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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구을의 야권단일후보인 오병윤 통합진보당 후보(왼쪽)와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가 3일 광주 서구 상무동에서 <오마이뉴스> 총선버스에 올라 타고 있다.
 광주 서구을의 야권단일후보인 오병윤 통합진보당 후보(왼쪽)와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가 3일 광주 서구 상무동에서 <오마이뉴스> 총선버스에 올라 타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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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참 맑고 밝은날입니다. 정치 맑음, 서민경제 밝음의 그날까지 기호 0번 OOO."

4.11총선을 코앞에 두고 이런 여유로운 문자를 보내다니. 이 후보자는 광주에서 여론조사 부동의 1위를 달리는 현역 의원이다. 그는 현재 재선 의원이면서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3선 의원이 될 듯하다. 반면 그의 승리가 유력하자 지방자치단체 의원들은 몹시 조급한 모양이다. 앞 다퉈 이런 문자를 보내온다.

"2012년 정권교체를 위해 O△O 후보의 적극적인 지지 부탁드립니다. - 시의원 △O△
올림"

부동의 1위를 달리는 후보자의 지지를 부탁하는 문자. 솔직히 유권자가 아닌 해당 지구당 위원장이자 현역 의원이며 조만간 3선 의원이 유력한 그 '막강한 후보자'를 의식한 문자로 보였다. 정작 당선이 유력한 후보자 측은 위상(?)에 걸맞게 과도한 선거운동을 자제하고 있다.

피말리는 광주 서구을... 상복 입은 후보까지 등장

"○□□  일하고 싶습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광주와 서구발전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한 번만 지켜주십시오. 여러분은 저의 은인이고 저는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저 꼭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서구을의 모 후보자가 무작위로 보낸 이 문자만 보더라도 지금 그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지 짐작이 된다. "화창한 봄날이군요. 행복한 주말 보내십시오" 등의 한가한(?) 문자를 보낸 앞의 당선 유력 후보자와 비교가 안 된다.

개나리, 진달래는 왜 하필 이때 피어서 결전을 앞둔 후보자들의 심사를 어지럽게 하는 것인지. 광주 서구을 후보자들에게는 특히 올 4월은 가장 잔인한 시간이다. 여당과 야당이 혼돈스럽게 뒤엉켜 차라리 냉전시대가 따스했을 듯싶다.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와 오병윤 통합진보당 후보의 광주 서구을 대결. 그야말로 아슬아슬 초박빙이다. 이들은 물론이고 여론조사 3, 4위를 기록중인 후보자들까지, 네 명의 '선수'들은 한 치의 양보 없이 고지를 향해 막바지 유세를 펼치고 있다.

마지막 여론조사 시한까지도 오차범위 내에서 1,2위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예민한 상황 탓인지, 서구을에서는 후보자 간 신경전과 비방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렇듯 예민한 선거정국에서 지자체장까지 가세해 혼란은 더욱 커졌다.

김종식 광주 서구청장은 지난달 30일 박근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이 광주를 방문했을 때 밀착 동행하며 주민들에게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광주 서구 선거관리위원회는 공무원 정치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며 김 구청장에게 엄중경고를 내렸다.

선거를 앞둔 마지막 주말(7일), 가족 단위의 유권자가 몰리는 광주 서구을 풍암 저수지, 염주사거리, 금호동 사거리에서 후보자들은 열띤 유세를 벌였다.

여론조사 1,2위를 다투는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와 오병윤 통합진보당 후보가 유세를 마치고 떠나간 자리를 이점자 정통민주당 후보와 정남준 무소속 후보가 차지했다. 두 후보의 유세에 소수의 청중들은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연단 위에 선 무소속 정남준 후보는 "나는 민주통합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서구 지역 후보자로 거론됐었다"며 야권 단일후보 선정으로 좌절된 공천을 아쉬워했다. 정 후보 옆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이점자 후보는 검은 상복 차림이었다.

상복입고 유세하는 정통민주당 이점자 후보.
 상복입고 유세하는 정통민주당 이점자 후보.
ⓒ 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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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의 수행원이 비장한 표정으로 "불과 두 시간 전에 후보님 친정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이에 기자는 "친정 아버님 부음을 듣고도 유세를 강행하기로 하셨나 보죠?"라고 물었다.

"<오마이뉴스>라고 하셨죠? 기자님, 저희 절박한 상황 좀 널리 알려주십시오. 오죽하면 상을 당한 후보자가 연설을 하러 나왔겠습니까? 저희는 선거운동원들도 없어요. 돈이 없어서, 그동안 활동비 정산을 못해 줬더니 운동원들이 모두 다 떠나버렸어요. 운동원들도 떠나고 후보자는 부친상을 당했는데, 저희는 여전히 뛰고 있습니다. 저희 목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꼭 15%대 지지율을 얻는 것입니다."

잠시 차 안으로 들어가 쉬는 이 후보에게 다가갔다.

