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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전통 음식을 팔고 있는 여성
 베트남 전통 음식을 팔고 있는 여성
ⓒ 류인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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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여름 날씨하고는 확실히 달랐다. 베트남 호치민 턴섯년 공항에 도착한 나의 첫느낌이다. 습기가 많아 후덥지근해서 끈적한, 필리핀 마닐라에서 느꼇던 그 기분을 다시 느꼈다. 휴~ 샤워를 하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떠밀리듯 검색대를 나와 처음으로 많은 베트남 사람들을 바라보게 된다.

'여기가 말로만 듣던 베트남이군.'

그녀의 손에 이끌려 택시를 타고 어딘가 모를 집으로 향한다. 그녀는 혼자 살지 않는다.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으니 오해하시지 마시길.

그로부터 2년 후, 베트남 실정도 어느 정도 알아가고, 날씨와 음식에 익숙해져 갈 즈음, 문제가 터졌다. 난 외톨이가 되었다. 언어에 대한 습득에 대해 게을렀던 탓이라. "밥 먹었어?", "안녕하세요?"도 하루이틀이지 매일 같은 말을 하자니 내 입이 부끄럽고, 그러니 말수도 줄어들고 간단한 인사 이외에는 시도해볼 용기도 잘 나지 않았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일까.

사실 베트남어가 어렵긴 어렵다. 중국의 4성조를 앞서는 6성조이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베트남어를 만들 당시 상대방 국가의 사람들이 쉽게 배울 수 없게, 각종 세계의 문자의 좋은 점과 어려운 점을 섞어 놓았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입이 많았던 터라, 그들만의 자주성을 지킬 문화인 문자가 필요했던 것이겠다. 누구는 노래하듯 배우면 쉽다던데. 그것은 능숙한 자들의 유희이라.

하나 더 핑계를 들어보자면, 와이프와 난 영어로 대화를 한다. 이젠 그 세컨드 랭귀지도 베트남어에 밀려 깜깜해지고, 더불어 베트남어도 잘 안 되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에 빠진 상태가 지금이다. 또한 중국의 '만만디' 못지 않게, 베트남식 만만디에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뜨끈한(?) 날씨와, 느긋해져야 견딜 수 있는 이런 기후에 몸이 변하다보니 '게으름이 스머프'와 친구 하자고 할 일만 남은 것 같다.

이런 기후적, 환경적, 내생적 배경으로만 나의 게으름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근원적 이유는 무엇일까?

영어권 국가에서 생활을 해본 적이 있다. 나의 영어 발음,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누군가와 말을 한다는 것은 나의 신경을 상당히 자극하는 일이었다. 레스토랑에 가서 무엇을 주문하면 웨이터의 반응에 항상 신경이 쓰였다. 과연 그가 내 발음을 알아듣고 미소를 지을것인가. 소심한 나는 어눌한 나의 발음에 냉랭한 반응이 왔던 웨이터의 추억이 있어 레스토랑 가기가 불편했고,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는 데 주저했다. 그 놈의 발음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영어를 잘하고 싶었다. 좋은 발음으로 말하고 싶었다. 상대방이 날 인정해주길 바랐다. 그래야 나의 인생의 성공 1막 1장이 시작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베트남 전통 모자 논(non)을 만들고 있는 여성
 베트남 전통 모자 논(non)을 만들고 있는 여성
ⓒ 류인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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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나는 베트남인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베트남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한 업체 사장님은 말한다. 베트남말은 숫자 셈만 할 줄 알면 되고, 다른 것은 통역 애들을 이용하면 된다고. 10년을 넘게 사신 한 한인 식당 사장님은 아직도 베트남말이 많이 서툴다.

아마도 그들은 베트남이란 싼값으로 부릴 수 있는 로컬종업원들과 저렴한 물가의 나라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자신보다 강한 부류에는 의존하여 그들과 같아지길 열망한다. 하지만 실력이 못하다면 따라야 하는 사람은 상대방이다. 그곳이 홈그라운지 어웨이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생각을 한다.

어눌하고 짧은 말이라도 외국인이라 신경써주는 레스토랑의 '엠어이'들, 잘사는 국민으로 베트남에 대한 우월감, 베트남말 배우는 것에 인색한 우리 동족들과의 동류의식 등. 이곳에서 보낸 햇수를 훈장처럼 여기면서 그들과 나는 베트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게을렀으며, 베트남 사람과 같은 평범한 인간으로서 우애를 다져오지 못한 것 같다.

상대방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는 가장 기초는 뭐니 뭐니 해도 언어이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열린 마음과 상대방의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신호가 된다. 내 처의 나라로, 내 아들의 절반의 조국이 되는 베트남. 나는 이곳에 어떤 애정을 쏟고 그들을 얼마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려고 노력했는지 반성해본다.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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