의 선녀. 바로 지난해 세상을 떠나신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다.

지난 5일 개봉한 태준식 감독의 <어머니>는 바로 그 이소선 '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노동자도 인간이다!'를 외치며 청계천에서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민중이 고난당하고 노동자가 고난당하는 현장에 어김없이 나타나 '하나가 되자'를 외치며 투쟁을 독려하던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그러나 우리가 영화에서 만나는 이소선은 격렬한 투쟁 현장 속이 아닌 창신동의 조그만 집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어머니, 우리들의 할머니'와 너무나 똑같은 사람이다. 관객들은 너무나 인간적인, 우리 어머니, 할머니와 너무나 닮은 이소선을 만나는 순간 '노동자의 어머니'에서 갖는 선입견을 완전히 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쯤 느끼게 될 것이다. 바로 그가 우리의 '어머니'라는 것을.

'여유롭고 평화로운' 어머니... 그것이 힘이었다

이소선 어머니는 자신을 '열사의 어머니'로 부르는 것을 싫어한다. '열사'라고 하면 마치 노동자들 위에서 군림하는 것 같아 싫다는 것이다. 대신 '노동자의 어머니'라는 말을 좋아한다. 실제로 자신이 노동자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소선 어머니가 과거에 투쟁하는 모습, 현재의 집회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여유롭게' 노동자들과 주위 사람들을 감싸안는 어머니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남녀노소 어떤 사람들을 만나도 항상 웃음을 보이며 재치 있는 농담을 즐기고 혼자 낮잠을 자고 담배를 피우는 것을 즐기며 고스톱칠 때 쓰는 동전 묶음을 보고 즐거워한다.

 '하나가 되자'라고 강변했던 이소선 어머니

'하나가 되자'라고 강변했던 이소선 어머니 ⓒ 인디스토리


40년 전, 청천벽력 같은 사건을 경험하고 투쟁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이 여유롭고 평화로운 모습. 하지만 그것이 어쩌면 이소선 어머니가 가졌던 가장 강력한 무기였는지도 모른다. 그 여유로움이 있었기에 어머니는 투쟁 속에 흥분하고 분노하는 이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노동자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노구를 이끌고 여전히 투쟁의 현장에서 '하나가 되자'는 목소리를 내고, 크레인 위에서 오랜 기간 투쟁하는 한진중공업의 김진숙씨를 만나고 싶어했던 이소선 어머니. 이 여유 속에서 나왔던 힘이 노동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마침내 그들은 하나의 목소리로 '우리 모두가 전태일이다'라고 외쳤다. 이소선 어머니가 평생을 꿈꿨던 '하나됨'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영화는 지난해 이소선 어머니의 사망으로 시작해 그의 마지막 2년을 거꾸로 보여주는 방법으로 그를 회상한다. 영화는 이소선 어머니의 일상과 함께 젊은 연극인 부부가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어머니의 마지막 나날들을 소재로 한 2인극 <안녕, 엄마>를 준비하는 과정을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전태일의 죽음을 묘사하는 연극 장면과 생명이 점점 꺼져가는 이소선 어머니의 모습이 번갈아가며 보여지는, 아들과 어머니가 저 세상에서 해후하는 듯한 영화의 클라이막스가 묘한 감동을 준다.

나와 같은 관객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웃고 있는 이소선 어머니. 그의 '여유로움'은 곧 힘이었다

웃고 있는 이소선 어머니. 그의 '여유로움'은 곧 힘이었다 ⓒ 인디스토리


개봉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이 영화를 개봉하는 영화관 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이 영화의 개봉을 위해 제작진들은 텀블벅을 통해 개봉 후원을 부탁했고 열띤 호응 속에 드디어 개봉을 하게됐다. 하지만 개봉을 해도 적은 상영관 수 때문에 관객 동원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나도 '이소선'이란 인물에 대해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은 수박 겉 핥기에 불과했다. 나도 그분을 이야기할 때 '어머니'란 호칭을 썼지만 그것은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기 때문에 따라서 한 것이지, 존경이나 호감을 담은 표현은 솔직히 아니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조금씩 '이소선'이 '어머니'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앞에서 말한 그 '여유로운'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소선 어머니는 단지 '투쟁하는 노동자'의 어머니가 아니라, 지금 어떤 형태로든 '노동'이란 것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어머니였다. 그 노동자는 남이 아니라 바로 나, 그리고 우리 자신이다.

 전태일 열사 40주기를 맞아 공연된 <엄마, 안녕>. 이소선 어머니는 이 공연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전태일 열사 40주기를 맞아 공연된 <엄마, 안녕>. 이소선 어머니는 이 공연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 인디스토리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보길 바란다. 특히 나처럼 겉으로만 이소선 어머니를 알고 있는, 그냥 '열사의 어머니' 정도로만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보기를 바란다. 자신은 투쟁과 무관하다고, 노동문제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한번쯤 보기를 바란다.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이 영화가 계속해서 상영되기를 또한 바란다.

선입견을 버리고 '당신의 어머니'를 보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보시라. 어쩌면 영화가 끝날 때쯤 '어머니, 평안히 쉬세요'라고 말하는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그는 영화를 통해 '모두의 어머니'로 거듭난다. 이제 당신이 어머니에게 다가설 차례다.

어머니 이소선 태준식 전태일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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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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