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2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1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한 박근혜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과반 의석 확보로 4.11 총선을 새누리당의 승리로 이끌었지만 최대승부처인 수도권에서 드러난 영향력의 한계와 2030 젊은 세대의 냉담한 반응은 대선가도로 가기 위해 박위원장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1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한 박근혜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과반 의석 확보로 4.11 총선을 새누리당의 승리로 이끌었지만 최대승부처인 수도권에서 드러난 영향력의 한계와 2030 젊은 세대의 냉담한 반응은 대선가도로 가기 위해 박위원장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4.11 총선 결과를 바라보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지금 심정이 딱 이렇지 않을까. 애초 100석 미만이 될 것이라는 예견은 지나친 엄살이었다고 하더라도 과반을 넘는 152석 획득은 본인조차도 놀랄 일이 아니었을까. 박근혜 위원장은 10.26 재보선 선관위 디도스 공격으로 폭발 직전에 있던 여론을 등에 업고 무혈입성한 지 3개월 만에 누구도 예견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결과적으로 4.11 총선은 박근혜를 위한 것이 돼버렸다.

'선거의 여왕'.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당이 궤멸의 위기에 빠지자 천막당사 이전을 강행하면서 121석을 얻어내었던 박근혜 위원장을 그렇게 불렀다. 이후에도 각종 선거에서 박 위원장의 영향력은 어김없이 발휘됐고, 그는 이번에도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쯤 되면 '박근혜의 힘' 그 원천이 어디일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15년간 지켜왔던 당명을 바꾸고, 혐오하던 빨간색 옷을 과감하게 덧입은 새누리당이 처음으로 한 일은 좌회전 표시등을 켜는 것이었다. MB노믹스의 파수꾼이었던 구 한나라당 모습으로 서민 표를 얻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재래시장 상인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는 이명박 대통령과 다르다는 걸 보여주기 어려웠다.

그래서 새누리당은 대기업의 재래시장 진출을 막고 카드 수수료를 인하하겠다고 공약했다. 새누리당의 이런 행보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반색했다. 박 위원장이 뜨는 곳에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보려고, 손 한 번 잡아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사실 사람들에겐 그게 화장발인지, 진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변신에 성공한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지난 4년간 서민들의 삶은 더욱 절박해졌다. 가계부채는 900조 원을 넘었고, 최근 7년 동안 대형마트 450개가 생긴 대신, 전통시장 178개가 없어졌다. 또 영세상인들이 운영하는 매장은 2006년부터 매년 4~5천개씩 문을 닫고 있다. 누가 뭐래도 이런 상황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대기업의 탐욕을 뒷받침하는 데에만 급급했던 MB정부였다.

새누리당이 4.11 총선에서 과반 의석 152석을 확보하며 원내 제1당을 차지한 가운데,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박근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원장이 이혜훈 종합상황실장 등 당직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새누리당이 4.11 총선에서 과반 의석 152석을 확보하며 원내 제1당을 차지한 가운데,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박근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원장이 이혜훈 종합상황실장 등 당직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도 MB정부의 동반자였던 박근혜 위원장은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이명박 대통령이 747 환상으로 영세자영업자들의 지지를 얻어낸 것처럼 박 위원장도 서민경제의 구원투수인 것처럼 변신을 하고 나선 것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 이에 반해 민주통합당의 선거전술을 어설펐다. 차별성 없는 공약도 문제였지만, 서민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이명박 정권에 정확한 칼날을 겨누지 못했다. 진정성은 묻혀버렸고 경제 공약을 실현할 힘도 보여주지 못했다.

힘없는 야당보다 힘 있는 박근혜 위원장에게 기대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라는 서민들의 생각은 인지상정이다. 특히 민주통합당은 대다수 20~40대층이 새누리당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본인들을 지지하는 것으로 오인해 자만했고 결국 그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내지 못했다.

"어유 똑같네. 육영수 여사님과 너무 닮았어. 얼마나 허망하게 가셨어. 참 불쌍한 사람이여..."

지하철 경로석에 앉은 노인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박근혜 위원장 유세장면을 보며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다. 60~70년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씨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당시 어렸던 나도 '뭔가 굉장히 슬픈 일이 일어났구나'란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육영수씨는 아직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인자한 국모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박근혜 위원장에게 거친 손을 내밀고 눈물부터 찍어내는 할머니들에게 그는 인자한 육영수씨의 환생이며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의 대상인 것이다. 박근혜 위원장이 정치에 입문한 이래, 유신과 독재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이미지를 희석시켜준 것에 육영수씨의 비운의 죽음이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선거의 여왕'이란 수식어 뒤에 있는 '새마을 운동'과 인자한 국모 모습의 육영수씨의 그림자는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도, 바꿀 수도 없는 박 위원장의 배경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여러 복합적인 요소들이 결합했기 때문일까. 이번에도 박근혜 위원장의 저력은 변함이 없었다. 박근혜 위원장이 이번 선거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이득은 과반 의석 확보가 아니다. 박 위원장의 입장에서 보면, 새누리당 내에서 확실한 입지를 굳힌 것과 여야를 통틀어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가 된 점이 가장 큰 수확이다. 때문에 구 한나라당의 위기와 4.11 총선은 박근혜 위원장에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꽃놀이패인 것이다.

