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저는 헌정 역사 처음으로 실시된 재외국민 투표(3월 28일부터 4월 2일까지)에 참여했습니다. 그것도 무려 1153km를 달려가서 말입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19세 이상의 재외 영주권자와 선거 기간 중 국외 체류 예정자 또는 일시 체류자들은 재외국민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현재 국제 NGO 단체인 생명누리의 일원으로 인도 남부의 힌두푸르(Hindupur)에서 사회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생명누리는 행복한 마을공동체 만들기를 주요한 목표로 마을개발센터를 운영하며 가축대부운동, 방과후교실, 도서관 운동, 셀프 헬프 그룹(Self Help Group) 지원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 표 행사하러 1153km 달렸습니다

생명누리 누리집
 생명누리 누리집
ⓒ 생명누리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저와 생명누리 단체의 자원봉사자들이 재외국민 투표에 참여하는 데에는 몇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첫째, 투표에 대한 절박함의 부족입니다. 주로 20~30대의 청년들이 해외봉사 활동이라는 큰 목표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희생하며 낯선 인도 땅에 발을 내딛지만, 이들의 정치의식은 대한민국의 표준 청년들과 딱히 다르지 않았습니다. '왜 꼭 투표에 참여해야 하지?' '나는 우리 지역에서 누가 나오는지도 모르는데…' '내가 투표에 참여한다고 한국 정치가 바뀔까?' '다 그 놈이 그 놈이지'라고 생각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몇 사람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투표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 올 것인가에 대한 관심보다, 투표 행위 자체가 갖고 있는 의무와 책임의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투표를 통해 선출된 정치인이 있다면, 우리는 그의 행적이 공익을 위하는지, 공정성을 잃지 않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난 대통령 선거에 대한 결과를 우리 스스로 담담히 견뎌내며,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매진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거주하는 힌두푸르에서 한국 영사관이 있는 뭄바이까지는 1153km, 22시간 정도의 기차여행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뭄바이는 살인적인 물가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침대칸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야 한다.
▲ 뭄바이 행 기차 안 침대칸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야 한다.
ⓒ 김준표

관련사진보기

1분의 투표행위를 위해 4일을 소비하고, 10만 원에 해당하는 돈을 써야 합니다. 그나마 일주일 동안 여유 있게 휴가를 내 투표도 하고, 뭄바이 구경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저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내내 이어지는 인도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방과후 수업을 마냥 빼먹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택한 방법은 지난 3월 29일 밤 기차를 타고, 30일에 뭄바이에 도착해 31일 오전에 투표를 마치고 4월 1일 정오에 다시 힌두푸르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는 것이었습니다.

침대 칸이긴 하지만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꼬박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출발 날, 아픈 동료가 뭄바이행을 포기할 때 저 역시 안 가는 방법이 무엇일까 꼼수를 부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반은 의무감에, 반은 떠밀려서 가방을 꾸리고 뭄바이로 향하는 야간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재외국민 투표, 많이 놀랐습니다

영사관 내부에서 투표를 마친 후 복도에서 인증 사진을 찍었다.
▲ 투표 인증 사진 영사관 내부에서 투표를 마친 후 복도에서 인증 사진을 찍었다.
ⓒ 김준표

관련사진보기


투표를 하면서 놀라게 된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이번 선거에서 그렇게 많은 정당들이 총선에 뛰어들었는지 몰랐습니다. 어림잡아 20개에 가까운 정당의 이름들이 긴 종이 위에 나열돼 있었습니다.

둘째, 투표와 함께 생기는 기대감과 희망입니다. 마치 로또를 사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과도 같습니다. 당선권에 있다면 짜릿한 승리감을, 군소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면 그 의미에 대한 자부심에 행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셋째, 그 먼 거리를 달려 소중한 투표를 행사하러 간 국민을 대하는 영사관 직원들, 참관인들의 태도입니다. 어떤 분은 재외국민 투표를 하며 환호성과 함께 박수 갈채를 받았다는데, 저희는 너무도 무덤덤한 인사만 나눴습니다. 소중한 한 표의 가치가 국외라서 달라질 것은 없지만 어려운 조건에서 부푼 가슴으로 달려온 이들에게 조금은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넷째, 짧은 시간이었지만 젊은이들이 투표를 하러 영사관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기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미래를 이끌어 갈 젊은이들이 그들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습니다.

2.5% 저조한 투표율... 그래도 무시할 순 없죠

이틀동안 구세군에서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를 이용하였다. 살인적인 물가가 기세등등한 뭄바이에서 만난 포근한 마굿간이었다.
▲ 뭄바이에서 머문 숙소 앞에서 이틀동안 구세군에서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를 이용하였다. 살인적인 물가가 기세등등한 뭄바이에서 만난 포근한 마굿간이었다.
ⓒ 김준표

관련사진보기


지난 4일, 뉴스를 보니 재외국민 투표에 5만6천여 명이 참여해 2.5%의 투표율을 보였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혈세 낭비라며 비판하겠지만, 5만6천여 명의 뜨거운 겨레 사랑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제도 개선을 통해 충분히 비용을 절감하며 더 많은 재외국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할 것입니다.

재외국민 투표를 마치고 저희는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기나긴 기차여행 덕분에 생긴 피로를 회복하고, 순수한 아이들과 눈을 맞추기 위해 마을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저희의 관심은 4월 11일 총선 투표일에 향할 것 같습니다. 우리와 같은 수고는 아니어도, 작은 불편과 게으름을 떨치고 일어선 많은 젊은이들이 투표소로 향하기를 희망합니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선거의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입니다. 민주주의의 뿌리가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권리라면 민주주의의 줄기는 참여와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뿌리와 줄기가 없이 꽃을 피울 수는 없으니까요.


태그:#재외국민투표, #생명누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