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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
▲ 북 토크 김기석 목사님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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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은 심지(心地)를 밝히지 못했으면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스승을 찾아가 길을 물었고, 이미 스승을 얻었으면 곧 지팡이를 꺾어버리고 바랑을 높이 걸어두고 오랫동안 그를 가까이 하였다."(<삶이 메시지다> 중에서)

북 토크를 통해 만날 김기석 목사님. 삶을 통해 향기를 나타내는 사람과의 만남은 큰 위로와 기쁨이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사람은 사람을 통해 깨우치고 성숙하게 한다. 이런 만남을 통해 마음이 한 뼘이라도 자랐으면 좋겠다. 글로만 뵙던 김기석 목사님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며 그 삶과 생각의 편린들을 조금은 알게 될 것을 기대하며 설레는 가슴으로 달려가는 길.

다리 놓는 사람, 김기석 목사님을 만나다

지난 2일 오후 7시, 북 토크 두 번째 시간. 책 <삶이 메시지다>를 통해 먼저 만났던 김기석 목사님을 모셨다.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서다> <일상 순례자> 등의 저자요 목회자이며 문학평론가인 김기석 목사님과 손석춘 기자님. 이들이 2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를 따끈따끈한 책으로 펴냈다. <기자와 목사, 두 바보이야기>가 바로 그것.

삶의 이력이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른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화는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과 소중한 깨우침을 준다. 기독교에 대한 무수한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작금의 부끄러운 현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오래된 미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책의 마무리에 담겨 있어 위로가 됐다.

김기현 목사님은 먼저 로고스서원이 북 토크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 곧 사회자 김기현 목사님과 김기석 목사님의 질문과 답변, 그리고 독자들의 질문들로 두 시간 동안 북 콘서트를 진행했다. 김기석 목사님의 깊고도 맑은 눈빛은 시종 참석한 사람들을 향해 열려 있었다. 목사님의 얘기는 한 토씨도 버리고 싶지 않은 귀한 메시지였다. 지면상 그 좋은 메시지들을 다 소개할 수도 없고, 궁금해 할 분들을 위해 너무 짧게 할 수도 없어서 대략 추려서 소개한다.

엘레브 4층
▲ 북 토크 엘레브 4층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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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의 신학교시절은 아주 저항적이었단다. 학교생활이 재미가 없어서 잡독을 했고, 학교 밖으로 떠돌던 중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를 만났다. 제목 그 자체가 자신을 규정해준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내부자라기보다는 바깥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했기 때문. 콜린 윌슨이 그 책을 썼을 때 나이는 21살. 21살 동갑내기가 이런 책을 썼다고 하는 것에 엄청난 자극을 받았고 <아웃사이더>에 나오는 책들을 구할 수 있는 대로 다 구해서 읽겠다고 생각하고 1~2년 정도 읽었단다.

목사님은 이어서 한국교회에서는 질문하는 방식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질문'을 던지기 위해 문학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성서 텍스트는 무한히 열려있는 텍스트다. 믿기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면 '너 시험 들었구나?' 질문을 차단하는 언어를 사용했다. 기독교인들이 피상적인 신앙에 머무르는 이유는 질문하기를 그만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기석 목사님과
▲ 북 토크 김기석 목사님과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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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처음 나가면서 아름다운 사람들 몇 분을 만났다. 가장 오만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을 가진 분이 더할 나위 없이 겸손하고, 가장 비참하다고 생각하고 살 수 밖에 없는 분이 너무나 맑게 살고 있고, 또 가난한 사람이 자기 주머니에 있는 것을 남에게 주지 않고는 못 견디는 새로운 인종을 보게 된 거다. 도대체 저들 속에 무엇이 있을까? 답은 예수님이셨다. 나는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기 이전에 먼저 예수라는 자기 삶의 중심성을 붙잡고 사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먼저 만났다. 이런 삶이라며 평생을 걸어 봐도 되지 않겠는가.