공약 추진과 부적절한 당선자 관리가 관건

제19대 총선을 하루앞둔 10일 새누리당 박근혜 위원장이 성북역 광장에서 노원지역 지원유세를 마친 뒤 유세장을 떠나던 중 한 남성이 악수하자며 손을 내밀자 경호원들이 놀라며 손을 제지하고 있다.
 제19대 총선을 하루앞둔 10일 새누리당 박근혜 위원장이 성북역 광장에서 노원지역 지원유세를 마친 뒤 유세장을 떠나던 중 한 남성이 악수하자며 손을 내밀자 경호원들이 놀라며 손을 제지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모든 경기가 그렇듯 예선에서 이겼다고 '우승' 자리를 내주진 않는다. 물론 박 위원장은 당권과 대선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하지만 이번에 마련한 디딤돌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올라가려면, 몇 가지 앞에 놓인 쉽지 않은 문제들을 풀어야 한다.

국회 개원과 동시에 새누리당이 내놓은 공약은 국민 심판대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위원장이 유세를 다니면서 시종일관 언급한 '가족행복 5대 약속(0~5세 아이를 둔 모든 계층에 양육수당과 보육료를 지원하고, 중증질환자의 경우 단계적으로 국가가 100% 진료비를 부담한다는 등의 내용)' 공약만 해도, 개원일로부터 100일 안에 발의하고 통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공약 중 많은 부분들이 이명박 정권이 대폭적으로 양보하지 않는 한 실현이 불가능하다.

임금·복리후생에 대한 비정규직 차별개선, 사내하도급 근로자보호를 위한 법률제정 공약도 이명박 정부는 물론 재계의 반발을 불러올 게 뻔하다. 반발로 공약이 무산되거나 적당히 타협한다면 반값등록금을 공약하고도 심리적 반값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을 바꿔, 많은 이들을 분노케 했던 '반값등록금 꼼수'와 다르지 않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또 다른 숙제는 후보시절 몇몇 부적절한 문제가 불거진 당선자들에게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 가다. 비록 지역유권자의 심판을 받았지만 국민들 눈높이에서 이해할 수 없는 당선자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당장 논문 표절로 문제가 된 문대성 부산 사하구갑 당선자와 선거일을 며칠 앞두고 '제수씨 성폭행' 문제가 불거진 김형태 포항시남구울릉군 당선자의 경우, 그냥 덮고 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곧 시험대에 오르게 될 박근혜 위원장

그러나 박근혜 위원장의 대선 가도에 가장 큰 걸림돌은 이명박 정권이 될 확률이 크다.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이슈털어주는 남자>(이털남)에서 지난 한 달여간 제기된 민간인 사찰 내용과 KBS 노조에서 발표한 사찰 증거들은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보다 가볍지 않다. 이번 폭로가 총선 시점과 맞닿아 큰 사건임에도 수위가 조절된 측면이 있지만, 국회가 개원하고 시민단체들의 투쟁이 본격화되면 탄핵이나 하야 요구가 나올 수도 있다.

이때 새누리당은 방어하는 위치에 놓인 수밖에 없다. 총선 과정에서야 "나도 피해자, 노무현 정부도 사찰했다"는 물타기 전술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 측면이 있지만, 국회가 개원하고 야당에서 여야를 떠나 모두 청문회를 하자고 한다면 감춰졌던 진실이 속속 드러날 수밖에 없다. 정권 방어와 진실 규명 사이에서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다면, 대권주자 박근혜 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다른 게 뭐냐는 의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외에도 BBK, 내곡동 사저 등은 박근혜 위원장의 시험대가 될 소지가 충분하다.  

더 이상 새누리당이나 보수 세력 내에는 박근혜 위원장의 대항마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재오 의원이나 정몽준 의원이 살아남았지만, 이번 총선에서 겨우겨우 당선된 이들의 존재감이 예전과 같을 수 없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배경으로 삼아 정치 행보를 시작한 박근혜 위원장. 그래서인지 박 위원장의 얼굴에서 독재와 유신의 그림자는 보는 사람들이 있다. 또 이번 총선에서 이념의 대결을 조장했던 그의 행동들은 이명박 정권의 편협한 통일관의 재방송을 보는 것 같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4.11총선에서 무척 많은 것을 얻은 박근혜 위원장. 대선 여정에 오르기 전에 버려야 할 것을 고민할 때다.


태그:#4.11총선, #박근혜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