"제가 친정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뵌 게 지난 4일입니다. 암 말기라 위중한 상태셨거든요. 그래도, 무슨 일 있어도 11일까지는 꼭 버티겠다고 저랑 약속하셨는데...(눈물)"

차 창문을 내리고 기자를 향해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11일을 강조하던 후보자는 끝내  운전대에 얼굴을 묻고 오열했다. 정통민주당은 광주에서도 후보자를 두 명 밖에 내지 못했다.
 
- 후보님 측 목표는 적어도 득표율 15% 달성이라고요?
"네? 무슨 말씀을요. 제 목표는 당연히 당선이죠!"

흐느낌을 멈추지 못하던 후보자는 고개를 들고 단호한 표정으로 기자의 '오류'를 지적했다. 어렵게 눈물을 참고 연단 위로 오르는 이 후보를 이제 막 연설을 마친 정남준 후보가 위로했다.

유세 차량에 새겨진 대형 사진속에서 이 후보는 세련된 파마머리에 예쁘게 화장을 한 화사한 얼굴이다. 하지만 '생얼'에 상복을 입고 연단 위에 선 여인은 너무나 다른 모습이어서 잠시 청중들은 술렁거렸다.

"제가 상중이라 부득이하게 상복을 입고 나왔습니다. 후보자 본인 맞습니다. 상복차림으로 나와 여러분 거북하시죠?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서구 지역민들의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이렇게 상복을 입고 저는 나왔습니다."

연단에서 내려온 정남준 후보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불만부터 표시했다. 정 후보는 "난 여론조사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다"며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게 조작된 여론조사라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광주에서 새누리당 후보 당선하나

그는 야권 단일후보인 오병윤 후보를 향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특히 이른바 '현수막 철거 사건'은 정 후보를 결정적으로 자극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 6일, 오병윤 후보 측은 현수막을 교체하면서 '실수'로 정남준 후보 측의 현수막을 철거했다. 하지만 실수가 아니라는 게 정 후보의 주장이다.

"오병윤 후보는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합니다. 국회 정론관에서 이 문제로 기자회견을 할 예정입니다. 거기서 저는 오 후보는 물론 통합진보당 후보자들의 일괄적인 사퇴를 요구할 생각입니다."

오 후보 측은 "직원의 착각으로 인한 실수였다"고 해명하고 몇 차례 사과했다. 하지만 정 후보는 계속 "후보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정 후보는 '현수막 사건'을 이정현·오병윤 후보에게 집중된 여론의 관심을 자신에게 돌릴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어쨌든 사건의 진실은 경찰 수사로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차범위 내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에게 지고 있는 오병윤 후보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악재'다.

<광주일보>와 KBC광주방송이 여론조사 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3∼4일 조사한 결과 이정현 후보는 44.2%, 오병윤 후보 39.3% 지지율을 기록했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이와 같은 시시비비와 잡음으로 서구을은 가장 치열한 격전지로 연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선두를 다투는 두 후보의 행보도 무척 긴박하다. 바로 한 시간 뒤의 일정을 파악하기 힘들만큼, 예측 불허다.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몰려 있거나 이목을 집중 시킬 수 있는 곳이라면 실시간으로 달려가는 게 이들의 일정이다.

서구을 유권자들도 누가 승리할지 기대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처음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반신반의였다. 대권 주자의 최측근이 수도권 전략공천을 마다하고 굳이 지역구로 내려와 고생하는 배경에 의문을 나타냈다. 게다가 그동안 광주에서 '당선 가능성 제로'였던 새누리당 후보로 나선 게 아닌가.

하지만 야당이 공천 잡음 후유증으로 갈피를 잡지 못할 때부터 이정현 후보는 차분하게 유권자들을 만나 공감대를 형성했다. 유권자들은 지지층을 넓혀 가는 이 후보를 보면서 "저러다 설마 호남에서 새누리당 후보자 한 명 당선하는 거 아냐?"하고 조심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는 '설마'가 '진짜?'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결국 야권 단일후보 선정에 불복해 무소속 출마를 감행한 서대석 후보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사퇴했다. 곧바로 이 후보 측은 문자메시지를 유권자에게 보냈다.

광주 서구을에 출마한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가 3일 광주 서구 상무동을 찾은 <오마이뉴스> 총선버스에 올라 생중계 인터뷰하고 있다.
 광주 서구을에 출마한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가 3일 광주 서구 상무동을 찾은 <오마이뉴스> 총선버스에 올라 생중계 인터뷰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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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입니다. 절박하고 간절합니다. 저 좀 지켜주십시오. 일하게 도와주십시오. 단 한 명만이라도 설득해 주십시오.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호 1번 이정현입니다."

