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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새노조(2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한 3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 개념광장에서 열린 총파업 출정식에서 새 노조 조합원들이 김인규 사장의 퇴진과 KBS 새 노조 전 집행부 간부들의 부당징계 철회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KBS 새노조(2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한 3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 개념광장에서 열린 총파업 출정식에서 새 노조 조합원들이 김인규 사장의 퇴진과 KBS 새 노조 전 집행부 간부들의 부당징계 철회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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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유례없는 최근 언론노동자들의 연대파업은 지난 1월 MBC 기자회의 제작거부 투쟁이 그 시발점이었다. 당시 100%에 가까운 참여율을 보인 영상기자회 소속 카메라 기자를 인터뷰했던 기억이 난다. 해당 기자는 "취재현장에서 MBC뉴스의 공정성을 비판하는 시민들에게 돌세례를 받았던 아픈 기억이 우리를 움직인 힘"이라고 말했다. MBC가 '돌세례'였다면  KBS는 '물세례'였다.

"보도국 소속 기자로 있다가 시민단체 집회에서 몰매를 맞을 뻔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KBS가 언론이냐'며 밤을 샌 사건기자의 얼굴에 찬물을 뿌려주시던 아주머니의 얼굴을 기억합니다(그날 다행히 비가 와 아무도 저희의 눈물을 보진 못했습니다)." - KBS 38기 방송저널리스트 성명서 중

지난 2월 17일, KBS 새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 파업에 앞서 KBS 막내기수인 공채 38기 방송저널리스트(방송기자와 시사·교양PD로 이루어진 KBS 직군, 이하 38기)들이 집단 성명을 발표했다. 공정방송에 대한 KBS구성원들의 요구를 징계로 입막음하려는 김인규 KBS 사장을 꾸짖는 발칙한(?) 내용이었다. 이들은 성명에서 "언론고시생 시절 KBS는 '개념탑재'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니던 얄미운 시민들이 바로 저희"라며 "2010년 KBS 새노조 선배들을 거리로 나서게 만든 것도 자신들"이라고 선배들에 대한 징계 철회를 주장했다.

경찰서와 방송편집실을 떠나 집회장과 거리로 나선 KBS 38기들을 2일 여의도에서 만났다. KBS 공채 38기 이승문 PD는 입사 후 자신이 처음으로 마주한 것은 "선배들의 내상을 입은 듯 절망적인 패배감이었다"고 말을 꺼냈다. 제작과정에서의 부당한 간섭과 프로그램 불방을 예로 들며 PD들의 자율적 제작과정을 중시하지 않는 당시 KBS간부들의 태도를 답답해 했다.

어릴 때부터 KBS 뉴스를 보며 기자의 꿈을 키웠다는 김빛이라 기자는 "KBS가 20%를 넘나드는 9시 뉴스의 기존 시청률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며 "국민들의 변화 요구에 무감각하다"고 꼬집었다. 법조팀 기자로 "한창 배울 시기에 일터를 떠나 있어서 아쉽다"던 이슬기 기자는 FTA 취재 당시 일화를 소개하며 논란이 되는 사회 쟁점을 피하는 KBS 보도태도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38기들은 하나같이 이번 파업을 통해 "공영방송의 가치와 언론인의 자세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 2010년 파업으로 징계를 받은 선배들을 보면 두렵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사측의 징계위협에도 선배들의 의연한 모습에 별 걱정을 안 한다"며 "김인규 사장님이 새까만 후배들에게 징계를 내린다면 오히려 파업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여유를 보였다.

입사 면접 당시보다 더욱 치열하게 공영방송에 대한 가치를 고민한다는 이들에게 이번 파업은 어쩌면 38기로서 치러야 할 또 하나의 입사전형이었다. 다음은 KBS 공채 38기들과 진행한 대담 내용이다. 

"파업 하고 나서 입사면접 때보다 더 치열한 고민해"

KBS 공채 38기 김빛이라 기자
 KBS 공채 38기 김빛이라 기자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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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사전후 시기 KBS의 방송공정성에 대한 국민 비판이 높았다. 입사 전 KBS에 대한 이미지는 어땠나?
이승문(이하 승문) : "대학을 다니던 2004~2005년에는 적어도 KBS 2TV <시사투나잇>처럼 사회정치적 이슈에 대해 판단의 시각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언론사 입사준비를 하던 2008년 이후에는 내 친구들 대부분이 KBS 뉴스를 보지 않았다. 직장으로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언론사로서는 별로였다."
김빛이라(이하 이라) : "사실 나에게 KBS는 입사하고 싶은 직장이었다. 어쨌든 가장 영향력이 큰 언론사가 아닌가. 어릴 때부터 할머니가 항상 KBS 채널을 켜 놓으셨기 때문에 생활의 일부였다. KBS 1TV 아침뉴스에서 시작해서 저녁 일일 드라마를 거쳐 9시 뉴스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했다. 당시 KBS 뉴스를 보며 기자가 되고자 했다."

- 입사한 지 2년이 채 안 되었는데 파업을 하게 된 심경은 어떤가?

