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편집자말]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가 등장하면서 리얼 버라이어티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오디션 프로그램 속 음악은 더욱 리얼 버라이어티처럼 변했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의 예선 무대에서 출연자들은 달랑 피아노와 기타 한 대에 의지해 노래한다. 방송은 그들의 불안정한 음정과 긴장이 역력한 모습을 여과 없이 내보낸다. 사실 음악적으로 본다면 이만큼 조촐한 무대가 없다. 말 그대로 날 것에 가까운 세팅이다.

예능 프로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조촐한 설정은 감동의 필수 조건이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사연의 가족 밴드가 '슈퍼스타K2'에서 인생을 걸고 노래하고 아이유가 <놀러와>에 나와 기타 연주와 함께 '러빙유'를 능숙하게 부르는 모습. 거칠고 걸러지지 않고 준비되지 않는 돌발적 상황에서 나오는 음악을 사람들은 '리얼'로 여긴다. 대중들은 그 날것의 음악에 자신의 감정을 더 격렬히 이입한다.

 지난 12일 'K팝스타' Top9 생방송 당시 이승훈의 '단발머리' 공연 모습

K팝스타에서 '생사'의 부담을 드러냈던 이승훈의 '단발머리' 공연 모습 ⓒ SBS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돼 가는 음악. 카메라의 함정

결선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K팝스타'에서 오디션 지망생들은 각자 최고의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가수 지망생들이 무대 뒤에서 눈물을 보이고 마이크를 잡은 손이 덜덜 떨리는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준다는 전제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대중들은 매끄럽게 다듬고 오랜 시간 준비한 무대보다 시간이 촉박하게 주어진 상황에서 뮤지션들이 극한의 상황을 극복하는 그 순간 가치를 더 높게 산다. 시간이 촉박하면 촉박할수록, 뮤지션들이 곤경에 처하면 처할수록 시청자들의 몰입도는 더 높아진다. 이승훈이 고작 30분 주어진 시간 동안 상상을 뒤엎는 퍼포먼스를 짜내 탈락 위기를 모면한 것처럼.

그러나 이러한 설정이 극으로 치달을수록 음악적 완성도는 그만큼 희생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앞으로 방송될 <나는 가수다2>도 마찬가지다. 방송을 위한 편곡, 시간 제약이 존재하는 창작. 그것이 몇 개월의 고민과 실험 끝에 탄생하는 음악과 비할 바 없음에도 사람들은 이러한 포맷을 한국 음악의 새로운 대안으로 여긴다. 그것은 어찌 보면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그게 아니라면 애당초 대중들에게 음악적 퀄리티라는 것이 생각만큼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작용하지 않았거나.

사람들은 여전히 음악에서 감동을 받지만 순전히 음악만으로 감동을 받진 않는다. 발터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는 이제 음악 프로가 아닌 예능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됐다. 기존의 음악 프로그램은 당연히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작년 4월, <나는 가수다>가 음악시장의 태풍의 눈으로 등장하고 있을 때 MBC의〈라라라>와 SBS<김정은의 초콜릿>은 시청률 부진으로 폐지 수순을 밟았다. 이후에 나온 SBS <이효리와 정재형의 유&아이>가 그나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은 기존의 프로와는 달리 예능 토크쇼의 요소를 일부 가져왔기 때문이다.

지금의 변화는 사실 본질적인 측면에서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때도 음악의 핵심은 완성도보다는 감동을 주는 것에 있었다. 그러나 음악이 예능의 포맷 안으로 들어온 이상 감동은 이제 소리만으로 얻어낼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음악 예능의 스토리텔링 힘을 보여준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편

음악 예능의 스토리텔링 힘을 보여준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편 ⓒ MBC


음악의 새로운 생존방식. 예능 스토리텔링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처진 달팽이가 부른 '말하는 대로'는 음악이 예능의 포맷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감동을 줄 수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준 케이스다.

'말하는 대로'는 단순히 가요제에서 불러야 할 노래 그 이상의 것이었다. 이적과 유재석. 이 두 남자가 작곡을 위해 몇 주간 함께 모이고 연습하고 여러 차례 티격태격하며 수정해 만드는 과정에서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그 자체가 하나의 인간적 교류다.