절박한 심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런데 기대했던 '서대석 사퇴' 효과가 오병윤 후보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서 후보의 사퇴 이후 반사이익을 이 후보가 보는 듯했다. 근소하게 뒤처져 있던 이 후보의 지지율이 서 후보 사퇴 이후 올라 1위를 차지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인물론의 이정현이냐, 심판론의 오병윤이냐

"새누리당이긴 하지만 이정현이란 사람을 그래도 종종 TV에서 봐왔고, 또 본인 말로는 예산을 엄청 많이 가져왔다잖아요. 지역을 위해 그만큼 했으니까, 앞으로도 믿어볼 만하지 않나 하는 그런 기대죠."

풍암지구 부영아파트에 거주 한다는 50대 남성 유권자 김아무개씨의 말이다. 김씨의 말대로 '호남예산지킴이'라는 점을 꾸준히 선전한 이 후보의 전략이 먹혀든 것으로 보인다. 또 박근혜 위원장 측근으로서 언론에 얼굴이 자주 나와 인지도가 높은 점도 이 후보의 장점이다.

지역의 한 유권자는 "이정현 후보는 박근혜 위원장 옆에 늘 있으니 얼굴을 자주 봤다"며 "하지만 오병윤씨는 '486 세대'에게 유명할지 몰라도 지역의 나이든 분들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이정현 후보는 지난 7일 풍암저주시 앞 유세에서 "'말꾼'보다는 진정한 '일꾼'을 알아보는 광주시민들이 현대사를 이끌어온 주역이라며 광주 시민이야말로 민주통합과 사회통합을 완성할 수 있는 위대한 시민"이라며 "광주시민들이 이정현이를 27년 만에 광주에서 새누리당 이름으로 국회에 보낼 마음의 결정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11 총선의 선거운동이 시작된 3월 29일 이정희 대표(오른쪽)가 광주를 찾아 통합진보당 후보의 지원 유세에 나섰다. 사진은 이 대표가 29일 오후 광주시 서구에서 오병윤 후보와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4·11 총선의 선거운동이 시작된 3월 29일 이정희 대표(오른쪽)가 광주를 찾아 통합진보당 후보의 지원 유세에 나섰다. 사진은 이 대표가 29일 오후 광주시 서구에서 오병윤 후보와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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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여전히 강력한 '지역색'과 야권 단일후보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아래는 지역에서 만난 40대 후반 유권자의 말이다.

"우리가 새누리당을 타 지역 연고 당이라서 싫어한 건 아니었잖아요. 그 당이 호남에, 우리 역사에 자행한 일 때문이죠. 우리는 새누리당의 역사성, 정체성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거지 단순한 지역감정은 아니에요. 당연히 야권 단일후보 당선시켜 정권교체를 해야죠. 새누리당은 절대 안 돼요. 총선만 중요합니까? 진자 중요한 대선이 있잖아요. 또 새누리당 의원 아니면 뭐 예산 한 푼도 못 건져 옵니까? 이정현 의원 자꾸 예산 생색만 강조하는데 그 위치라면 누구나 그 정도는 합니다."

오병윤 후보는 9일 PBC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광주에서 아직은 새누리당은 아니다. 왜냐면 아무런 사과도 없었다"며 "최소한 (그동안) 저질러 온 광주에 대한 잘못된 몇 가지 사실들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 후보는 "4대강 사업, 종부세 감세, 미디어법 등 모든 국정을 농간한 한나라당에 철저히 찬성했던 이정현 의원"이라며 "기본적인 예산을 가져왔다고 '예산 지킴이다'라고 말 수는 없는 거다. 과장돼 있다"고 날을 세웠다.

과거엔 민주당 일색이었지만 이렇게 의견이 나뉜 것도 이번 선거의 뚜렷한 변화다. 여론조사 결과대로라면, 11일 광주 서구을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호남 유일의 야권 단일후보를 누르고 승리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투표 결과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여론조사에서는 이 후보가 근소하게 앞서도 막상 투표장에 들어서면 새누리당 후보에게 손이 가겠느냐는 이야기다. 그동안 민주당에 몰표를 줬던 역사를 돌아보면 억지 주장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정말 궁금합니다. 주변 사람들 의견은 많은데 딱히 누굴 찍겠다는 말은 잘 안 하거든요. 이런 저런 추측이나 주장만 넘치고요. 제 자신도 사실은 아직 누굴 찍어야 할지 결정을 못하고 있어요. 제 집사람도 갈팡질팡 하기는 마찬가지고요. 오병윤 야권 단일후보는 그동안 민주화에 헌신하고 많이 희생했죠. 또 그만큼 깨끗한 후보도 드물고요. 그런데 또 새누리당 후보치고 이정현 후보도 비호감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양쪽 다 안타깝고 아깝고 그래요."

한 유권자의 이 말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서구을 선거구의 현상을 그대로 잘 말해주는 듯하다. 광주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하는 '기적'이 일어날까, 아니면 야권 단일후보가 승리할까. 그동안 '재미 없던' 광주에 전국의 눈길이 쏠려 있다.

덧붙이는 글 | 정미경 기자는 <오마이뉴스> 2012 시민기자 총선특별취재팀입니다.



태그:#총선, #오병윤, #이정현, #서구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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