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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처마끝에 자리잡은 들풀 두포기. 눈꽃을 피운채 눈 무게에 물구나무서듯 처마 밑으로 매달려 있습니다.
 지붕 처마끝에 자리잡은 들풀 두포기. 눈꽃을 피운채 눈 무게에 물구나무서듯 처마 밑으로 매달려 있습니다.
ⓒ 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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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이 불과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신문, 방송, 인터넷 등 미디어 들이 온통 총선 이야기로 도배되고 있다. 아니, 총선 이야기라기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를 온갖 설과 의혹들, 상대 진영에 대한 흠집 내기가 판을 치고 있다. 참으로 혼란스럽고, 저 믿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그럴듯한 사건들을 정말 투표에 반영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판단이 서질 않는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 갈수록 힘에 겨운 서민들의 가게를 살찌울 수 있는 대책, 갈수록 심각해지는 학교폭력과 청소년 문제 등등 정작 선거의 이슈가 되어야 하는 것들은 어디로 갔는지 평범한 국민의 눈으로 보아도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서일까? 선거를 치르는 당사자들이나 정쟁의 중심에 있는 정당들, 그리고 언론매체들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선거가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오래전의 '막걸리 선거', '고무신 선거'가 그래도 선거하는 것 같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선거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다. 이번에 선출되는 국민의 대표들에게 우리의 운명을 향후 4년간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다소 역겨운 진흙탕 싸움을 바라보면서도 냉정한 시각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는데,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국민의 소중한 의무이자 권리이기 때문이다.

나름 긴박한 총선 정국이지만 뚱딴지같은 들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들풀의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이 이름 모를 들풀이 있는 곳은 휴게소 지붕 처마 끝 좁디좁은 틈바구니. 들풀은 흡사 쌍둥이와 같은 모양의 두 포기이다. 약 30cm 간격으로 나란히 자리를 잡은 들풀들은 오래전 육체적 생명은 다했지만, 겨우내 모진 삭풍을 견디며 자신의 터전을 지키고 있다.

금속 틈바구니에 쌓인 흙먼지에 겨우 몸 지탱하고 있으니...

정작 살아 있으면서 꼿꼿히 서서 꽃을 피웠을 때보다 거꾸로 매달려 눈꽃을 피운 후 존재감이 생겼습니다.
 정작 살아 있으면서 꼿꼿히 서서 꽃을 피웠을 때보다 거꾸로 매달려 눈꽃을 피운 후 존재감이 생겼습니다.
ⓒ 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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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때늦은 폭설이 내리는 날, 솜사탕처럼 내려앉은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한 들풀들이 점점 기울더니 몰아치는 눈보라에 결국 물구나무서듯 머리를 처마 아래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 들풀의 존재는 이때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알게 됐다. 휴게소를 출입하는 사람마다 눈꽃을 활짝 피운 들풀들의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모습을 한 번 더 쳐다보곤 했다.

밤새 강풍이 세상을 뒤흔들고 지붕에 쌓였던 눈들이 녹으며 처마 끝으로 눈 뭉치를 밀어 내렸다. 들풀의 운명은 거기까지인 것으로 여겨졌다. 지붕에서 한 삼태기만큼씩이나 밀려 내려오는 눈 덩어리에 휩쓸리면 제아무리 한겨울 모진 삭풍을 견뎌냈다 하더라도 불가항력일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들풀들은 땅속에 뿌리를 내린 게 아니라 금속 틈바구니에 쌓인 흙먼지 정도에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을 터이니.

이른 아침, 들풀들이 있던 처마 끝이 휑하다. 결국, 그렇게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눈꽃을 피우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었던 들풀들이 어디론가 휩쓸려 사라진 것이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허전함이 몰려왔다. 눈 덩어리와 함께 떨어졌음 직한 땅바닥을 훑었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강풍에 휩쓸려갔을 터이다.

그렇게 들풀들은 기억에서 빨리 사라져갔다. 다만 드나드는 휴게소 손님은 얼음눈꽃을 피운 채 처마 밑으로 물구나무서듯 특이한 모습으로 매달려 있는 들풀들을 촬영하는 것을 보았다. '카카오톡'의 프로필 사진에 눈꽃 핀 들풀 사진을 올린 것도 며칠 뒤의 일이다.

강풍과 눈보라에 휩쓸려 사라졌을 거라 여겼던 들풀이 비스듬히 누운 채 살아 남았습니다.
 강풍과 눈보라에 휩쓸려 사라졌을 거라 여겼던 들풀이 비스듬히 누운 채 살아 남았습니다.
ⓒ 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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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싸. 그 들풀들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거짓말처럼 들풀들은 씩씩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유난히도 바람이 거셌던 오늘 오후 지붕 위 간판 흔들리는 소리가 거슬려 창문을 통해 처마 끝을 바라보는 순간, 비스듬히 기울어진 들풀 두 포기가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 눈에 들어온 것.

삭풍을 견뎌낸 당당한 모습의 들풀. 거센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삭풍을 견뎌낸 당당한 모습의 들풀. 거센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 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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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들은 그 자리에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몸을 흔들었지만, 오히려 '우리, 여기 이렇게 살아 있소'라며 몸짓하는 것 같았다. 육체의 생명은 이미 겨울을 맞으며 끊어졌지만, 살아있는 듯 겨우내 눈꽃 피우기를 반복하며 새싹들이 움트는 순간까지 굳게 터전을 보전하고 있는 그 끈질김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텔레비전에서 총선 판세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온다. 그저 이름 없는 미물로 취급할 수도 있을 두 포기 들풀의 거친 삭풍과의 처절한 투쟁, 꺾어지지 않는 배짱과 한결같음. 총선을 앞둔 지금 우리가 가다듬어 보아야 할 것들이 아닐까?


태그:#들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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