우리말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던 것은 홍명희의 <임꺽정>을 읽고서다. 수십 년간 한국 사람으로 살았는데 모르는 낱말이 너무 많다는 걸 알았다.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을 다시 읽으면서 '단어장'을 만들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세상을 지각한다. 언어가 발생한 것은 그렇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하나의 언어가 사라졌다고 하는 것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 하나가 없어진 것과 같다. 에스키모인은 눈이 오는 것을 보면, 그 눈이 흰 눈이 온다고 인식하지 않는다고 한다. 눈의 빛깔을 그 사람들은 수십 개의 단어로 표현한다. 그 모든 수십 개의 단어들을 희다라는 말로 뭉텅거려 놓았을 때, 세상은 무채색으로 변하고 만다. 우리 글로 된 책을 보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펼쳐서 단어를 열심히 찾아라. 이것이 우리말에 대한 예의다.

하나님의 깊은 관심은 가장 낮은 자리에 처해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 고통의 현장에 가지 않는데 믿음이 자랄 수 없다. 고통의 자리에 자꾸 나아가서 아픔이 있는 자들의 아픔에, 눈물도 흘려보고 그들의 가슴 찢기는 사연에 분노도 느끼고, 이럴 때 우리는 세상에 대한 바른 인식을 할 수 있다. 영성이 깊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고통이 나의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 하나님이 아파하는 것이 내게 아픔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나 사이가 단절된 거다. 외면하고 싶은 시선을 다시 끌어내는 것이 용기다. 기독교는 가장 보수적이고 가장 진보적이어야 한다.

진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정의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우리가 남이가?'라고 하는 말은 비기독교적인 말이다. 그릇된 것을 그릇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칼스 뭉크는 아프리카의 순교자다다. 그가 쓴 <가시밭길 위를 걸으며>라는 책이 있다. 거기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거룩한 분노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히브리 성경에서 중요한 하나는 출애굽정신에서 나오는 것으로 '정의'이다. 사랑이 있는 정의, 회복적 정의다. 그 근거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에 바탕을 둔 사랑이다."

김기석 목사님과 함께
▲ 북 토크 김기석 목사님과 함께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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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은 스스로를 '다리 놓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기자와 목사, 두 바보이야기> 들어가는 말에서 김기석 목사님은 빈센트 반 고흐의 <성경이 있는 정물>이란 그림을 소개한다. 그림은 '낡은 탁자보 위에 세 가지 물건이 놓여 있다. 펼쳐진 두툼한 성경책과 귀퉁이가 해어진 작은 소설책 한 권, 그리고 불 꺼진 초가 꽂힌 촛대다. 고흐가 네델란드 개혁교회 목사로 일했던 아버지 테오도루스가 세상을 떠난 직후에 그린 것이다. 펼쳐진 성경은 이사야 53장 3~5절, '고난 받는 종의 노래'로 알려진 대목이고, 그리 속에 등장하는 소설은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이다. 목사님은 이렇게 말한다.

"고흐는 대체 왜 이 두 책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일까.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세계와 자기 세계를 화해시키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삶에 대한 모든 해답을 성경에서 얻을 수 있다며 다른 책들은 백안시했던 아버지의 경직된 신학으로부터 탈주했던 고흐는 이 그림을 통해 성경과 소설, 교회와 세계는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있다고 아버지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쩐지 고흐의 그림과 목사님의 '다리 놓는 사람'이 겹쳐진다. 성경과 소설, 교회 안과 교회 밖이란 이질적으로 보이는 세계가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있다고 '다리 놓는 사람'인 자신을 고흐의 그림을 빌려서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질문하는 시간
▲ 북 토크 질문하는 시간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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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is...'라는 시간에는 다양한 반응들이 나왔다. 순수함을 잃지 않고 몸부림치는 것이 보임. 구약의 선지자. 바보 목사, 앎과 행동이 녹아있는 분, 점잖은 선비, 글이 살아 움직이는 목사님, 김기석은 평화를 일구는 농부다. 시가 어울리는 남자 등등.

그 말을 들은 느낌이 어떠냐고 묻자 김기석 목사님은 "인생이 부끄럽다. 나답게 살지 못하는 것, 그게 아프다. 우리는 겸손하려고 애쓰는 사람이지 겸손한 사람은 아니다. 목사가 누구인가? 목사가 누구인지 늘 고민하고 알고 싶은 것이 목사이다. 김기석은 누구인가? 김기석이 누구인지 알고 묻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오늘 이 시대에 주기도문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냐 물었을 때 목사님은 이렇게 답했다.