승문 : "사실 즐거운 면도 있다.(웃음) 막내라는 위치에서 파업이 이후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판단은 아직 없다. 그러나 선후배가 함께하고 있다는 유대감을 느낀다. 대부분의 언론인이 그렇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혼자 일하는 직업이 아닌가. 파업을 4주간 이어오면서 동기들뿐만 아니라 선배들과 만나가며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들어 가고 여기에 내가 기여한다는 느낌이 좋다."
이라 : "파업을 거치면서 KBS 기자협회에서 엠티를 다녀왔다. 평소라면 취재보고 외에 마주앉을 기회도 없는 20년 선배님과 진솔하게 기자가 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공영방송을 목표로 함께 파업에 참가한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배들은 우리들이 역사적인 시기에 중요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루하루 감사하다. 내가 가야 할 기자라는 이름의 무게를 생각하는 시기다."
이슬기(이하 슬기) : "사실 아쉬웠다. 2월에 법조팀으로 첫 발령이 나서 힘들게 자리를 잡았다. 법조기자로서의 내 역할을 고민할 시점에 파업이 시작됐다. 선배들도 '2년차는 한창 배울 때다'라며 안타까워 하더라. 그래서 '리셋 KBS뉴스 팀'에도 자원했다. 뉴스 취재와 제작의 실무적 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매일매일 나가는 뉴스를 준비할 때보다 더욱 심층성 있는 뉴스를 만들어 볼 기회이기도 하다. 나 또한 파업과정에서 언론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입사 면접준비 때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한다. 파업을 통해 배운 것이라 무게감이 다르다."

FTA 같은 사회적 이슈 빠진 뉴스... "MBC 안 가고 왜 KBS 왔냐?"

KBS 공채 38기 이승문 PD
 KBS 공채 38기 이승문 PD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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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에 발표한 38기 성명서에서 입사 후 "현업에서 자괴감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승문 : "가장 충격적인 건 선배들의 절망적인 분위기였다. PD들은 자기자존감이 강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모두 깊은 내상을 입은 듯 무기력하고 자조적인 모습이었다. KBS 입사 이후 선배라는 사람이 그러더라 '너 왜 MBC 안 가고 KBS에 왔냐'고.

제작과정에서 아이템을 내면 너무 시사적이라고 부장급 간부들이 자르는 경우도 있었다. 나와 같은 사무실의 선배가 항일음악가 정율성에 관련된 다큐를 만들었는데 뚜렷한 이유없이 불방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도 했다. 언론은 제작의 자율성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KBS는 그게 중심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슬기 : "수습시절 경찰서를 돌면서 FTA집회를 마크했다. 수습인 내게 FTA집회 전체 취재를 맡기는 것은 오늘 9시 뉴스에 FTA 관련 아이템은 안 내보낸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찬반과 관계없이 FTA 같이 중요한 사회적 이슈는 일단 보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이슈들이 메인뉴스에 안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라 : "KBS 9시 뉴스의 시청률이 20%를 왔다 갔다 한다. 우리가 정말 1등으로 뉴스를 잘 만들어서 국민들이 KBS뉴스를 사랑해주는 것이 아닌데, 거기에 대한 큰 고민이 없는 듯했다. 1등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 없이 고민을 하는 과정이 없는 것 같았다. 봐라! FTA 같은 것 안 넣어도 사람들은 우리 뉴스 본다는 식의 독선이 KBS 내부에 없었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 시청률 20%가 얼마나 고맙고 값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 파업에 대한 부모님이나 주변 친구들의 반응은 어떤가?