스토리 텔링의 발단인 셈이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말하는 대로' 속에는 유재석 자신이 스스로 잘 밝히지 않았던 무명시절 고민과 방황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 두 남자가 '말하는 대로'를 관객들 앞에서가 아닌 공연이 끝난 텅 빈 무대에서 부르는 클로징 연출에서 우리는 잔잔한 감동을 받는다.

Mnet의 <비틀즈 코드>를 보자. 사실 기존의 관점으로 본다면 <비틀즈 코드>는 전혀 음악적인 프로라고 볼 수 없는, 그냥 예능 토크쇼다.

그러나 유세윤과 윤종신이 서로 다른 가수, 서로 다른 노래에 공통점이 있다는 평행이론을 제시하는 순간 시청자들은 그 음악을 자신의 머릿속 아주 깊은 곳에 새긴다. 그렇게 연상 작용을 통해 인식된 노래는 쉽게 잊히지 않는다. 관심이 없었던 예전 노래를 잊을 수 없게 기억하게끔 한다는 점에서 <비틀즈 코드>는 시청자들에게 <음악중심>이나 <뮤직뱅크>보다 더 음악적으로 다가온다.

대중들은 이렇게 각각의 캐릭터들이 엮어내는 스토리텔링 과정 사이에 음악이 등장할 때 감동을 느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음악을 기억한다. 단순히 연주자들과 가수들이 선사하는 청각적 아우라 만으로 감동을 끌어내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영역은 이제 다큐나 교양을 통해 다뤄야 할 부분이 됐다.

 일찌감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미래를 예고한 아메리칸 아이돌

일찌감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미래를 예고한 아메리칸 아이돌 ⓒ google.com


"결과적으로 대중들이 음악을 듣게 됐다", 그렇지만...

음악은 당시 주도권을 가진 매체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방식을 끊임없이 모색해왔다. 라디오에서 TV로 매체의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음악은 트로트를 잔잔한 발라드로, 말쑥한 정장을 화려한 무대의상으로, 또 발라드에서 격렬한 춤과 랩으로 변화를 모색하며 자체적인 임팩트를 끌어냈다.

이제 음악이 TV 속 무대를 통해서 보여줄 수 있는 시각적, 심리적 임팩트는 사실상 고갈됐다. 다른 영역에서 대중의 반응을 끌어내야 하는 시대로 옮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음악과 예능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하나의 흐름이다. 혹자들은 예능 종속화를 우려하지만 이러한 흐름 자체에 대해 시시비비를 논하긴 사실 어렵다. 오히려 여러 지적과는 달리 긍정적인 부분도 존재한다.

부활의 보컬 정동하는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의 등장에 대해 "결과적으로 대중들이 음악을 듣게 됐다"라고 말했다. "열심히 만든 신곡이 노출이 안 되는 게 억울하다고 생각했으면 옛날부터 억울한 건 마찬가지였다"는 게 그가 지금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본 이유였다. 아이가 약을 먹지 않으면 약 위에 시럽을 뿌려 주는 것처럼 예능은 음악을 듣지 않는 대중들에게 그 시럽 역할이 되어 주었다.

 음악의 미래는 쇼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음악의 미래는 쇼가 될 것이다. 하지만... ⓒ google.com


음악의 미래는 쇼가 될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도 잠깐 말했듯이 이러한 추세는 결코 음악의 질 자체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예능에서 나오는 음악들은 음악 그 자체라기보다 어디까지나 방송을 위해 손질된 '방송용 음악', 방송용 무대다.

이런 점에서는 지금의 흐름에 대해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다. 이러한 흐름들은 절대 음악적 퀄리티의 상승을 의미하는 게 아니며 동시에 아이돌 위주의 음악시장의 장기적 대안이 되지는 못한다는 점 말이다. 더불어 이러한 음원 유통구조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주체가 제작자가 아닌 방송사라는 사실까지. 

음악은 자신을 다뤄줄 독자적인 포맷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음악이 가진 자체적인 자산 자체까지 상실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간 축적된 자산이 있었기에 음악이 예능에서 더욱 입체적으로 발산되고 있는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두 영역의 경계는 더욱 흐려질 것이고 우리는 음악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 때의 우리는 음악을 무엇으로 인식하게 될까. 음악은 어쩌면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그 본질까지 예능에게 양보해야 할지 모른다. 쇼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음악 예능 비틀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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