"처음 목회를 한 것이 80년대 초,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18세 미만의 노동자 아이들을 상대로 목회를 했다. 그들은 하루 16시간 노동을 했다. 그들의 고통 받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울었고 우리는 주기도문을 눈물로 드릴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일본 빈민가에서 빈민들에게 밥을 주는 분이 오셨다. 이분이 질문을 했다. '여러분, 주기도문 가운데서 어느 대목이 가장 와 닿는가?' 민주화항쟁을 한창 하고 있을 때이기 때문에 우리는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라든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이쪽으로 얘길 했다.

그런데 이분은 '우리는 다르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한다는 거였다. 날마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그 목사님으로서는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라는 기도가 가장 절실한 기도일 수밖에 없다. 오늘 배불리 먹고 자면서 우리에게 주기도문이 참답게 와 닿긴 어렵다. 고통의 현장, 하나님의 나라가 유린되고 있는 곳에 섰을 때 그 기도가 우리에게 절실하게 다가온다. 예수님이 당신의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을 주신다고 했는데 당신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그분의 뜻에 맞게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그걸 고민하며 기도하라는 얘기다. 아멘 이전과 이후의 삶은 달라야한다."

저자사인회
▲ 북 토크 저자사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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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나 독서습관을 묻는 질문에 김기석 목사님은 그야말로 풍성한 책의 성찬을 베풀었다. 우리의 독서습관이나 독서의 질이 얼마나 낮은지 다시 생각하면서 도전받는 시간이 되었다.

"주로 전작을 읽는 편이다. 밀란쿤데라, 니코스 카잔차키스키라든디 도스예스키 등 전부다 읽는 편인데, 사고가 막힌다 싶을 땐 아브라함 헤셀, 문장이 좀 막힐 때는 루신에게로 달려간다. 상상력이 떨어졌다 싶을 땐 막게스에게로 간다. 침체되었다 싶을 때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에게로 간다. 그들에게로 가면 새로운 샘물을 마시고 오게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조선일보에서 저한테 책 세권만 소개하라고 해서 세 권을 소개했다. 헨리 소로우의 <월든>, 고대그리스 비극작가들의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다 소개할 수 없어서 헤로도투스의 <역사>를 소개했고 <페로칼리아>를 소개했다. 굳이 소개한다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성자 프란체스코>를 보시면 좋겠다. 그리고 최근에 보는 책 중에는 <불가능한 것에의 가능> 재밌게 봤고 <사회인간학>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글을 쓰고 있는 분이 있어서 읽고 있다. <침묵으로 지은 집>, 서경석 선생의 <디아스포라의 눈>이란 책도 있다. 재밌게 읽었다.

어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는데 남는 게 없는 책이 있다. 어떤 책은 겨우 두 세줄 읽었는데도 깊이 와 닿는 게 있다. 책을 얼마만큼 읽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그 책과의 만남 속에서 어떤 인연을 맺었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하루에 스스로에게 부과한 과제가 있다. 아무리 바빠도 200쪽은 읽자. 이게 스스로에게 부과한 과제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읽기 어렵다."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이제 아쉽지만 모든 순서를 끝내고 저자 사인회를 가졌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시는 사인 메시지가 달랐고 다양했다. 차 시간 놓칠까 걱정돼서 북 토크 첫 번째 시간엔 사인도 못 받고 나온 것이 아쉬웠던 까닭에 이날은 끝까지 참석하고 사인도 받았다.

모두 함께
▲ 북 토크 모두 함께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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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봄인데 봄 같지 않은 날들이지만, 그 와중에도 매화꽃이 활짝 피어 산책길이 향기롭다. 산책길 걷다가 코끝에 와 닿는 그 향기는 매화꽃 향기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챈다. 향기로운 사람은 그 향기를 오래 오래 멀리 멀리 날리나보다. 돌아오는 길에 들은 말씀을 되새겨 보았다.

삶이 '부끄럽다'하신 목사님이 오히려 나와 참석한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뿐만 아니라,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정말로 치열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하게 했다. 고통이 있는 자리, 슬픔의 자리로 내려가야 할 것에 대해서도. 그분의 독서습관 책 읽는 방법이나 독서의 질 등을 들으면서 우린 모두 너무 엉성하게 살았구나, 생각했다. '다리 놓는 사람' 김기석 목사님. 지금도 나는 그 향기에 취해 있다.


태그:#김기석 목사님, #북 토크, #로고스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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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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