슬기 : "내 친구들이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친구들은 모른다. 내가  아직 월급을 받는 줄 안다. 파업을 하니까 시간적 여유가 생겨 친구들을 많이 만난다. 그 때마다 친구들이 나보고 계산하라고 한다. (웃음)"
이라 : "파업을 하면서 만든 '리셋 KBS뉴스'를 보여드리며 걱정하시는 부모님을 설득했다. 자연스레 내가 왜 파업에 참여했는지를 정리하고 돌아보게 되더라. 주변 친구들이나, 파업하며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언론인이 파업하는 걸 굉장히 대단한 것으로 봐 주시는 것 같다. KBS에 대한 사람들의 많은 기대를 느끼고 조금 무서워졌다. 이 파업이 끝났을 때 그 분들이 기대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승문 : "토요일 친구들과 모임이 있었다. 때마침 리셋 KBS뉴스의 총리실 민간인 사찰 특종보도가 터졌다. 친구들이 모두 사찰이야기만 하더라. 함께 모여 이야기 하는 사회적 이슈가 내가 다니는 직장선배들이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사실 파업초기 주변 친구들은 KBS가 파업을 하든 말든 <개그콘서트>만 나오면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어쨌든 그동안 KBS가 소홀하게 다뤘던 우리사회 주요 의제에 대해 내가 하는 역할에 따라 반응이 오니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 파업 초기에는 시민들이 "왜 이제서야 파업을 하느냐"는 냉소도 있었는데?
슬기 : "노조의 분열문제로 파업이 조금 늦어진 측면이 있다. 단일대오인 MBC와 달리 KBS에는 기자와 PD가 뿌리인 새노조와 기술지원인력이 중심인 구노조가 공존한다. 인원수로는 구노조가 3000명 정도로 현재 파업을 이끌고 있는 새노조보다 2배 가까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구성원들을 설득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라 : "저희들만 파업했다면 부담스럽고 외로웠을 것이다. MBC노조가 먼저 시작했고 저희와 비슷한 시기에 연합과 YTN이 함께하면서 언론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많은 이들의 고민이 모이는 판이 되었다. 여의도에서 열린 언론3사 파업 콘서트 때 비가 오는데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왔다. 사실 행사를 준비하면서도 관객이 얼마나 올 것인지 걱정을 많이 했다. 그들에게는 자기 생계와 무관한 파업이지 않나. 성금을 모아주는 시민들에게 감사했다."
승문 : "방송사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관심도가 해당 방송사 파업에도 이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MBC 파업에서는 <무한도전>에 대한 시청자의 관심이 파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이 없었다. 당장 사측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이 없기도 했지만 KBS의 파업소식이 사람들에게 별 호응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처음에는 시청률이 안 나오는 프로그램이라도 끌고 가면서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 막내인 내가 느끼기에는 선배가 흔들리지 않고 국민들에게 우리가 공정방송을 위해 꿈틀거리고 있다는 액션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박수 받으며 끝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막내로서 파업에서 주된 역할은 무엇인가?
모두 : "기본적으로 율동은 우리가 담당한다."
승문 : "'리셋 KBS뉴스' 제작에 참가하는 친구들이 있다. 노조에서 파업 프로그램과 관련해 우리의 도움을 간곡하게 요청하면 대부분 들어준다. (웃음) 보통 파업에 활력소가 되는 문화공연이나 개그공연을 준비한다."

"김인규 사장 우리 징계한다면... 파업의 큰 동력 될 것"

KBS 공채 38기 이슬기 기자
 KBS 공채 38기 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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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7월 파업 이후 13명의 새노조 집행부가 징계를 당했다. 두렵지 않은가?
슬기 : "사실 징계문제 때문에 아버지랑 말다툼을 했다. 아버지가 연세에 비해 진보적인 분이라 그동안 응원를 보내주셨다. 파업 한 달여가 되도록 내색은 하지 않으셨는데 막상 징계이야기가 나오니까 불안해하시더라. 그런 걸 보면서 징계문제가 현실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난 오히려 징계를 받고 싶다. (승문: 이거 꼭 써주세요, 웃음) 솔직히 김인규 사장님이 새까만 후배인 막내기자를 징계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만약 우리들을 징계한다면 그건 파업의 큰 동력이 될 거라 생각한다."

이라 : "입사 전에 선배들이 징계를 받았다는 것이 엄청난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정말 취재력이 뛰어나고 뉴스를 잘 만들 뿐만 아니라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선배들이 징계에 회부되는 걸 봤다. 그때 징계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용기있는 행동의 대가가 징계라는 현실에 오히려 징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슬기 : "징계에 대한 생각은 선배들 태도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선배들이 저희에게 사측의 징계위협 때문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이 없었다. 그 의연한 모습을 보면서 아! 저 선배도 저런데 우리가 흔들릴 게 없다고 생각한다."

이라 : "(승문씨를 가리키며) 우리 기수는 이승문이 대표니까. (웃음)"

- 파업을 마치고 돌아갔을 때 여러분들의 KBS가 어떤 곳으로 바뀌었으면 하나?
승문 : "입사 전, KBS에 있는 사람들은 생각이 고리타분하고 성격도 딱딱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래서 밖에서 봤을 때 KBS가 침체되어 있는 조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파업을 통해 '공정방송'이라는 최소한의 상식을 지키고자 하는 선배들의 노력을 보면서 그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이번 파업을 통해 KBS가 개인의 역량을 최소한이라도 반영하는 조직이 되었으면 한다. 개인의 역량이 총화되고 더 극대화 시켜주는 공간이 조직이다. 그동안 KBS는 오히려 단순계산했을 때 전체역량의 합도 못 만들어 내는 조직운영을 해왔다."
슬기 : "파업을 통해 공영방송의 기준과 틀을 다시 세우는 것처럼 공동행동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있고, 일터에서 기자 개개인이 자기 뉴스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할 몫이 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가야 된다고 느꼈다. 이번 파업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이 앞으로 일할 시간이 30년이라고 생각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정치권의 외풍은 어느 정권이든 똑같이 올 것이다."
이라 : "선배들이 후배들을 맞이 했을때 정말 잘 들어 왔다 여기서 함께 잘 해보자라며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파업 느낌이 좋다. KBS가 정말 그렇게 될 것 같다."


태그:#KBS파업, #리셋KBS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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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이 서서히 물러갈 때, 이 봄날의 꽃이 자신들을 위해 화사하게 피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자신을 지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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